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국심과 가족애는 항상 선할까? 그게 절대적인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위험하다. 애국심이 지나치면 민족주의나 제국주의가 되고, 가족애가 지나치면 반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국가와 가족에 대한 사랑조차도 냉철한 이성이 바탕을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웃 일본이 경제위기와 중국과의 영토분쟁을 핑계로 급 우경화 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한 일본이 또다시 헌법을 고쳐 군사강국으로 발돋움 하는 일은 끔찍하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살가운 대상에 대해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존경받는 정치인이나 작가라면 자신의 치부조차도 정직하게 평가받길 자원한다. 위화라는 중국의 3세대 작가가 있다. 원래 직업은 발치사였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시절 국가의 명에 따라 치과의사가 되었다면, 훗날 그는 글쓰기를 갈고 닦아 작가로 전업을 `허가' 받는다. 위화는 많은 소설들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런 영향력 있는 작가가 한 권의 산문집에서 10개의 단어로 중국의 과거와 오늘을 가감없이 그려 낸다. 위화는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에서 오늘의 중국을 `고작 30년 이란 짧은 시간 동안 정치지상주의에서 금전지상주의로 변신'을 거듭했다고 평한다.

 

이 산문집의 바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테마는 정치와 사회 그리고 성장이다. 위화는 열 개의 단어를 통해 중국이란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지만, 그건 곧 정치사회적 환경속에서 한 작가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열 개의 단어 가운데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이 있다. 독서(閱讀)나 글쓰기(寫作) 혹은 루쉰(魯迅)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산채(山寨)나 홀유(忽悠) 같은 단어들은 현대 중국을 표현하는 속어들로 봐야 하겠다. 한 권의 역사책이나 사회비평서 보다 더 깊이 더 가깝게 과거와 현대 중국의 역사와 사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위화는 모든 주제에서 자신의 성장담 속에 묻힌 기억들을 꺼내 보인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위화가 자신의 조국과 사회를 그리는 용기 있고 정직한 태도다. 세계적인 독자들을 보유한 그가 순박한 애국심을 발휘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조국과 중국인의 마음씨를 포장하려 했다면, 이 책은 이상한 홍보서가 되고 말았겠다. 반대로 위화는 그 시대를 살아보고, 겪어보지 않았으면 모를 독자들에게까지도 속속들이 중국의 치부를 드러내 보인다.

 

중국의 민주화 운동인 텐안문 사건이 일어난 날짜인 6월 4일은 중국 인터넷에선 금지된 날짜다. 그래서 사람들은 5월 35일이라는 가상의 날짜를 만들어 그 날에 대해 이야기 한다. 텐안문 사건을 다룬 첫 장의 주제는 `인민(人民)'이다. 민주화를 위해 텐안문 광장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던 학생,노동자,시민들은 탱크를 앞세운 무자비한 진압에 앞서 결의를 다진다. 자신들의 피와 살이 움직이면 군대와 탱크도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결기를 다지며, 밤을 지새운다. 작가는 그 순간 광장에서 울려퍼진 사람들의 목소리와 열기를 듣고 느낀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회상한다. 그러면서 지금 중국에는 `6월 4일'의 자유는 없고 `5월 35일'의 자유만 있다는 자조섞인 탄식을 내놓는다. 이 산문집이 여전히 중국에서 출판금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0쪽,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작가의 성장기는 문화대혁명기 였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966년에서 1976년까지 국가 주석 마오쩌둥이 일으킨 극좌파 사회주의 운동을 말한다. 공산당 내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등소평 등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주석 마오쩌둥은 청소년 등을 주축으로 홍위병을 조직하고, 자본주의 타파를 외치며 국내 극좌파 운동을 10년간 지속한다. 이 가운데 무고한 사람들이 우파로 낙인찍혀, 희생되고 요직에서 강등되는 불운을 겪었다. 위화의 산문들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이 기간동안의 상처들과 교조주의적 사회상은 마치 1970년대 한국 유신 시절의 암흑기를 보는 듯 처참하다.

 

마오 주석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그의 가르침이 경전과 같이 취급되고, 주석을 비난하는 조금의 낌새가 발각되거나, 자본주의자로 의심을 산 이가 공개재판으로 처형되는 일은 일상사였다고, 위화는 회고한다. 그러면서, 그 시절의 맹목적인 시류에 기꺼이 동참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허탈해 하기도 한다. `영수(領袖)'라는 장에서 위화는 마오주석이 죽던 날, 학교 강당에 모인 동료들과 함께 소리내어 울던 거대한 군중이 자신에겐 어느 순간 유머로 돌변했다고, 전한다. 만약, 그가 그 순간 웃음을 보였다면 반혁명분자로 찍혀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교조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의 몰이성적 시대상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게다.

 

`독서(閱讀)'라는 장에서 위화는 마오주석 어록이나 사회주의 서적 외에는 출판이 금지되어, 책이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금서로 지정된 많은 서적들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출판되는 책은 귀했고 책을 사기 위해선 서점 앞에 서표라는 걸 들고 긴 줄을 서야 했다. 서표는 겨우 50장, 서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의 곁에 다가가 새 책 냄새를 맡아보거나 표지를 만져보곤 했단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독서에 굶주렸고, 새 책에서 뿜어 나오는 연한 잉크 냄새가 마치 신성한 향기처럼 느껴졌다니, 문화대혁명이란 사회를 살아낸 중국인들의 비참한 삶이 그려지고도 남는다.

 

흥미로운 주제 가운데 마지막으로 `글쓰기(寫作)'에 관한 위화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는 스물 두 살 무렵, 국가가 정해준 직업인 발치사 일을 하며 한편으론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를 뽑는 것은 생계를 위해서 였고, 글쓰기는 훗날 더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 였다. 그는 처음 글을 한 자 썼을 때는 치아를 하나 뽑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원치 않는 발치사 일을 접고 국가가 인정해주며 글을 쓰는 일을 수행하는 문화관에 들어가기 위해선 계속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그는 젊었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일에 앞서 유혹들이 넘쳐 났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혼자 마른 나무처럼 탁자 앞에 앉아 장인이 쇠를 다루듯' 아주 힘들게 한 자 한 자 딱딱한 한자를 써내려갔다. 훗날 젊은이들은 종종 그에게 묻곤 했다.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37쪽,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위화는 `한 개인의 운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던' 시절을 살아온 작가다. 그가 성장했던 시절은 가난했고,정치적으론 암흑기였다. 여전히 지금 중국 정치 상황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에서 위화는 중국 사회의 온갖 병폐를 용기있게 비판하고 성찰한다. 한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작가는 자신의 사회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애정은 무비판적 지지나 믿음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아이의 장래를 망치는 지름길은 부모가 잘못을 보고도 눈감는 일이다.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정치인은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철저히 비판하고 반성해야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법이다.

 

입으로는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과거 이 땅의 민초들을 사랑했을까? 되묻고 싶다. 그들은 쿠테타와 1인 독재, 그리고 영구 집권을 도모하며 유신헌법을 기획하고, 무수한 민주인사들을 사형대의 이슬로 눈감게 했다. 또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며,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에겐 총뿌리를 겨누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대로를 활보하며 자신이 조국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고 떠벌린다.

 

위화라는 작가는 공산당의 최고 수장이 통치했던 한 시절의 결말을 `유머'라는 한 단어로 끝맺는다. 모두가 미쳐 날뛰던 시절,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사람의 언어를 신의 언어로 포장해서 유통하고, 공개재판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던 시절을 그는 온 몸으로 살아냈다. 작가가 그 심각한 시절에 유머를 떠올린건 왜일까? 한마디로 역사와 인간에게 웃음거리가 되던 시절이란 말 아닌가? 지극히 자조섞인 작가의 표현이겠다. 그 괴상한 시절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는 중국인이 있다면 그가 정상이겠는가? 위화라는 작가가 지금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할지 그저 궁금할 뿐이다.

 

 

 

 

 

2012.1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