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 이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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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의 이름은 '에바(Eva)'였고, 그 이름은 '늑대(Vae, Woe]'라는 말의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여성을 Woman 이라고 표현할 때의 어원이 바로 'Woe', 즉 '늑대'+'Man'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야성의 늑대가 원초적인 신성한 어머니의 원형을 갖고 있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논리임을 알 수 있다.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다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강한 희생정신을 지녔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주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리저리 내몰리고 학살당해 왔으며 열등한 존재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들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의 본능을 말살하여 인간 정신 속의 황무지를 없애고자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 왔다. 늑대와 여성들은 자기들을 오해하는 이들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으로 이런 어머니 늑대의 원형은 손상되고 마녀재판, 마녀사냥으로 무수한 세기에 걸쳐 학살되었다. 그리하여 '문화'라는 이름의 기성복이 '여성다움의 이미지'를 성모 이미지나 집안의 천사이미지, 나이팅게일과 같은 간호 여인의 이미지로 과대 재생산하는 동안 열렬하고 따스한 야성의 힘에 넘치는 늑대-어머니-는 문화의 벼랑으로 밀쳐져 변두리 심연의 틈 속에 갇히게 되었다.

 

특히 한국 여성의 경우,

우리의 늑대 같은 야성적 자아가 단군신화 속에서 이미 결박되고 재갈이 물려져 추방당했으니, 야성적이고 이글이글한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운 호랑이는 신화 속에서 쫓겨나 어디를 방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웅녀의 후손이라 말하며 참고, 스스로의 본질적 원천을 누르면서 웅녀라는 숭고한 액자에 맞춰 자신의 에너지의 불길을 표구하고자 노력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에스테르의 말대로 '여걸(Wild Woman)'이라고 할 때의 'Wild'라는 말은 '거친, 통제할 수 없는'이라는 요즘의 왜곡된 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 피조물이 본연의 건전한 한계를 온전히 지켜갈 수 있는 자연의 생활 방식'이라고 한다면 여성이 문화가 자기에게 만들어준 표구의 틀을 부수고 야성적 자아를 되찾는 것은 자신의 완전한 원형을 해방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따라서 자신의 늑대를 회복하는 여성은 메마르고 무기력하고 언제나 자신이 없고 타인의 의지에 따라 살기만 하다가, 생명의 불씨를 꺼뜨려버린 영적 기아 상태의 삶을 청산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자신을 복구 시키게 되는 것이다.

 

-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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