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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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사기보다 버리기가 어렵다. 일단 마음먹기가 어렵고 마음을 먹었대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다. 새 물건은 카드만 긁으면 집 안까지 배달된다. 덤도 끼워주고, 적립금도 주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소비를 축하해준다. 하지만 처분할 때는 갖은 수고를 들여야 한다. 쓰레기를 분리하고 배출하는 것도, 쓰레기장으로 들고 나르는 것도 모두 내가 직접 해야 한다. 145~146쪽


비가 개고 해가 쨍쨍한 오후, 벼르고 벼르던 분리수거를 하고 왔다. 대부분 플라스틱인데 늘 버리면서도 의문이 든다. 과연 이걸 재활용 할 수 있을지, 우리 집만 해도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데 내가 사는 지역, 우리나라, 전 세계로 따져보면 어질어질 해진다. 두 차례에 걸쳐 재활용, 일반 쓰레기, 음식물, 폐지까지 버리고 오니 집이 조금 깨끗해진 것 같았지만 물건이 꽉꽉 들어찬 집은 여전히 답답해 보였다. 가장 큰 원인 제공은 내 책이다. 더 이상 빈 벽이 없어 책장을 들일 수 없어 이중으로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내 욕심이 과하다 싶다. 최근에는 소장하지 않는 책들은 지인에게 주는 등 최대한 책을 늘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긴 하다. 꼭 1년 전에 무모하게도 내 책들을 세어봤다. 약 3,100권이었는데 분명 그보다 더 늘어났다는 것을 안다. 몇 십 권도 아니고 백 단위의 책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가끔 마음이 동할 때면 물건을 모두 끄집어내어 버리지만 항상 내 마음과 달리 양이 너무 적어 당황할 때가 많다. 특히 자잘한 물건들이 많은데 서랍에 처박아 둔 터라 잘 보이진 않지만 꺼내보면 양이 엄청나다. 물건을 쌓아두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그냥 두는 물건들이 좀 있다. 한 때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기도 했지만 내 책들을 보며 포기한지 오래고, 책들이 모두 빠진다면 정말 그럴싸하다는 상상도 해봤다. 책장 때문에 우리 집엔 소파, TV장, 화장대(이건 내가 관심이 없어서)도 없다. 그러니 책들만 빠진다면 정말 간소화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아예 싹 정리하고 해외로 살러 간 저자가 대단해 보였다. 필요하거나 버리지 못한 물건은 비키니 장 두 개에 담아 언니 집에 맡겨놨다고 했는데, 과연 내가 내 짐을 싹 정리한다면 양이 어느 정도 될까 싶었다.

집이 필요하다 생각하니 다른 문제들이 따라왔다. 치솟는 집값에 불안해하고, 안정된 직장이나 부유한 부모를 가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누가 투자에 성공했단 소리를 들으면 샘이 났다. 불안, 비교, 시기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자꾸만 흔들어놓았다. 7쪽

한때 내 책들을 한 곳에 두고 싶다는 생각에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최근에도 그런 열망이 들떠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었는데, 결국 집이 주는 만족감 하나로 평생 빚쟁이로 살기 싫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명한 건지, 현실 안주인지, 자기합리화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굳이 돌아보면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공간에 주는 만족감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끌어안고 사는 걸까? 그나마 옷은(내 옷만. 아이들과 남편 옷은 좀 된다) 많지 않아 나름 만족하면서도 항상 수수한 차림이 나에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물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를 보면서 한참을 웃고(이 책도 카페에서 읽다-저자의 패션 테러 부분-너무 웃겨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 책을 덮고 뛰쳐나올 정도였다), 패션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생소함에, 저자에게 물건이 머무는 순환 속도에 어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저자처럼 과감히 물건을 정리하지 못할 거라는 데서 오는 실망감(?)과 정말 다 정리했을 때의 후련함과 미련(?) 사이에서 갈등할 나를 상상해보고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꼭 저자처럼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라는 말은 실천해 보고 싶었다. 그럴 기회가 나에게도 분명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열망하는 책만 가득한 방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물건과 추억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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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1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3,100권이면 서재를 크게 잡으셔야겠네요 못 쓰는 책은 저한테 던져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