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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일본에 형법 41조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형법 9조 ‘(형사미성년자)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가 있다. 다시 말해,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분류되어 형사책임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14세 미만의 자들에게는 행동 통제능력이 없기 때문에, 교육에 의한 가소성(개선 가능성이라고 해야 할까?!)이 있다는 점에 입각해서 그들을 보호 하기위해 존재하는 법이라고 하겠다. 그 의도는 좋지만, 세상 모든 것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그 반대로 그로인해 그 어떤 기본권도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이다. 그 문제를 『천사의 나이프』에서 다양한 각도로 파고 들어간다.
『천사의 나이프』는 커피숍을 경영하며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히야마 다카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아내 쇼쿄는 4년 전, 열세 살의 중학생 3명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들은 형사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그에 대해 큰 분노를 느낀 히야마는 매스컴을 통해 ‘그들을 직접 죽이고 싶다’는 말을 내뱉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그 셋 중 한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4년 전 그 말로 인해 자신이 용의 선상에 올라있음을 알게 된다. 히야마는 직접 그 진실들을 알아내고자 나서게 되고, 이야기는 숨 가쁘게 진행되어 간다.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에도가와 란포상」, 그것도 만장일치 수상에 빛나는 작품이라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또한, 100여권의 밀리언셀러클럽의 작품 중에서 상당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던 터라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외는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작가 ‘야쿠마루 가쿠’, 그가 쓴 첫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이 더 컸다.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무조건 힘차게만 달려가지 않고, 중간 중간에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달려 나가는 점이 노련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첫 작품이라니……. 툭 건드는 것만으로도 힘겹게만 느껴지는 많은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파고들면서, 미스터리적 요소까지 가미해 전혀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멋진 소설을(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첫 작품이다!)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그 놀라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미가 있기에 쉽게 술~술~ 읽혀나가는 듯싶기도 했지만, 어린나이에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그 반대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아직은 남아있는 그들의 개선 가능성을 봐서 교화하고 지도하는데 중점을 둬야할 것인가?! 아니면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인가?!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기는 힘든 문제이기에 혼란만 계속해서 쌓여간다.
“국가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범인을 죽이고 싶습니다.” -P55
『천사의 나이프』의 히야마가 그렇듯이, 대부분 중범죄의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가해자에 대해 상당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큰 처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가해자가 어린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더 큰 증오로 다가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히야마가 내뱉은 말은 그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으리라, 단지 히야마처럼 말을 못했을 뿐이지만……. 그런 증오심에다가, 쓸데없는 관심과 매스컴의 호기심, 그리고 가해자들의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피해자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와는 반대로 가해자의 입장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지는 못 할 것 같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과실로 인해 사람을 죽였지만 아직 어리니까 보호처분을 받는다. 보호처분과 동시에 체계적인 교육으로 인해 그는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른바 ‘갱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충분히 이상적이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갱생을 한다면 지금 이야기하는 이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설사 현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것을 진정한 갱생으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과연 피해자들도 그들이, 그 살인자가 갱생을 한 것이라, 또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까?!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이 뉘우침이 없는 무조건적인 반응에 대한 교육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늘여 놓기는 하지만, 결국에 이것들은 법적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일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숨만 늘어난다.
처음에는 분노하고 증오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쩌면 진정으로 그들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용서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 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낀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용서를 구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법적인 처벌보다도, 돈 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진심이다. 그 진심이 법 사이에, 아니 법 이전에 담겨진다면 이런 고민들조차 결국에는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어떤 범죄에 있어서 그에 따른 형벌을 부과하려면, 반드시 법에 미리 써놔야 한다. 이것을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에 권력에 의해 유린되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결국, 모든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권은, 또 지금의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묻고 싶어진다. 문제가 있으면 계속 고쳐나가고 또 다른 새로운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야 함에도 지금 국회에서는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계신지… 입법자라고 하는 것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에만 급급해 지랄들 하지 말고, 기본권적 법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형법 및 소년법규정을 재검토하고 이를 보완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지만…. 에휴 ㅡ. 말해야 뭐하나 입만, 아니 손만 아프지 ㅡ.
요즘 날이 갈수록 청소년 범죄가 많아지고, 그들의 연령대는 낮아져만 간다. 또한 그들의 나이와는 반대로 범죄의 심각함은 커져만 간다. 어디에서 부터 이런 비극이 시작되었는가. 과연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고민이지만, 무엇보다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은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 이놈의 팍팍한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른의 눈이 아닌, 아이들의 눈으로 그들을 감싸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어른, 그런 부모들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해본다.
『천사의 나이프』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을 두서없는 글로 풀어낸 것만 같아, 쓸데없이 이 책을 복잡하게만 설명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만큼 많은 생각들을 떠올려주는 즐겁고도 고마운 책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언젠가 글을 쓰게 된다면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끔 하는 책이라면 더 확실하게 이 책을 표현하는 것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