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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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정해진 운명을 향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이미 성공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성공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것이고, 반대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뭘 해도 실패하는 삶을 살아 갈 것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이라면 우리는 살아갈 이유가 없지 않을까?! 뭘 해도 바꾸기 힘든 운명이라는 큰 덫 앞에서, 삶이란 단지 자신의 마지막을 확인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이‘운명’이란 놈의 힘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의 나, 괜한 생각으로, 쓸데없이 머릿속만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것도 운명인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 앞에 나타나서 당신의 정해진 운명을 알려준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좋은 운명이 아니라면?!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의 주인공인 ‘하라다 미오’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 상대는 뜬금없이 나타나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고 5분만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한다. 거절하고 돌아선 그녀에게 상대는 “여섯 시간 뒤, 당신 죽어.”라는 말을 남긴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여섯 시간 뒤 죽는다니……. 그 황당한 말을 남긴 상대는 에도가와, 아니 ‘야마하 케이시’라는 청년으로 예지(豫知), 즉 다른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를 과연 믿어야 할 것인가, 그냥 무시하고 돌아서야 할 것인가?!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방금 살짝 이야기한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외에 「시간의 마법사」,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날」, 「돌 하우스 댄서」, 「3시간 후 나는 죽는다」, 그리고 에필로그인 「미래의 일기장」 까지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이야기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의 미오와 케이시가 마지막 이야기인 「3시간 후 나는 죽는다」에서 시간이 흐른 채 다시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주인공들을 내세우지만, 그 연결고리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야마하 케이시’를 통해서 이어진다. ‘야마하 케이시’를 통해서 만나는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서는 이전에 만났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다른 느낌이지만 그 이야기들에 빠져드는 흡인력만큼은 변함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13계단》만큼이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책을 놓아야 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책 속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ㅡ. 어릴 적부터 운명이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야마하 케이시’의 틀리지 않는 예시를 통해 나타나는 운명론적 세계관과 같이 ‘우리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는가?!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는가?!’라는 생각에서부터 ‘하라다 미오’가 자신과 케이시를 위해 계속해서 뭔가를 바꿔나가길 원하고 행동하는 모습처럼 ‘그래도 나의 운명은 나 스스로 써나가는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혼란에 혼란만 거듭되는 생각들이었지만, 그런 나의 생각에 ‘다카노 가즈아키’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 주는 모습이었다. 에필로그인 「미래의 일기장」에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일기장에 미래를 써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당연한 사실인데 난 왜 그토록 헤매고 있었을까?! 모든 사람들이 아는 당연한 것인데 쓸데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음은, 아마도 비정상적인 현실로 인해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임을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책 한권 읽으면서, 이런저런 복잡한 이야기는 때려치우라고?! 그래 좋다!! 일단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야기로 빠져들어 보시라!! 운명을 논하는 것도, 결국에는 이 책,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의 재미를 만나고 난 후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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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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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형법 41조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형법 9조 ‘(형사미성년자)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가 있다. 다시 말해,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분류되어 형사책임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14세 미만의 자들에게는 행동 통제능력이 없기 때문에, 교육에 의한 가소성(개선 가능성이라고 해야 할까?!)이 있다는 점에 입각해서 그들을 보호 하기위해 존재하는 법이라고 하겠다. 그 의도는 좋지만, 세상 모든 것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그 반대로 그로인해 그 어떤 기본권도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이다. 그 문제를 『천사의 나이프』에서 다양한 각도로 파고 들어간다.

『천사의 나이프』는 커피숍을 경영하며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히야마 다카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아내 쇼쿄는 4년 전, 열세 살의 중학생 3명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들은 형사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그에 대해 큰 분노를 느낀 히야마는 매스컴을 통해 ‘그들을 직접 죽이고 싶다’는 말을 내뱉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그 셋 중 한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4년 전 그 말로 인해 자신이 용의 선상에 올라있음을 알게 된다. 히야마는 직접 그 진실들을 알아내고자 나서게 되고, 이야기는 숨 가쁘게 진행되어 간다.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에도가와 란포상」, 그것도 만장일치 수상에 빛나는 작품이라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또한, 100여권의 밀리언셀러클럽의 작품 중에서 상당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던 터라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외는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작가 ‘야쿠마루 가쿠’, 그가 쓴 첫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이 더 컸다.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무조건 힘차게만 달려가지 않고, 중간 중간에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달려 나가는 점이 노련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첫 작품이라니……. 툭 건드는 것만으로도 힘겹게만 느껴지는 많은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파고들면서, 미스터리적 요소까지 가미해 전혀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멋진 소설을(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첫 작품이다!)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그 놀라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미가 있기에 쉽게 술~술~ 읽혀나가는 듯싶기도 했지만, 어린나이에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그 반대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아직은 남아있는 그들의 개선 가능성을 봐서 교화하고 지도하는데 중점을 둬야할 것인가?! 아니면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인가?!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기는 힘든 문제이기에 혼란만 계속해서 쌓여간다.   

 

“국가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범인을 죽이고 싶습니다.”  -P55   

 

『천사의 나이프』의 히야마가 그렇듯이, 대부분 중범죄의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가해자에 대해 상당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큰 처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가해자가 어린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더 큰 증오로 다가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히야마가 내뱉은 말은 그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으리라, 단지 히야마처럼 말을 못했을 뿐이지만……. 그런 증오심에다가, 쓸데없는 관심과 매스컴의 호기심, 그리고 가해자들의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피해자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와는 반대로 가해자의 입장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지는 못 할 것 같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과실로 인해 사람을 죽였지만 아직 어리니까 보호처분을 받는다. 보호처분과 동시에 체계적인 교육으로 인해 그는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른바 ‘갱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충분히 이상적이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갱생을 한다면 지금 이야기하는 이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설사 현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것을 진정한 갱생으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과연 피해자들도 그들이, 그 살인자가 갱생을 한 것이라, 또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까?!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이 뉘우침이 없는 무조건적인 반응에 대한 교육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늘여 놓기는 하지만, 결국에 이것들은 법적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일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숨만 늘어난다.

처음에는 분노하고 증오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쩌면 진정으로 그들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용서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 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낀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용서를 구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법적인 처벌보다도, 돈 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진심이다. 그 진심이 법 사이에, 아니 법 이전에 담겨진다면 이런 고민들조차 결국에는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어떤 범죄에 있어서 그에 따른 형벌을 부과하려면, 반드시 법에 미리 써놔야 한다. 이것을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에 권력에 의해 유린되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결국, 모든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권은, 또 지금의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묻고 싶어진다. 문제가 있으면 계속 고쳐나가고 또 다른 새로운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야 함에도 지금 국회에서는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계신지… 입법자라고 하는 것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에만 급급해 지랄들 하지 말고, 기본권적 법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형법 및 소년법규정을 재검토하고 이를 보완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지만…. 에휴 ㅡ. 말해야 뭐하나 입만, 아니 손만 아프지 ㅡ.

요즘 날이 갈수록 청소년 범죄가 많아지고, 그들의 연령대는 낮아져만 간다. 또한 그들의 나이와는 반대로 범죄의 심각함은 커져만 간다. 어디에서 부터 이런 비극이 시작되었는가. 과연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고민이지만, 무엇보다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은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 이놈의 팍팍한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른의 눈이 아닌, 아이들의 눈으로 그들을 감싸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어른, 그런 부모들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해본다.

『천사의 나이프』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을 두서없는 글로 풀어낸 것만 같아, 쓸데없이 이 책을 복잡하게만 설명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만큼 많은 생각들을 떠올려주는 즐겁고도 고마운 책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언젠가 글을 쓰게 된다면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끔 하는 책이라면 더 확실하게 이 책을 표현하는 것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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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밀리언셀러 클럽 10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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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니스 루헤인’ 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더라. 언젠가 우연히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상당히 인기가 많은 작가이며 그의 작품 또한 많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이런 저런 정보를 읽어가며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미스틱 리버》나 《살인자들의 섬》, 《전쟁 전 한잔》 등의 그의 작품들을 조금씩 모으게 되었다. 사실, 이것저것 구입하고 있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 제대로 본 책은 몇 권 없다. 이번에 만난 책,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라는 책이 ‘사립탐정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라고 하는데 그 시리즈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을 정도니 말이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는 《전쟁 전 한잔》,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신성한 관계》,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까지 모두 다섯 편이 있고 국내에 출간된 순서는 조금 뒤죽박죽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일단 제일 가까이 있는 책을 잡았는데, 그것이 바로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이다.

사립탐정 켄지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켄지와 제나로는 의뢰인의 아들이 마피아로 인해 위험에 놓여있다고 판단한다. 그들에게서 의뢰인의 아들을 보호하기위해 지켜보지만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한 여성이 시체로 발견되고, 그의 손에는 켄지의 명함이 쥐어져있다. 그리고 연이어 발견되는 의뢰인 아들의 죽음…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건의 연관성을 하나씩 찾아가게 되고, 연쇄살인이라는 결론과 동시에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켄지를 찾게 된다. 용의자는 오랜 시간 감옥에 있었다. 쉽게 찾기 힘든 각각 사건의 관계들과 그 동기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간 속으로 얽혀 나가기 시작한다…….

제목에 어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더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전체적으로 어둡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둠으로 인해 느껴지는 우울함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냥 우울함에 던져놓고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울해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다른 생각들을 던져주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비 효과라는 이론을 거들먹거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 이론을 피해가기도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적 주변의 환경과 그로 인해 형성된 많은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지 않은 영향으로 태어난다. 그 중심에 켄지가 놓여있고 말이다. 항상 시작은 큰 것에 있지 않다.

도대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선은 어디까지이고, 악은 어디까지인가?! 아니, 어쩌면 선과 악이라는 그 개념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그와 다른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로인해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모순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연쇄살인이라는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결국 그 자체도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들 중의 한 형태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형태의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 어둠뿐이고, 또 우리가 손을 내미는 것이 어둠뿐일까?! 우리는 그런 어두운 현실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책이 두꺼운 만큼 읽기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뭔가가 나를 점점 책 속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렇게 힘들지만도 않았다. 단지, 읽어 내려가다 가끔씩 어색한 문장으로 인해 막혔던 것은 나의 문장 이해력이 딸리는 이유가 전부일까?! 어쨌든, 이 한 권의 책이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와의 만남, 그 시작이었지만,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크게 연결된다거나 꼭 앞의 내용을 알아야지 뒤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왠지 처음부터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책의 마지막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그런 느낌들이 퍼즐을 완성하듯 하나의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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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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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로 《나는 전설이다》를 떠올려 본다. 인류 최후의-아마도- 생존자가 황량한 도시를 휩쓸고 다닌다. 하지만 혼자이기에 더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가게에 마네킹을 세워놓고 대화를 할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주인공에게 또 다른 생존자가 나타나고, 여차저차해서 내용은 아주 희망적으로-적어도 생존자에게 있어서는- 마무리되었던 기억이 난다. 엔딩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본 영화에서는 그랬다. 그래, 영화는 그랬다. 하지만 원작은 달랐다. 원작 소설을 먼저 본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원작의 재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면서 실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원작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고,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드라마적인 요소와 상상이 아닌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적막한 세상이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당연히 재미도 있었다. 그런 재미를 생각하며 펼쳐 든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왜냐고?! 이제부터 하나씩 이야기해 봐야지….

내가 당혹감을 느낀 제일 큰 이유는 좀비와 흡혈귀라는 두 용어 구분의 모호함으로 인한 혼란이라고 할까?! 당연히 좀비를 생각했었다. 영화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에 나오는 좀비들 말이다. 분명 내가 영화에서 봤었던 정체모를 그놈들도 분명-적어도 나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좀비였다. 영화에 따라서 생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뛰어다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좀비는 좀비 그 나름의 특성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 『나는 전설이다』에서는 좀비보다는 흡혈귀에 가깝게 그려진다. -실제로도 흡혈귀라도 한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데, 당연히 좀비일 것이라는 영화로 인한 나의 선입견 때문에 시작부터 어떤 혼란을 겪은 것은 아닌지…. 그와 동시에 느낀 당혹감은 재미가 없다는-적어도 시작에서는 그랬다- 사실에서 오는 것이었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보여주면 보여주는 대로,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장치를 그대로 생각 없이 따라다니며, 오히려 내가 좀비같이 영화를 보고 좋아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본다. 영화를 볼 때와 같은 그 좀비스러운 자세가, 소설의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날 혼란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당혹감으로 시작한 소설 『나는 전설이다』와의 만남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 없이 멋진 작품으로만 여겨진다.

1976년의 로버트 네빌은 서른 여설 살의, 큰 키에 평범한 인상을 가진, 영국계 독일인이다. 핵전쟁과 세균전으로 인해 세상은 버려졌다. 네빌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의 모습 대신에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형체를 지녔지만, 인간의 피만을 갈구하는 흡혈귀들뿐이다. 세상은 그들로 뒤덮여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은 낮에는 활동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결국 온 세상의 낮은 네빌의 세상이다. 하지만 혼자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라는 사실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점점 그는 생을 잃어만 간다….

네빌 ㅡ. 그는 결코 전설도, 영웅도 아니다. 단지, 외로움을 아는 한 남자일 뿐이다. 남들과 똑같이 고독함을 느끼고,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했다가, 금방 좌절하기도 하고 또다시 금방 일어서기도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단지 그는 홀로 남겨졌을 뿐이다. 흡혈귀들이 활동을 하지 않는 낮 시간에만 밖으로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그들의 공격을 피해 그만의 피신처인 집에 들어 앉아 음악과 술, 담배로 적적함을 달랜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생존의 연속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네빌은 그 속에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간다. 정말 묘한 공간이지 않은가?!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공간…. 만약, 네빌이 나라면, 혹은 당신이라면?! 아마, 아니 당연히 미쳐버릴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하듯 마네킹에 말을 걸고 대화를 할지도 모를 일이고, 벽보고 이야기하다가, 결국 머릿속에서 또 다른 나와 싸우면서 서서히 지쳐갈 것이다. 네빌 역시 다르지 않다. 흡혈귀를 향해 증오를 날리면서도 결국은 그 자신에게-혹은 이제는 사라진 전 인류에- 그 증오와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 P221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에 따라 그 세상도 달라진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네빌도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선을 달리한다. 술과 담배로만 달아나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아 나서고, 다시 절망한다. 그러다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희망을 느끼지만, 곧 다시 절망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안고 온다. 바로 체념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공포에 적응하고, 더 큰 공포인 단조로움을 이해하면서 그 속에서 평화를 찾아내는 대단함을 보인다. 그렇게 그는 희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 “나는 전설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서 느꼈던-혹은 보통의 영화에서 느끼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 작품은 한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선입견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버리고, 네빌의 복잡한 생각 하나하나를 쫓아가고, 나의 생각으로 바꿔낼 수 있다면 더없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스티븐 킹을 소설로 이끌기도 하고, 현대 좀비물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는 이 작품, 『나는 전설이다』 ㅡ. 좀비, 흡혈귀 따위가 나오는 책과 영화를 왜 읽고, 보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인류의 마지막, 나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 『나는 전설이다』 에는 한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전설이다》이외에도 10편의 단편들이 함께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중심이 《나는 전설이다》이다보니 이야기가 그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라고 해서 그냥 지나칠 만한 이야기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리처드 매드슨’이 어떤 신기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궁금증은 직접 만나보고 해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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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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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추리/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소설로 빠져들게 만든다.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의문을 가지고, 그 답을 찾아보며, 이런저런 상상에 빠질 여지가 많은 그런 장르의 작품들의 세상으로 말이다. 그런 면으로 볼 때 『13계단』은 정말 멋진 작품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나를 이끄는 흡인력과 끝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구성, 거칠 것 없으면서도 세련되게 꾸며진 문장과 재치 있는 대사 처리, 그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각 종 제도와 관계들 까지… 그 무엇 하나 놓칠 것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읽어야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봐도 충분히, 아니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13계단』이 될 테니까……. 그래도 그냥, 소재가 “사형”에 관한 것이라는 정도만 슬쩍 말해야 할까?! 

 

그러한 일련의 관찰에서 난고가 얻은 결론은 사형수가 죄를 참회했다 해도,
이는 사형 판결을 받았기에 일어나는 결과라는 것이었다.
즉 응보형 사상이 지지하는 사형 판결에 의해 목적형 사상의 목표인
회오의 정(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침)을 유인해 냈다는 공교로운 현상 말이다.  - P184
 

 

의도와는 다른 결과라고 해야 하나… 책에서 언급되는 응보형과 목적형 사상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 지 뒤죽박죽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사형”에 대해서 했었던 생각들을 돌아보면, 찬성이냐 반대냐를 너무나도 단편적인 지식들만을 가지고 판단해 왔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찬성이나 반대라는 명제에만 집착해서 그 제도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솔직히 말해서 사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13계단』을 다 읽은 지금이지만, 그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괜히 읽었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 『13계단』의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더 많은 생각들을 안겨준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 

 

『13계단』을 읽으면서 문득 몇 몇 영화들이 생각이 났다. 사형 제도의 반대를 강력하게 외치던 《데이비드 게일》과 같은 영화들……. 실제 목숨을 바치면서 사형 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13계단』은 어느 쪽이 옳다고 어느 쪽으로 가야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냥 던져줄 뿐이다. 

 

사무라 미츠오의 기소 사실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에서 격론이 오고 갔다.
날조 증거에 의해 준이치를 처형시키려 했던 것이 살인 미수죄
혹은 살인 예비죄에 해당되는지의 여부.
만약 그렇다면, 교수형이라는 행위 자체가
형법의 구성 요건인 '살인'에 해당되는 게 아닌가.  - P356
 

 

《세븐데이즈》라는 영화도 스쳐지나갔다. 어린이 유괴라는 또 다른 범죄를 자신의 ‘사적인 보복’을 감행하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보이는 영화. 그 영화를 보면서도, 『13계단』을 보면서도 “과연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사적인 보복(혹은 사형)’은 결국 피가 피를 부르듯 또 다른 보복을 부른다”는 피할 수 없는 답은 얻게 된다. 

 

『13계단』은 그냥 단순히 “사형”제도 만을 다룬 소설은 아니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형이라는 중죄를 받을 만큼의 커다란 범죄(살인)로 인한 피해자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이야기, 전과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룬다. 남겨진 사람들의 범죄자들을 향한 분노와 용서, 사형의 집행은 또 다른 살인이 아닌가에 대한 고뇌, 전과자로서 타인의 눈치를 봐가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 등에 대한 다각도의 생각들을 하게끔 한다.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이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 이전으로 돌아가서, 문제 자체를 제거하는, 죄를 범하지 않으면 될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가장 멍청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단순하면서도 멍청한 결론으로 인해 또다시 혼란에 사로잡힌다. 단순하지만 또다시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모순이 가득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그런 현실을 오늘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힘겹게… 이렇게 힘겨운 질문으로 힘겨운 오늘날의 모습을 절실하게 느끼게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당장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 무엇도 『13계단』을 통해서 느끼는 재미를 포기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후회 없는 선택, 『13계단』과의 만남을 꼭 한 번은 가져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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