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제이미 제파 지음, 도솔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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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것도 자신만의 본성을 갖고 다른 것으로부터 독립해 있지 않다. 분리되고, 영원하고, 고유한 자아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환상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자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아는 육체나 마음이 아니며, 조건과 상황이 합쳐진 결과다. 죽는 순간 그 조건은 사라지고, 오직 현재의 삶이 만든 카르마만 남아 다음 생의 상황을 결정한다. (38)

나는 이렇듯 독립적인 탐구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 또한 목사나 교회, 신을 거치지 않고 오직 마음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불교에는 악마나 외부의 어두운 세력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 있을 뿐이며,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해 선택한 방법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38)

하지만 차마 돌아가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이 일에 신이 개입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남들의 비난과 책임에서 면제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집에서 급한 전보가 날아오거나 로버트가 당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끝장이라는 최후 통첩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는 심각하지만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은 병에 걸린다면, 알약 몇 개만 먹고 토론토 종합 병원에 누워 있으면 쉽게 낫는 그런 병에 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87)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쓰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었다. 밤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레슬리가 두려움 없이 낯선 마을의 모르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 어떻게 그녀가 사람들과 주저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는가를 떠올렸다. 그들 언어의 다섯 단어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나라면 그곳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기는커녕 들어갈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다. 또한 카운터 뒤의 여자에게 말을 붙여 보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42)

사숍 어에선 `버리다`와 `잃어버리다`가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 것이 생각났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필요하다`와 `원하다`라는 말을 구별해서 쓰지 않았다. 당신이 어떤 것을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고, 당신이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165)

그날 밤, 나는 책상에 앉아 로버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도착하는 것과 들어가는 것의 차이를 나는 말했다. 도착은 물리적인 것으로 갑자기 일어난다. 기차가 도착하고, 비행기가 착륙하고, 우리는 모든 짐을 갖고 택시에서 내린다. 우리는 어떤 장소에 도착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대충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을 몇 장 찍고, 간단히 메모를 하고, 집으로 엽서를 부친다. 그런 식으로 여행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결코 집을 떠난 것이 아니다. 장소와 하나가 되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조금씩 그 세계로 건너간다. 우리는 절망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넘어갈 수 있을까 의심한다. 그것은 여러 주에 걸쳐 서서히 깨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눈을 뜨고 마침내 그곳에 있게 된다. 진정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제 막 알기 시작한다. (168)

만일 그런 광고 대신에 25년 동안 산들의 무거운 침묵을 느끼고, 강의 끊임없는 손짓에 이끌리고, 검은 바위에 쏟아지는 하얗고 강렬한 햇빛을 받았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새 한 마리가 높고 낮은 소리로 지저귀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말했다.
"이곳에서 쉬었다 가요." (181)

하늘에는 여태까지 본 구름 중에서 가장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에 부탄을 무언가 부족한 곳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봐 염려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제 아이들은 시든 사과 일곱 개를 내게 가져다 주었다. 지난해 수확한 사과 중에서 남은 것이 분명했다. 거무스름한 껍질 밑에 있는 노란 속살은 말할 수 없이 달았다. 캐나다에서라면 그 사과를 내던지고 당장 과일 가게로 달려가 흠 없는 새 사과를 샀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맛을 낸 사과를. (221)

나는 모든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길 좋아했다. 카레에 들어 있는 치즈는 병원 뒤 첫번째 집에서 키우는 암소로부터 온 것이었다. 바나나 잎사귀로 싸서 마른 덩굴로 묶어 놓은 그 치즈는 신선하고, 따뜻했다. 내가 신고 있는 새 고무 샌들은 상게이 초덴의 어머니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귀에 염증이 생긴 생기에의 젖먹이 동생을 위해 내가 그 어머니에게 준 물약에 대한 보답이었다. 주방에 있는 완두콩 자루는 소남 체링이 준 것이었다. ... 완두콩이 썩어갈 때까지 나는 그것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완두콩을 발견하고 그것을 모두 내다 버리려고 하다가 소남의 오두막과 집 뒤의 초라한 채소밭이 생각났다. 나는 완두콩을 골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짓무른 콩들 속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고르면서 나의 지나친 결벽증을 치유할 수 있는 불교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죽어서 온갖 불쾌한 모습으로 썩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222)

기운 내요. 이곳에서 단순하다는 말은 칭찬이에요. 성격이 좋다는 뜻이거든요. 내 아이들은 나한테 엄청나게 뚱뚱하고 촌스럽다고 말했어요. 나중에야 촌스럽다는 말이 편안한 성격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어요. 촌스러운 사람들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들이에요. 이해하겠어요? (261)

부탄에는 이웃에게 문을 닫아 걸고 자신만의 작고 고립된 세계에서 살거나, 서로 지나치면서 형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사실 서양에서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하는 사생활이 이곳에서 유지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부탄에는 마을과 마을, 그리고 마을과 가장 가까운 병원, 무선 전신국, 가게 사이에 거대한 산들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웃에게 의지해야 했다. (275)

"이제 넌 세상을 떠났다. 보다시피 너의 모든 물건들은 사라졌다. 우린 네가 이곳에 남아 있기를 원치 않는다. 어서 떠나라."
내가 초덴에게 말했다,
"너무 냉정한 말이야."
그녀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녜요, 교수님. 우린 그렇게 말해야만 해요. 만일 우리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 준다면 그의 영혼은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계속 여기 머물러 있을 거예요.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아야 해요." (390)

"하지만 교수님, 사람들의 말처럼 내가 수백만 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면, 난 이미 얼마나 많은 행복을 느꼈을까요? 얼마나 많이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나의 모든 목표를 이루었을까요? 얼마나 많이 고통받고 죽었을까요? 그렇다면 난 지금쯤 모든 걸 경험했음이 틀림없는데 난 아직도 여기 있어요. 따라서 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난 피곤해요. 교수님, 이 삶이 정말 지겨워요. 난 수도승이 되어서, 동굴로 들어가 이 모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거예요." (392)

나는 잠깐씩 캐나다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당분간` 그렇게 하고 나서, 그것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 것인지 지켜보는 것이 부탄 사람들의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462)

1996년 11월 어느 오후, 나는 친구 데첸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상다리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는 내 모습을 할아버지가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서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따뜻하고 짭짤한 버터 차를 마시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을 할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너무나 특별한 느낌이어서 나중에 남동생 제이슨이 내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가 그날 밤 잠을 주무시던 도중에 돌아가셨다고 말했을 때, 난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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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에서 리네아의 이야기 1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 미래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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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같은 취미-그림 감상-를 즐기고 둘이 함께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할아버지라니, 손녀가 복이 많다. 모네의 가정사는 얼핏 들은바 있지만, 자식들에게 이렇게 모진 줄은 몰랐다. 자기도 부모 반대 무릅쓰고 화가가 되었으면서, 딸이 화가가 못 되게 한 건 무슨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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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길드로잉 - 일상과 여행을 기록하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
이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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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할 때 어린아이의 눈과 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예술의 천재. 그 어린아이성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데 길드로잉이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워터브러쉬, 유성색연필, 수채색연필의 존재를 처음 알다! 이제 서서히 2015년 여행에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그림으로 갈무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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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
황교익 지음 / 터치아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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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주문하는 김에 다시 한번 훓어 보았다. 소스나 퓨전으로 맛 내기보다 원재료에 대한 이해가 먼저! 믿고 살 수 있는 지역공판장에 대한 정보는 하나쯤 들어가도 좋으련만 광고끼 하나 없이 계절별 대표 토종 별미재료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담아 내었다. 그런데 수원갈비는 왜 가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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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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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면 다 ok라는 건 시장의 로직이고, 사실 진짜 문제는 취향이 아니라 수준이다. 질적 감정이 개인의 주관성을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하면 학문과 예술은 성립할 수가 없다. 모든 취향을 존중하되 그 성취의 수준을 감별하는 활동이 문학이라는 정원을 가꾸고 살린다. 빌 브라이슨에게 크게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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