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1.
간결하며 경쾌하다. 이 책을 읽고 난 첫 느낌이다.
한 국가의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파악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판단할지, 어떻게 묶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본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베네딕트나 이어령이 떠오른다. 한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여옥의 일본론도 있을 것이다.
일본을 분석하는 각각의 이론틀에 대해서 여기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는 오쿠마 에이지가 진단하는 일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오쿠마는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을 겪으며 형성된 일본의 독특한 정치 환경에 주목한다. 즉 저자는 1)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 되었는가. 2) 전후 일본의 재무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쿠마의 질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일본이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떻게 근대화의 길로 나아갔는지가 될 것이다.
오쿠마는 오늘의 일본을 구성하게 된 가장 큰 역사적 흐름으로 메이지 유신과 전후(戰後, 2차대전 이후의 일본을 지칭하는 용어)를 꼽는다. 전자의 의문부터 들어가보자.
2.
메 이지 유신은 근대 일본의 방향을 제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에 주목한다. 후쿠자와는 당시의 일본을 언제 서양에 침략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간단하다 전근대의 동양에서 탈피(脫亞)하여 서양이 되는 것(入歐)이다. 즉 강력한 서구화를 추진하기 위해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후쿠자와의 바램대로 나아갔다. 후쿠자와가 내세운 첫 번째 과제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국민교육의 실시는 농사일로 바쁜 농민들의 저항을 가져왔다. 아이를 (농업)노동으로부터 보호하고 근대적 주체로 각성시키는 국민교육에 전근대적 농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두 가지 계기로 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가능했다. 하나는 청일전쟁을 통해 국민교육이 가지는 잠재적 효과에 일본 정부가 눈뜬 것이다. 근대적 습속을 받아들인, 즉 근대적 주체로 각성한 병사는 다른 이들과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근대화로 인한 직업구조의 변화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사무직 노동자, 즉 월급쟁이의 수요를 폭발시켰다. 이들은 근대적 교육을 마친 사람들로부터 채워졌다. 빈궁한 농민의 처지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샐러리맨으로 신분상승하기 위해서는 너도 나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국민교육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경쟁을 제공해 주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열강의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對 아시아 침략전쟁의 길이었다.

3.
그 렇다면 전후 일본은 어떻게 되었을까. 브레이크 없는 침략전쟁이 남긴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처는 일본만의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 의해 동원된 조선과 대만, 그리고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나라들의 상처 역시 쉽게 지워지기엔 그 상흔이 너무 깊었다.
일본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을 비무장화 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같이 작용했다. 하나는 미군정이 일본을 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중에는 일본을 전쟁 없는 평화적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장밋빛 희망도 함께 있었다. 일본의 전후개혁이라 할 수 있는 재벌해체, 비무장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 된 것이다. 평화로운 민주국가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수정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게 일본은 동구권에 대항하기 위한 반공기지로서 재설정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재군비를 추진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게 해야 했다. 일본의 우익정치인들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위대가 만들어지고, 일본은 한국전쟁의 후방기지가 되었다. 그 댓가로 일본은 조선특수라 불리는 경제호황을 맞이 할 수 있었다. 전후 호황은 일본이 경제 대국화 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후 일본은 착실히 미국의 가신이 되었다. 미국은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했고 아시아 주변국가들에게 일본과의 국교를 종용했다. 이 시기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전후 보상문제는 지금도 아시아 주변국가들과 일본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4.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라는 부제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입문서로 오해 받을 소지가 큰데, 일단 나부터 속았다. 이보다는 저자의 문제의식(근대화, 평화문제)에 따라 일본 현대사를 간편하게 탐색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특히 이 책은 전후 일본의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들이 어떻게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일본 정치사에 무지한 나 같은 사람들은 왜 재군비 문제에 사람들이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일본 우익의 문제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장집은 한국의 분단문제가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미 종속성과 분단문제가 여타 정치적 문제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한국의 정치적 대립은 분배문제, 즉 증세와 감세의 좌우 구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친북 좌파라 공격하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보수우익이라 공격한다.
어찌 보면 일본도 평화헌법, 안보조약등의 문제가 정치적 의제들을 왜곡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55년 체제는 사회당에게 30%의 의회지분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실제로 사회당의 역할은 호헌이었지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일본의 정치가 서구와 같은 계급정치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和田春樹 교수를 볼 기회가 있었다. 노학자는 한국에는 안보조약이나 헌법9조 같은 것이 없으므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 안보와 헌법9조는 없지만, 분단 문제가 정치적 의제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원작의 표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원작은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었다. 어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