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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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로 《나는 전설이다》를 떠올려 본다. 인류 최후의-아마도- 생존자가 황량한 도시를 휩쓸고 다닌다. 하지만 혼자이기에 더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가게에 마네킹을 세워놓고 대화를 할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주인공에게 또 다른 생존자가 나타나고, 여차저차해서 내용은 아주 희망적으로-적어도 생존자에게 있어서는- 마무리되었던 기억이 난다. 엔딩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본 영화에서는 그랬다. 그래, 영화는 그랬다. 하지만 원작은 달랐다. 원작 소설을 먼저 본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원작의 재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면서 실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원작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고,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드라마적인 요소와 상상이 아닌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적막한 세상이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당연히 재미도 있었다. 그런 재미를 생각하며 펼쳐 든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왜냐고?! 이제부터 하나씩 이야기해 봐야지….

내가 당혹감을 느낀 제일 큰 이유는 좀비와 흡혈귀라는 두 용어 구분의 모호함으로 인한 혼란이라고 할까?! 당연히 좀비를 생각했었다. 영화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에 나오는 좀비들 말이다. 분명 내가 영화에서 봤었던 정체모를 그놈들도 분명-적어도 나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좀비였다. 영화에 따라서 생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뛰어다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좀비는 좀비 그 나름의 특성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 『나는 전설이다』에서는 좀비보다는 흡혈귀에 가깝게 그려진다. -실제로도 흡혈귀라도 한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데, 당연히 좀비일 것이라는 영화로 인한 나의 선입견 때문에 시작부터 어떤 혼란을 겪은 것은 아닌지…. 그와 동시에 느낀 당혹감은 재미가 없다는-적어도 시작에서는 그랬다- 사실에서 오는 것이었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보여주면 보여주는 대로,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장치를 그대로 생각 없이 따라다니며, 오히려 내가 좀비같이 영화를 보고 좋아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본다. 영화를 볼 때와 같은 그 좀비스러운 자세가, 소설의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날 혼란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당혹감으로 시작한 소설 『나는 전설이다』와의 만남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 없이 멋진 작품으로만 여겨진다.

1976년의 로버트 네빌은 서른 여설 살의, 큰 키에 평범한 인상을 가진, 영국계 독일인이다. 핵전쟁과 세균전으로 인해 세상은 버려졌다. 네빌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의 모습 대신에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형체를 지녔지만, 인간의 피만을 갈구하는 흡혈귀들뿐이다. 세상은 그들로 뒤덮여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은 낮에는 활동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결국 온 세상의 낮은 네빌의 세상이다. 하지만 혼자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라는 사실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점점 그는 생을 잃어만 간다….

네빌 ㅡ. 그는 결코 전설도, 영웅도 아니다. 단지, 외로움을 아는 한 남자일 뿐이다. 남들과 똑같이 고독함을 느끼고,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했다가, 금방 좌절하기도 하고 또다시 금방 일어서기도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단지 그는 홀로 남겨졌을 뿐이다. 흡혈귀들이 활동을 하지 않는 낮 시간에만 밖으로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그들의 공격을 피해 그만의 피신처인 집에 들어 앉아 음악과 술, 담배로 적적함을 달랜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생존의 연속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네빌은 그 속에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간다. 정말 묘한 공간이지 않은가?!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공간…. 만약, 네빌이 나라면, 혹은 당신이라면?! 아마, 아니 당연히 미쳐버릴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하듯 마네킹에 말을 걸고 대화를 할지도 모를 일이고, 벽보고 이야기하다가, 결국 머릿속에서 또 다른 나와 싸우면서 서서히 지쳐갈 것이다. 네빌 역시 다르지 않다. 흡혈귀를 향해 증오를 날리면서도 결국은 그 자신에게-혹은 이제는 사라진 전 인류에- 그 증오와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 P221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에 따라 그 세상도 달라진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네빌도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선을 달리한다. 술과 담배로만 달아나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아 나서고, 다시 절망한다. 그러다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희망을 느끼지만, 곧 다시 절망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안고 온다. 바로 체념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공포에 적응하고, 더 큰 공포인 단조로움을 이해하면서 그 속에서 평화를 찾아내는 대단함을 보인다. 그렇게 그는 희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 “나는 전설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서 느꼈던-혹은 보통의 영화에서 느끼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 작품은 한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선입견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버리고, 네빌의 복잡한 생각 하나하나를 쫓아가고, 나의 생각으로 바꿔낼 수 있다면 더없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스티븐 킹을 소설로 이끌기도 하고, 현대 좀비물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는 이 작품, 『나는 전설이다』 ㅡ. 좀비, 흡혈귀 따위가 나오는 책과 영화를 왜 읽고, 보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인류의 마지막, 나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 『나는 전설이다』 에는 한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전설이다》이외에도 10편의 단편들이 함께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중심이 《나는 전설이다》이다보니 이야기가 그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라고 해서 그냥 지나칠 만한 이야기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리처드 매드슨’이 어떤 신기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궁금증은 직접 만나보고 해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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