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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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콘래드'는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여 영국으로 귀화한 문학 작가이다. 작품을 쓰기전 그의 직업은 선원이었다. 젊은 시절 선원으로 지내면서 다닌 다른 세계와의 만남은 '조셉 콘래드'의 작품의 소재이자 방향을 잡아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조셉 콘래드'는 당시의 경험을 살려 여러 작품들을 남겼는데 <<암흑의 핵심>>은 '콘래드'가 화자인 '말로'의 입을 통해 항해시절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독자는 식민지 시대를 보내는 우울한 그림자에 휩싸인 검은대륙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하여 '콘래드'의 '모험'과 '꿈'과 궁극적으로는 '작가가 말하는 탐구'라는 여정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암흑의 핵심>>은 화자인 '말로'가 전해주는 모험담이다. '말로'는 아프리카 콩고 지역으로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모험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해준다. 독자는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당시 콩고에서 벌어진 우리가 배운바 있는 그리고 아직 배우지 못한 부분들인 식민주의의 어두운 면을 보게된다. 실제로 작가 '콘래드'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대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작가가 되기 전 방문한 아프리카에서 그 꿈과 희망은 상처입었다고 말한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작가가 꿈꾸던 에너지 넘치는 신비한 땅이 아니였다. 그곳은 서구제국주의가 발을 내딛고 그 영역을 확장 시켜 나가는 혼란의 대륙이었다.
화자인 '말로'가 전해주는 내용이 소설이라는 허구라고 말한다면 작가인 '콘래드'의 경험담은 실제적인 경험이다. 그렇기에 <<암흑의 핵심>>은 실제와 허구라는 경계가 무너져서 하나로 섞여버린 작품이다.
작가는 '말로'를 통해서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의 의도를 배제하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 작품이 작가의 사상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부담스럽다. 작가는 분명 서구 제국주의가 검은대륙을 어떻게 유린하고 있는지를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문명과 문명의 충돌을 체험한 '말로'의 인간에 대한 이해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서구라는 문명 속 인간과 아프리카 문명 속 인간들에 대한 탐구내용은 작품의 또 다른 줄기이다.
화자인 '말로'가 바라보는 인간 탐구는 '커츠'라는 주재원이다. '커츠'는 화자가 콩고에서 데리고 나오게 될 인물이며 화자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대상이다. '커츠'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회사의 입장에서 능력있는 사원으로 원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악질적인 사람이다. '커츠'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느 부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건 어쩔수 없지만서도 그가 망가진 인물의 표상이라는 점은 공통적인 생각이다. '커츠'의 이러한 타락한 심성과 망가짐은 '암흑' 속 핵심에 대한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암흑'의 가장 핵심은 사실 누구도 볼 수 없는 곳이다. 암흑이란 말그대로 빛이 없는 공간이며 빛에 의존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에게 암흑의 공간은 시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핵심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비유로서 그 핵심을 이해할 따름이다. 화자 '말로'의 입을 통해서 보여주는 '커츠'와 식민지 내의 백인들은 그 비유에 등장하는 핵심을 이해하기 위한 인물들이다.
'말로'는 '커츠'를 소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소개는 '말로'자신이 커츠와 반대되는 자가 아닌 '이해하는 자'로서 동질감을 가지고 소개가 이뤄진다. '커츠'에 대한 동질감이 바로 '커츠'를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근원이 되어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와 동일시 되는 '콘래드'도 이미 암흑의 일원이 아니였을까? 화자의 입을 통해서 암흑을 설명하는 그는 암흑을 이해하는 또 다른 동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작가는 '검은 대륙'에서 암흑을 보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꿈이 깨어지며 잘못된 자아를 보고 돌아와 이렇게 독자들에게 글을 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식을 추구하는 자는 이미 지식을 갖춘 자라는 말 처럼 '암흑'의 실제를 보고 돌아온 '콘래드'는 '암흑'에 속하였다가 '빛을 바라보고 돌아온 인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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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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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지방에서 태어난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남부의 전원과 그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자세히 반영하고 있다. 남부의 거친 지방 특색과 농장민들의 삶을 반영한 작가의 작품은 투박하면서도 진솔된 삶의 이야기를 써내림으로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미국 문학작품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는 미국의 남부지역의 정서와 생활 그리고 그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통하여 보편적 관점에서의 인간상을 그려낸다.

남북 전쟁 이후 미국 남부 지방은 전쟁 이전의 사회계급의 붕괴와 경제의 쇠퇴를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패전의 아픔과 인종간 갈등을 겪게되며 보수적 성향은 변화에 적응을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하였다. 남부의 독특한 배경은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의 배경이 된다. 작품속 캐릭터들은 보수적 성향과 억압과 불합리함 등과 대비되는 사랑, 구조에 대한 비판, 소통, 자의식 강화 등을 통하여 실존적 문제 접근방법을 보여준다. '포크너'는 접근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담담하게 표현하며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기 위하여 여러명의 화자의 관점을 도입한 서술 구조를 선보인다. 실제로 작품은 15명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상황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독백의 형태로 남기고 있다. 즉, 같은 상황일지라도 화자의 관점에 따라 내용은 재구성되어지며 이로 인하여 상황에 대한 해석 또한 전혀 다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하나의 주제를 한가지 흐름으로 이어나가는 화자를 등장시키지 않고 다양한 흐름으로 흩어 놓는 작가의 기법은 가히 실험적이며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의 배경은 미국 남부 지방이다. 화자로 소개되는 인물들의 생활은 풍족치 못하며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대적 배경에서 언급한바처럼 이들은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인물들의 삶과 여정은 얼핏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말하는 독백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머니'애디'의 죽음과 죽음과 관련된 가족들의 다양한 행동과 생각은 작품 속 주제를 보여주며 이 주제는 다시 잊혀지는 모습을 통해서 인식과 사라짐이라는 단계로 흘러가게 된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는 기실 독자가 '애디'의 죽음 가운데서 움직이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우울함을 느낄 수 있으며 작품이 무겁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은 미국인들의 낙관적인 성향을 반영하여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의 무거운 분위기를 '애디'의 남편'앤스'를 통해서 밝아진다. 어수룩하고 한편으로는 교활함을 띠고 있는 '앤스'의 생각과 행동은 '비극'으로 흐르는 분위기에 던져지는 낙관적인 희극 요소이다.

만일 다른 독자가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를 읽는다면 필자가 느끼는 바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듯 싶다. 그만큼 작품은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존재하며 여정 가운데 나타나는 작가의 숨은 의도와 생각들 그리고 드러나 보이는 부분들은 가볍게 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잘 안맞는다는 생각도 해본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절망과 비극으로 치닫지 않는 가운데서 충분히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더해주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는 제목 처럼 삶에 대한 성찰과 느낌을 다시 한번 되살리고 타인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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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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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출생한 '도리스 레싱'은 다양한 장르의 형식을 하나의 글로 만들어 묶는 독특한 형태의 글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녀는 어릴적 불우한 환경을 딛고 작가의 길을 걸었으며 독학으로 공부하였지만 여성 작가만의 섬세한 터치와 부드러움 그리고 빼어난 인물 감정 묘사등을 바탕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그녀의 작품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나 기실 작가 자신은 자신의 작품과 시대를 비교하지 말것을 요청한다. 이는 어느 시대나 정신을 반영할 경우 작품이 작가가 의도한 바와는 다른 오해와 해석을 불러일으킬것을 우려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섯째 아이>>는 이상적 가정을 꿈꾸던 가족의 구성원들이 한 아이로 인하여서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전통적 가족관'과 '이상적 가족 가치관'의 몰락을 보여준다. <<다섯째 아이>>에 등장하는 가정은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한편으로는 독특한 가정을 등장 시킨다. 작가가 등장시키는 가정이 특이한 점은 이 가정이 매우 이상적인 가족들의 꿈이라는 점이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기를 원하였고 이를 위해 건전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 두 사람의 노력의 결실은 안정적이고 평안한 가정의 완성이었다. 부모와 자식의 화목은 두 사람의 가정이 가지고 있는 행복한 댓가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파국이 찾아 오는것은 '다섯째 아이'인 '벤'의 출생과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들 보다 크고 태어난 아이를 향해 간호사들이 말하였듯이 '벤'은 세상과 싸우는 존재로서 등장한다. 임신과 출생의 과정에서 보여준 '벤'의 범상치 않은 모습은 성장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벤'은 먼저 태어난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별종으로서 '해리엇'이 꿈꿔온 가정을 위한 '가족'과는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벤'을 자신이 꿈꿔인 가정에 집어 넣기 위한 '해리엇'의 교육은 계속되는 마찰과 크고작은 충돌로 나타난다. '벤'에 대한 '해리엇'의 돌봄은 누가 보아도 좋은 교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이 가지고 있는 파괴본능과 불안전한 자아, 감정의 폭발, 그리고 낮은 지능이라는 '벤'의 특징을 고치지는 못한다. '이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가족'은 '벤'이라는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로 말미암아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붕괴되어 간다.

<<다섯째 아이>>는 작가 '도리스 레싱'이 보여주는 음울한 가정의 미래를 보여준다. 가정에 의한 것이지만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적 가정의 형태가 작은 사소한 변수에 의해서 충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자는 '해리엇'의 '벤'에 대한 헌신과 노력을 보고 바뀌지 않는 현실의 모습에 절망하는 가운데서 펼쳐지는 독백의 에필로그를 볼때 무슨 생각을 하게될까? 일상의 변화와 갈등과 충돌을 담담하면서도 정확히 묘사하는 '레싱'의 문체는 책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고 또한 쉽게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독학으로 공부하며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는 아프리카의 작가들 처럼 '레싱'의 작품 또한 어느 한쪽의 요소에 치우치는 작품이 아닌 다양한 기법과 형식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레싱'의 작품은 풍성하며 독자로 하여금 섣부른 가정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레싱'의 작가 인터뷰등에서 언급하는 어떠한 해석을 붙이거나 할 경우 함부로 연결짓지 말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생각을 뒷받힘해준다.
'해리엇'의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의 또 다른 엔딩인 '벤'의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 자신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 내보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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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천국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2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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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중세 문학의 정점에 오른 작가이자 선구자였다. 그의 작품<<신곡>>은 중세 르네상스의 꽃 가운데서도 가장 탐스럽고 아름다운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곡>>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3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중세의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지적하고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단테'는 문학 작가이자 선생이다. <<신곡>>을 통하여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고 '회개'하고 '구원'받을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위한 도구로서 시대를 비판하고 지적하는 <<신곡>>을 통하여 상상력과 치밀함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선사한다.
'단테'의 글은 비록 저작 동기와 기본 바탕이 종교적이라고 말하지만서도 당시 중세가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세를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곡[천국편]>>은 '단테'가 이해하고 있는 구원과 세계에 대한 정점으로서 기독교를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테'의 이상과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9개의 고리로 이어진 하늘의 구조는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이므로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이 또한 당시의 하늘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 것이기에 부담없이 읽으면 될것이다. 하늘의 구조아래에서 '단테'는 자신의 작품이 힘의 원천에 대하여 고백한다.
'그가 본대로 기록할 힘을 간구하하는 대상'은 단테가 믿고 당시 중세의 시대가 인정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단테'의 긴 여행이 그 자신의 갈등과 방황 그리고 시대의 방황이었다고 한다면 여행의 마침이 의미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단테'는 [천국편]에서 신(하나님)과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살아 있는 몸으로 초월자가 되어간다. '단테'라는 인간은 육신을 벗어나 지고한 존재와의 만남과 서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단테'의 경험은 얼핏 일반인이 보기엔 어려운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장과는 달리 '천국편'은 기독교의 '구원관'과 '회복'의 개념 그리고 '내주하심'과 '연합'의 개념을 담고 있기에 신학적 개념이 바탕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에 난해하거나 오해하기 쉬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단테'의 구원의 궁극적 지향점은 육체의 구원이 아니다. 그의 구원은 지성의 궁극점을 만나고 그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는 세상의 원리와 섭리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함께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빛 안에서 존재하는 존재와의 만남은 단테의 구원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는 순간이다.

'단테'는 <<신곡>>을 통하여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였다.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외면한 사람들에게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것을 촉구하였다. 기실 우리가 외면하는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문제를 통하여 고민하고 방황하지만 문제의 주체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소통을 통하여 그러한 사람들에게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는 '단테'의 글은 중세를 향한 '단테의 외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테'는 인간의 문제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지적하며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바를 말한다. 중세의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기에 오늘날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신곡>>은 가장 뛰어난 중세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며 [천국편]은 '단테'의 이상향과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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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연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1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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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물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역작 <<신곡>>의 2부격에 해당하는 글이 바로 [연옥편]이다. '단테'는 사후세계에서 지옥과 천국 사이의 '완충지대' 어찌보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중립자들을 위한 세계인 '연옥'을 무대로 글을 쓰고 있다. '연옥'의 개념은 '개신교'와 '카톨릭'의 입장차이가 있는 곳이기에 이 공간에 대하여 신학적인 입장을 생각하고 기독교의 전체적 교리가 담겨져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단테'의 <<신곡>>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를 상세히 설명함으로서 현세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서 신앙이 없는 사람조차도 <<신곡>>을 읽고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계몽적인 역할로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단테'의 글에서 [연옥편]은 중간자들 세상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며 살아가지 않는 자들에게 와닿는 가장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옥편]에 등자하는 연옥의 구조는 지옥과는 반대이다. 지옥이 원뿔형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는 구조라면 연옥은 하늘로 솟구친 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단테'는 연옥의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난뒤에 '연옥 문'앞에서 'P'자 일곱개를 머리에 새김 받는다. 일곱개이 고리를 지나 올라갈때마다 'P'자는 한글자씩 지워지고 지상의 죄가 모두 씻김을 받게 된다. [연옥편]의 핵심은 바로 의지의 회복이다. '지옥'에 놓여진 자들이 절망하고 괴로워한다면 '연옥'의 사람들은 괴로워하는 가운데서 '회복'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단테가 여행한 '연옥'은 오만-질투-분노-태만-사치-탐욕-애욕의 죄를 지은자들이며 이들은 정죄받고 희망을 가지고 각 고리에서 구원의 기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연옥편]과 연결해서 여정을 살펴 보자면 여행은 계속 위로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이다. 지옥에서 알지 못한 사실이 '연옥의 여정'을 통해서 좀더 구체화된다. 연옥의 여정 가운데서 우리는 내가 무엇을 했었나를 생각하게 되며 이 가운데서 얻어진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죄를 정죄받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신곡>>의 두번째 장이자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논쟁이 되는 [연옥편]의 구조는 기실 종교적 색채를 벗어난다면 큰 무리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가장 좋은 장이기도 하다. 삶 가운데서 소망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이들이 놓여진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게 된다. 중세 카톨릭의 교리를 재미있고도 흥미롭게 펼쳐놓은 정죄받는 순간들과 방법론 또한 색다른 재미라고 말할 수 있다. 지옥의 저주와 절망을 뒤로 한채 구원을 갈망하고 희망하는 자들이 놓여진 '연옥'은 '지옥'과는 또 다른 세계를 통하여 열정을 가지고 살 것을 말한다.
[지옥]과[연옥]은 죄인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죄가 씻김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이 가운데서 우리는 중세문학의 특징인 '회개'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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