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집으로 나오기 직전 RHK 출판사에 들렀다가 구입한 책이다. 사실 마이클 코넬리의 명성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선 어떤 책을 고를지 몰랐지만 마침 이 책이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책인데다 판매대에 착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는 한번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샀다. 5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책이었고 그날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상태라 지하철에 서서 가는 입장으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사실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이상하게 좀더 얇은 책이 아닌 가장 두꺼운 이 책을 펼치며 집으로 향했다.

 

표지의 사내 어깨에  땅굴쥐를 그린 문신을 봤지만 그저 지나쳤고(아마 미키마우스가 그려졌다고도 아주 잠깐 생각했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블랙 에코'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크게 궁금해하지 않으며 해리 보슈를 먼저 만났다. 사건 접수가 되는 날인 '5월 20일 화요일'을 제목으로 하는 첫 장의 앞에 쓰인 두 줄의 글귀도 지금에 와서야 다시 확인하였다. 영어로 된 제목을 즉각적으로 한국어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나의 우둔함에 실소가 나왔다.

 

땅굴은 검은 메아리

그 안에 있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형사 해리 보슈는 베트남 전쟁 당시 땅굴쥐로 활약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5월 20일 화요일 그가 사고를 접수받은 현장인 굴에서 발견된 시신의 주인공인 메도우스는 그와 함께 전쟁에서 땅굴쥐로 참전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의 새 파트너이자 사랑의 감정이 싹튼 FBI의 앨리노어 위시의 죽은 오빠도 베트남 전에 참전하였고, 그들이 함께 수사 중인 메도우스 사건은 1년 전 웨스트랜드 안전금고 도난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사건은 땅굴쥐로 보이는 범인들이 땅속에서 안전금고를 모두 털어간 사건이다. 그야말로 땅굴쥐에 의한, 땅굴쥐를 위한, 땅굴쥐의 사건이다. 범죄를 계획한 것도 땅굴쥐(이 점은 스포일러의 여지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범죄를 실행한 것도 땅굴쥐, 범인을 추적하는 것도 땅굴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건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베트남 전쟁과 땅굴쥐의 존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굉장히 놀랍다. 내가 전혀 모르는 존재가 이토록 막강한 존재감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감정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뛰어난 살인사건전담 형사인 해리 보슈는 분명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부패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경찰 조직 내에서는 썩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물론 그러하기에 독자인 우리들과는 썩 잘 어울린다. 아직 해리 보슈를 더 만나봐야 알겠지만 그가 탐정이 아닌 형사로서의 위치를 고수하는 면에 알 수 없는 공감을 느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 덕분에 언제나 내사과 등 경찰조직내부에서 감시와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 피곤한 일상이 안되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본인은 그마저도 선택한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하지만 말이다. 아닌가? 하긴 소설 속에서 그들은 해리 보슈의 손바닥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담이 작은 나는 사실 아슬아슬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데 해리 보슈의 사건을 읽다보면 모두가 해리 보슈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홈즈의 사건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긴장감이 있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좀 싱겁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난 후에 내가 의심했던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땐 예상이 적중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홈즈의 사건처럼 도무지 독자가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것보다는 참여의 기쁨이 커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어찌 됐든 처음 만난 해리 보슈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늘 도서관에 갈 일이 있는데 한 권을 빌려올까 싶다. 궁금하다 이 형사, 아니 이 남자가. 어머! 그래 로맨스에도 적극적인 이 형사는 남자였던 게다, 그게 아무래도 여성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 중의 하나는 아닐까? 마침 요즘 출파사에서 온라인 서점에서 아주 파격적인 가격행사를 하던데 몇 권 더 사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안 사실인데 집에 있는 [밤과 낮 사이]라는 작품에도도 마이클 코넬리 작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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