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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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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위험할 것도 없어요. 나나 이 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훔쳐갈 만한 것도 없고요. 단지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이런 늙은이랑 같이 식사해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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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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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은 핀란드에 살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흘러가는데로 남긴 개인의 디자인 기록에 가깝다. 그녀는 이 책에서도 밝혔듯 이것은 전문서적이 아니며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라고 밝혔다. 디자이너로서 예술가로서 핀란드 문화 그리고 핀란드인들의 정서와 감각을 안애경의 눈으로 감상해 보기로 하자. 

 

 

 

핀란드 디자인 산책은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담았다. 경쟁이나 치기 그리고 허영심은 보이지 않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현란함도 없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미의 가치는 삶 속에서 표현되고 소소한 행복에서 나온다. 디자인을 공부한 나의 눈으로 바라보니 미에 대한 철학과 생활속에서 누리는 디자인의 가치가 더 크게 다가온다.

 

 

 

핀란드는 일상이 디자인이다. 이 한마디로 핀란드의 미에 대한 문화,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 그리고 디자인의 목표가 뚜렷하게 보였다. 디자인을 지나치게 기능에만 촛점을 맞추거나 경쟁으로 치달을 때 목표와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

 

디자인은 일상에서 나온다. 그리고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다. 디자인은 특별한 장소, 특별한 목적에 부합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디자인, 그것은 삶 그 자체이며 곧 생활이라는 것. 디자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것도 결코 아니다. 우리가 핀란드를 특별하게 디자인 왕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디자인을 멀리 있는 대단한 어떤 것으로만 여기는 한국적 정서의 탓이다.

필요에 의해서지만, 조금 더 우아하게 조금 더 여유롭게 디자인의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 색감의 디테일함은 너무나 개성적이다. 원색의 파랑이 화이트와 믹스 될 때의 감성은 cyan 이라는 색

그 이상을 뛰어넘게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터치한다. 색감은 눈으로 들어오지만 결국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핀란드 디자인은 자기다움이다. 남의 것을 따라하고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가치와 나의 생활의 편리함 그리고 나의 라이프에 맞게 재배치하고 나의 건강에 맞는 색감을 이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나는 디자인 전공자이다. 가끔 그것을 잊곤 한다. 내가 뛰어난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뼛 속 깊이 디자이너구나, 나는 전공자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각이 살아 숨 쉰다. 또한 일상을 바라보는 철학적 개혁이라는 점에서 바라본다면, 나만큼 핀란드 디자인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자부한다. 내가 핀란드 디자인에 관한 견해를 어필한다면 핀란드 디자인은 철학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질 것 같다. 그 만큼 아름다움은 사치나 허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고 행복의 가치를 창출할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다시 한번 유럽 일정을 갖게 된다면 익숙한 프랑스나 독일로 2차, 3차 여행을 갈 것이 아니라 북유럽, 그리고 콕 집어서 핀란드로 가야겠다. 핀란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소개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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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무시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기를 바라는 심리.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더 강하게 몰아치기를 바라는 심리.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도깨비에게 상처입고 위협받다 끝내는 환영을 믿게 되었고 대낮의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요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본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

 

 

인간실격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치열했던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를 알아야만 했다. 인간의 나약함이 빚은 잔인한 인생을 그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몰이해의 세상을 살아야 하는 수 많은 성향 소수자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상한 세상의 수레바퀴를 끌려가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것일까, 왜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에둘러 말을 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토록 이기적인 것일까, 왜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고는 그렇게 쉽게 잊는 것일까, 사람은 어째서 그토록 죄로 가득한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신랄하게 그러면서도 매우 우회적으로 점점 나락으로 떠밀려 추락하는 한 젊은 청년을 통해 인간사의 추악함을 말하고 있다.

그 역시 그토록 추악한 세상의 몰이해 속에서 속이 타 들어 가도록 괴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본시 세상은 불공정하다. 본시 세상을 불평등하다. 본시 세상은 힘을 가진자가 힘 없는 자를 짓밟는다고 명명백백하게 말하고 있다. 겁이 많고 나약하고 자신의 주장을 할 줄 모르는 순하디 순한 젊은 청년은 그렇게 주변에 휩쓸려 안타깝게 살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실격은 내가 아닌 나약한 누군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좀 더 바닥으로 끌어내렸을 뿐.

어차피 인간의 속성은 비슷하다. 힘을 가진 자가 힘을 행사하면, 일단은 숙이고 몸을 낮추어 생존하는 것, 그것이 인간생리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한다. 오직 순수함만을 갈망하던 여린 젊은이가 타인의 위선과 잔인함으로 파멸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인간실격은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 준다.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이 작품만큼 명확하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렵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내맡기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 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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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심리학 - 심리학이 파놓은 치명적인 함정 9가지
스즈키 고타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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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리학의 많은 효과들이 인간의 단순한 심리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주제로 먼저 시작한다. 예를들어 숫자를 사용하면 과학적으로 증명된 연구라고 믿는 인간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버트의 논문이 그렇다.

 

저자는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심리학적 호기심을 실험심리학을 통해 재탐구한다.
그는 심리학계의 창조적 이단아로 불리며, 실험심리학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스즈키 고타로는 기존의 통념을 깨부수고 낡은 권위에 과감히 도전하며 매번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연구 성과를 내놓는다. 실험심리학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무서운 심리학은 무려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집필되었다.

왜? 라는 질문과 호기심은 기존의 심리학 이론을 거꾸로 뒤집어 읽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과연? 우리는 심리학을 통해 우롱 당하기도 하고, 착각하기도 한다.

인간의 심리는 그만큼 나약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권위에 쉽게 굴복한다.

 

버트는 숫자를 교묘하게 주무르고 조작하여 논문을 발표했고, 자료조작이 발각이 된 이후 그의 논문을 바탕으로 아이오와 대학의 도널드 도프만은 버트가 쓴 논문 수치와 분포를 검토해 그것이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치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밀하다고 보고했다. 수치의 정밀함은 기대와 달리 조작되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로 작용했다. 논문 조작은 버트가 사망한 후에 발각되었고, 살아있는 동안 그는 이러한 소동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저자는 학계의 논문과 이론의 과정을 끄집어 내어 오류를 짚고 있다. 기존 학자들의 이론과 사생활의 연관성, 실험의 문제 등등 신화처럼 떠받들던 당시 학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신봉하던 프로이트의 이론이라든가 행동주의의 주창자 왓슨의 실험들의 헛점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 증거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실험자 효과이다. 

실험자와 피실험자의 관계에서 실험자의 의도가 피실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실험의 공정성, 보편성, 객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질문의 방법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차근차근 그 배경과정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저자는 수 많은 실험심리들 중에 날조되고 조작되어 중요한 기준을 은폐하거나 사적으로 친말한 관계가 있는 등의 객관성이 결여된 실험 결과는 제외되어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여러 근거를 통해 재차 설명해 준다.

 

'의심'은 매우 중요하다.

의심하는 냉철한 지성만이 핵심을 뚫고 사실을 명백하게 밝혀낼 수 있다.

거짓되어 조작되거나 허황된 상상만으로 제대로 된 심리 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 

스즈키 고타로의 의심의 길을 따라 <무서운 심리학> 속으로 함께 여정을 떠나보자.

인간이 파놓은 함정에 인간들이 착각하고 휩쓸려 끌려다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그 중심에서 인간의 '지적 게으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권위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란 것 또한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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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 이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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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의 이름은 '에바(Eva)'였고, 그 이름은 '늑대(Vae, Woe]'라는 말의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여성을 Woman 이라고 표현할 때의 어원이 바로 'Woe', 즉 '늑대'+'Man'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야성의 늑대가 원초적인 신성한 어머니의 원형을 갖고 있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논리임을 알 수 있다.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다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강한 희생정신을 지녔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주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리저리 내몰리고 학살당해 왔으며 열등한 존재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들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의 본능을 말살하여 인간 정신 속의 황무지를 없애고자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 왔다. 늑대와 여성들은 자기들을 오해하는 이들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으로 이런 어머니 늑대의 원형은 손상되고 마녀재판, 마녀사냥으로 무수한 세기에 걸쳐 학살되었다. 그리하여 '문화'라는 이름의 기성복이 '여성다움의 이미지'를 성모 이미지나 집안의 천사이미지, 나이팅게일과 같은 간호 여인의 이미지로 과대 재생산하는 동안 열렬하고 따스한 야성의 힘에 넘치는 늑대-어머니-는 문화의 벼랑으로 밀쳐져 변두리 심연의 틈 속에 갇히게 되었다.

 

특히 한국 여성의 경우,

우리의 늑대 같은 야성적 자아가 단군신화 속에서 이미 결박되고 재갈이 물려져 추방당했으니, 야성적이고 이글이글한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운 호랑이는 신화 속에서 쫓겨나 어디를 방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웅녀의 후손이라 말하며 참고, 스스로의 본질적 원천을 누르면서 웅녀라는 숭고한 액자에 맞춰 자신의 에너지의 불길을 표구하고자 노력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에스테르의 말대로 '여걸(Wild Woman)'이라고 할 때의 'Wild'라는 말은 '거친, 통제할 수 없는'이라는 요즘의 왜곡된 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 피조물이 본연의 건전한 한계를 온전히 지켜갈 수 있는 자연의 생활 방식'이라고 한다면 여성이 문화가 자기에게 만들어준 표구의 틀을 부수고 야성적 자아를 되찾는 것은 자신의 완전한 원형을 해방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따라서 자신의 늑대를 회복하는 여성은 메마르고 무기력하고 언제나 자신이 없고 타인의 의지에 따라 살기만 하다가, 생명의 불씨를 꺼뜨려버린 영적 기아 상태의 삶을 청산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자신을 복구 시키게 되는 것이다.

 

-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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