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국내 학자나 미국 학자, 기껏해야 중국, 일본의 학자들이 쓴 경제 서적만을 읽어왔었는데 프랑스 경제학자의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는 처음부터 상당히 특이한 주장을 펼친다.
과거 중국이나 일본의 국민들이 훨씬 더 청결했고 따라서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덕분에 중국, 일본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야 하는 국민들은 더욱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즉 유럽인들이 중국인들보다 더 불결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설 수 있었다는 이론이다.
굉장히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중세 유럽을 뒤흔들었던 흑사병 때문에 농노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고 그 덕분에 노동자 계급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 아닌가.

그보다 더 인상적인 구절은 중국의 활력이 사라진 이유를 해외 탐험의 비용을 감당하기 싫었던 황제가 함대의 범선을 불태우라고 명했다는 사건에서 찾는 것이다.
내부 안정의 대가로 성장을 희생시킨 이 이야기는 벤처 정신을 잃어버리고 관료화되어 안정만을 추구하다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거대기업들의 사례를 보는듯하다.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라는 별에서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수십, 수백조원의 비용이 드는 우주 탐험을 (왜 해야 하는지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류가 만약 현 상태에 만족했다면 동굴 밖으로 나가고, 바다로 나가고, 신대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쨌든 이 책은 고대 로마와 중국, 중세의 유럽,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대공황, 최근의 서브프라임 사태 등의 사례를 통해서 성자필쇠의 법칙을 학문적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우 신선하고 무척이나 흥미롭다. 마치 '악의 번영'이라는 역사 스릴러를 읽은 것만큼이나 재미있다.(어쩌면 이 책의 내용을 딱딱한 경제학 과목의 전공 서적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이런 노골적인 '악'은 나오지 않는다. 청결과 풍요가 때로는 '악'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할 뿐.)

이 밖에도 서브프라임 사태와 세계 대전의 과정은 동일한 메커니즘에 따른다는 주장이나 대공황과 케인즈에 대한 반대 의견, 산업혁명으로 번영한 유럽이 세계 대전으로 몰락하는 과정 등을 읽을 수 있다.

'악의 번영'에는 오랜 세월동안 경제에 영향을 받고 또 경제 법칙을 변화시켜 온 인류에 관한 탁월한 통찰이 담겨있다.
수천 년 전의 세계부터 요즘의 가상현실과 인터넷까지 아우르는 이 책은 흥미진진한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운 경제 입문서임에 틀림없다. 약 10여 년 전에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으로 경제학과의 기초 과목을 수강했던 것처럼 요즘에는 이 책으로 경제학에 입문하는 학과도 있을 것 같다.

--------------------------------------

어쨌든 신체적 고단함에서 벗어난 노동이라는 거대한 희망은 확실히 실현되지 않았다. 실제의 서비스 사회는 푸라스티에가 꿈꾸었던 천국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서비스 사회는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고객의 독재 아래 놓인 사회로서 때로는 고용주가 아니라 고객들이 진정한 명령자가 된다. 인간화된 사회에 대한 희망은 하나의 미몽에 불과했던 것이다. 즉 서비스 사회란 지연된 서비스를 참지 못하는 고객들이 강요한 '늦지 않고 제때에'의 독재 사회이다.
-p.137

부의 크기에 비례해 증가 속도가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중국이 세계 1위의 부국에 도달하는 것은 2050년경일 것이다.
이와 같은 대역전극은 명백히 인구의 규모에 기인한다. 1인당 소득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여전히 가난한 국가이다. 국제 분류에 따르면 중국은 이집트 정도의 수준에 위치해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의 1913년 수준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2050년에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겠지만 1인당 GDP는 미국의 2000년 수준일 것이다. 이것은 햇수로 나타내면 1990년에 미국에 150년 정도 뒤처졌던 중국이 2050년에는 50년 정도 뒤처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