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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글쓰기 - 우리 말로 끌어안는 영어
최종규 지음 / 호미 / 2012년 1월
평점 :
최종규님의 '뿌리 깊은 글쓰기: 우리 말로 끌어안는 영어'라는 책을 힘겹게 읽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하고 이 책이 나름의 가치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나라면 구매하지는 않았을 종류의 책이다.
책은 우리 삶 속 속에 깊이 박힌 영어 표현들을 문제 삼는다. 저자가 선정한 108개의 영어 표현들은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그럭저럭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처럼 굳이 이런 영어 말을 쓰지 않고 한글로 써도 문제없다.
사람들이 쓰는 글이 그 사람의 얼을 반영하고, 한국인이 한국말을 써야한다는 평범한 명제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 책의 입장은 갈수록 영어 표현이 범람하는 현실에 비추어 칭찬받아 마땅하다. 나도 한국에서 영어 표현이 튀어보이거나 유식해보이기 위해 마구 사용되는 것을 보며 실소를 머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한글로 써도 충분한 것을 영어로 쓰는 사례를 그냥 문제만 삼았다면, 그냥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한글식 표현만 제시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나는 그다지 불만을 품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불평으로 가득한데 동의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또 어딘가에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것인지 몰라도 똑같은 이야기가 몇 차례 반복되기도 한다. 책을 짧은 시간에 다 보려는 사람에게 좋은 구성은 아니다.
책의 구성은 예를 들어 '레스토랑'이라는 말을 문제삼고자 하면 레스토랑이라는 영어 표현이 포함된 어떤 책의 일부 문장들을 맨 처음에 배치한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밥집', '만남터', '찻집' 등으로 바꿔볼 뿐 아니라, 문장에 포함된 한자식 표현들을 가능한 모두 한글로 바꿔보는 식이다. 문제가 되는 건 저자가 영어식 표현 대신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여 제시한 한글 낱말이 반드시 올바르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자식 표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아주 틀렸다거나 한 것이 많지는 않지만 한두 개의 극소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언제부터 한글만 써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영어와 한자를 많이 쓰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쓸데없이 영어, 한자를 쓰는 것은 나도 반대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현대 한국 사회가 서구식 근대 국가인 일본을 추종한 지식인, 일본의 식민지배 수십 년 그리고 뒤를 이은 미국의 직간접 지배의 결과물이다. 현대 사회의 삶의 상당 부분은 근대 이전 한국인들이 접하지 못한 양태다. 그러므로 그 삶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도 새로운 것들일 수밖에 없다. 영어와 특히 일본식의 한자어가 우리 언어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바람직하지 않아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삶 속의 외국어에 대해서 개탄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한글이 우리 것이고 아름답고 기타 등등 온갖 방식의 찬양을 할 수 있지만 사실상 한글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어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앞부분을 살펴보니 저자가 한글만 쓰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유보적인 자세를 책머리에서 취하고 있긴 하다. 영어 표현은 잘 모르겠으나 한자는 말의 뜻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한자 표현이라고 해서 저자처럼 무조건 다 한글식으로 바꿔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의 본뜻을 곡해할 수도 있다.
지난 해 화제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인기에 힘입어 정했다는 혐의가 강한 '뿌리 깊은 글쓰기'라는 제목은 실상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뿌리 깊은 글쓰기'가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가능하면 한글로 쓰자라는 평범한 명제는 언제라도 수긍할 수 있고 나도 주장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더 얻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나보다 더 어린, 언어 파괴가 극심한 세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리라. 한글을 사랑하자는 말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와 사회구조상 바꾸기가 간단하지는 않다. 그런 현실도 인정하는 상황에서 한글 사용 확대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