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속에 찾아보는 우리의 미의식

소나무가 있는 고궁 담, 이것은 이 작가가 한 때에 즐겨 그리던 주제 중의 하나다. 1986년 워싱턴 주재 신축 한국 대사관저에 새로 설치하게 된 대형(200 x 500 cm)인 그의 신작도 역시 그런(담)의 작품이다. 고 김수근씨가 설계한 목조 건축 내 대형 응접실에 알맞게, 마치 우리의 미감이 되살아나듯 작품은 그 곳에 안치되고 있었다.



▲담, 50×65.1cm, 1970, 나상기 소장

60년대이래 그는 일반 서양 유채화가 보여주는 그림 내용과는 달리 애써 우리네의 미감이 깃든 60년대 이래 그는 일반 서양 유채화가 보여주는 그림 내용과는 달리 애써 우리네의 미감이 깃든 건축 구조물이나 소재에 집착하게 되고 또 그런한 내용에 맞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소나무가 있는 고궁담과 같은 소재에 집착하게 되고 또 그런 내용에 맞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소나무가 있는 고궁담과 같은 화제도 그런 맥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에 고귀한 품격이 우러나오는, 그러나 화면에 옮기기에 어려움이 많은 그런 주제에 그는 정신을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런 고귀한 품격에 대한 미의식의 발동은 더 나아가서 인간이 아닌 자연에 대한 우리의 미감을 되찾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자연 그림이 아무리 격렬한 색감과 역동적인 필치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그 저변에 깔린 고귀한 품격을 전제로 한 미의식은 그에게 결국 여유의 미로 나타나게 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는 결국 그같은 미의식이 인간이 아닌 자연에 근거를 두게 되었고 우리가 그 사이 자칫 잊어버리기 쉬었던 그러한 미감을 따라서 그는 되찾도록 자극을 준 격이 된 셈이다.

이러한 각성을 그는 물론 그냥 하게 된 것은 아니다. 1956~57 미국과 유럽을 여러 달 여행 하는 과정에서 그가 그 곳의 당대 미술을 직접 접하게 되었을 때 불현 듯 깨우치게 된 각성이었다.

그같은 귀한 경험을 귀국 직후 그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우리나라 미술의 높은 조형감각과 예술성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높여 주었고 그같은 좋은 미술문화 전통을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현대라는 시점에서 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이 작가의 그림에서 그동안 잊어버린 고유한 미감을 되찾으며 또한 그러한 미감을 통해 그의 그림을 통해 그의 그림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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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이 유끼요에를 보고 자신의 barrier를 느끼고 또 느껴보는 계기를 삼듯, 이대원 화백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부조의 입체감을 느끼듯,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움과 독특함~고유함을 타향에서 느끼고 다시금 그들의 눈으로 우리의 미를 재평가하는 기회를 가진 것 같다....

전과 달리, 옛 풍광과 서정을 표현한 작품에 눈길이 간다. 특히 위의 작가의 경우, 한국의 인상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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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8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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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를 우회하는 그리기>>展

2005.02.26 ~ 2005.05.08 부산시립미술관 2층 대전시실

참여작가: 김수영, 류재웅, 박정렬, 심점환, 신학철, 정재호, 이인철, 황순일 등 8명

기획의도:
그림 그리기란 언어적 재현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언제나 언어적인 것들이다. 이 중단과 재현으로서 언어라는 양의성을 가진 그림, 그 중에서도 특히 사실적 기법을 보이는 그림들에서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름의 시선, 혹은 차이에 대한 섬세한 반응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잔 손택이 “스타일을 예술작품 안의 결정 원칙이요, 예술가가 자필로 서명한 의지다”고 했듯이 스타일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질 것이다.

회화에서 리얼과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리얼하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가. 그리고 리얼리티라는 말의 외연과 내포는 어디까지 일까. 리얼리즘으로서 태도와 현실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과연 온당한 의미로 엮어지는가.

문제는 여전히 현실인가, 아니면 현실해석으로서 그림의 위상인가 하는 물음이다.
사실로서 사믈의 제시는 과연 사실적인가 하는 질문과 사실적 기법으로 사물을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작품에서 그들이 보고 있는 현실로서 사실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으며, 현실을 보아내는 것으로서 한국의 사실화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하낟.

현실과 사실적 그리기라는 어법에서 생기는 재현과 차이의 문제/현실구현이라는 의지와 현실왜곡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놓아본다. 다름아니라 사실적인 접근과 해석은 실재에 대한 우회적 어법이지 사실 그대로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재현기능과 의미에 대해 의심하면서 우리 사실화의 미학적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한국 사실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이들 작업들에서 그들의 세계와 현실로서의 우리의 세계가 과연 리얼이라는 의미의 내포나 외연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점검해보고 리얼로서 현실과 리얼한 그리기로서의 현실, 그리고 현실 일탈로서 사실적 그리기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묘사와 현실 사이에서 작가의 갈등과 현실과 그림 사이에서 보는 이의 이해와 갈등, 사회적 이념과 미술의 역할 등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실재에 대한 우회적 어법으로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시내용:
대상을 대상처럼 그리고 그 닮음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사실화는 일상적이고 구체적 형상 때문에 쉽게 보는 이에게 다가가는 이점이 있다면 그 닮음이 놓인 맥락이나 문맥을 놓치고 마는 어려움도 있다. 너무 쉽게 상투적 형상을 수용하고 만 탓이다. 실은 사실적인 그림의 대상이란 하나의 서사적 문맥 속에 놓여서 그 서사를 현시화 하는 요인으로서 역할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닮음이란 다름 아니라 대상의 물성뿐 아니라 타자를 인용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객관적 대상을 닮게 옮겨놓는 것은 옮겨 놓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맥락에 놓여지는 것으로 마치 타인의 언술을 인용해서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수법에 다르지 않다. 모사가 아니라 언술의 특징적 기법이며 타자를 옮겨놓는(인용) 것으로 다른 요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화도 그 맥락에 대한 감성이 없으면 언제나 상투적인 형상을 확인하거나 자신의 이해 정도를 확인 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만다. 작품의 맥락을 놓치는 것은 문학적 수사가 주는 풍부한 표현의 감칠맛을 느끼지 못하고 설명문을 읽는 건조한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실화는 대상을 인용하고 그 인용은 다른 문맥으로 의미를 확장함으로 해석의 하나가 되는 데, 그 해석은 결국 실재를 우회해서 표현하는 것에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사실화는 실재를 우회해서 그리는 인용의 어법이다. 나는 그렇게 사실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 우회에서 우리는 대상과 현실과 그리기라는 삼자 사이에서 긴장을 가지게 되고, 때로는 상투적인 확인을, 때로는 상투적인 형상 사이에 잠복된 의미를 들여다봄으로 범속한 삶의 의미를 다시 가다듬는 것이다. “형식은 하나의 세계관이고, 하나의 입장이다. 또 형식은 그것이 생겨나는 바의 삶에 대해 갖는 일종의 태도 표명이다. 그리고 형식은 삶 자체를 다시 만들어내는 하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기란 바로 그런 세계관을 표명하는 것이고 자기 입장을 보이는 것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몇 가지 스타일, 혹은 형식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입장을 사실화에서 실재와 실제, 현실 혹은 일상이라는 관계로 살펴보려 하는 데 이 전시의 주안점이 있다.

황순일/ 그의 정물은 무섭다. 털이 벗겨진 채 온몸을 드러내고 있는 닭 한 마리는 식욕의 풍성함을 안겨주기보다 심각하고 처연하게 한다. 고기살은 이미 푸르게 변색되었고, 부러진 다리의 근육들은 해체되어 벗겨져 있다. 닭의 고기살점들에서 거친 인간의 피부를 연상하게 되고 주름진 인간의 손등을 읽을 수 있는 고기살의 표정은 벌거벗겨진 육식성의 실재를 드러내는 듯 하다.
소의 하악골이 고기 덩이 위에 걸쳐져 있고, 이미 생명의 온기를 잃은 눈알은 유리구슬처럼 빛난다. 그리고 그 아래로 고깃덩이가 지방과 근육질이 잘 어울려 있는 듬직한 육질로 잘려진 살점들과 함께 놓여 있다. 조명이 잘된 바닥에 놓여 있는 고기살의 선명한 음영과 색상과 형태감은 분명 의도된 제시이자 소격 효과를 노리고 있는 듯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맥락이지만 고깃덩이와 이빨이 선명한 아래턱 뼈와 그 이빨 사이로 자신의 살점을 물고 있는 작품이 있다. 그 고깃덩이가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살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행해화 된 대가리로 살점을 물고 있는 엽기적인 이 정물은 일상적인 정육점의 보여주기이지만 손에 묻어날 것 같은 고기살의 촉감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살의 두께와 무게감, 번들거리는 기름기는 마치 조작된 장면처럼 도리어 현실감이 없다 너무 진짜 같아 일상에서 일탈되어진 것이다. 그대신 고기가 아니라 몸이라는 것에 대해 섬뜩한 이해를 요구한다.
털이 벗겨지고 대가리가 없는 도축된 닭은 일상적으로 흔하게 보는 풍경이다. 그러나 그가 내놓는 닭고기의 살덩어리는 이미 살이 뜯겨진 다리와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고깃덩어리이다. 잘 비추이는 조명 아래 배경은 어둡고 고기의 지방과 근육은 빛난다. 그런데 이들 작품 대부분의 화면 위 한쪽에는 어울리지 않게 스피커의 일부분이 보인다. 그 육체에 내재된 소리를 듣게 하려는 것일까? 고깃덩이 위에 병치된 스피커라! 배경은 어둡고 그 어둠 사이로 희미하게 아니 선명하게 자신의 일부를 보여주는 스피커는 이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분열시키고 그 대신 독특한 병치의 의미를 던져준다. “표현된 것과 표현 될 수 없는 것 간의 갈등을 감지하는 것이다.” 말 할 수 없는 것이 늘 있음을 보여준다.

심점환/ 심점환은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같은데 훨씬 더 의도적이라는 냄새를 풍긴다. 반복에 의한 강조가 도리어 현실성보다 구성된 것으로, 현장감보다 상황이 강조됨으로 개와 생선이라는 구체적 형상이 비현실화, 추상화 되어버리는 데서 오는 인상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세세한 디테일을 제시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익숙한 것들이고, 통념적으로 인지되는 것들이다. 생선대가리와 내장, 개고기란 흔한 만남의 하나이다. <무의식>, <저 바다에 누워> <과정> 등의 형상에서 금방 알 수 있듯이 바다, 생선, 그리고 그 생선의 내장, 개 대가리와 개 내장과 사지의 숨막히는 과잉 이미지는 배경도 정황도 없이 사물 그 자체로 던져진다.
피 터진 흔적도, 고기를 둘러싸고 있는 체액이나 피, 내장의 끈적거림도, 생선부위들의 난자당한 모습, 껍질과 내장의 각별한 표현이나 왜곡도 없다. 그저 열심히 그려진 시각이미지의 과잉이 화면에 넘쳐난다. 실제인데도 실제성이 없고, 실재를 그려놓고 있지만 정밀하지 않아 실재성에 충실하지도 않다. 보는 이는 이 과잉의 언어에 숨 막혀 서 있을 뿐이다. 언어가 끊어져야 한다면 이런 순간일 것이다. 황순일이 단순하지만 이야기를 깔고, 그런 서사를 읽을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면 심점환의 경우는 아예 그런 서사가 설 자리마저 없애버리고 있다. 이야기를 없앤 자리에 과잉된 이미지를 대신 놓아둔다.

김수영/ 아파트나 대형고층 건물을 그리는 김수영 작업에는 도시의 건조한 선들이 가진 미세한 다름에 대해 주목하고, 한 건물이 다른 건물을 거울처럼 되비추이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서로를 비추이면서 서로의 형태와 형태적 특성을 증식시키고 있는 이런 정황은 다름 아니라 실체 없는 증식의 일면이자 현대도시의 특징을 그렇게 보고 있다. 실체 없는 증식으로 구성된 도시의 초상이다. 그것은 창이라는 구조를 통해 바깥 건물을 내다보는 것에서부터 건물에 비친 타자의 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조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창이나 베란다 색상이 그렇데 요란하고 울긋불긋하게 칠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육중한 건물의 선과 위용에 어울리지 않게 알록달록한 창과 베란다의 색상은 문의 구조이자 아파트의 건축적 특징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수없이 작은 문들로 이루어진 건축물이지만 막상 인간이 들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 구조이다. 차량이 드나드는 지표면의 작은 공간을 제외하고는 거대한 유리창으로 뒤덮인 건물 앞에서 가로수와 인물과 차량들은 겨우 그 한구석에서 장식처럼 있다. 곧게 선 직선의 구조 앞에서 때로는 작은 빛살처럼 사람들이 어른거리고 맞은 편 건축물의 되비침이 마치 이 건물의 또 다른 장식처럼 자신을 치장해 보이고 있다. 타인의 얼굴이 자신의 장식이 되는 건물구조들은 서로를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건조하고 무심한, 냉혹한 직선들을 증식하고 있다. 건물로 가득 찬 공간은 그 자체가 공간을 막아서 있으면서도 유리라는 매체에 의해 또 다른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각적인 착각에 의한 것이지 구체적 공간은 아니다. 마치 자신의 몸에 비친 타자의 건물이 자신의 얼굴이나 표정처럼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울에 비친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의 무한증식에 다르지 않다. 그의 도시는 그렇게 닮은꼴들로 무한히 이어진다.

정재호/ 그의 아파트는 구질구질하고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고, 낡고 고단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창살, 베란다의 망가진 보호망, 부옇게 매연에 눌러져 있는 도시의 모습을 잡아내고 있다. 옆으로 펼쳐진 그의 아파트들은 겉이 속으로 드러나는 시선을 보여준다. 속이란 그 아파트 안의 정경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남루함의 표현이다. 망가진 가구, 덧붙여진 베란다 지붕, 계단참에 놓여 있는 잡다한 가구나 가전제품의 나부랭이들이 고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곳에는 냉점함보다 끈적거리는 일상과 직선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직선이 무너져 분절된 건물의 형상들이 분절된 일상의 의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빗물이 타 내린 직선은 김수영 직선과는 다른 곤고함이 베인 자국으로 드러난다.
같은 건물, 같은 아파트 구조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선을 보게 된다. 김수영이 서사를 피해가려 하고 구조적인 미와 화면내의 긴장을 의도하고 있다면 정재호의 작업은 서사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작은 화분 하나를 놓아도 그것은 정물이거나 풍경이기보다 이야기가 된다. 곤고한 삶의 일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낡은 아파트 단지라는 소재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는 그곳을 손으로 더듬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무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저 보여줄 뿐인 것이 다른 말보다 더 많은 말들을 웅성거리게 하다. 창을 지나 벽 저쪽의 풍경까지 가 닿은 말들이다. 그리고 아파트 벽에 붙여 지은 구조물들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모습으로 내부로 들어간 전신줄이 아니라 외부로 노출된 전선처럼 그렇게 노출된 황폐한 터이자 삶의 모습을 보인다.

박정렬/ 흙이나 전통 풍물적 정경에 관심이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끈끈한 정서적 일체감을 강요하는 그리기에서 훌쩍 넘어서서 마치 정밀한 지도를 대하듯 그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땅에 대해서 냉담할 정도로 거리를 가지고 그려가기 시작한다. 지도라고 했지만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객관적 실체를 보여주겠다는 태도에서 그런 인상이지 지도를 그리듯 기호화한 도면이나 조감적 그리기를 지적하는 말은 아니다.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풍경은 옆으로 4미터, 높이 122센티의 크기이다. 중앙에 놓인 산과 옆으로 날개를 벌린 산세, 그리고 그 앞으로 전개된 계단식 논과 밭자락, 무덤과 개량된 시멘트길, 비닐하우스와 개울가의 잡목들, 산의 청색과 논밭의 황색, 그리고 개량된 시메트길의 흰색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옆으로 길게 시선을 움직여 간다. 이런 구성이나 포착은 옆으로 넓어지는 공간감의 크기에서보다 도리어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실성이 돋보인다.
<양평군 양평읍 두물머리>,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 <평창군 수항리>, <충북 음성군 소태면>의 풍경들은 화면 상단에 닿을 듯한 구성과 그 밑으로 산세를 잡고 앞으로 펼쳐진 논, 밭, 둔덕, 묘자리. 시멘트길. 작은 나뭇가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묘사에 데한 집중된 표현, 그 표현은 화면 전체를 정밀하게, 소리 없이 펼쳐져 있데 긴장된 침묵, 수없이 많은 소리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이 침묵 속에 든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어느 곳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시야에 든 화면은 그 때문에 원근감에도 불구하고 원근감보다 그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듯한 장소성이 그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의 풍경에는 그가 없고, 현실경만 있다. 그림으로 지워도 좋은 부분들을 그대로 두는 그의 관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풍경은 특정 지역의 명칭을 가진 것들이지만 익명의 곳으로 우리에게 다가가게 한다.

류재웅/ 눈이 쌓인 풍경이 저만치 보이는데 그 풍경은 보는 이의 눈을 끄는 것이 아니라 호흡. 체취, 집까지 나 있는 작은 길로 내닫는 바쁜 걸음을 안겨다 준다. 같은 풍경을 그리는데 이렇게 다르다. 박정렬이 인간의 체취보다 있는 풍경 자체가 만들어내는 적요함에 눈을 두고 있다면 류재웅은 어떤 형태이든 인간이 그 곳에 있다는, 그 인간의 체취가 어떻게 베여있는 지를 확인하려 한다.
눈이 쌓인 산골 집들, 낡고 오래된 토벽과 지 붕들, 눈에 쌓인 시골길 풍경은 살갑다. 잔설과 자갈돌과, 척박한 토질이 드러나는 경사 급한 산골 마을 표정은 팍팍한 현장이지만 그 사이로 붉은 슬레이트 지붕과 집을 둘러싼 나무 몇 그루, 주변의 흙에 대한 촉감은 집 뒤 언덕을 따라 넘어가는 길에서 그 급함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강원도 무건> 마을의 표정에서 그런 특징을 더 잘 읽을 수 있다. 이 구성적인 방법이 그의 작품에서 얻어지는 안온함 혹은 친근함의 정체일 수 있다. 말하자면 산이 전체를 안고, 길을 따라 사선의 지형이 급하게 아래로 내닿고 완만한 길이 이 경사를 견제하면서 독가촌의 드문드문한 집들을 방점으로 남겨 급한 숨을 돌리게 한다.
그는 그가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드러내려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실재를 재현하려는 사실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눈보다 타자에 대한 이력을 읽으려 한다. 그리고 그를 드러내려 한다. 새삼 "세잔느의 풍경화는 미술가와 자연간의 대화가 낳은 산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는 타자에 귀기우릴 수 있는 능력, 즉 기꺼이 타자로 하여금 그 자체이게끔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는 것이다. 미술은 단지 타자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따름이다." 라는 말을 새겨보게 한다.

이인철/ 마치 사이보그 전사들의 행진 같은 장면이다. 인격이 없는 것들이라 인체를 닮았지만 옷을 입히거나 전사로서 치장이 필요치 않다. 기능을 가진 물품이나 무기를 전장에 투입하듯 그들은 발가벗긴 채 총 하나를 들고 어딘가로 행진해 가게 한다. 전장의 먹구름은 짙게 깔려 있고, 전차의 포신을 옆에 하고 이열종대로 앞을 향해 간다. 회색톤의 색상은 무기의 효과를 내는데 효과적이고 사이보그 병사들의 색상과 일체화를 이루며 한껏 고조된 전장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딘가 전장 같다는 인상보다 영화의 장면이거나 만들어진 장면, 혹은 삽화 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이보그라는 이 인물들의 등장이 전장의 다급하고 시급함, 황폐함보다 전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는 거리감을 가지게 한 것이다. 전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 그것은 주체인 나는 전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고, 전장의 폭력으로부터 다행스럽게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다르지 않다.
그 안도감이야말로 전쟁을 전쟁으로 읽게 한다. 전장의 한 복판에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전장의 복판에는 나와 무관한 혹은 나를 대신하는 것들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장에 대한 인류의 바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전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때문에 더 많은 폭력과 황폐함과 파괴에 대해 무관하고, 무책임하고, 때로는 폭력을 조장하고 획책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신학철/ 신학철의 화면에 등장하는 개별 요소들은 철저하게 현실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여 있는 형상은 전혀 현실 논리를 가질 수 없는 콜라주 된 장면으로 기괴한 형상이다. 그러나 그 전체를 다시 보면 우리 현실에 대한 사실적 상황, 정황을 어느 작품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개별적 현실을 모아서 현실 논리를 잃고, 잃어버린 현실 논리 위에 다시 현실을 전달하는 이 논리는 우연과 잡다와 우발성의 현실에서 비현실이 논리적으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지배하는 비현실과 비현실 같은 현실의 문제를 열어준다. "그것이 주는 감동의 근본에는 범속하고 초라한 현실의 삶을 넘어서려는 또는 인간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초월적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우창 사유의 공간 그런 면에서 그의 현대사회의 독해와 시니컬한 어법과 전체화에 매몰되어 있는 당대의 이념적 경직성과 우민적인 계몽과 억압에 대해 우리가 가질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문학은 원초적 체험의 구체적 실감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한 사회가 추상화, 전체화 속에서 고착되는 것을 견제해준다.” 김우창 사유의 공간 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당대적 상황이나 권력 억압에 대해 대항적이기는 하지만 도리어 우리사회가 가진 천박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언술이라 본다.
그의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그 의미들이 공유되고 있다. 다급한 현실상황에 대한 격렬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의 근저를 이루는 왜곡된 세계관에 대한 대립이다. 그의 형식은 기존 그리기 형식에 대한 반발이고, 잘 정리된 현실상에 대한 부정이다.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은 그에게 필연적인 선택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법 채용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반영에 대한 분명한 자각의 결과이다. 그것은 실재를 표현하는 형식의 획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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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da 2005-05-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재호의 청운동기념비 I 가 인상적이었다. 한지에 혼합재료... 청와대부근의 쟁쟁했던 아파트의 이제는 낡은 모습..
신학철의 로이 리히텐슈타인 판 씨니컬한 비판은 공감과 재미를 함께~ 가장 미국적이며 한국적인 단언적 태도.. 인상적이었다.

s0da 2005-05-0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김수영 작품.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에서 시종 눈물이 남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지 얼마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테잎으로 떼어낸 일괄적인 작업들이 눈에 가시가 되었다는 지인의 얘기도 들었다...
 


Rodney Graham

Oxfordshire Oak, Banford, Fall, 1990

Photographic print
47 x 41 cm
Edition of 500
Signed and numbered by the artist


The inverted image of a tree has become recognised as a Rodney Graham hallmark and forms part of an ongoing 15-year project. This iconic image is seen in popular science books illustrating optical illusions and appears in seminal texts by theorists like semiologist Ferdinand de Saussure and psychoanalyst Jacques Lacan. Graham's work is represented in Canadian, Dutch, German and French national col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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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Ruff

d.p.b.08, 2000/2002

C-Print
30 x 42 cm
Edition of 250
Signed and numbered by the artist

One of Germany's leading contemporary artists, Thomas Ruff has created a number of photographs in response to Mies van der Rohe's buildings especially for the exhibition. d.p.b.08, 2000/2002 takes as its subject Mies' most famous building, the German Pavilion at Barcelona.

"When Mies' German Pavilion was built for the 1929 International Exposition, it must have looked like a UFO had landed in Barcelona. Speed in photography is always blurry, and my picture of the German Pavilion looks like a high-speed locomotive - modernity arriving at the train station of the present.'"
Thomas Ruff,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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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n 1999
Collection of the artist.
Coutesy of Cheim & Read, New YorkThe artist & Jay Jopling (London)

Until 26 November 2000

Each year for the next five years, Unilever sponsorship will enable Tate Modern to commission a large-scale work for the Gallery's 500ft long x 100ft high Turbine Hall.

The inaugural work is by the French-born American sculptor Louise Bourgeois who i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artists working today. This project is Bourgeois' most ambitious to date and will be on display until 26 November 2000.

Three large steel towers, about 30 feet high, dominate the east end of the Turbine Hall. Each tower supports a platform on which two chairs are surrounded by a series of large swivel mirrors. The mirrors with their reflective surfaces create an intense space for contemplation and reflection.

Visitors are able to mount spiral staircases on the towers to experience the space of the platform and the Turbine Hall. Bourgeois imagines that the platforms will become the stage for significant conversations and human confrontations. Adjacent to the towers and straddling the bridge of the Turbine Hall is an enormous 35 feet high spider by Bourgeois, the largest she has made.

Born in 1911 in Paris, she studied under Léger, before moving to New York in 1938. A contemporary and colleague of the Surrealists and Abstract Expressionists Louise Bourgeois' own work has always been at the forefront of new developments in art. Obsessed by memories of her own childhood in France her work has always been deeply autobiographical, and in many different media (painting, printmaking, sculpture, installation, performance) she has explored themes of identity, sex, love, alienation and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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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5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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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5 1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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