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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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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본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던 것을 1980년대라고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과학의 붐을 타고 수 많은 책들이 출간되던 때다. 각국의 격변적 사건들이 ‘현대사’ 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한국에 소개되었다. 물론 이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변혁운동 때문이었다. 동남아시아나 남미,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지역은 이 당시 끓어 넘치는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으면 계속 외면 받았을 지역이다. 흘러넘치는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방향은 일본까지 뻗었다. 1980년대 간간히 소개된 학생운동 관련 서적이나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책들은 이 시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사라져갔다. 일본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은 순전히 민족주의 프레임에 의한 것이었다. 수많은 한일관계 관련 고대사 책들이나 1990년대를 강타한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일본을 이해하기 전에 증오하는 법을 배워왔고, 이를 배양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민족주의 프레임에 의해 생산된 일본에 대한 담론, 혹은 스테레오 타입이 그 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줬느냐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일본은 왜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는가, 일본은 왜 조선을 침략했는가, 왜 위안부를 동원했는가, 등의 질문에서 종래의 민족주의적 해석들은 충분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근대화 시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전후보상의 문제, 즉 과거청산의 문제에서 엄정한 시각을 갖지 못한다. 이는 양국 시민사회의 소통을 심각하게 저해하며 서로의 평화운동이 연대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한 마디로, 나는 일본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로 가까운 이웃나라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으며,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단지 가까워서 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일본과 한국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고, 비슷한 점도 많다. 일본 현대사는 일본을 이해하는 하나의 주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 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한 좋은 자료는 많지 않다. 이를테면 이곳에서도 언급했던 나카무라 마사노리의 <일본전후사>는 한국인을 위한 일본현대사 입문서로서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다. 저자의 史論은 다소 허술하며(貫戰史),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거나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점에서 정치학 출판 부문에서 화끈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에서 펴낸 <일본전후정치사>는 일본현대사 입문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의 개성은 저자 서문에 핵심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저자인 이시카와 마스미는 “전후일본정치를 논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 책의 컨셉을 말한다.

이런 책은 수록된 정보가 얼마나 객관적이며 잘 정리 되었는가로 그 성패를 판가름 할 뿐이다. 아쉽게도 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책은 앞으로 일본현대사나 일본정치를 공부할 때 좋은 참고 서적이 된다는 것이다. 깊은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친절한 안내자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쉬우며 잘 정리 되어있다.

번역도 깔끔한 편이며, 친절한 역주가 돋보인다. 부러 논하지 않고 기록했기에, 두고두고 읽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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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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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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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결하며 경쾌하다. 이 책을 읽고 난 첫 느낌이다.

한 국가의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파악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판단할지, 어떻게 묶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본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베네딕트나 이어령이 떠오른다. 한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여옥의 일본론도 있을 것이다.

일본을 분석하는 각각의 이론틀에 대해서 여기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는 오쿠마 에이지가 진단하는 일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오쿠마는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을 겪으며 형성된 일본의 독특한 정치 환경에 주목한다. 즉 저자는 1)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 되었는가. 2) 전후 일본의 재무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쿠마의 질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일본이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떻게 근대화의 길로 나아갔는지가 될 것이다.

오쿠마는 오늘의 일본을 구성하게 된 가장 큰 역사적 흐름으로 메이지 유신과 전후(戰後, 2차대전 이후의 일본을 지칭하는 용어)를 꼽는다. 전자의 의문부터 들어가보자.

2.

메 이지 유신은 근대 일본의 방향을 제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에 주목한다. 후쿠자와는 당시의 일본을 언제 서양에 침략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하다 전근대의 동양에서 탈피(脫亞)하여 서양이 되는 것(入歐)이다. 즉 강력한 서구화를 추진하기 위해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후쿠자와의 바램대로 나아갔다. 후쿠자와가 내세운 첫 번째 과제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국민교육의 실시는 농사일로 바쁜 농민들의 저항을 가져왔다. 아이를 (농업)노동으로부터 보호하고 근대적 주체로 각성시키는 국민교육에 전근대적 농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두 가지 계기로 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가능했다. 하나는 청일전쟁을 통해 국민교육이 가지는 잠재적 효과에 일본 정부가 눈뜬 것이다. 근대적 습속을 받아들인, 즉 근대적 주체로 각성한 병사는 다른 이들과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근대화로 인한 직업구조의 변화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사무직 노동자, 즉 월급쟁이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이들은 근대적 교육을 마친 사람들로부터 채워졌다. 빈궁한 농민의 처지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샐러리맨으로 신분상승하기 위해서는 너도 나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국민교육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을 제공해 주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열강의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對 아시아 침략전쟁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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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렇다면 전후 일본은 어떻게 되었을까. 브레이크 없는 침략전쟁이 남긴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처는 일본만의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 의해 동원된 조선과 대만, 그리고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나라들의 상처 역시 쉽게 지워지기엔 그 상흔이 너무 깊었다.

일본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을 비무장화 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같이 작용했다. 하나는 미군정이 일본을 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중에는 일본을 전쟁 없는 평화적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장밋빛 희망도 함께 있었다. 일본의 전후개혁이라 할 수 있는 재벌해체, 비무장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 된 것이다. 평화로운 민주국가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수정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게 일본은 동구권에 대항하기 위한 반공기지로서 재설정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재군비를 추진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게 해야 했다. 일본의 우익정치인들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위대가 만들어지고, 일본은 한국전쟁의 후방기지가 되었다. 그 댓가로 일본은 조선특수라 불리는 경제호황을 맞이 할 수 있었다. 전후 호황은 일본이 경제 대국화 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후 일본은 착실히 미국의 가신이 되었다. 미국은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했고 아시아 주변국가들에게 일본과의 국교를 종용했다. 이 시기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전후 보상문제는 지금도 아시아 주변국가들과 일본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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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라는 부제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입문서로 오해 받을 소지가 큰데, 일단 나부터 속았다. 이보다는 저자의 문제의식(근대화, 평화문제)에 따라 일본 현대사를 간편하게 탐색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특히 이 책은 전후 일본의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들이 어떻게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일본 정치사에 무지한 나 같은 사람들은 왜 재군비 문제에 사람들이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일본 우익의 문제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장집은 한국의 분단문제가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미 종속성과 분단문제가 여타 정치적 문제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한국의 정치적 대립은 분배문제, 즉 증세와 감세의 좌우 구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친북 좌파라 공격하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보수우익이라 공격한다.

어찌 보면 일본도 평화헌법, 안보조약등의 문제가 정치적 의제들을 왜곡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55년 체제는 사회당에게 30%의 의회지분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실제로 사회당의 역할은 호헌이었지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일본의 정치가 서구와 같은 계급정치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和田春樹 교수를 볼 기회가 있었다. 노학자는 한국에는 안보조약이나 헌법9조 같은 것이 없으므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 안보와 헌법9조는 없지만, 분단 문제가 정치적 의제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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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원작의 표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원작은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었다.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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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고대 - 아시아연대총서 5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 삼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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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상의 공동체, 상상의 고대사

저자의 주장은 머리말과 1부의 첫 논문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국가 이야기>에 함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 고대사인식은 근대 국민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의 투사물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동아시아의 근대 국민국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고대사를 바라보고 서술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에릭 홉스봄이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지적하듯이 옛부터 내려져온 것이라고 믿고 있던 전통과 의식들은 사실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창조된 것에 불과하다. 이 같은 논의를 따른다면 고대사 역시 근대 국민국가의 욕망이 투영되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로 古代史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는 근대적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어제의 미신과 악습을 중세 봉건시대의 것으로 대상화 시켰으며, 새로이 구축해야 할 세계의 모습으로 중세 이전의 시대, 즉 고대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중세의 마지막 시기, 즉 르네상스(Renaissance)가 ‘부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맑스가 공화주의자들의 습속에서 발견했듯이 “루터는 사도 바울로 분장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은 로마 공화국과 제국의 장식을 번갈아가며 몸에 걸쳤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그리고 그들에게 소환된 바울과 로마는 실제 그 당시의 모습과는 상관없는 근대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고대‘사’는 누가 어떻게 왜 만들어 냈을까. 저자인 이성시는 <만들어진 고대>를 통해 그 질문에 차분하게 답하고 있다. 저자의 답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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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베네딕트 엔더슨의 저작 "상상의 공동체"표지)

일 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20세기 초까지의 현실(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욕망(정한론, 제국주의)에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투영시키며 하나의 거대 서사를 만들어갔다. 그에 비해 한국의 고대사 서술은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성립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역사 연구는 일본을 의식하고 전재로 하며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고대사 연구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흥미롭게도 일본 연구의 청중은 서양인들이었다. 일본사, 일본연구는 우선 서양을 모델로 자신들을 가공하여 그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결국 일본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과의 관계에서 고려되고 실체화된 것이다(p.8). 문제는 이렇게 가공된 고대사는 결국 서로에 대한 상호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대사에 투영된 국민국가의 욕망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를 해체시켜 놓는다.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국가 이야기>가 원론에 해당된다면 그 이후의 논문들은 같은 문제의식으로 파해쳐본 동아시아 고대사의 모습을 다룬 각론이다. 트릭은 모두 파악되었다. 국민국가의 거푸집 속에서 창출된 상상의 공동체인 내셔널 히스토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제 범죄의 재구성만이 남았을 뿐이다.


2. 광개토왕비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 부에 실린 <표상으로서의 광개토왕비문>은 대단히 흥미로우며 논쟁적이다. 1000년이 넘도록 발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온 광개토왕비문은 발견되자마자 근대로 소환되었다. 고구려의 텍스트가 근대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시는 오늘날 광개토대왕비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1000년전 광개토대왕비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 텍스트였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좀 더 살펴보자. 실제로 광개토대왕비는 역사적 기록을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광개토 대왕비는 고구려의 지배귀족들이 수묘인(왕릉 주변에 살면서 관리 일을 하는 사람들)들을 함부로 데려가 매매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개토대왕비는 지금 비석 주위에 살고 있는 수묘인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를 밝히기 위해 광개토대왕의 관련된 무훈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이다. 즉 특정 지역의 노예들을 어디서 데려온 것인지 설명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광개토대왕의 무훈은 얼마든지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될 수 있으며, 민족의식 같은 것은 생기지도 않았으므로 신라를 東夷라 낮추고 왜를 동이(신라)의 속민을 괴롭히는 트릭스터(trickster)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개토대왕비가 원래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텍스트였는지는 내셔널 히스토리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광개토대왕비가 가지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모습들은 거세되고 오로지 이것이 현존하는 동아시아의 정치질서에맞추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즉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무수한 논란과 연구는 1775 글자 중에 32자에 맞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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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성시의 대답은 광개토대왕비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당시의 동아시아 질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소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기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지배층 내부를 향한 텍스트였기에 우리가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임나일본부의 실제가 아닌 귀족연합정권이었던 고구려 지배층의 복잡한 속내일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시각은 기존의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논쟁은 물론, 여타의 동아시아 고대사논쟁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류 사학계에서는 이성시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주류 국사학계의 내실 있는 비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이성시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민족주의와 관련한 논쟁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민족주의의 허구를 지적하며 제기된 비판에 민족주의자들의 비판은 민족의 실제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민족은 실천적으로 유효한 가치, 라는 소극적 자기변명에 그칠 뿐이다.


3. 발해는 누구의 나라인가

뒤이어 2부에서는 발해사를 중심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열망이 어떻게 역사연구에 투영되어있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러일전쟁이후 만주에 일본은 만주에 주목하게 된다. 일본의 관심은 만주국을 건설하면서 이 지역의 독립국가였던 발해에 눈을 돌려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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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해에 대한 관심은 순수하게 학문적인 것이 아니었다. 발해를 둘러싼 국민국가들은 저마다의 국사에 발해를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일본은 만주국으로, 구소련은 스탈린주의 민족론에, 중국은 자신들의 지방정권으로, 한국은 신라와 동족의식을 가진 북조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발해라는 고대국가의 독자적 성격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당시 발해의 민족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즉 근대적 개념인 민족을 고대로 투여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발해는 고구려 귀족들로 이루어진 지배층와 말갈인 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진 이원화된 사회가 아니라 만주-연해주 지역에서 다양한 부족들이 서로 연합한 국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발해를 남북국으로 묶어서 이야기 하기 위해 굳이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를 단순한 지배 피지배의 관계로 서술하는 종래의 내셔널 히스토리의 서사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4. 일본사의 확장 : 동아시아 세계론

3 부 이하의 글들은 모두 일본의 고대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중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에서는 일본의 사학자인 니시지마 사다오가 제창한 동아시아 문화권을 해부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사학계는 한자를 매개로 중국으로부터 유교, 율령, 漢譯佛敎를 수용한 지역을 동아시아 문화권이라고 불러왔다. 중국을 포함한 한반도, 일본열도,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검토하면서 각 지역이 중국의 한자와 그에 기반한 율령, 불교등이 어떻게 수용되어갔는지를 추적하여 이를 비판한다. 우선 한자는 중국의 것 그대로 수용된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신라의 경우 고구려와의 관계를 통해 한자를 수용했다. 즉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중국과 교류하게 되는 것도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매우 늦었다. 한자의 용법도 일본처럼 훈독(訓讀)등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까지 훈독법이 사용되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의 동북지방인 거란과 여진에서도 훈독을 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각나라들에게 한자는 ‘그다지 연속성이 없었던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변나라들과의 끊임없는 중층적 교류’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거란이나 티벳등에서한자의 전면수용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문자를 개발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중국문화의 수용은 상당히 유동적인 것이었다.

또한 니시지마의 동아시아 세계론에서는 한자, 유교, 불교, 율령등 중국문화가 주변국으로 파급되는데에 중국의 조공-책봉체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실제로 고대국가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에 편입되었다기 보다는 각 지역의 소체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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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본의 불교와 율령체제를 확립시켰다고 여겨지는 쇼토쿠 태자)

동 아시아 세계론은 일본사 연구 속에서 동아시아를 세계사속의 일관된 흐름으로 파악하고 일본사를 그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즉 이는 근대 국가인 일본의 역사적 형성을 추적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지 동아시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과정은 아니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 동아시아 세계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이는 대동아공영권의 의심이 묻어나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연장으로 읽히는 것이다.


5. 누구를 위한 고대사인가

고대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내셔널 히스토리에 대한 일관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와 그로 인한 역사인식의 왜곡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에 실린 저자의 논문 <조선왕조의 상징공간과 박물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근대 국가라는 프리즘을 통해 왜곡된 역사인식을 걷어내고 그 다채로운 결들을 새로이 주목하자는 것이다. 물론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제기 되어왔다. 그러나 이성시의 작업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주된 작업이 고대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게의 민족주의 비판은 근대 형성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성시는 고대사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통해 비판적 역사인식의 확장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성시의 비판적 고대사 읽기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키스 젠킨스(Keith Jenkins)의 도발적 문제제기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누군가에 필요에 의해 구성된 역사담론에 불과하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난 여기서 역사적 사실의 존재 유무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역사담론 비판에 치중한 나머지 대안적 역사서술에 대한 가능성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따르면 이성시의 고대사 연구 또한 대안적 고대사 서술이 아닌 이성시의 내면독백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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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국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자 키스 젠킨스)

근 대의 산물인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근대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성시의 역사서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근대적’, '합리적' 정합성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에 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했던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었다. 나는 이 점에서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민족주의라는 프리즘을 걷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스럽다. 몇 해전 크게 논란이 되었던 일본 ‘새역모’의 교과서가 극우 민족주의의 틀은 유지한 채 포스트모더니즘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새역모의 교과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비판해온 민족주의에 기반해 있으므로 그들이 만든 교과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다, 라는 선언적 수사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역사학이 객관적 사실을 거부하는 순간 상상과 선동의 나래로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이 정치적 아지테이션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한다면 그것이 내셔널 히스토리든, 포스트 모더니즘이든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와 그것이 만들어낸 내셔널 히스토리를 비판하는 작업이 굳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전면적으로 수용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문체, 풍부한 논거를 제시하는 이성시의 연구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P.S:  이 책은 원래 일본어로 쓰여진 저자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역자의 번역은 대단히 깔끔하고 매끄럽다. 역자에 대한 표기가 없었다면 번역본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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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회과학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4
이시다 다케시 지음, 한영혜 옮김 / 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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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에서 나오는 일본학 총서라는게 있는데, 사실 잘은 모른다. 그런 일본학 서적 시리즈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안다. 그리고 문고판이라 가격이 싸다는 것도 안다.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서 본 책. 그러나 값이 싸다고 내용이 싸구려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본의 사회과학을 소개하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쉬우며 종합적이다.

재밌게 읽었지만 현대 일본 사상사는 물론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얇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넘어가며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적은 분량으로 일본의 근현대 사상사를 비교적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상사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 하며 저자는 이 복잡다단한 사회과학의 흐름을 정리하기 위해 사회과학의 통합과 분열을 중심으로 근 현대 사상사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서문에서 밝힌 저자의 방법론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의 방법을 1) 역사적으로 2) 일본 사회 그 자체의 발전과 관련지어 3) 종합적으로(개별 분과학문을 넘어선) 4) 일본과 다른 사회와의 비교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목적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획의 경우 무엇을 담아냈느냐 보다 무엇을 덜어냈으며 어떻게 묶어냈는가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 책 말고 일본 사상사에 대해서 접한 내용이 없으므로 다른 것들에 대해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지성계가 하나의 공통 의제로 관심을 모으고 공동체적인 정서를 공유한 것은 세 번 일어났다. 한 번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의 건설과정이다. 어떤 국가를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모두가 골몰했던 시기였다. 또한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관료집단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지식인들이 국정에 참여한 주요 이유가 되었다. 이후 관료제가 정비되면서 지식인들은 상아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국가학에 매몰되었던 사회과학도 분과별 분화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인 쇼와 초기 맑스주의의 유행은 사회과학의 독점현상이었다. 이 시기 맑스주의의 유행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과 러시아 혁명, 일본 공산주의 운동의 성장등과 떼어 놓고는 생각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대 지식인들을 싫든 좋든 맑스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끔 했던 맑스주의의 매력은 보편성, 체계성, 비판성이었다. 맑스주의는 메이지 초기 이후 개별 학문으로 분화해가던 지식공동체를 하나로 다시 묶어내는 역할을 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맑스주의로 인해 비로소 사회과학이 사회현실을 법학, 철학, 역사, 경제, 정치등과 같이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상호 관련지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자 했으며, 과학자는 일정한 가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지적 조작을 하는 것임을 밝혔다는 것을 이 시기 맑스주의의 의의로 정리했다.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으면서 붕괴된 사회과학이 다시금 하나로 모아진 것은 패전과 점령이후다. 저자는 마루야마의 개념을 빌려 이 시기의 지식인들을 ‘회한(悔恨)공동체’라고 부른다. 戰前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움이 모두를 괴롭게 했으며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경외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 맑스주의가 쇼와 초기에 가졌던 맑스주의의 문제점, 즉 수입성, 교조주의, 내부대립의 문제는 여전했다. 결국 50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회한공동체는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지식인들의 통합과 분화에 대하여 뚜렷한 주관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통합은 통합대로 분화는 분화대로의 이유와 과정이 있었을 뿐이며 저자는 이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에 비해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한 목소리 내기를 원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은 일본에 대한 많은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문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또한 구체적인 정보의 출전과 심도 있는 독서를 안내한다는 점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책은 쉽게 쓰여 질 수 없는 책이다. 또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일본의 사상사를 개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는데 성공하였으며 자칫 이해하기 힘든 사상사의 흐름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70년대 까지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저자가 이미 80을 넘은 고령이므로 후속작업이 이루어 질 것 같지는 않다.

하나 궁금한 것은 저자가 책을 출판한 것이 80년대 초반인데, 이 당시 원고의 초안을 마루야마 마사오을 중심으로 한 비교사상사 연구회에서 발표하고 비판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연구작업이 하나의 사상사로 정리된 것에 대해 마루야마 마사오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또한 저자인 이시다 다케시는 마루야마의 제자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을 공개된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구의 성패를 떠나서 그런 시도 자체가 존경스러워 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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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군대 생활을 마치고 오는 길. 시골 버스를 탔는데, 80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자리를 내어주었다. 가는 내내 내 팔과 다리를 쓰다듬는 할머니는 내 이름을 묻고서는 당신 어머니와 성이 같다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드센 할머니의 과격한 자기고백은 운전사의 장단과 어우러저 한편의 판소리를 듣는 것 같다.

내가 지금도 이렇게 기가 센데, 어느 남자가 날 데리고 살았겠어? 안 그래? 그래도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면 좋은 일 많이 했을거야. 옛날에는 여자들이 뭘 못하게 하는 세상이었어.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할머니의 에피소드가 너무 재밌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책 한권을 사 그 귀퉁이에 적어놓았다. 그 책이 이택광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였다. 그가 <말>지에 ‘그림으로 읽는 근대’를 연재할 때 부터 이건 범상치 않은 글임을 알았다. 책으로 나오면 반드시 사야겠다는 다짐을 했었고, 마침 제대하고 집에 오는 길에 책으로 나왔음을 알고 냉큼 집어들었다.

이 책의 강력한 특징은 근대 회화를 사회역사적 시작으로 해석하는 것에 있다. 이택광은 기존의 만연한(적어도 대중에게) 미술비평을 ‘인상비평’이라 칭하고 그것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웬디 수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책이나 다큐를 본 사람은 무엇을 지칭하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미술사 책들이 인상비평 아니면 미술교과서식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고, 신고전주의는 고대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생긴 것으로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하고...(이 점에서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말>지에 연재된 이택광의 연재 '그림으로 읽는 근대'는 파격이었다. 왜 한국에서는 서양 미술사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이 없을까 하던 차의 이택광의 글을 보게 된 것이다. 사회과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본 그림들은 대단히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해석 역시 매우 풍요로왔다.

······ 피사로의 생각과는 달리, 인상파의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들은 충실하게 제3공화정의 정책에 부합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 르누아르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라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화려하게 묘사되어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코뮌의 지도부가 있던 곳이다. 한국의 1980년대 광주로 치자면 도청인 셈이다. 이곳을 화려하게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한때 파리 코뮌에 팜가 했을 터이다. 이제 저들은 과거의 기억은 잊고 즐겁게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다. 르누아르에게 질세라 드가 역시 군중으로 넘쳐나던 콩코르드 광장을 텅 빈 곳으로 그려놓았다. 이 광장을 압도하는 인물은 부르주아다. ······ 후일 르느와르와 드가는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반유태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왕정복고를 공개 주장했다.

http://www.penwith.co.uk/artofeurope/renoir_moulin_galette.jpg 그림이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에러가 있습니다.

싸 구려(?) 헐리우드 영화든 고다르의 이해 못할 영화든 그 들 나름대로는 이것저것 집어넣는 데이터가 참으로 많다. 문제는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란 나 같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블록버스터를 보지만 실은 주인공의 억양은 어디 억양이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식의 해석도 불가능 한 것이다. 미술사 역시 마찬가지인데, 소위 ‘西洋事情’에 어둡고 입시 공부외에는 한 게 없는 내 또래 세대의 비극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담으로 대학에서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유럽근대사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맑스께나 읽던 친구들이 라인강과 알베강이 어딨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한동안은 지도만 그려줬다.) 내가 굉장히 놀라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놀라는 것에 놀라워했다.

이 책은 인상파와 라파엘 전파를 집중분석하여 19세기 근대의 모습을 조망하고 있다. 저자의 시각은 근대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라파엘 전파와 인상파에만 그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데 이후 중세와 현대에 대해서도 저자가 연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알고 있다. 이 역시 책으로 묶여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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