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BN이라고 아실 거예요. 책에 고유 번호를 매겨놓은 것이죠.
이를테면
89-91097-49-9라는 책이 있을 때,
89
나라 번호. 한국에서 나온 책(잡지가 아닌 단행본)의 ISBN은 모두 89로 시작되죠.
91097
발행자 번호. 출판사가 어디인지를 알려주죠. 어디일까~요? (맞히셔도 상품은 없어요. :p)
49
책의 일련번호. 보통 발행 순서대로 00부터 매기기 때문에 이 책은 아마,
이 출판사가 91097이라는 번호를 받은 뒤로 50번째 내는 책일 거예요.
‘91097이라는 번호를 받은 뒤로’라고 말한 건,
이 출판사가 전에 다른 발행자 번호로 책을 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ISBN의 숫자는 열 자리로 정해져 있어서,
발행자 번호가 다섯 자리인 경우
책의 번호가 00부터 시작해 99까지 다 차면
그 발행자 번호를 더 쓸 수가 없게 되거든요.
그럼 한국문헌번호센터에서 새로 발행자 번호를 받아야 해요.
9
이건 앞의 89 91097 49 각 숫자에 숫자를 곱하고 더하고 나누어서
나온 값의 나머지에 대응하는 숫자예요. 복잡하죠? ^^
나름대로 공식이 있답니다.
공식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은 눌러 보세요. ☞ http://www.nl.go.kr/isbn_issn/isbn/APPLY/check_01.php
그런데 이 ISBN 뒤에 부가기호라는 게 붙어요.
갖고 계신 책에 인쇄된 바코드를 보시면,
두 조각으로 된 바코드의 오른쪽 조각 위에 다섯 자리 숫자가 보일 거예요.
ISBN은 만국 공통인 반면, 부가기호를 붙이는 방식은 나라마다 달라요.
89-91097-49-9라는 ISBN을 단 책의 부가기호는 03810입니다.
첫 자리 숫자는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냐를 표시합니다.
일반교양서는 0, 실용서는 1, 전문가용 책은 9...
둘째 숫자는 책의 형태를 나타내요.
문고판은 0, 사전은 1, 일반 단행본은 3, 전집이나 총서처럼 여러 권으로 된 것은 4...
셋째와 넷째 숫자는 책의 내용에 따른 분류 기호입니다.
셋째 자리의 8은 ‘문학’을,
넷째 자리의 1은 ‘한국문학’을 가리킵니다.
이 책은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쓴 시나 소설, 아니면 수필 등등인 거예요.
다섯째 자리는 무조건 0으로 채웁니다.
그런데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부가기호의 첫 자리 숫자는 대상 독자를 표시한다고 했죠.
일반교양서는 0, 실용서는 1,
3은 예비 번호로 비어 있고,
4는 청소년, 5는 중고생을 위한 학습참고서,
6은 초등생을 위한 학습참고서,
7은 학습참고서를 제외한 아동용 책,
8도 예비용으로 비어 있고,
9는 전문가용 책을 뜻합니다.
그런데 2가 뭐냐면, 바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서’예요!
일반교양서와는 구별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서’가 대체 뭘까요?
여성학 책들일 리는 없습니다.
시중에 나온 여성학 책들을 보시면, 대개 부가기호가
03330일 거예요. 23330으로 된 책은 본 기억이 없습니다.
03330은 일반교양서예요.
0 일반교양서
3 단행본
3 사회과학
3 사회학/사회사상/사회문제/여성문제 등
0
예전에 언니가 혼숫감으로 준비했던, 무슨 무슨 여성 백과가 떠오릅니다.
수십 권짜리였는데, 임신 육아부터 뜨개질하는 법, 요리법, 생활 예절까지
두루 꿰는 전집이었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서’란
아마 이런 책을 가리키지 않을까요? 하하!
그렇다면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도서’는 왜 없을까?
남성은 모든 책을 다 읽어도 되지만
여성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서’만 읽으라는 소리인가?
사실 전에는 부가기호의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으레 0이나 9만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몇 달 전, 신입 편집자가 여성학 책을 편집하면서
ISBN 부가기호를 23330으로 써놓았지 뭐예요.
그래서 2? 2가 뭐지? 하고 확인해보다가 새삼 발견했답니다.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공식 시스템에 버젓이 자리 잡은, 낯선 사고방식...
남자들이 하는 문학은 그냥 ‘문학’이라 하고
여자들이 하는 문학에는 ‘여류문학’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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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건 그렇고... 89-91097-49-9는 무슨 책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