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회과학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4
이시다 다케시 지음, 한영혜 옮김 / 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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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에서 나오는 일본학 총서라는게 있는데, 사실 잘은 모른다. 그런 일본학 서적 시리즈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안다. 그리고 문고판이라 가격이 싸다는 것도 안다.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서 본 책. 그러나 값이 싸다고 내용이 싸구려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본의 사회과학을 소개하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쉬우며 종합적이다.

재밌게 읽었지만 현대 일본 사상사는 물론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얇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넘어가며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적은 분량으로 일본의 근현대 사상사를 비교적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상사를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 하며 저자는 이 복잡다단한 사회과학의 흐름을 정리하기 위해 사회과학의 통합과 분열을 중심으로 근 현대 사상사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서문에서 밝힌 저자의 방법론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의 방법을 1) 역사적으로 2) 일본 사회 그 자체의 발전과 관련지어 3) 종합적으로(개별 분과학문을 넘어선) 4) 일본과 다른 사회와의 비교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목적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획의 경우 무엇을 담아냈느냐 보다 무엇을 덜어냈으며 어떻게 묶어냈는가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 책 말고 일본 사상사에 대해서 접한 내용이 없으므로 다른 것들에 대해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지성계가 하나의 공통 의제로 관심을 모으고 공동체적인 정서를 공유한 것은 세 번 일어났다. 한 번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의 건설과정이다. 어떤 국가를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모두가 골몰했던 시기였다. 또한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관료집단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지식인들이 국정에 참여한 주요 이유가 되었다. 이후 관료제가 정비되면서 지식인들은 상아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국가학에 매몰되었던 사회과학도 분과별 분화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인 쇼와 초기 맑스주의의 유행은 사회과학의 독점현상이었다. 이 시기 맑스주의의 유행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과 러시아 혁명, 일본 공산주의 운동의 성장등과 떼어 놓고는 생각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대 지식인들을 싫든 좋든 맑스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끔 했던 맑스주의의 매력은 보편성, 체계성, 비판성이었다. 맑스주의는 메이지 초기 이후 개별 학문으로 분화해가던 지식공동체를 하나로 다시 묶어내는 역할을 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맑스주의로 인해 비로소 사회과학이 사회현실을 법학, 철학, 역사, 경제, 정치등과 같이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상호 관련지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자 했으며, 과학자는 일정한 가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지적 조작을 하는 것임을 밝혔다는 것을 이 시기 맑스주의의 의의로 정리했다.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으면서 붕괴된 사회과학이 다시금 하나로 모아진 것은 패전과 점령이후다. 저자는 마루야마의 개념을 빌려 이 시기의 지식인들을 ‘회한(悔恨)공동체’라고 부른다. 戰前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움이 모두를 괴롭게 했으며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경외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 맑스주의가 쇼와 초기에 가졌던 맑스주의의 문제점, 즉 수입성, 교조주의, 내부대립의 문제는 여전했다. 결국 50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회한공동체는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지식인들의 통합과 분화에 대하여 뚜렷한 주관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통합은 통합대로 분화는 분화대로의 이유와 과정이 있었을 뿐이며 저자는 이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에 비해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한 목소리 내기를 원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은 일본에 대한 많은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문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또한 구체적인 정보의 출전과 심도 있는 독서를 안내한다는 점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책은 쉽게 쓰여 질 수 없는 책이다. 또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일본의 사상사를 개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는데 성공하였으며 자칫 이해하기 힘든 사상사의 흐름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70년대 까지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저자가 이미 80을 넘은 고령이므로 후속작업이 이루어 질 것 같지는 않다.

하나 궁금한 것은 저자가 책을 출판한 것이 80년대 초반인데, 이 당시 원고의 초안을 마루야마 마사오을 중심으로 한 비교사상사 연구회에서 발표하고 비판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연구작업이 하나의 사상사로 정리된 것에 대해 마루야마 마사오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또한 저자인 이시다 다케시는 마루야마의 제자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을 공개된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구의 성패를 떠나서 그런 시도 자체가 존경스러워 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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