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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멜기세덱 > 사람은 책 읽는 동물이다.
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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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讀書 是人間第一件淸事"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인간의 일 중에서 제일 맑은 것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바꾸어 "사람은 책을 읽는(읽을 줄 아는) 동물"이라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독서가 우리 삶에 있어서 얼마나 값지고 가치있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 주변은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습관이 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를 대며 책을 멀리, 그것도 아주 멀리하고 있다.

  단적인 통계 수치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겠지만 근래에 조사된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1년동안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 사실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은(그 부지기수에 포함되는 사람일지라도) 부끄러워 한다. 왜일까? 그들도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뻔한 이야기를 왜 하는가?

  나 또한 독서의 중요성을 익히 들어 알고만 있던 시절이 있다.(하지만 지금은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에 책을 읽으려하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좋은 책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내용은 이해되지 않고, 몇장을 뒤적이다보면 강력한 수면제처럼 작용하여 나를 잠에 들게 하고, 그렇다고 재미만을 찾아 책을 읽자니 괜한 시간낭비같고....

  즉, 나는 책을 어떻게, 무엇을, 언제, 어디서 읽어야 할지를 감을 못잡다보니 책읽기가 안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에둘러 왔다. 졸리운 눈을 비벼가며 "역사란 무엇인가"를 정독하고, 이런저런 유명하고 저명한 책들, 즉 정전들을 골라읽어다(아니 골라읽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골라준 것들을 읽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읽었던 책은 내 머리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몇년을 책을 억지로 가까이 하며 내게 남은 것은, 그래도 책에 가까워질 수 있었고, 차츰 습관이 되었으며, 나아가 책을 보다 잘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찮은 것은 아닐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결국 책을 버리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내가 "책 읽는 책"을 만난 것은 10월의 시작과 함께였다. 서점 한 귀퉁이에 꽂힌 이 책을 발견하고 펼쳐든 순간 나는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내가 에둘러 왔던 길의 미련함을 발견했으며, 이런 책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더 훌륭한 독서가가 되어있지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던 것이었다.

  "책 읽는 책"을 말하자면, 책을 읽는 육하원칙(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중에 우리가 유난히 알지 못하는 4가지(어떻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무엇을 읽을것인가? 우리가 어떤 책을 골라읽어야 할지 그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우리를 활짝 웃게 만들어주는 아주 확실한 방법을 주고 있다.

  "책 읽는 책"을 만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절반의 훌륭한 독서가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과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런 책을 이제서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다. 왜 이제는 더 좋은 독서가, 나아가 이 땅의 지성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은 실용서이다. 많은 사람들의 독서 생활의 밝은 길을 열어주는 그리하여 진정한 사람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정말 값진 실용서이다.

  두서없는 글을 마치며,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훌륭한 독서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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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멜기세덱 > 미쳐야 하는 시대에 미치게 하는 책!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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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결국 "미쳐야 미친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다." '狂'이라는 이 한 글자는 광인(狂人), 즉 미친놈을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狂은 단순한 미친놈은 아니다. 단순한 미친놈이 아니면 무엇인가?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 이런 말이 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진리를 아는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진리를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공자님의 말씀인 즉, 무엇인가를 단순히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좋아해야 하고, 좋아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거워해야 道(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道通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이 '樂之者'의 경지가 '狂'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즐겨행하고, 그에 큰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경지! 그것 하나에 푹빠져 밥먹는 것도, 여자친구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의 경지! 이것이 곧 '狂'인 것이다.

  이 '狂'의 경지가 되면 '及'한다. 곧 미치면[狂] 미칠[及] 수 있는 것이다. '及'은 곧 '道通'이겠다. 이 어쩌면 단순히 진리를 말하고 있는 책이 바로 정민 선생의 <<미쳐야 미친다>>이다.

  정민 선생은 국문학자 중에서는 꽤나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민 선생의 저서들이 대중적 취향을 잘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정민 선생은 조선시대의 한문산문 중 명문들을 선별하여 현대인이 읽기 쉽도록 새롭게 번역하여 해설하는 작업들을 많이 해 온 사람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손꼽는 박지원의 산문들을 엮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이덕무의 소품을 엮은 <<한서이불과 논어병풍>> 등이 그러하고, 최근에는 <<죽비소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정민 선생의 그러한 작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역작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기도 하듯이,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살아온 천재들이 어떻게 천재가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이 어떻게 미침[及]의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탐색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곧 '狂'에 있음을 정민 선생은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허균,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등 우리가 많이 들어본 인물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몇몇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일화들, 그리고 그들의 문장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狂'이 어떠했으며, 그로인해 어떻게 '及'했는지를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첫 장에서부터 나를 미치게 만든 것은 '창가벽'을 가진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들과 함께 엮어나간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덧 우리는 '狂'하고 싶어질 것이다.

  현대사회를 생각할 때, 이 시대는 전문가를 요하는 시대이다. 전문가란 무엇인가? 專門란 어느 하나에 통달한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의 통달이라면 곧 위에서 말한 '도통'의 경지, 곧 '樂之者'의 경지이다. 결국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狂'의 경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우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곧, 현대인들에게 "미쳐라, 미쳐야 한다. 그래야만 이 시대에 살아 남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역설적이게도 어느 하나에 미칠 수 있게끔 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해내야 하는 것은 현실이기도 하다. 무엇 하나에만 맘 놓고 달려들 수 없는 것이 현실아닌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不狂'하고 결국 허망하게 사라진다.

  나는 이 책을 우리 현대인들이 읽고 한번쯤 미쳐보길 바란다. 미침[狂]은 많은 노력과 고생과 타인들의 차가운 시선들을 수반한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은 그러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하는 행복이 있다.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미친다고 해서 정신병원에 가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단, 부스럼을 뜯어 먹는 짓은 좀 그렇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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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멜기세덱 > 꼭 한 번 떠나고 싶은 여행, '시인을 찾아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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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MBC의 ‘느낌표’라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의 독서 현실이 그야말로 참담함을 인식하고 독서의 생활화를 위해 만들어진 어쩌면 획기적이면서도, 또 한 면으로는 우리를 부끄럽게도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전국적으로 독서 열풍을 일으키고, 부진한 도서 판매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공을 세운 것임에 틀림없다.

 

  전 국민이 ‘느낌표’에서 선정하는 책을 따라 읽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로 열심히 그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비롯해, 《괭이부리말 아이들》, 《백범일지》, 《삼국유사》등등, 많은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니 그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압박하는 좋은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많이 미뤄두었던 책들임에 분명했고, 어지간해서는 읽어내기 따분한 책들도 열심히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이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책《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때문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98년이었다. 하지만 그리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잠들어 있던 이 책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전적으로 ‘느낌표’에 선정된 탓이었다. 내가 ‘느낌표’에서 선정해준 책들을 열심히 읽던 와중에 조금씩 지루해가고 있을 즈음, 이 책은 나에게 진정으로 책 읽는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느낌표’가 내게 준 값진 선물이었던 것이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는 제목 그대로 시인들의 자취와 흔적을 찾아, 그 안에서 시인을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기행문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는 책이다. 이것은 시에 대한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인들이 나고 자란 고향, 그들이 살았던 집, 그들이 걸었던 길들을, 저자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걸으면서, 시인이 느꼈던 느낌 그대로를 또한 새롭게 느껴보고, 그러함으로써 그들이 남긴 시들을 살펴본다. 이것은 하나의 외재적 비평 방법으로, 우리에게 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면서도,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한 시 읽기에 재미와 기쁨을 더해주는 효과를 주고 있다.


  “나는 이 기행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목월의 향토색 짙은 밝은 색깔의 이미지가 무엇에 연유하는가도 알았으며, 영랑의 맑은 노래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도 알았다. 또 어떤 시인의 어느 부분이 과장되고 어느 부분이 축소되었는가도 확인됐다. 이 동안에 어느 면 닫혀 있던 내 시관도 많이 수정되었다. 나는 시를 새롭게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이 기행을 하는 동안 늘 들떠 있었다. 시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구나, 새삼스럽게 감탄하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나도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들떠 있’지 않을 수 없었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곰곰이 물어 본다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큰 효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는 단순히 시인의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분명 아니다. 자기가 보았던 풍경, 사물,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현실에서 시가 태어나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애써 외면해 버리고, 시를 놓고 거기에 쓰인 언어 기호 자체만을 풀어내려고 하고, 분석해 내려 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 읽기는 제대로 된 읽기가 아니다. 아니 시는 “마음이 흘러간 바”를 적은 것이기에 그 마음을 느껴야 하건만, 이러한 시 읽기는 우리에게 ‘감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한 시 읽기가 아닐 수 없기에, 이 책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만나는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시를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하나하나 찾아떠난 그 길을 나도 어느새 걸어가고 있으며, 주옥같은 시들이 어떻게 태어났고, 그간 내 머릿속에서 좀체 설명되지 않던 구절들이 물흐르듯이 흘러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강한 감동으로 흘러내렸다.

 

  이 책을 만나고 나는 꼭 한 번 다시 읽고, 신경림 시인이 찾아 갔던 그 길을 나 또한 걸으리라는 결심을 굳게 했다. 하지만 책장 깊이 박아두고 있다가, 근래 다시 읽게 되었다. 아직 그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처음 읽던 그 느낌 그대로 내 마음은 여전히 요동친다. 이 책 한 권을 들고 시인들의 자취를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가슴 속에서 요동을 치다 못해 나를 힘들게 한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가 ‘느낌표’를 통해 재간되고 나서 얼마 후 아쉬웠던 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2권이 나왔다. 내가 그것을 바로 구해 읽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1권은 이미 작고한 시인들을, 2권은 생존 시인들을 다루고 있다. 작고한 시인들의 흔적들을 찾아나서는 1권 못지않게 2권은 살아있는 시인들을 직접 만나 얘기하고, 때론 술 한 잔 주고받기까지 더욱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다.

 

  이 2권의 책은 시 해설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아니 어떤 시 해설서보다 더욱 충실한 해설서, 해설다운 해설서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기행문이다. 기행문의 박진감과 현장감, 그리고 살아있는 시를 만나게 해주는 귀한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정작 저자 자신, 즉 ‘신경림을 찾아서’는 없다는 것이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보는 새벽

    별들은 점잖지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신경림, 〈주천강 가의 마애불―주천에서〉전문


  이 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주천강’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신경림 시인이 본 그 모습을 나는 가서 보아야 하겠다. 그래서 그 감동 그 느낌 그대로를 느껴보고, 별을 보고, 하늘을 보고, ‘병신걸음, 곰배팔이 걸음’도 걸어보고, 춤도 추어보고, 그렇게 ‘장난스러운 웃음’도 웃어보면 정말 좋지 않을까?

 

  그래, 나도 한 번 그 길을 걸어가 보자. 꼭 결심을 실행해 보리라. 어쩌면 나도 ‘시인을 찾아서’ 한 권 쯤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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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수잔 벅 모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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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글과 생각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영화나 문학을 공부하자면 으레 한번쯤 벤야민의 생각과 마주치게 된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나 '보들레르에 관한 몇 가지 모티프', 그리고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등등의 모노그래프를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으리라. 번역된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벤야민의 글쓰기는 미묘한 구석이 적지 않다. 하나의 테마 안에 이질적인 사상들이 무수히 배태되어 있다. 그래서 한 편의 글로 통하는 입구도 그만큼 다양하다. '현대성' 논의에서 벤야민이 차지하는 특출한 위상은 그의 비극적인 생을 두고 볼 때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생전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으되 안정감 있게 사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벤야민. (벤야민의 개인적 삶이 어떠했는가를 보고싶다면 <한 우정의 역사>(한길사)라는 서간집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의 대학교수 지원은 그 논문(<독일 비극의 원천>)의 난해성으로 철회되었다. 생전에 직접 단행본으로 묶은 책도 많지 않다. 그는 오히려 라디오방송대본, 잡지기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관지 '사회연구소' 등에 발표한 단평, 잡문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다듬어갔다. 알레고리에 대한 천착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다.

<독일 비극의 원천>, <일반통행로> 등의 저작들은 지금 국내 출판사들이 번역중이다.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의 핵심저작으로 알려진 <파사주>에 관한 해설서다. 엄밀히 말해 <파사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본은 벤야민 자신이 세운 야심적인 프로젝트(그래서 "아케이트 프로젝트"라 부르기도 하는 것)을 위한 메모뭉치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 미완성 유고(遺稿)의 치밀한 연구로, 벅모스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 <파사주>가 만일 벤야민의 손에서 태어났다면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그 밑그림을 그려준다. 이 해설서 또한 야심적이라 할 수 있다. <파사주>가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은 롤프 티데만이란 벤야민 연구자의 공적이었고, 또한 그것은 독일 주어캄프란 출판사의 기획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공저작권(public domain)이 성립되지 않고 <파사주>의 저작권은 주어캄프에 귀속되어 있다. 

<파사주>의 국내 번역은 파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긴 했지만. 저작권 확인과 번역자 선정 등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주어캄프 출판사에서도 아주 애매한 태도를 보여 국내 출판사들 사이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편히 책을 읽지만 하나의 책을 두고 벌어지는 일은 가위 첩보전 양상을 띤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이런 치졸한 문제점을 잊고 싶다. 다만 책임있는 번역자, 국내 벤야민 연구의 권위자가 <파사주>의 번역에서 배제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명히 인맥과 명성, 보신주의나 업적주의에 이 흥미로운 책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벤야민을 번역 중인 출판사들이 이 책을 상업적인 소득원으로 이용할 리는 만무할 테니 책임 있는 처사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 잠깐 이 책에 관해 말하도록 하자. 해설서를 굳이 해설하고픈 마음은 없으니 짧게 쓰자. '읽을 만하다!' 풍부한 도판과 벤야민의 <파사주>에 관한 서지학적 정보가 매우 충실히 담겨 있고, 번역의 상태도 아주 좋다. 책값도 싸다. 다른 출판사에서라면 이 정도의 분량에 이 정도의 값을 매기지 않는다. 김정아라는 번역자의 능력이 만만해보이지 않는다. 벤야민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문화사적인 테마에 몰두했던 벤야민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요 정도만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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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공책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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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식의 '우연의 미학'을 만끽하는 2005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심오한 미스테리로 가득 차 있는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안에 얼마나

감동적인 서프라이즈가 소용돌이 치는지

새삼 눈물이 나고 겸허해 지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혹시 로또 대박...그러면 정말 머리 숙여 감사하겠는데요 흠흠)

 

책 '빨간공책'은 에, 폴 오스터의...뭐라 해야 할까...에세이?

 

'빨간 공책'이 재미있는 건...

폴 오스터의 소설에 담긴 기묘한 사실주의와 신비주의의 버무림을...

작가가 일상에서도 진짜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을 본지 몇 달 돼서 하나하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렇다고 이 글을 쓰기 위해 한번 본 책을 다시 넘긴다면...그건 별루

쿨하지 않은 것 같아 통과합니다~)

 

폴 오스터 자신이 경험한 우연과 지인들의 전해주는 우연들을

빨간 줄 쳐진 노트에 뾰족한 연필로 사각사각 옮겨 적은

듯한 작은 책입니다(실제로 책 활자가 뭔진 모르겠지만

에...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쓴 '필기체'거든요)

 

예를 들어..

아주 희귀한 책을 애타게 찾고 있던 사람이...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책을 찾아다녀도 절대로

구할 수가 없어 거의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느날...길을 가다...우연히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그 책을 읽고

있는 걸 봅니다...원래 붙임성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냥 용기를 내어 "그 책을 사방팔방 찾고 있었다'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방금 이 책을 다 읽었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라며

"이 책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겁니다..."나는 오늘 이책을 당신에게 주기 위해

여기 있었던 것 같다"면서요...

뭐 진부한 우연일 수도 있는데...

암튼 책에는 이런 '리얼' 케이스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그리구 오스터의 글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책을 번역한 분이 쓴 '옮긴이의 글'입니다.

 

이 분이 '빵 굽는 타자기'를 번역했는데...실수로 그만

policeman을 정치인으로 옮겼답니다...politician으루 잘못 봤나 봅니다.

자기도 모르고 있다가 독자의 지적을 받고 정말 너무 창피했다고 하네요.

너무 쉬운 단어니까...정말 100% 실수지요.

그런데 한 참 후 일본에 갔다가...

서점에서 일본어판 '빵 굽는 타자기'를 발견하고는 한번 넘겨봤는데...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일본 번역자도 똑같이

policeman을 정치인으로 옮기는 실수로 했다네요...

폴 오스터를 번역하면서 폴 오스터식 우연을 경험했으니...

소 베리베리 오스터네요~

 

 

제 앞에도 어느날 환상 터널이 짠 하구 입을 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연의 미학까지는 아니지만...제 버전의 우연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얼마 전, 아주아주 추운 토요일에

양식을 준비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원래 계산을 잘 못하는 머리라...

수퍼 가서 바나나 맛 아이스크림 한통, 다이어트 콜라 한병

동네에 새로 생긴 크라제 버거에 가족 손님들이 버글대기에...

따라 들어가 이름 잘 기억 안나는 버거 하나랑, 칠리 핫도그를 사고...

요즘 대박난 김밥천국에 가서 늘 먹는 2000원짜리 참치 김밥을 주문했는데...

앗, 김밥 살 돈이 한 1000원 정도 모자란 겁니다. 그래서 1000원짜리 기본 김밥으로

바꿔달랬는데 종업원이 참치 김밥 다 싸놨다고 툴툴대길래

집에까지 가서 돈을 가져와야 하나 고민 하는데...

김밥집 사장님이 나오시더나 그냥 참치김밥 가져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이삼일 후 이번에는 편의점에 가서리

그때 비타 500하구, 다이어트 콜라 작은 거 하나하구, 녹차하구 또 음료수와 간식꺼리를 샀는데

가진 돈 보다 총 금액 초과 사태...이것 저것 뺐거든요...

마지막에 콜라랑 비타 500만 남았는데두 딱 100원이 모자란 겁니다...

두 사람이 갔으니까..콜라랑 비타 500 은 먹고 싶은데....

돈은 없구...편의점에서야 깎아줄 수도 없구요...

그런데 아르바이트 학생이 자기가 100원을 내주겠다네요???

세상에...이 사람이 착한 걸까(요기서 경제가 어려운데 100원을 너무 하찮게 본다고

이 젊은이를 욕하시면 얘기 자체가 성립이 안 되므로 너그럽게 넘어가시길...)

암튼 잠깐 어안 벙벙한 상황에서도 주머니를 미친 듯이 뒤지다 보니

네, 100원이 나왔습니다~

 

뭐라고요??? 이걸 에피소드라고 썼냐고요???

오스터식 우연의 미학은 커녕 그 발가락에도 못 미친다구요?

맞습니다...그래서 2005년에는 눈에 불이 나도록 한번 찾아보려구요...

'세상에 이런 일이' 싶은 재미있고 기쁘고 즐거운 우연을요...

 

그래서...음...사무실 책상에 일종의 부적을 장치해 놨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하울의 방처럼요...라고 하면 거짓말이구요...

 

 

 

 

짠, 이것은 '승리의 여신'입니다. 브론즈로 만든 니케입니다~

미모의 여성분이 '승리하는 한해가 되라'며 만들어 주신 겁니다...

적극적으로 날개짓 하고, 결국에는 훨훨 날아오르고야

말리라는 다짐을 매일 상기하기 위해 책상 한쪽

구석에 세워놓았습니다...

 

 

 

책상 오른쪽에는 여행 책들을 탑처럼 쌓아놓았습니다...

산행길에 돌멩이를 하나씩 올려 소원을 빌듯 말이죠...

 

건 그렇고 사진에서 보이는 론리 플래닛 '인도'편 바로

아래 있는 '아내의 여자친구'는 고이케 마리코라는

일본 여자가 쓴 책인데...

우연히 읽었거든요...

세상을 굳이

남자 대 여자로 나눈다면

갖가지 상황이 여성의 손을 들어주는 갖가지 우연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책입니다(잠깐, 그걸 그냥 우연이라고 해두

되나...필연일지도 모릅니다만...그러면 이 블로그 얘기

자체가 성립이 안 되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암튼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고 가슴이 설레는

각종 우연의 미학을 만끽하는 2005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어쩌다 보니 블로그 첫 문장과 비슷하네요...오홋, 우연입니다요!)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230&menuId=6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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