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8
...'짖궂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줄곧 생각해왓다고 수이는 이경에게 말했다.
 "비열한 말이라고 생각해. 용인해주는 거야. 그런 말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야.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니."
p35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반면 이경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어떤 선택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후회가 더 크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p56
...수이는 단 한 번도 자기 상처를 과시한 적이 없었다. 자기 상처로 누군가를 조종하는 일이 가장 역겹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런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려 했고, 그게 무엇이든 모든 것을 삼켜내려 했다. 그런 수이가 소리 내지 않으려 했고, 그게 무엇이든 모든 것을 삼켜내려 했다. 그런 수이가 소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울고 있었다.
 이경은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수이의 울음이 자신의 마음을 아주 조금도 돌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란 채. 수이 또한 이경의 그런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이경은 울 자격이 없었다.
p99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p112
 가까운 친구 둘은 다른 지방으로 대학을 가서 자주 볼 수 없었고 대학에서는 마음을 붙일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이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p130
..."아주 나쁜 일 생겨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다 참고 그러지 마."
 "기억할게. 그 대신 너도 기억해. 지금 네가 한 말."
 "내 걱정 말고 너나 잘 기억해."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나는 자리를 떴다. 참지 말라고 말했으면서 정작 습관적으로 눈물을 참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물하나의 나에게 이 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십 분의 일이었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시간과도 같은 양이었다. 나의 선택으로 공무를 만났고, 일상을 나눴고, 내 마음이 무슨 물렁한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떼어 그애에게 전했으니 공무는 나의 일부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와 떨어져 있는 나는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식의 애착이 스물하나의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p136
 "사람은 변할 수 있어. 그걸 믿지 못했다면 심리학을 공부할 생각은 못했을 거야.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은 변할 수 있어. 남을 변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사람이 궁금하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서. 타고난 부분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같은 일을 경험하더 
라도 해석하고 반응하고 회복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나는 공무가 인간에게 품는 낙관이 신기했고, 때로는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의심했다. 네가 어떻게 커왔는지 뻔히 아는데, 그런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가해자들도 변할 수 있어? 달라질 수 있어? 그 인간들이 변하고 달라진다고 해서 그들이 학대한 사람들의 상처가 없어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의 말에 순간이나마 마음을 걸치고 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극복할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
p162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될 뿐. 산화되어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물질은 아주 작은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과학적 사실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왔었다.
 "그래도 사람은 사라져." 내 말을 듣고 모래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없어. 사람의 물질성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네 말은 내게 위안이 되지 않아. 모래는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모래의 그 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모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래? 그렇구나, 라고 듣는 편이었지 그렇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편은 아니었으므로. 아마 그즈음부터 모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엇던 것 같다. 내가 매일 조금씩 달라졌듯이. 모래 또한 내가 처음 만났던 모래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181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이렇게 모든 것이 희미해져도 조금은 분명하게 남아 있는 일이 있다.
p209
 우리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가방을 든다. 구원이니 벌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물며 사랑이니 하는 이야기는 더는 입에 올리지 않은 채로. 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각자의 우산을 쓰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간다.
p219
...어떤 나이까지 자식은 부모를 무조건 용서하니까.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도 없이 자연스럽게. 어떤 이유도 없이 무조건 부모를 좋아하는 마음처럼,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의 굳은 마음과 달라 자신의 부모를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못한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p274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p304
...많은 이들이 최은영의 소설에서 감지한 다정함은 누구나 한 번쯤 베인 적 있는 상실의 감각에 대해 예민한 촉수로 그려내는 것을 넘어서 ,거대한 세계와 사소한 개인 사이의 위계를 무너뜨려 버린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작가는 다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혼돈일지라도 그것이 세계 종말 이상의 사건이 될 수도 있음을 전제한 채, 나비가 날개를 파닥이듯 얇게 흔들리는 마음의 무늬들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 따뜻함의 이면에는 분명 서늘함이 자리하고 있다. 주로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그의 소설에서는 관계의 끝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자주 등장한다.
p312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이 누군가를 배반하고 그에게 상처 주었던 순간을 끝내 잊지 않겠다는 의연함은 이번 소설집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다.
p316
...사랑은 다만 상대 앞에서 자신의 가장 약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노출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 곁에 침묵하며 함게 서 있는 것, 대신해 우는 것, 조금씩 속도를 늦춰 걷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억압하고 제련당해온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는 일은...
p317
...소설의 바탕이 되는 주요한 생각 중 하나는 우리가 유일하지도 소중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부정적으로 치닫는 대신, 실망과 균열들을 끌어안은 채 계속되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의연하게 걸어가도록 한다. 시작도 끝도 분명치 않은 그들의 살아과 이후의 삶은 여름날의 불꽃놀이보다는 이 불꽃놀이가 끝난 후의 기난긴 여운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미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주는 적막한 위로에 기대면서, 우리의 평범한 삶은 그 짧은 여름을 영원히 살아간다.
p324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식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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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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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데 아프다.

그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일곱편.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야기들.

십대, 이십대를 보낸 조금씩 나같았던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그랬는데도 하고.

친구, 연인, 모녀....

누구나 이런 모습들이 있지. 누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지. 어떤 식으로든 작가는 그런 장면들을 잘도 찾아 쓴다.

그래서 읽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해설.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

1. 서늘한 파열음

여성이라서...이러기 싫지만...그렇다.

2. 사랑보다 깊은 상처

우정, 사랑,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우정

어쩌면 모든 것이 사랑인가

어쩌면 살아오면서 나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한다.

그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겠지.

3. 영원한 여름 속으로

평범한 삶. 어떤 일이 일어나도

유일하지도 소중하지도 않지만, 어쩌면 유일하고 소중하지.

그래서 순간순간 애터지게 귀한지도.

4. 실버 라이닝 앞의 어두운 구름

너무 선하고 예민하다.

마음이 견딜 수 있을까하는 의심은 견디고 싶다는 마음의 크기.

- 작가의 말

지나온 미성년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어렵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작가를 응원하게 된다.

모든 걸 느끼더라도 너무 많이 상처받지는 않기를.


아마 읽으면 착해질 수 밖에 없다. 계속 착하기 위해 찾아 읽고 싶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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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0

...운명이란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의 결과물임을 이해했다. 그리고 또 알아차렸다. 내 의지로 그런 환경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억울해할 수 없다는 것을. 설사 지고한 존재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그런 선택의 배경에는 내 영혼을 위한 배려가 있었을 터였다.어쩌면 아버지야말로 내게서 오래도록 거절당해 온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에 이르면, 인생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더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겸손하게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p188

...전인류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자신의 부모와 평화롭게 지내는 데는 서투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되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려 애쓰며 나아갈 뿐이다.

p214

 "청빈과 극빈의 차이가 무엇인지 압니까? 스스로 그 길을 택해 검소하게 살면 청빈입니다. 극빈은 내 욕망은 그렇지 않은데 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조급함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거나 큰 병에 걸렸거나 문맹이 아니라면, 그 이상은 더 잘 먹고, 더 건강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 얻는 고통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약이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악한 생각입니다."

 '더, 더, 더'를 추구할수록 무엇인가 '더'해지기느커녕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는 욕망, 집 한 칸이 불러일으키는 10만 8000가지 번뇌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지. 이럴 때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려면 얼마만 한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할까.

p250

기운 빠지고 만사가 심드렁해지고

누군가가 몹시 미워지는 날이 있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모든 걸 끝장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는 날이.

이런 날은 내 삶에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다.

느림과 텅 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동은

이 두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생긴다.

.........

...

"인생은 그렇게 고민할 가치가 없다. 그냥 살면 된다.

아무렇게나 산다는 뜻이 아니라 가볍게 그냥 산다는 뜻이다.

인생은 아주 단순하다.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먹을거리.

햇빛과 추위를 가릴 의복,

몸을 가릴 지붕만 있으면 된다.

그 이외의 것을 채우느라

오늘 그처럼 마음을 다쳤다.

마음을 쉬어라.

자연은 빈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채워 준다.

네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있다.

완전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느림과 텅빔.

이 두 가지로도 마음이 쉬어지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방법 하나.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을 먹고, 푹 자기.

p254

기억도 못 하는 자잘한 순간들이 모여 지난날이 되는 것.

소동과 자극이 주연 자리를 꿰차는 동안

기꺼이 잊히고 말았던 조연의 시간들 속에

내 인생의 비밀이 차곡차곡 빻아져 흩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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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유해한 것들에 둘러싸인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더 나은 나를 가꾸는 

셀프가드닝의 시작

p24

이 밤에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고, 내 인생은 망했고,

세상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할 일은 편안한 면 티셔츠를 입고

빨리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짓은 순간의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문자나 말로 전하는 것이다.


다은 날 아침, 그것들이 별 것 아니었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힘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그런 날의 아침밥은 맛있고 든든한 것으로 준비하자).


나라는 한 사람은 

어떤 시간과 어떤 상황 속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했던 내 모습에 당황하기도 한다.

나의 여러 가지 모습 또한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고 받아들이자.

내가 알던 나,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주자.


밤의 내가 지나가면 아침의 내가 반드시 떠오를 테니.

p50

나를 낮추어 나보다 약한 사람이 

목마를 탈 수 있도록 하되,

나를 낮추어 나보다 강한 사람이

밟고 지나가게 하지는 말라.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적당한 높이이다.

p66

당신이 무언가에 얽매이게 되는 순간

세 가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첫째, 자유와

둘째, 순수한 즐거움과

셋째,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집착을 구분해야 한다.

눈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에

눈 오는 날은 즐겁고

눈이 오지 않는 날도 괴롭지 않은 것처럼,

언제까지나 순수한 즐거움, 자기 자신을 지키면서,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존중하면서,

지구와 달처럼 멀어지고 가까워짐을 이해하면서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바다 풍경이 좋다고 바다 속에 잠수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p70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한 시간들 후에 좀 더 비워지거나 반대로 채워진, 더 부드럽고 더 자주 웃는 나, 더 기발해지고 더 생기 넘치는 나, 예사외의 나, 다른 말로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더 마음에 드는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

시간을 낭비하자. 나에게 조금만 더, 내 마음대로 요리할 날것 그대로의 시간을 주자.

p77

어떤 소비는 소비적이지만, 어떤 소비는 생산적이다. 사고 나서 오히려 공허해지고 더 많은 것을 탐하게 되는 소비가 아니라 나의 마음을 채워주는, 변화시켜주는, 작지만 새로운 기회들을 주는 소비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요즘 나의 소비 생활은 어는 곳을 향하고 있을까?

p84

다른 사람이 내리는 순간 순간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오류투성이의 결론에 나를 결론짓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를 정의하지 않게 하는 것

다른 사람의 한숨이 나를 쓰러뜨리지 않게 하는 것

산들바람에 흔들리되

타인의 오가는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것

흔들렸다 해도 이내 자아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자존감은 시작된다.

자존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이 상황에서 키워질 수 있다.


삶은 주어지지만 삶의 주어는 나이므로

p102

차가운 머리와 단단한 의지, 객관적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후,

나와 남을 해치는 나쁜 습관들을 킬링,

자꾸만 주저 앉고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킬링,

무기력하고 자조 섞인 기분을 킬링,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감싸는 변명과 핑계들을 킬링.

영화 속 킬러는

목표 의식이 뛰어나며,

계획적이고,

악조건 속에서도 능력을 발휘한다.

내 안에 있는 끈질긴 나의 적들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흘러가는 시간에 마냥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계획적으로,

온갖 유혹과 안팎의 끊임없는 의구심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나의 능력을 발휘해보자.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자.

.......

나를 감싸 안을 때 내 안의 적도 함께 감싸 안지는 말라.

나를 다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일처럼,

내 안의 적을 알아보고 물리치는 일도 필요하다.

힐링을 잘하면 따뜻한 사람이 되고

킬링을 잘하면 새로운 사람이 된다.

둘 다 더 나은 내가 되는 방법이다.

p120

누군가에게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하지 말라.

상처를 준 사람은 당신이고 그 사람은 상처를 받았다.

예민하다는 말은, 자신이 상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그 사람의 감정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말이다.

세상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남의 상처에' 예민하지 않을 뿐.

남의 상처니까, 책임이나 사과를 하기 싫으니까,

혹은 잘못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강하니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나의 노력과 시간을 쓰고 싶지 않으니까.

어떤 이유로든 나에게 향한 화살의 방향을 다시 

그 사람의 탓으로 쉽게 돌릴 수 있는 말이 

예민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p144

당신은 같은 사람이지만 당신이 만난 사람의 성향, 성격, 태도가 다를 뿐이다. 당신이 겪은 말과 행동의 원인은 내가 아닌 그 사람들 각자에게 있었다.

혹여 당신이 오늘 누군가로 인해 예상치 못한 어떤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면, 별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느라 내 감정, 시간, 에너지를 낭비하며 다른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면,잠시 내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그 사람이 약국과 편의점의 무수한 손님들과도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며, 다시 볼 일 없는 사람,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당신에게 이상한 사람은 결국 모두에게 이상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결국 그저 스쳐 지나간 수많은 손님처럼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오늘의 그 사람을 기억해내기도 힘들 거라는 것을, 손님처럼 마주쳤으니 내 마음속에서도 손님처럼 내보내면 그만이라는 것을 다만 기억하자.

잊힐 손님을 내보내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집중한다면, 다음의 좋은 손님을, 손님 아닌 좋은 인연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나악, 나 자신 또한 다른 이의 약국과 편의점에 들렀을 때 좋은 손님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또한 기억할 것.

삶에서 우리는 서로의 손님이다.

p147

언젠ㄱ나 끊어질 관계에 에너지를 쏟지 말라.

시간은 정리를 잘 한다.

시간에게 맡겨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와 나에게 중요한 일,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그런 곳에 쓰는 것이다.

관계는 선택과 집중,

나를 길바닥에 놓아도 되는 비닐봉지가 아닌

새로 산 가방처럼 대해주는 사람,

갓 구운 빵 냄새처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서로 잘 맞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다 보면

관계는 더 윤택해질 수 있다.

관계는 숫자가 아닌 길이다.

p157

눈물을 흘리는 타이밍도 눈물의 양도 다르듯,

슬픔을 공유하는 방식의 다름을 공감하는 것도

슬픔을 공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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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07

...인생이 주는 쓰라림과 환멸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생활에 따라붙는다고 믿었다.

p046

 나에게서 받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크고 깊은 사랑이라는 걸 살면서 새록새록 느낀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란느 확신이 있어야 '잘 쓰이는' 삶을 살 수 있다. 그 확신은 자신을 믿고. 재능이 꽃필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주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면접장에 들어설 기회가 드문 나이에 이르렀다. 하지만 꽃 피는 나무와 마주서거나, 몸을 부풀렸다 사라지는 구름을 보거나, 누군가를 만나 한 끼의 식사를 나누거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로 발을 좁혀 설 때 나는 좀 더 확장된 면접장에 들어선 것임을 안다. 일상의 면접관들이 무엇보다 보고 싶은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의 환한 얼굴이 아닐까. 나에게 불친절한 순간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면접관이 되어 묻는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가?"

p059

 '지불책우知不責愚'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이 네 글자에는 들끓는 감정을 한 단게 아래로 끌어내려 급냉장시키는 탁월한 기운이 담겨 있다. 한동안은 이 기운에 의지해 내 안의 불길을 잠재워 갔다. 그 뒤 세월이 흘렀고, 내게도 겨자씨만한 지혜의 싹이 돋아났다. 이제는 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니 어리석은 사람이니 굳이 나누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괴로운 사람, 괴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임을.

p061

 당신이 평화롭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그래, 그 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궁극의 기도일진대. 

 그 밖의 것들은 밤사이에 옮겨 가는 모래언덕처럼 덧없고 덧없다.

p081

"이번 생은 망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사계절 순환처럼 내 일상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계절의 반복처럼 나는 수없이 실패하고 절망하고 비통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말, '그래도 다시' 가 아니라 '이번 생은 망했다'고 낮게 읊조리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걸을 것이다."

p086

 "해가 지면 그날 하루는 무사히 보낸 거다. 엄마, 아버지도 사는 게 무섭던 때가 있었단다. 그래도 서산으로 해만 꼴딱 넘어가면 안심이 되더라. 아,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하고, 그러니 해 넘어갈 대까지만 잘 버텨라. 그러면 다 괜찮다."

 그 밤에 엄마가 속으로만 삭인 뒷말이 있었다.

'그러다 새벽이 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게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단단.'

 그 말까지 더해야 진실이 완성되지만 엄마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새벽이 되면 절로 느낄 것이므로, 당장 그 순간 자식에게 필요한 것은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이란 걸 알기에.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 뒷말까지 온전하게 전해듣고 그 말에 담긴 서슬 푸른 삶의 비의에 혼자 몸을 떨었다.

p115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란다. 갖고 싶은 게 아무리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사랑도 이와 같다. 애당초 손바닥은 깨물기 좋게 생기지 않았다. 내 손바닥도 개물지 못하거늘 상대의 손바닥이야 말해 뭣하랴. 전쟁 같은 사랑이 지난 뒤에야 손바닥과 손바닥은 서로 마주 잡기 좋게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p127

 우리가 걸어온 시간보다 길게 남아 있는 여로를 생각한다. 젊음의 한때 만나 이어진 인연이지만, 존재의 깊숙한 안쪽까지 변화시키며 가는 길. 상대를 잃을까 염려하지 않고 담담하고 담백하게 서로의 인생을 지켜보며 가는 길. 그 길에 함게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다.

p166

...중독과 몰입의 차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있지 않을까. 어떤 일에 지독하게 빠져 있는 자신이 밉고 죄책감이 든다면 중독이다. 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내면의 자부심이 커진다면 몰입이다. 왜냐하면 중독은 결국 자신의 실체를 잊기 위한 몸부림이며, 올바로 사랑을 쏟아야 할 대상에게서 거부당하고 상처받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중독이 치명적인 것은 물리적인 파괴의 속성 때문이다. 몸 어디 한군데가 손상된 뒤에야 간신히 벗어날 수 있는 것, 그게 중독이다. 옛날에 게임에 푹 빠겨 지낸 적이 있었다. 처음엔 일을 시작하기 전, 기분 전환 삼아 가볍게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멈춰지질 않는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게임 창을 닫지 못했다. 결국엔 손목에 탈이 나서야 겨우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알코올, 니코틴, 도박 중독.....모든 중독은 황폐한 상처를 확인해야 끝장을 보게 된다. 그래서 중독을 일컬어 느리게 진행되는 자살 시도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정말 불가사의하고 약 오르는 진실 하나는 좋은 습관은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76

 "사랑이 무슨 죄니. 사랑이 약한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이 약한 거지. 사랑은 있어."

 그러니까 애당초 잘못은 우리가 사랑에 대해 품는 수많은 환상과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사랑은 있는데, 사람이 변한다는 거다. 그 동안 애꿎은 '사랑'만 쥐 잡듯 잡아 왔다는 얘기다.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비록 그 선배가 이 근방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인증받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장 바보로 소문난 사람도 아니니 믿어 볼 수밖에. 아아, 사랑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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