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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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칼럼에서 좀체 유머를 찾기가 힘들다.  칼럼니스트들은 대개 직설적으로 글을 쓴다.  글은 반듯하고 문장은 유려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매번 같은 칼럼을 그렇게 읽으면 좀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다음 칼럼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오는 것은 역시 반어와 유머 코드가 담겨 있는 글이다.  비판의 대상을 칭찬하는 듯 하면서 `까는 글'을 쓰는 반어적 칼럼의 대명사이자 가장 위력적인 자폭 유머를 구사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참 개념있게 글을 잘 쓰는 칼럼니스트가 등장했다.  기생충 전문가이자 의대 교수, 그리고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인 서민 씨다.

이분 칼럼을 그간 신문 지상에서 빼놓치 않고 읽어왔다.  일단 칼럼이 재밌고 기발했다. 가장 보수적인 색채가 농후할 것 같은 교수이자 의사 출신이지만 이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노사모 출신'이란 `과거'를 갖고 있다. 이명박 정권 때 신문 칼럼으로 떴다면 최근엔 그 저력을 바탕으로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어느날 TV에서 이분을 보고 깜짝 놀랐고 반가웠다. 드디어 떴구나!  진보적인 칼럼을 썼던 인사가 박근혜 정부에서 예능에 캐스팅 됐던 것도 반가웠지만, 특유의 유머와 끼를 어떻게 풀어낼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TV 예능에서 그의 존재감이 기대만큼 크지 못해 안타까웠다.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였을까.  그의 유머와 끼가 글 속에서만큼 잘 살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서민을 인터뷰한 책이 나왔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인물과 사상사,2104년)에서 만난 그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명성이나 체면을 생각하는 의대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은 안중에 없다. 故 이주일을 능가하는 자폭 유머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인터뷰집이라 할 만 하다.  사람에게 모두 자신만의 컴플렉스가 있기 마련이다.  서민에겐 외모가 바로 자신의 삶을 짓눌렀던 바윗덩어리였던 듯하다.  검사였던 아버지에게 외모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고 친구들에게 소외당했던 기억이 어린 시절의 그였다면,  그 모든 태생적 악조건을 극복한 것은 연구를 통해 터득한 유머라는 재능과 공부에 대한 지독한 열정과 성취였다.

누군가의 외모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서평에서조차 꺼림칙한 일이다. 사실 난 서민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 정도면 개성적인 마스크가 아닌가 말이다.  하여, 사실 지상파 예능에서 그가 유머러스한 말빨을 구사하면서도 어깨가 움츠러진 모습에선 못마땅했다.  인터뷰의 초반 장들에서 인터뷰어 지승호는 독자들의 흥미를 북돋으려 했는지, 외모와 개인사에 많은 비중을 들어 질문한다.  한번의 결혼 실패, 그것도 상대는 미모의 여의사였단다.  반전은, 그녀가 서민을 좋아했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생각에 맘에도 없는 결혼이 성사된 것이다. 훗날 그는 아내에게 `고자'라는 이유로 이혼 소송 법정에 불려나왔다.  물론 `고자' 란 혐의는 뒷날 의학적 검증을 거쳤고 무고로 판명났다.  재혼해 지금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그에게 과거는 감추고 싶은 상처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자백'은 거침없다.

두번째 결혼 조건은 아이를 갖지 않는 것과 개를 기르는 것.  인터뷰 내내 미모의 아내에 대한 `자랑질'에 괜한 질투가 날 지경인데, 아무튼 행복하다는 그의 진심을 대변하는 듯했다. 의사로서 연구소에서 군복무를 대신하던 시절, 1년 365일 가운데, 360일 술을 마셨다던 그의 농담같은 이야기,  두번째 결혼 후 몇 년 만에 위암 선고로 죽을 뻔 했던 기억,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아내의 요구로 끊었다던 그의 이야기를 끝으로 서민은 독자와의 거리감를 심하게 좁혀 버린다.  기생충학과 교수 답게 인터뷰의 중간 지대는 기생충 이야기로 이어진다. 인구 200만 명 이상이 기생충에 감염되지만 의대생들조차 기생충에 관해선 무지하고, 국내 기생충 학자가 50명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서민의 바람은 의외였다.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맞다고 봐요.  루게릭병이라고 있는데요. 그게 빈도가 10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굉장히 드문 질환입니다.  그런 병에 대해서도 배우면서 백만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는 기생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130쪽, 지승호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그의 개념있는 이야기는 의료민영화와 진주의료원 폐쇄론에 대한 반대 소신으로 이어진다.  미국이 부러워하는 국민의료보험 체계를 와해시키는 의료민영화 정책은 반드시 막아야 하며 `정부가 정말 민영화를 하려고 든다면, 이거는 머리띠 매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독자를 선동하기도 한다. 인터뷰어 지승호의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답한다. 

" 공공 병원이 왜 필요하냐 하면, 돈 많은 사람은 그런 데 안가잖아요.  삼성, 아산 병원을 가지. 없는 사람들이 싼 진료비 때문에 공공 병원을 가거든요. 그 사람들이 가는 병원을, 적자라는 이유로 문을 닫는다는 것이 너무한 거죠. 그렇게 따지면 국립의료원도 진작 없어져야 했고, 다른 공공 병원도 다 없어져야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우리나라 병원의 절대다수가 민간 병원이고 외국에 비해 공공 병원이 부족한 편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 아무리 떠들어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참 갑갑하죠. 그게 가까운 미래에 자기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241쪽

내가 서민을 알게 된 것은 경향, 한겨레에 실린 칼럼을 읽은 이후다. 글도 좋았지만 글을 다 읽고 난 후, 그의 직함을 보면 직함에서조차 반어가 느껴졌다.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그가 칼럼에서 비판한 인물들이 어떤 이유에선지 기생충과 비교되곤 했으니까. 그는 내 기억에 개념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이 인터뷰집을 읽고 난 후, 그에 대한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외모나 개인사는 독자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는 칼럼으로 평가받고 예능인은 말빨과 유머로 평가받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경쟁력은 있다.  서민은 대중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세가지 무기가 있다. `개념, 유머, 그리고 인간미'다.  그의 인터뷰집을 읽고 그가 무척 소탈하고 솔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진보적 색채는 보수주의가 강한 의사 사회에서 별종에 속할 테지만, 그렇다고 물불 안가리는 진보적 투사가 아닌 딱 `개념 있는 시민' 수준의 눈높이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이명박 정권 때 시국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시국 선언을 한 교수에게 불이익을 줄까봐'라고 답하더니 지금 조금 쎈 사회비평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정권의 노여움을 사 구속되면 개는 누가 기를 것인가'라고 하며 독자를 빵 터지게 한다.  그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서재에 `마태우스'란 필명으로 꾸준히 서평을 올려 `알라딘을 평정'한 경력이 있는 독서광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의사 가운데 블로그에 글을 써 `평정' 수준까지 올라간 인물은 그밖에 없다. 그는 글을 올리며 이웃 블로거들과 열심히 소통중이다. '방송은 몸에 안맞아 평생 못할 것 같고 글쓰기가 평생의 취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의 특장점인 `개념과 유머, 인간미'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잘 알지 못한다.  박식과 명성은 흔하다.  하지만, 그것은 가면일 뿐임을 누구나 안다.  맨얼굴이 아닌 화장미가 대중에게 착시효과를 건네줄 순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서민의 파격적인 인터뷰집의 파장은 가족에게조차 만만치 않을 듯하다. 책의 말미 에필로그에서 서민은 맛배기로 <한겨레>인터뷰를 보고 크게 놀란 어머니에게 걱정인지 유머인지 한마디를 남겨놓았다. "어머니, 인터뷰가 아예 책으로 묶여나왔습니다. 미리 죄송합니다."(341쪽, 에필로그) 서민의 유머는 마지막까지 독자를 웃겼다.  살아 생전 거침없이 바른 말 잘 했던 `개념 가수' 신해철이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다.  슬프고 아깝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단 한 명 `개념 교수이자 의사'인 칼럼리스트 서민이 있다.  스스로 `듣보잡'이라 말하는 그를 팍팍 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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