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2 1. The Singapore Story: Memoirs of Lee Kuan Yew, 류지호(전 예멘 대사) 옮김, 리콴유 자서전, 문학사상사, 1999



  밤을 새워 가며 매일 7~8권씩 읽어 치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책과 너무 멀어졌다.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날마다 잠을 자다 보니 몸과 마음이 적응되지 않았는지 며칠 전 한밤중에 문득 잠에서 깼다. 늘 쫓기듯 살면서 최근 몇 년간은 평일에 몸을 제대로 누인 기억이 별로 없다. 쪽잠으로 방전을 가까스로 막으며 이틀에 한 번 꼴로 겨우 서너 시간만 자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날 밤 자꾸만 맑아지는 정신의 한쪽에서 나를 있는 대로 소진하여 이제는 거의 상실할 지경에 가까웠다는 느낌이 강하게 올라왔다. 그나마도 구석구석 나를 이루고 있던 책이 이제는 삶에서 남김없이 떨어져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책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달라지게 된 것은 22년 전 독서수첩을 작성하면서부터였다. 책을 뗄 때마다 수첩에, 온라인 노트에, 엑셀 파일에 기록했다. 그러다가 단행본보다는 논문 등 다른 목적과 형식으로 쓰인 글을 주로 읽게 되면서, 또 읽기보다는 주로 말을 짓고 쏟아내야 하게 되면서, 10년 이상 지켜 온 습관은 튼튼하게 유지되지 못했고, 그렇게 된 데에는 정리에 대한 부담도 약간은 작용했던 것 같다.


  ...


  얼마나 풍부하게 이해하면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밥을 같이 먹고 나서 설거지하는 틈틈이 곁눈질로 보았더니 아이가 혼자 책을 붙잡고 읽어 내려가 끝내 다 읽어 낸다. 언젠가 '마음속으로 책 읽는 소리가 울리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깨쳤는지 기특하다['묵독'에 관하여 썼던, "아이와 함께 책 읽기" (2020. 7. 3.)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826305]. 뒤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부록이 있기에 같이 마저 읽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디선가 들어봤다며 어떤 이야기인지를 묻는다. 이때다 싶어, 사이가 안 좋은 몬태규가와 캐플릿가의 아들딸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는데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결혼했어?"[지난 주 내내 아이와 시간을 보냈더니, 아빠는 오렌지 주스보다 파인애플 주스를 더 좋아하는 것 등 저와 취향이 비슷하니 자기와 결혼하자고 한 터였다] "아니, 이 이야기는 비극이라고도 하는데, 슬프게 끝나." "비극이 뭔데?" ... 그래서 줄리엣이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는데, 로미오가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아이도 이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고 나란히 앉아 각자 뭔가를 읽을 수 있게도 되었겠다, 나도 새해를 맞아 마음을 다잡고 담백하고 치열한 독서 생활을 재개해 보려 한다. 역시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해야 조금이라도 더 짜낼 수 있는 것 같다. 훗날 '제3 독서기'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리콴유 자서전』을 추천받은 것은 24년 전쯤이다. 여러 정치인들이 추천사에 쓴 것처럼 사실은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는 책인데, 전에는 의미를 찾으며 읽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아래는 '재미있다'는 취지의 추천사만 일부 발췌하여 옮겼는데, 원문을 찾아 보니 의미가 다소 다른 부분도 있다(번역문 바로 뒤 괄호 안에 원문을 달았다).


 이 책은 누가 읽든 분명히 즐거운 경험이 되리라고 확신한다(I am sure everyone who reads them will enjoy them immensely). - Tony Blair (1997~2007 영국 총리)


  『리콴유 자서전』은 현대사에 관한 독보적인 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부터 끝낼 때까지 나는 도저히 이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처럼 한 인물과 국가에 대한 뛰어난 저서는 본 적이 없다(As a current history, The Singapore Story is without equal... It was impossible to put the book down. It is a commanding story of a man and a country.). - John Malcolm Fraser (1975~1983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그가 총리 [재임 시] 만났던 영국과 미국의 고위 인사들, 예를 들어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특히 공산 중국과의 첫 번째 접촉에 [관한] 그의 기술은 손에서 책을 뗄 수 없게 만든다(His judgments of those in high places with whom he had to deal during his long period in office, in particular with British Prime Ministers and American Presidents, are fascinating. Equally so, is his account of his first contacts with China.). - Edward Heath (1970~1974 영국 총리)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위대한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인 리콴유 전 총리가 아주 흥미진진한 책을 써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이 회고록은 누구나 모두 즐길 수 있을 만한 저서이다(Lee Kuan Yew, one of the Pacific Basin's great statesmen, has written a challenging and fascinating memoir. Great reading for both proponents and those in disagreement.). - Gerald Rudolph Ford Jr. (1974~1977 미국 제38대 대통령)


  자서전이라는 제목도 틀린 번역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개인적 삶에 관한 서술은 앞쪽에 조금 나오고 결국은 원제 그대로 1965. 8. 9. 싱가포르의 분리독립[건국(?)] 과정을 다룬 책이다. 『싱가포르 이야기: 리콴유 회고록』이라고 옮기는 편이 더 직접적이고 정확했겠다. 책은 절판되어 2024. 1. 3. 현재 알라딘에서는 중고책 9권이 최저가 29,000원, 최고가 65,000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나는 언제, 어디서 사두었는지 다행히 1999. 12. 15.에 나온 초판 4쇄를 가지고 있었다(알라딘에는 구입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2002년~2011년경에 사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초판 1쇄는 1999. 10. 18.에 발행되었고, 찾아보니 초판 6쇄가 2005. 12. 28.에 나왔다고 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간 간격상 6쇄가 마지막 쇄 아니었을까 싶다.


  책은 서두에서 독립선언 당일을 다루고 나서는 대체로 시간 순, 사건 순으로 쓰여 있고, 저자가 그 뒷이야기와 자신의 감상을 생생하게 덧붙이고 있다. 전 영국 재무장관 Denis Healey는 '정치인들이 지혜와 정보를 캘 수 있는 광산'이라고도 표현했는데(아래에서 보듯 번역과 원문에 차이가 있다), 이렇게 자세하고 솔직하게 써도 되나 싶은 대목이 없지 않았다. 저자 자신의 서문에도 "혹시 무심코 쓴 글이 말레이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해", "이 회고록으로 말레이시아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말레이시아와 관련된 부분을 여러 사람에게 미리 보여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자서전은 [전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값진 지혜와 정보를 제공하는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The memoirs provide a mine of wisdom and information which politicians would be wise to quarry). - Denis Healey (1974~1979 영국 재무장관)


  얼마 전 타계한 헨리 키신저도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역시 번역과 원문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예컨대 '아시아의 급성장' 이야기는 원문에는 없다).


  리콴유 전 총리는 아시아의 급성장에 있어서 핵심적 인물이며, 이 책은 그가 이뤄 낸 치적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자서전에 담긴 그의 수많은 정치적 결단과 이를 뒷받침했던 동기에는 다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Lee Kuan Yew is one of the seminal figures of Asia, and this book does justice to his extraordinary accomplishments. Describing the motivations and concepts that have animated his conduct and explaining specific actions, he will undoubtedly raise many controversies. But whether one agrees or not, one will learn a great deal.). - Henry Kissinger (1973~1977 미국 국무장관)


  번역을 결단하신 것도 대단하고, 작업이 상당히 고되셨을 것으로 넉넉히 짐작되지만, 한국일보 기자, 서울신문 논설위원까지 지내셨던 류지호 전 대사께서는 띄어 써야 하는 낱말과 붙여 써야 하는 접사(接辭)를 잘 구별하지 않고 계신다. 문학사상사도 교정을 꼼꼼히 거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읽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우리 띄어쓰기 규범의 일관성이 떨어지기도 하거니와, 나의 띄어쓰기 취향도 시기에 따라 여러 변화를 겪었다[이를테면, Sarah Worthington의 『형평법(Equity)』 등을 옮기신 임동진 님은 상당히 급진적인 '붙여쓰기'를 주창하고 계신다]. 뒤늦게 규범에 어긋나게 쓰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도 많다. 아무튼 재출간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금의 규범 표기를 기준으로 한 오타를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5176846 에 차차 모아두려 한다. 이미 상당히 많이 골라 두었는데 언뜻언뜻 눈에 띄는 것만 메모해 둔 것이라, 그래도 모르고 지나친 부분이 아주 많을 것이다.


  류지호 전 대사께서는 이 책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From Third World to First - The Singapore Story: 1965-2000』까지 옮기셨고, 예멘 통일에 관한 책도 내셨다('유지호'로 표기한 매체가 다수 있다).



  "예멘 통일의 시사점", 외교 제109호(2014. 4.)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1504986


  "뉴스Y '대한민국 외교비사', 예멘 통일 조명", 연합뉴스(2012. 7. 13.) https://www.yna.co.kr/view/AKR20120713064600005


  "前북예멘대사 유지호씨 ‘예멘의 남북통일’ 출간", 문화일보(1997. 12. 10.)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121035000101


  여러 감상이 들지만 자제하고, '밑줄긋기'에 책의 주요 내용을 갈무리해 둔다.


덧)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영상인데, 1965. 8. 9. 오전 10시 싱가포르가 원하지 않게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한 직후, 당일 오전 기자회견 도중 리콴유 총리가 감정에 복받쳐 눈물 흘리는 장면이 책 28쪽에 나온다(오후 6시 녹화방송).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The News Gallery beyond Headlines 전시 등에도 좀 더 긴 영상과 관련 전시물이 있었다.


https://youtu.be/UET6V4YnAwc
https://youtu.be/Idd8BK0MamA

https://www.nas.gov.sg/archivesonline/lky100_1

https://www.channelnewsasia.com/interactives/lee-kuan-yew-quotes-100th-anniversary-his-own-words-3766806


아내이자 동지인 추에게 - P24

국민들의 자유와 독립을 존중하는 나,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1965년 8월 9일 오늘을 기해 싱가포르가 자유와 정의, 국민의 안녕과 행복, 평등을 지향하는 독립된 민주국가가 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합니다. - P25

우리는 광범위한 연대투쟁을 펼쳐 콸라룸푸르의 집권 동맹당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말리이인의 말레이시아‘가 아닌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란 대명제를 관철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P29

그러나 일단 나는 그날 하루가 별 사고 없이 지나간 데 안도하며 감사하게 여겼다. 나는 자정이 훨씬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겨우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지만, 앞날이 걱정되어 자주 깨곤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왜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이르게 되었을까?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내가 기울여 온 모든 노력의 최종 결과란 말인가? 싱가포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그 후 40년이란 세월을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보내게 된다. - P33

자기들만 살아 보겠다고 도망치는 데만 여념이 없었던 백인을 보면서 아시아인은 백인이 이기적이며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백인에 비해 오히려 더욱 침착한 이들은 아시아인들이었다. 아시아인은 영국인에게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영국인이 안겨 준 것은 실망과 배신뿐이었다.

영국인은 자신들의 우월성에 대한 신화를 너무도 설득력 있게 구축해 놓았다. 그래서 그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아시아인의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 아시아 민족이 과감하게 떨쳐 일어나 그러한 허상을 깨부순 것이었다. - P66

일본군은 이러한 학살에 대해, 점령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저항 움직임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학살은 [전쟁 중]에 일어난 게 아니라, 싱가포르가 완전히 항복한 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일본군이 보복심리로 자행한 만행이었다.

2월 18일부터 22일까지의 대학살이 끝난 뒤에도 변두리 지역, 특히 동부 싱가포르에서는 반일분자 색출 작업이 계속되었고, 중국인 수백 명이 더 처형되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나중에 저항군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는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 P71

3년 반 동안의 일본군 점령 시절은 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나는 그 시절 동안 인간이라는 존재의 행동 양식과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 인간의 욕구와 충동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정부의 절대적 필요성 그리고 권력이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내가 만약 점령 시절을 겪지 못했더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87

일본군의 유일한 통치수단은 공포였다. 그들에게는 문민통치를 하겠다는 그 어떤 허위의식도 없었다. 형벌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범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 곤봉 하나만 들고 순찰을 다녀도 당국에 신고할 만한 범죄를 별로 적발하지 못했다. 처벌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 P88

식민화의 마지막 단계는, 일본인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과 지배권을 현지인들이 자연의 섭리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에] 좀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이는 아마 성공했을 것이었다.

도덕성과 평등의 개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바로 그들이 우리의 상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의 [행동 양식]을 [흉내 내게] 될 것이었다. - P91

(계속) 그러나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꺾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았다. 중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일본에게 차례대로 지배당한 바 있는 대만은 이민족 상전들에게 별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또한 만약 일본이 싱가포르와 말라야를 계속 지배했다면 아마 50년 안에 그들은 대만에서 했던 것처럼 식민화에 성공했을 것이다. - P91

(림 킴산, 리 콴유에게) 나는 헌병대에 끌려가 있는 동안 일본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똑똑히 봤습니다. 그들의 정중함과 예의바른 태도는 껍데기일 뿐이고 그 밑에는 추악한 야수가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연합군의 승리로 온 아시아가 구원받은 겁니다. - P96

나는 내가 만다린어뿐만 아니라 하카어, 호키엔어, 말레이어에 능통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득표를 위한 허세였다. 나와 친한 몇몇 중국인 기자는 내가 모국어인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조언[했]다. - P206

그런데 알고 보니 그때까지 상대편을 지탱해 왔던 것은 혁명에 대한 열정 하나가 전부였다. 결국 그들도 먹고 살아야 했고 딸린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그리고 가족들은 돈과 집 그리고 의료 혜택을 필요로 했으며,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서 발견한 한 가지 특징은-중국인 학생운동권이 그러했듯이-공산주의를 포기했을 때 흔히 대부분은 허송세월을 한 자신들의 지난날을 벌충하기 위해 극도로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네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황금기를 놓쳐 버려 이제 잃어버린 시간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가진 듯이 정신없이 축재(蓄財)에 몰두했다. - P284

(계속) 나는 나중에 중국과 베트남에서 또다시 그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산혁명이 지상낙원을 건설해 주지 못하고 경제가 다시 자유시장 체제로 돌아섰을 때, 공시가격으로 재화와 용역을 얻을 수 있고 면허증을 발급할 권한을 가진 간부들이 제일 먼저 부패의 늪에 빠져 들었고 민중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 P284

영국 정부는 현지인 관리든 파견 관리든 간에 영국 정부가 임명한 모든 공직자들의 연금이 싱가포르 통화의 잠재적 평가절하에 영향받지 않기를 원했다. (...) 하지만 역설적으로 평가절하가 된 것은 오히려 영국 통화인 파운드였다. 파운드화는 1995년 무렵 2.20 싱가포르 달러로 그 가치가 떨어졌는데, 이는 1958년 당시보다 가치가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영국 통화로 연금을 받길 원했던 관리들은 운이 없었다. 하기야 싱가포르가 다른 신생 독립국들과 반대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당시 그들이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 P316

우리는 한편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이 퇴보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이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다.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았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남성과 동일한 지위와 혜택을 누려야 마땅했다. - P361

왜 말라야가 싱가포르[에]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시장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바로 고무와 주석을 대량 생산하는, 말라야라는 든든한 배후지이다. 말라야가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가 있는 것이다. 말라얄는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싱가포르의 존립은 불가능하다. 합병을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의 두 정부가 통일되지 않고 두 경제가 통합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경제적 입지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악화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생활도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두 정부의 노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연방은 싱가포르와 협력하는 대신 막대한 산업 자본을 가지고 우리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은 양측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 줄 것이다. - P437

우리는 우리의 영토, 이상, 생활 양식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강대국 진영[ 간]의 어떠한 분쟁에서도 중립을 지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사안에까지 중립적일 수는 없었다.

항상 주위를 관찰하고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국제적으로 무슨 일이 왜 일어나는지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이해해야지만 우리의 앞날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과 같은 대국도 그러한데 우리 싱가포르와 같은 약소국이 그런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었다. - P502

말레이시아 출범일이 다가오자 화교 상공회의소는 일본군의 전시 잔혹행위에 대한 보상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본에 촉구하라며 내게 압력을 가했다. 그들은 합병으로 인해 외교권한이 연방정부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길 희망했다. 연방정부는 대부분이 말레이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대체로 중국인에게만 자행된 일본의 잔혹행위에 대해 연방정부가 큰 분노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도 이를 눈치채고 시간만 지연시키고 있었다. - P540

나는 탈식민지화 과정을 통해 식민 종주국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신생국들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정부와 단결된 사회가 필수적임을 절감했다. 종주국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지도자가 소수민족 부족장들과 같은 기존 사회의 권력 집단과 협력하여 국가통합을 모색하지 않으면 그 국가는 얼마 못 가 분열되고 말았다. 그리 유능하지 못한 정부가 섣불리 사회주의 이론을 도입하여 부의 재분배 정책을 펴면 그나마 종주국의 통치하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식민사회는 대개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였다. - P584

나는 음악은 국가 건립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하고 싶다. - P617

나는 사무실 창문으로 바닷가에 있는 [에스플러네이드] 광장에 소 떼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두 차례의 폭동 이후 도심에는 더 많은 쓰레기가 쌓이고 개, 파리, 모기, 소, 염소, 거지 등이 넘쳐 났다. 싱가포르 종합병원이 있는 광장마저도 불결해졌다. - P625

우리가 말하는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는 어느 특정 공동체나 민족의 복지, 번영, 그리고 지배권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다.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의 말레이시아, 중국인의 말레이시아, 인도인의 말레이시아 또는 카다잔인의 말레이시아 등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다양한 공동체들의 이해관계는 모든 민족의 권리, 이익, 책임이라는 전제하에 보호되고 증진되어야 한다.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야말로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라는 대명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 P654

그러나 내 남은 생을 다 바쳐 일한 결과, 우리 싱가포르가 단지 이름뿐인 나라가 될지, 아니면 번영하는 나라가 될지는 당시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 P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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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시각에서 바라본 미국
토미 코.달지트 싱 지음, 안영집 옮김 / 박영스토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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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이야기는 아니고 싱가포르 학자들이 쓴 ˝미국˝ 개론.

책은 무척 좋고 재미있다.

책을 낸 ˝박영스토리는 박영사와 함께 하는 브랜드˝라고 하는데, 의외로 편집을 거의 신경쓰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제18대 주싱가포르 대사인 안영집 대사께서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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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Singapore Story: Memoirs of Lee Kuan Yew이다.

별 생각 없이 재미있게만 읽다가 오타가 자꾸 보이고 언젠가 다시 출간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모아 둔다. 아래에 열거한 것 말고도 많지만, 책을 읽기 시작한 중반부터 메모하기 시작하였고 언뜻언뜻 눈에 띄는 것만 메모해 둔 것이라, 모르고 지나친 부분이 아주 많을 것이다. PDF 파일이 있었다면 검색하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162쪽: 재판이언론에 → 재판이 언론에
163, 164쪽: 반대심문 ‭→ 반대신문
164쪽: 검찰측 → 검찰 측

-------------------- (2024. 1. 3. 추가) --------------------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5195448 에도 썼지만, 한국일보 기자, 서울신문 논설위원까지 지내셨던 류지호 전 대사께서는 띄어 써야 하는 낱말과 붙여 써야 하는 접사(接辭)를 잘 구별하지 않고 계신다.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쓰신 부분도 많다. 얼마간은 우리 띄어쓰기 규범의 비일관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지켜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15, 382, 676, 699, 708쪽 외 다수: 그 다음(으로, 에는, 부터는...)  그다음(으로, 에는, 부터는...)
504쪽: 그 다음해 → 그다음 해, 656쪽: 다음해  다음 해
683쪽: 다음달  다음 달
666쪽: 그 다음주  그다음 주

* 옮긴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다음해"와 "다음주"를 오히려 붙여 쓰셨는데(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다음'이야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로서, 한 단어로 굳어진 합성어이기 때문에 붙여 쓴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답변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39905 등 참조. 이 책을 떠나서도 표기상 혼선이 극심한 부분이다. 326쪽 등에서 '그날'은 맞게 붙여 쓰셨다.


326, 364, 416, 419, 438, 515, 522, 532, 553, 718쪽 외 다수: 그 중(에서, 의)  그중(에서, 의)


* 그러나 보니 옮긴이는 "그 중"이라고 띄어 쓰셨는데, '그중'도 '그다음'처럼 합성어이므로 붙여 써야 올바르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답변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59825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qna_seq=265053 등 참조. 아래에 쓴 것처럼 의존명사로 쓰인 경우와 구별하여야 한다.


543쪽: 그 달 초  그달 초


* '그달'도 마찬가지이다.


370, 523쪽: 그 동안  그동안


* '그동안'조차 "그 동안"으로 띄어 쓰시고 말았다. 그런데 370쪽의 '그때'는 맞게 붙여 쓰셨다.



682쪽: 그밖에  그 밖에, 683쪽: 그밖의  그 밖의


* 이상하게도 "그밖에", "그밖의"만은 붙여 쓰셨는데, 여기서는 띄어 써야 바르다. '그 사람뿐'이라는 뜻으로 쓸 때만 '그밖에 (없다)' 식으로 붙여 쓴다.


357쪽: 있는 가를  있는가를

* 여기서는 'ㄴ가'가 종결어미인데, "가"를 의존명사로 잘못 생각하신 것 같다.

368, 586쪽: 연방내에(서)  연방 내에(서)
432쪽: 6개월내에  6개월 내에
565쪽: 2, 3년내에, 1년내에  2, 3년 내에, 1년 내에
618쪽: 제도권내의  제도권 내의
626쪽: 시일내에  시일 내에
631쪽(두 번), 660쪽: 연방내의  연방 내의
633쪽: 영향권내에서  영향권 내에서
666쪽: 사회내에서  사회 내에

* 여기서 '내'는 '봄내', '마침내' 등에 쓰이는 접미사가 아니고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바르다. 한글 맞춤법(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7-12호(2017. 3. 28.) 제5장 제2절 제42항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참조.

598, 610, 611, 623, 624, 630, 632, 652, 676, 677, 680쪽 외 다수: 민족간(의)  민족 간(의)
502쪽: 진영간  진영 간, 623쪽: 쌍방간  쌍방 간, 678쪽 수뇌간  수뇌 간
(반면 683쪽 "말레이시아와 중국 간의"는 맞게 쓰셨다)

516쪽: 4개월만에  4개월 만에,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답변 https://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58171 참조.

507쪽: 방문시  방문 시, 619쪽: 가입시  가입 시, 688쪽: 평화시  평화시, 727쪽: 재임시  재임 시

71쪽: 전쟁중  전쟁 중, 435쪽: 수감중  수감 중, 578쪽: 외유중  외유 중, 652쪽: 연설중  연설 중, 655쪽: 순방중  순방 중, 677쪽: 대화중  대화 중, 679쪽: 방문중  방문 중, 718쪽: 체류중  체류 중

326쪽: 야당측  야당 측, 610쪽: 툰쿠측  툰쿠 측, 629, 722쪽: 영국측  영국 측

* ('관계'를 나타낼 때의) '간',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만', '시', '중', '측'도 의존명사이고, 다만, '남매간', '모녀간', '모자간', '부녀간', '부부간', '부자간', '형제간' // '비상시', '유사시'(638쪽), '평상시'(702쪽), '필요시' // '밤중', '병중', '부재중'(679쪽), '오밤중', '은연중', '한밤중' 등과 같이 한 단어(합성어)로 인정되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는 붙여 쓴다. 즉,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다음 글에도 잘 정리되어 있다. 한지형, "[조사심의관 코너] 각조. 각항. 각호 vs. 각 목", 법원사람들 (2020. 8. 6.) https://www.scourt.go.kr/portal/gongbo/PeoplePopupView.work?gubun=24&seqNum=2570

618, 691쪽: 40분 간  40분간, 636쪽(두 번): 20분 간  20분간, 643쪽: 75분 간  75분간, 663쪽: 30분 간  30분간 등 다수

그러나 '동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간'은 붙여 써야 함에도 거꾸로 띄어 쓰셨다. 헷갈리시면 누군가에게 물어서라도 확인하셨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414쪽: 판단 하에  판단하
630쪽: 민족공동체 별로  민족공동체별로
702쪽: 4시 쯤 → 4시쯤

* '-별', '-쯤', '-하'는 접미사이다.

284쪽: 싶어했다.  싶어 했다.
570쪽: 전세내  전세 내(어)
721쪽: 젊은날  젊은 날

316쪽: 파운드 화(貨)   파운드화
584쪽: 맞이 하였다.  맞이하였다.
697쪽: 소탕 당했을 것입니다.  소탕당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합성어처럼 만들어 쓰시는가 하면 한 단어를 이상하게 분리하신 경우도 있다. 또한, 87쪽에는 "행동 양식", 91쪽에는 "행동양식"이라고 쓰셨는데, 어느 쪽도 가능하겠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전반적으로 띄어쓰기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런 식으로 통일되지 않은 표현이 없지 않다.

* 422, 438, 551, 699쪽 등 여러 곳에 공백이 잘못해서 두 번 이상씩 들어간 곳이 있다. 688쪽: 군대 통솔에 서  군대 통솔에서

380, 435쪽: 치루었다  치르었다(치렀다).

* 잘못 쓰는 사람이 많은데, 볼 때마다 痔漏/痔瘻가 생각난다.

578쪽: 방분지  방문지
612쪽: 더우기  더욱이 (예전에는 "더우기"라고 쓰기도 했으나, 한글 맞춤법 제4장 제3절 제25항에 따라 "더욱이"로만 쓴다.)


637쪽: 체재  체제 (앞뒤 맥락상)

641쪽: 케이스 홀리요크(Keith Holyoake)총리  케이스 홀리요크(Keith Holyoake) 총리

 

* 끝으로, 조사 사용이 어색한 부분이 있고(91쪽 "그러나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또는 "그러나 예외인 경우도 있었다.", '에게'/'에'의 구별 등)연설문이나 편지글 등을 인용할 때 모두 반말로 옮기셨는데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따라 존댓말로 옮기시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을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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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알게 된 영상인데, 1965. 8. 9. 오전 10시 싱가포르가 원하지 않게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한 직후, 당일 오전 기자회견 도중 리콴유 총리가 감정에 복받쳐 눈물 흘리는 장면이 책 28쪽에 나온다(오후 6시 녹화방송).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The News Gallery beyond Headlines 전시 등에도 좀 더 긴 영상과 관련 전시물이 있었다.

https://youtu.be/UET6V4YnAwc

https://www.nas.gov.sg/archivesonline/lky100_1

https://www.channelnewsasia.com/interactives/lee-kuan-yew-quotes-100th-anniversary-his-own-words-3766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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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4-01-03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4. 1. 3. 수정함
 


  아주 인상 깊다거나 새롭지는 않고... 그저 읽었다.


  우리도 여러 방면에서 허브 국가가 되려는 구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시스템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비효율을 겪는 사이, 아래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에서도 보는 것처럼 경쟁의 승자는 싱가포르로 굳어지는 것 같다. 경쟁력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고...


https://www.economist.com/asia/2023/05/11/a-winner-has-emerged-in-the-old-rivalry-between-singapore-and-hong-kong




  세계가 STEM에 집중하고 인도 수재들이 공과대학으로 몰리는 동안, 우리 대학들에는 의과대학만 남게 생겼고, 그마저 2028년 수학능력시험부터는 수학 시험 범위를 더 줄였다고 한다. 포퓰리즘이다. 범위를 줄일수록 계급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야근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고, 어차피 대부분 영역이 쪼그라들어 곧 소멸하게 생겼는데, 국가와 관료들은 이제 교육에서 손을 떼고 각급 학교와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성장할 수 있게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https://www.economist.com/graphic-detail/2023/10/04/productivity-has-grown-faster-in-western-europe-than-in-america



  책 얘기로 돌아와서...


  1978년 11월 덩샤오핑의 싱가포르 방문을 전후해 싱가포르가 중국의 개방,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리는 [...] 공산국가인 중국이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리의 기여도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과소평가 역시 곤란하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중국인들이 일구어낸 성공 스토리의 모델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1978년 당시 그러한 모델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싱가포르였다. 덩이 주목했던 것은 스칸디나비아가 아니라 아시아였고, 그리고 그 주인공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 그것도 승리를 거둔 중국인이었다. (88, 89쪽)


  쑤저우 공단을 건설할 때 싱가포르의 협력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기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싱가포르가 보증을 서준 셈이군요?" [...]

  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중국에 신용을 선물한 거죠. [...]" (95쪽)


  최도식 기자, "[차이나이코노미] 중국-싱가포르 경제협력 ①쑤저우공업단지", WORLDTODAY (2022. 4. 17.) https://www.iworld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408300 도 참조.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이것이다. 리콴유의 바람과 달리 중국이 저러고는 있지만 과학기술 등에서만큼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압도하게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인도가 미국의 역할을 맡게 된다고?


  "누가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우선 일본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일본이 미국과 손을 잡아야 경제적, 물리적, 군사적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향후 100~200년 사이에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누가 미국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인도가 될 것입니다." (148, 149쪽)


  그리고 책에서 이 부분은 뭔가 이상하다. 인도가 이슬람을 대표하는 나라라고??? 오역인가 싶어 원문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찾지 못하였다. 아무튼 싱가포르에 사는 말레이인들은 싱가포르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참으로 많은 이슬람 사람들이 살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인구가 살고 있는 나라이다. 놀랍게도 이슬람을 대표하는 나라라고 생각되는 인도가 두 번째이고, 그리고 그 인근에 위치한 파키스탄이 뒤를 잇고 있다. (164, 165쪽)


  원작은 2010년에 나왔는데, 싱가포르에서 출생률 저하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이민정책을 실시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156쪽 이하). 우리에게도 닥친 현실이다. 유대 사회와 가톨릭 성직자들을 비교하기도 한다.




  글을 쓴 톰 플레이트(Tom Plate) 전 LA타임스 논설실장은 반기문 전 총장 등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다.


"서구 국가들은 내가 그들의 평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싱가포르 국민들의 평가입니다." - P44

"그러면 가까운 관계를 맺었던 미국 대통령들 중 최악의 인물을 꼽는다면요?"
"카터입니다. 그는 신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대통령 별장에서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미국인들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 리더란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자리이지, 자신의 복잡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카터의 그 연설은 미국인들을 낙담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 P122

"[싱가포르는] 정치적인 논리로 인물을 등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선거운동 기간 도움을 준 사람들을 먼저 등용하고자 합니다.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거죠. 하지만 차별화된 인재를 발탁하고자 한다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통해 사람을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 P129

"대통령중심제에서는 텔레비전 속 리더의 이미지가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반면 의원내각제에서 총리 후보는 오랫동안 의회와 정부에서 활동하면서 점차적으로 정치적 기반을 닦아온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을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진실성을 담고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P129

도덕적, 종교적 차원에서 다수결 민주주의 시스템의 가치를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민주주의 세금‘을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P151

우드로 윌슨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공부할 무렵 당시 동료들은 이상적인 공공정책을 상상하는 게 살벌한 정치 분야에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것이라는 의견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 P273

"나는 불가지론자입니다. 다윈주의를 믿을 뿐이죠." - P279

수십 년 전 동남아시아 사람들 모두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뜨거운 열기에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때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모든 관공서에 보란 듯 에어컨을 설치했다. [...] 그리고 그건 대단히 현명한 결정이었다. 에어컨이 돌아가면서 공무원들은 더 오래 남아서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일반 가정집에는 에어컨 보급이 거의 전무했다. 덕분에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특권적인 시원함을 만끽하면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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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감시국가, 중국 - 디지털기술과 선택 설계로 만든 ‘멋진 신세계’
가지타니 가이.다카구치 고타 지음, 박성민 옮김 / 눌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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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무엇을 말할 것인지 끝내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 책을 마무리해버렸다는 생각...

그러나 국내에도 나오면 좋을 책이니,

옮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전에는 블록체인 같은 데이터 분산처리 구조가 대기업 금융기관이나 정부 등에 집중된 정보처리 권력이나 권한을 분산화해 시스템을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구조라고 여겼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는 데이터 처리의 분산화나 시스템의 민주화 그 자체만으로는 정치권력의 분산화나 민주화를 반드시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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