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Rorty, <Honest Mistake>, in Philosophy as Cultural Politics 번역.>

 

  사람들은 반어법 없이 스스로를 냉전적 자유주의자(cold war liberal)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말은 경멸적인 것으로 의도되었다. '입좌파(parlor pink)' 또는 '구찌 마르크스주의자'처럼, 이 말은 특정한 종류의 위선자들 - 어떤 사람이 냉전을 지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계속 '자유주의자'로 취급하는 경우 - 을 묘사하려고 의도되었다. '자유주의자'라는 문구는 그가 더 이상 그렇게 이름붙여질 수 없다는 것을 완전하게 알아야만 하는 문구다. 어떤 사람을 냉전적 자유주의자로 묘사하는 것은 그가 배반했다는(sold out) 것을 암시한다. 어쨌든, 그들이 그들의 성공을 진전시키거나 또는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왜 보수반동적인 운동(enterprise)을 지지해왔던 것일까?

 

    가장 눈에 띄고 영향력 있는 냉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전-스탈린주의자, 또는 전-트로츠키주의자, 또는 1930년대 좌파적인 정치에 가득했던 가혹한 당파주의(bitter factionalism)를 경험했던 전-공산주의자(ex-fellow-traveler)들이다. 이런 당파주의는 소비에트 연합이 피로 물든(blood-soaked) 폭군에 의해 강탈당했던 것인지 또는 여전히 사회정의를 위한 희망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인지에 관한 불확실성에 의해서 일어났다. 이 질문을 둘러싼 논쟁들의 가혹함은 1940년대와 1950년대로, 즉 왈라스 대 트루먼 그리고 히스 대 챔버스가 스탈린 대 트로츠키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옮겨갔다. 그래서 '괴뢰(선동당한 자, dupe)', '배반자(sellout)', '변절자(turncoat)', '탈당파(renegade)' 같은 단어들의 무분별한 사용이 행해졌다.

 

    1939년과 1989년에 이르는 50년의 대부분 동안, 이 두 좌파 진영들은 불성실함(dishonesty)의 책임을 서로 교환했다. 양쪽 다, 이 문제들(issues)을 파악하고 증거를 평가할 충분한 지성을 갖춘 사람이 상대편에게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말하자면, 모스크바에서 반대파들(trials)을 숙청한 이후 어떤 성실하고 식견 있는 사람도 공산주의자 정당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성실하고 식견 있는 어떤 사람도, 전후 그리스 정부에 의한 그리스 반란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와 처형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대통령인 트루먼에게 투표할 수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소련(USSR)에 관해 1948년 공산주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지배한 이후 평화와 자유의 측면에서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지 보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칭(self-proclaimed) 좌파들이 어떻게 FBI에 정보를 넘겨줄 수 있는지 보지 않았다. 각각의 그룹이 다른 이들을 묘사하는 용어들은 성실한 실수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수사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한다. 조지 오웰에 관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을 떠올려보자. 히친스는 여기에서 오웰의 반-공산주의가, 그가 살아있을 적(had he lived), 베트남에서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그를 이끌었을 것이라고 메리 매카시가 몰래 두려워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히친스는 그녀의 두려움이 근거없는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는 그녀에게 오웰은 "무조건적 탈식민화를 바라며, 또한 ... 미국이 야망을 가지고 하려는 제국의 계승자 역할을 분명하게 보았다"고 설명했다. 히친스는 오웰의 반-제국주의가 그의 반-공산주의에 우세하리라는 것, 즉 그가 냉전적 자유주의자가 절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할 수 없다. 매카시처럼, 나는 그 자신의 반-제국주의에 우세하는 오웰의 반-공산주의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다른 20년을 살아왔다면, 그는 아마도 시드니 훅, 제임스 패럴, 그리고 베트콩과의 투쟁을 고집할 것을 미국에 촉구한 다른 많은 전-트로츠키주의자와 함께 했을 것이다.

 

    오웰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10년 전에 그가 스페인에서 다른 길을 가고, 다른 전선에서 싸웠으며, POUM을 결코 지원하지 않았으며,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일어난 것의 스탈린주의적 버전을 채용했고, 또한 그래서 카탈로니아 찬가를 쓰는 일이 없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는 아마도, 2차 대전 이후, 처칠의 반-공산주의를 그가 예비-식민주의를 반대했던 만큼이나 맹렬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어떤 실수가 그의 지성 또는 성실함 둘 중 하나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히친스는 마치 그것이 오웰이 언제나 옳은 편에 서게끔 해준 도덕적인 덕목인 것처럼, 그것을 하는 데 행운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것처럼 썼다.

 

    히친스는 오웰의 자전적 주장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가 불편한 사실들을 직면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용했다. 히친스는 오웰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사실, 즉 그의 직면하는 힘에 관한 존경은 그가 스탈린주의적인 국면을 결코 겪지 않았다는 것, 즉 갑작스런 환멸(disillusionment)에 의해서 치료되거나 씻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이것을 장식하고(glosses) 있다. 이는 스탈린주의적 국면을 겪은, 또는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존경하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정치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엇나간 이런 모든 사람들은 오웰이 언제나 옳은 편에 설 수 있게 해준 그 덕목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히친스는 모든 성실하고 지적인 사람은 미래의 역사가들이 동의할만한 정치적 위지들을 채용할 것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아무런 당혹감에 노출시키지 않고서 오웰에 의해 구성된 서간들, 서평들, 그리고 에세이들을 다시 인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쇼와 예이츠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무솔리니에 관해 말한 것들을 다시 인쇄해야 한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르트르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레이몽 아롱인간 찌꺼기(scum)”로 쓴 것과 같은 식의 반-공산주의에 관한 그의 서술들을 다시 인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당혹감은 도덕적으로 관련된 사실들은 그것을 알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 곁에 있다는(morally relevant facts were there for all to see), 그리고 사람이 그들을 직면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적인 만큼 도덕적인 결함이라는 것을 함축하는 관점으로부터 유래한다. 이런 관점은 탈당파(renegade)”배반자(sellout)”와 같은 단어들에 관한 좌파들의 맹신(fondness), 더 일반적으로는 좌파 지식인들의 악명높은 깐깐함(priggishness)의 배경(lies behind)이다. 이런 깐깐함은 우파 지식인들의 무자비함(heartlessness)과 비교할 때에는 부차적인 악덕이지만, 그것을 북돋아서는 안된다. 히친스의 책과 같은 책들은 그것을 북돋우고 있다.

 

    도덕적 실패의 징후로서 정치적 불일치를 바라보는 것은 악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죄의 개념, 즉 신성한 빛으로부터 계획적으로 돌아서는 것으로 되돌아가는 도덕적 심리학을 전제한다. 칸트는 이런 신학적 전통으로부터 근본적 악(radical evil)의 개념을 물려받았다. 그는 그것을 도덕적으로 된다는 것은 모든 합리적 존재들에게 그 진리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원리를 향한 복종의 문제라는 생각과 결합시켰다. 최근의 많은 도덕철학자들은 여전히,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결정들은 그 대전제가 명확하게 드러나있는(luminously clear) 원리들이고 그 소전제는 순수한 경험적 사실들인 실천적 삼단논법들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철학자들은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예를 들어 인종주의자나 동성애혐오자들)비합리적이라고 묘사하곤 한다. 타고난 능력(innate faculty)을 훈련하는 것에 관한 비난받을만한 실패로서 간주되는 비합리성은 그러므로 죄의 세속적인 등가물이 된다.

 

    듀이는 도덕성에 대한 칸트적인 사고방식을 플라톤주의와 기독교(Christianity)의 가장 나쁜 모든 것을 통합한 것으로서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능력 심리학(faculty psychology), 근본적 악의 개념, 도덕성-신중함의 구분, 그리고 실천적 삼단논법의 모델을 폐기할 것을 재촉했다. 마치 헤겔처럼, 듀이는 도덕적 원리들을 자기증명적인 진리들로 보지 않고 과거의 실천들의 그럴듯한 요약(rough summaries)으로 보았다. 그는 어떤 특수한 경험적 사실도 어떤 특수한 도덕적 선택을 결정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믿는 것과 우리가 하는 것에 관한 결정들을 우리의 믿음과 욕망의 연결망(networks)을 끊임없이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episodes)로 이해했다.

 

    듀이적인 관점에서는, 오웰이 언제나 옳은 편에 있었던 이유에 관한 가장 좋은 설명은 단순히 말할 수 없는 행운(sheer dumb luck)이라는 것이다. 오웰은 옳은 정치적인 경로, 즉 만약 모두가 그런 경로에 있다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역사가 결정해온 그런 것들로 바꾸어야 했을알맞은 시점(right times)에 알맞은 곳(right places)에 있었던 것 뿐이다. 성실함은 오웰의 정치적 선택에 관한 좋은 설명이 아니며, 불성실함 또한 엘리엇동물농장의 초고를 거절한 것에 관한 좋은 설명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듀이가 하는 것처럼 도덕적 선택에 관해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성실한 여자도 1939년에 스탈린이 미친 폭군이라는 것을 아는 데 실패할 수 없었다.”라든가 또는 어떤 성실한 남자도 하원비미활동위원회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have named names to the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멈추어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1930년대가 저열하고 불성실한 10(a low dishonest decade)”이라는 오든의 묘사를 반복하는 것 또한 멈추어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레옹 블룸과 스탠리 볼드윈이 그들의 결정의 결과를 비참할 정도로 잘못 계산했다는(tragically miscalculated) 것을 말해주지만, 그들이 비열하게 행위했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는다. 블룸은, 적어도 그가 정부의 수반으로 있었을 때 만큼이나 명예로운 사람이다. 그의 완전히 비참한 실수들은 그들이 해온 것(they come) 만큼 성실했다. 만약 그 당시에 파시즘이 승리하지 않았다면(if fascism were not to triumph) 그 때 내렸던 정치적 선택들에 관해 처칠은 옳고, 블룸은 그르다. 역사는 처칠의 편이지만, 이것은 처칠이 원리에 대해 믿음이 충만한 상태로 남아있었고 블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며, 또한 처칠이 블룸보다 더 합리적이기 때문인 것도 아니다. 처칠은, 오웰처럼, 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루이스 메난드(이와 관련해서) “스탈린이 실제로 나쁜 놈이라고 또는 심지어 트로츠키주의적 버전으로도 공산주의는 그른 길이라고 이웃보다 1~2년 정도 먼저 결정한 것이 한 사람을 덜 믿음직하게 즉 [] 성실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어떻게 소비에트 연합에 반대해서 돌아서는지에 관해서 큰 강조점이 놓이게 된다.”고 언급한다. 메난드의 강조는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이것은 시카고 대학에서 10대 학생일 무렵, 그 부모들이 모스크바에서 미국 공산당을 해체할 때까지 기다렸던 동료 학생들에 비해서 상속받은 우수함이라는 거만한 느낌을 즐겼던 것을 내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부모보다 5년 뒤였다.(That was a whole five years later than my own parents, who had broken in 1932.) 만약 내가 히친스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예외적으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성실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들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당의 지도자들과 긴밀하게 일한 경우였고, 거의 모든 동지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야 배운 것들을 먼저 배웠다.

 

    정치적 사건들의 변화 속에서, 관련있는 경험적 사실들이 모두에게 명백해지게 되는 특정한 시점이 있고, 그래서 단지 불성실함만이 그 사건들의 함축들을 보는 것으로부터 한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는 그러한 생각은 과학에서 결정적 실험이 과학혁명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나쁜 생각이다. 후자는 피사의 교수들이 갈릴레오가 떨어뜨린 무게가 같지 않은 두 물체가 동시에 탑의 바닥에 내려앉자마자 재빨리 아리스토텔레스를 거부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들이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통해서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자마자 프톨레마이오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1850년에 랭카셔의 공장 또는 피카디의 광산에서 감지된 것(a glimpse)이 모든 합리적 인간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을 고려하는 데 충분하다는, 또는 1950년에 굴락과 관련된 폭로가 사회주의는 노예를 향한 길이라고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듀이는 이전에 존재하는(pre-existing) 기준의 적용을 그것으로부터 제거해나가는, 의사결정에 관한 플라톤주의적 모델은 무시되어야만 한다고(should be set aside)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이성"이라는 그리스의 개념을 "지성"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차이는 숙련된 목수의 사고과정과 유클리드 기하학자의 사고과정의 차이이다. 미국의 냉전적 자유주의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람 가운데 하나, 라이오넬 트릴링은 듀이의 제안에 찬사를 보냈다(applaud). 트릴링은 그가 "우리가 그의 지성이 찬양받는 한 사람에 관해 들어왔기 때문에 긴 시간이 걸렸다 - 그 지성이란 다시 말해서, 그의 마음의 활동에, 그 중심성, 그 유연성, 어려움과 복잡함에 관한 그 깨달음, 그리고 어려움과 복잡함을 마주하고 다루는 그 준비다." 라고 말할 때, 듀이가 얻은 것에 관한 그의 고유한 이해를 표현했다.

 

    비평가이기보다는 소설가가 되길 원했던 트릴링은, 소설이란 인간사(human affairs)에 지성을 적용한 지배적 사례(paradigm example)라고 생각했다. 목수가 기하학자가 되는 것처럼 소설가는 이론가가 될 수 있다(For the novelist is to the theorist as the carpenter is to the geometer). 트릴링은, 소설은 "좋은 모양과 예의범절(shapeliness and decorum)을 선포하는 데 무관심한 모든 장르이고, 또한 그것이 현실성 자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실체들(substance, which it presumes to say is actuality itself)에 가장 많이 공헌하는 장르다; 그것은 자기충족적이고 무조건적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가장 적은 장르다."라고 적었다. 합리적인 결정 이론가들처럼, 기하학자는 좋은 모양과 예의범절을 바란다. 그래서 무엇이 행해질 것인가에 관해 칸트가 "순전히 합리적인 결론(the only rational conclusion)"이라고 부른 것에 닿길 원하는 칸트주의 도덕철학자들은 그렇게 한다 모든 성실한 경험적 연구자들도 수용할 수 있는 소전제와 결합되어있는 자기-증명적 대전제로부터 이끌린 타당한 추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결론.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희망을 포기한다면, 그는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말해질 법한 다른 가능한 그의 이야기들 가운데서 왜 그가 그렇게 한 것처럼 행위하고 있는지 즉 그의 삶의 소설 에 관해 자기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서사(story)를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성실한 남녀는 이런 이야기들이 진실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에 관해 다른 견해를 가질 것이고, 또한 이런 모든 이야기들은 많은 느슨한 줄거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트릴링이 출간한 여행의 중간The Middle of the Journey이라는 한 소설 안의 중심적인 캐릭터 하나는 휘태커 챔버스, 그의 초기의 명민함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학교에서의 경험(a college acquaintance)을 모델로 삼앗다. 트릴링은 그의 세대에 가장 존경받던 미국인 문학가엿으며, 또한 챔버스는 당대의 가장 정치적으로 영향력있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챔버스에 관한 트릴링의 소설은 놀라우리만치 적은 관심만 받았다. 이렇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단지 챔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히스에 대해 간첩행위로 비난하기 이전에도, 챔버스는 히틀러가 폭로되었던 바로 그 때, 우리가 스탈린과 싸워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미국의 여론에 납득시키는 데 힘써왔다. 1944년 중반부터 1945년 중반이라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타임Time지의 외신보도 편집자로서 그는 그가 타임지를 통해 널리 알리고픈 반-공산주의적 메시지들을 부인하거나 약화시키는, 외국의 특파원(correspondents)으로부터 온 소식들을 에누리없이(ruthlessly) 교정하고, 또는 망설임없이 버렸다.

 

    그러나, 그의 편집보다 중요한 것은 헨리 루스가 출판하는 모든 잡지들이 결국에는 채용한 완고한 반-공산주의적 논조를 강화하도록 루스를 설득하는 데 챔버스가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챔버스가 얄타 회담에 관하 아주 곤란한 칼럼을 쓰고 있을 때, 루스는 그것을 출판해야 한다고 완전히 확신했던 것은 아니었다(was not at all sure). 1945, 그는, 오웰의 동물농장을 거부한 다양한 출판인들처럼, 우리가 스탈린을 잔인하다고 여겨야만 하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서 성실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출판인들처럼 루스는 여전히 USSR과 민주진영(the democracies) 사이의 전시협정(wartime cooperation)이 전후 시기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희망을 배제하는 것을 도울법한 어떤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챔버스의 쪽글은 출판되었지만, 루스의 회사에서 일하던 다른 저널리스트의 대다수의 극심한 반대만 불러왔다. 1945, 미국 언론의 많은 구성원들은 1948년 대선에서 헨리 왈라스에 의해 표현되었을 법한 그런 의견들을 고수하고 이었다. 그 해에 왈라스가 이길거라 투표한 백만의 유권자들은 스탈린에 관한 미국 여론의 이러한 부분과 전후 세계의 본성에 관한 증언자들이다. 이 부분은 레닌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에 관한 미국의 조치를 부끄럽게 여기고 반-공산주의가 가능한 한 뉴딜 정책의 대부분을 무효화시키는 구실로서 공화당에 의해 사용될 것이라고 올바르게 걱정한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특히 잘 나타났다(especially marked).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트루먼 독트린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USSR을 견제할 필요에 관한 조지 케넌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reluctant). 챔버스는 이렇게 왈라스주의를 예견하는 정신상태를 완전히 이해했으며, 그걸 바꾸려고 최선을 다햇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 속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루스가 그와 같이 일하는 스탭들로부터 들려온 챔버스에 관한 불만의 압력에 굴복하고 그를 외신보도국으로 보낸 뒤 3년 동안, 잡지의 관점은 챔버스가 바라던 바로 그것으로 바뀌어갔다. 당대의 방송권력(the media powerhouse)이던 루스의 조직 속에서, 챔버스는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다.

 

    그러나 챔버스의 이름은 트릴링의 소설이 출판된 이후인 1948년이 되어서야 널리 유명하지게 되었다. 이 해는, 하원비미활동위원회 이전에, 그가 1939년에 안보부 비서(the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Security)였던 아돌프 벌에게 챔버스가 이미 했던 이야기를 그가 반복했던 바로 그 해다: 그 구성원중의 하나가 앨저 히스인, 1930년대 워싱턴의 핵심부(operating in Washington)를 둘러싼 소비에트의 간첩에 관한 이야기. 히스의 경우가 완전히 탄로난 뒤에 트릴링의 책을 읽고 또한 기포드 맥심 캐릭터가 챔버스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서와 낸시 크룸 잘난 척하는 동지들 의 캐릭터는 앨저 히스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 가설은 틀렸다; 트릴링은 그가 그 책을 쓸 때 히스의 존재에 관해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커플 사이의 완전히 우연한 평행은 인상적이다.

 

    오늘날 챔버스는 비웃음을 사며 이따금씩 참고된다. 최근의 트릴링 소설 광고에서는 그를 변절자(turncoat)”로 부른다. 그는 자주 간사한 배신자(professional apostate)” 또는 간사한 전-공산주의자(professional ex-Communis)”로 묘사된다 그가 돈 또는 명예를 위해 그것에 가담했으며 또한 그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을 전달려고 선택된 표현(epithets). 그러나 트릴링은, 히스의 대변인(변호사, attorney) 해럴드 로젠왈드가 변호를 위한 증언을 요청했을 때, 챔버스는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답변했다. 로젠왈드는 트릴링의 보고에 경멸적인 분노의 폭발이라고 반응했다. 대변인은 트릴링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불성실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맺었기에 모욕적이라는 것을 그럴듯하게 끌어낼 수 있었다(Contemptuous, presumably, because the attorney had concluded that since trilling was obviously not stupid, he must necessarily be dishonest). 챔버스와 히스에 관한 성실한 실수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로젠왈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트릴링은 1975년에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읽히지 않은 자신의 작품(his little-read novel)의 신판에 서문을 쓸 때, 로젠왈드와 나눈 대화를 보고하면서, 그리고 챔버스의 도덕적 성격에 관한 그의 확신을 재확인하면서, 논점을 하나 만들었다. 이것은 첫 출간에서 28년 뒤, 챔버스가 죽은 지 14년 뒤 그리고 트릴링의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였다. 트릴링은 여기에 챔버스는 그의 조국(his own country)에 반대하는 간첩활동에 참여했었, 그 뒤 한동안 그가 친구로서 소중히 여긴 사람을 포함하는 그의 고유한 [반역]을 공유한 동지들로서 이름지어졌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나는 그에 관해서 이런 것들이 말해질 때, 그는 여전히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hold)”고 말한다. 나는 이 문단을 모든 정치적 실수는 멍청함 또는 불성실함으로부터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저항으로서 읽었다. 나는 이런 용어들을 분열된 충성심과 다른 도덕적 선택의 현상에다 정의를 행하기엔 매우 조잡한 것으로서 논증했다고 본다 소설 속에서 가장 잘 배우는 종류의 현상들.

 

    챔버스가 명예로운 인간이라는 트릴링의 묘사는 대중적이진 않다. 심지어 다이애나 트릴링도 남편이 나쁜 단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스파이도 명예로운 인간이 될 수 없다. 트릴링의 친구인 모리스 딕스타인, 만약 어떤 사람이 명예를 얻을만하다면 그것은 챔버스 같은 밀고자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이름을 받기를 거절한 릴리안 헬만같은 이에게는 적당하다고 그에 관해 말했다. 내가 접근할 수 있도록 딕스타인이 허락해준 한 답변에는, 트릴링은 챔버스에 관한 그의 캐릭터화를 옹호했다. 그는 헬만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간첩활동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챔버스는 그랬다고 지적했다. 그는 E.M.포스터의 유명한 경구에 관해 비평하는 방식에 의해서 나누어진 분열된 충성심에 관한 편지를 썼다: “만약 내가 내 조국을 배신하는 것과 내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조국을 배신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고 바랄 것이다.” 트릴링은 이런 일반적인 원칙 언제나 조국보다는 친구들을 선호한다 은 그 역명제 만큼이나 가망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원리들에 호소(invocation)하는 것이 책임회피, 즉 구체적이고 복잡한 수준에 머물러야 할 필요성을 회피하는 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듀이가 지성이 활동한다고 생각한 그 수준.

 

    여행의 중간, 다른 것들 중에서, 이런 종류의 구체적인 것과 복잡성에 대한, 즉 챔버스가 기포드 맥심을 아주 인간적인 비평적 지성이라고 비꼬아 부르면서 그려낸 것에 관한 일에 대한 청원이다. 트릴링이 이 소설에서 그려낸 존 라스켈은 막심의 묵시록적인 확실성과 크룸의 깐깐한 이상주의 양쪽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애쓴다. 크룸 부부는 그 당시에 네이션The Nation지와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지의 지면을 가득 채운 스탈린주의자들의 거짓말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반대로 막심은 지하 공산당에 관해 환멸을 느끼는 한 사람이었다. 라스켈은 그것의 명령 속에서 그가 살인에 참여했다는(had commited) 것을 의심했다. 당이 해체당한 뒤, 막심은 그의 삶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라스켈 스스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단지 공공주택에 관여하는 위원회(committees concerned with public housing)에 유용한 진지한 자유주의자라고 하더라도(37),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을 떠난 누군가에 관해 들을 때마다 불쾌한 감정(revulsion)을 체크해야 했다“(73). 그는 언제나 미국 공산당은 모스크바를 내쫓았다는 주장은 단지 반동적인 언론에 의해 선전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심의 배신은 이런 당연한 것들을 의문에 부치도록 그를 몰아넣었다(14). 막심의 해당 행위(Maxim’s break)에 관해 크룸 부부에게 이야기하게끔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던 그 시간에, 그는 혼란해진 것은 막심인지 아니면 너무 안일한 것이 자신이었는지 의심(wonder)하기 시작한다(167-8). 독자는 소설이 끝난 뒤에 라스켈이 트릴링이 했던 것과 같은 궤적을 따라갈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즉 왈라스보다는 트루먼에게 투표하고, 히스의 완전한 그럴듯함에 대항해 챔버스의 증거(Chambers’ charge)를 찾는 냉전적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

 

    그러나 낸시 크룸은 어떤 것에 관해서 그녀의 마음을 채울 의도가 없었다. 그녀는 단순한 자유주의자들을 경멸했다. 그녀는 막심이 당을 위해 수행하는 비밀업무를 돕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같이 식사하는 것(break bread with him)을 거절한다. 막심이 그는 공산주의자와 나치들 사이의 거대한 차이점을 볼 수 없다고 말할 때, 크룸 부부는 그들이 정치적인 의견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무질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255). 그러나, 크룸 부부가 공포와 회의감(incredulity) 속에서 막심으로부터 손을 떼면 뗄수록, 라스켈은 낸시와 아서 크룸이 그가 깨달은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완고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내, 라스켈은 자기 스스로에게 나는 크룸 부부에 관해 내가 배워온 것 때문에 막심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었다고 말한다(272). 그는 그의 생각에 큰 공백이 있다 그것은 당과 운동이 자리잡고 있었던 자리다. 그것은 또한 낸시와 아서가 있었던 자리다.”는 것을 발견한다(273).

 

    이 소설의 정점에서, 막심은 보란 듯이 으스대며, 미래는 자신과 크룸 부부와 같은 비타협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속하기 때문에 듀이적인 지성은 진부하다고 라스켈에게 설명한다. 그와 크룸 부부는 화해할 수 없는 극단에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라스켈이 온전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여전히 두 극단 사이를 지적으로 중재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라스켈에게, “너는 정신의 그러한 유연함이 장점이다 ...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었다 르네상스는 끝났다 ... 아마도 그것은 다시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미래는 아니고, 크룸 부부와 내가 승리하고 세계의 무질서에 대항해 우리 스스로를 세울 때 까지는 아니다고 말한다(355). 그는 인간적인 비평적 지성의 고귀한 행위 그것은 논증의 설득력을 지각하고 그것의 소멸이라는 사실을 묵인한다고 그가 부른 것을 라스켈이 수행하기를 재촉한다. 막심은 그가 그것을 묵인하지 않았다고 답변한다. 막심은 그가 그렇게 했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라스켈은, 오웰이 그랬을 법한 것처럼, 그것은 문제가 되는 단 한가지라고 답한다(rejoins).

 

    크룸 부부는 예견된대로 그와 그들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는 막심의 주장에 격분한다. 그러나 트릴링은 이런 유사점을 명확하게 하며 그의 소설을 썼다. 낸시 크룸이 라스켈에게 한 마지막 말은: “어제 밤에 막심이 한 말 당신은 그렇게 믿지 않죠, 그렇죠? 그와 우리는 당신에 대해서 함께 하고 있어요.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라스켈은 그것이 실제로 그렇다는 걸 완전히 잘 알고 있으면서 나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길 바랍니다.”라고 답변한다(360). 심지어 편을 바꾼 뒤에도 여전히 완전히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막심의 오만한 거드름, 그리고 그들이 듣기를 원치 않는 모든 것을 듣는 것에 관한 크룸 부부의 아이같은 거부는 인간적인 비판적 지성의 결핍이 스스로를 선포하게 만드는 두 가지 방식이다.

 

    막심에게는, 챔버스처럼, 삶은 외롭고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면 살아갈만한 가치가 없고, 전능하고, 무자비하고, 예측할 수 없고, 그리고 보상받는 어떤 것의 손길 , 역사, - 속에서가 아니라면 시간의 공포에 맞서서 홀로 설만한 가치가 없다. 타임지의 동료들이 챔버스에게 압력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어떤 힘이 내 옆에 있기 때문에 나는 실제로 지칠 수가 없다(I cannot really be beaten)”고 답변했다. 크룸 부부는 히스 부부가 그랬듯이, 영웅주의를 가장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반대에 상처입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챔버스는 자신을 따라 히스가 당을 나오게끔 설득하려고 스탈린의 범죄행각을 늘어놓고 있을 때 프리실라 히스가 그런 늘어놓기(such a recital)는 단지 정신적 자위에 불과하다고 응수했던 것을 기억했다.

 

    막심과 챔버스는 확실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키에르케고르 챔버스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 처럼 신념의 기사는 확실성을 필요로 한다거나 확실성을 욕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키에르케고르적인, 니체적인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영웅은 확실성을 향한 도전은 변명(cop-out)이며, 절대적인 합의는 논쟁에서 이기거나 반대자를 설득하는 능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크룸 부부와 히스 부부는 키에르케고르가 기독교계(Christendom)”라고 불렀던 것을 물려받은 자기만족적이고 깐깐한 사람들처럼, 구원받는 데 필수적인 것을 알았으며, 또한 그들은 모든 태도가 바르고(decent) 성실하며 지적인 사람들은 또한 이런 점을 알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당과 관계를 끊음으로써 빛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막심이 인간적인 비판적 지성이라고 부른 것을 성취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도덕적 정체성에 관해 시간과 운에 의한 창조물이라기보다는 자기충족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유혹에 저항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막심과 크룸 부부 둘 다 그들이 이러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설의 독자는 라스켈이 한 사람을 도덕적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게 허락하는 종류의 부정적인 능력(capability)을 얻을 그의 삶의 잔류자들에게 헌신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데 이끌린다. 여행의 중간, 다른 것들 가운데서, 우디 알렌이 그려내듯, 자신이 누구이고 또 어떤 것이 행해져야 하는지 결코 완전히 확신하지 않는 우유부단한 쁘띠-부르주아 무기력증 환자가 된다는 생각에 대항해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트릴링의 시도였다. 그는 이것이 라스켈이 막심과 크룸 부부 양쪽을 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라스켈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왜 부끄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를 설명하려고 그의 소설을 썼다.

 

    만약 그의 소설을 이렇게 읽는 것이 옳다면, 트릴링은 단지 막심이나 챔버스 뿐만 아니라, 크룸 부부와 히스 부부 또한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또한 이런 명예는 정치적 위치에 관한 한 사람의 선택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한 사람이 살인자, 배신자, 거짓말쟁이로 끝맺는지 또는 한 사람이 역사의 심판에 의해 비난받는지 아닌지와도 크게 상관이 없다. 나는 트릴링이 앨저 히스가 비열한 동기가 없었다는 것을, 챔버스가 그랬다고 하는 것보다 더 의심한다. 그의 오래된 친구들을 향한 챔버스의 정보제공은 세계를 구하는 데 필요한 것에 관한 그의 믿음에 의해 지시받은 것이다. 그래서 히스의 바람도 죽기 직전부터 45년간을 거짓말을 반복하는 데 쓰는 것이었다: 나는 공산주의자였던 적이 없으며, 간첩활동을 하지 않았고, 거대한 음모의 무력한 희생자였다. 알프레드 케이진1978왜 앨저 히스는 고백할 수 없었나라는 글에서 히스와 나눈 몇몇 대화는 그가 열정적인 애국자라는 것을 확신시켰다고 말했다. 이 대화들은 히스가 뉴딜 정책에 대한 자신의 공헌과 소비에트 정보국(Soviet intelligence)에 대한 자신의 공헌을 모두(as all of a piece) 안다는 것을 그가 깨달은 채로 남겨두게 했다. 둘 다 그의 조국의 미래를 위한 그의 희망의 산물이었다. 카진은 히스가 그는 당신 또는 나보다 더 좋은 미국인이었다고 믿으면서 그의 무덤으로 갈 것이다고 예견했다.

 

    나는 트릴링이 챔버스와 히스 모두 비열한 동기가 없었다고 믿은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웰만큼, 또는 트릴링 자신만큼 성실했다. 둘 다, 다양한 시간에서, 간첩이고 위증자(perjurers)였지만, 그들은 옳은 종류의 이유에서 간첩행위를 했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스스로 이해한만큼 인간성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봉사했다. 성실하게 되는 것, 한 사람의 이상에 진실하게 되는 것은 역사가 당신에 관해 말할 이야기(the story history will tell about you)와는 구체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바로 도덕적인 것이다. 역사가들에게는 당신의 동기보다는 당신의 행위의 결과가 더욱 흥미롭다. 소설가는 이 둘에 모두 흥미가 있기 때문에, 이 둘이 서로 다른 상대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과 관련된 용어들에 우리가 다가가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가 기독교와 칸트로부터 물려받아온 생각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나쁜 길을 택한 사람들은 빛에 대항해 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가정하는 생각.

 

 

    내가 그에게 적용한 듀이적인 믿음들을 트릴링이 언제나 확고하게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의 영웅찬양조의 에세이인 조지 오웰과 진리의 정치학에서 오웰에 관한 그의 태도(treatment)는 히친스와 유사하다. 그는 카탈로니아 찬가의 도덕적 색채는 아주 독특하게 단순하고 진실하다고 내뱉는다. 이어서 트릴링은 만약 우리가 오웰이 무엇을 지켰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머리가 좋아지지 않는 것, 즉 한 사람의 간단하고, 직접적이고, 기만하지 않는 지성 이외의 다른 어떤 것 없이 세계와 대면하는 것의 덕목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오웰은 덧붙여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은, 단순함과 건실함, 그리고 그들이 덕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에 관해 말하도록 우리가 허락하는 활동들을 가지는 것이다.”고도 덧붙인다. 이런 구절들은우디 알렌이 얼마나 험프리 보가트처럼 되고 싶어했는지를, 그리고 헤밍웨이는 그의 시대에 그가 질투하는 유일한 작가라던 트릴링의 강조를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그러나 이들은 트릴링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웰은 독특하게 단순하고 진실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공을 들였다. 헤밍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단순함과 건실함을 마치 그들이 시들기 쉬운 꽃잎인 것처럼(like the fragile blossoms they are) 모았다. 그는 트릴링과 히친스가 실제로 그런 것과 같은 그런 반응을 그의 독자들이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런 답변들을 얻으려는 오웰과 헤밍웨이의 시도 속에는 어떤 반박할만한 것도, 어떤 위선적인 것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에서 그런 것 만큼이나 듀이적인 관점에서는, 이런 시도들은 당신이 부족한 덕목들을 있는 척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것을 얻은 사람들에게서 확연히 볼 수 있는(characteristic) 행위들을 수행하는 것에 의해 덕목을 점차 얻게 되는 것의 문제다. 하나는, 만약 한 사람이 이런 덕목들은 힘든 노력의 결과물일 수 없으며, 선함와 맺는 독특하게 단순하고 직접적인 관계에서 나왔을 때에만 진정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단지 이런 노력들이 위선적이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칸트가 인간이라면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런 종류의 관계,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나 듀이에게서는 아니다.

 

    이런 직접성은 가능하다는 환상은 트릴링의 불운한 문구인 진리의 정치학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 문구는 정치적인 실수를 피하려면 해야 하는 모든 것은 성실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학은 진리의 과학이 없는 것처럼 있을 수 없다(But there is no such politics, any more than there is a science of truth). 갈릴레오는 한 과학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는 지적인 옳음이라는 칼로 미신과 편견을 잘라내지 않았다. 그는 단지 실제로 일어난 것과 같은 성과를 올리는 현명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갈릴레오는 그에 걸맞게(deservedly) 근대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또한 오웰도, 결코 그보다 덜하지 않게, 20세기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시대에 통용되는 의견에 저항하는 용기를 가졌던 이런 사람들에 대한 존경은, 완전히 적절하며, 실제로 필수적이다. 이런 영웅들(heroes and heroines)에 관한 존경이 없는 곳에서는, 도덕적 이상주의는 거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도덕적 진보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후기 버나드 윌리엄스가 또 다른 영웅에 관해 도덕적 운이라는 주목할만한 논문에서 말한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고갱. 고갱은 그의 책임과 그의 가족을 거부하고, 대담하게 남해로 항해를 나갔다. 우리는 그가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러나 윌리엄스가 말하듯이, 그들이 대책없이 진부하기만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고갱은 아마 화가로서 앨저 히스와 동급이 되었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불쌍한 캔버스만 생산하고, 회화의 역사가 그를 이미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는 그의 시야에만 충실한 그런 사람. 그는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옳고 갈릴레오는 그르다는 것을 논증하고 또한 성공적이지 못하게도 과학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노력한 라이프니츠의 용감하고 공상적인(imaginative) 현대적 버전 가운데 하나와 유사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의 판단에 대해 명예롭고, 서실하고, 용기있는 것의 부적절한 사례들이다. 정치학의 역사는, 과학의 역사처럼, 사물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게 되는지에 관한 관점에서 쓰여진다.

 

    단지 영웅숭배가 도덕적 진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하면, 그것은 혐오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이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for what little that is worth) 그의 실수가 성실한 것이었다고 어떤 사람이 인정하는 동안에도(while), 어떤 사람은 한 사람에 의해 혐오받을 수 있다. 노예제 폐지론자(The abolitionists)들은 리 장군이 노예제를 보존하려고 싸우겠다는 결정에 의해 혐오받았지만, 리 장군이 명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아이히만이나 수슬로프와 식사를 하고 싶어하진 않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그들이 스스로에게 했던 이야기(the stories)는 오웰과 트릴링이 그들의 삶에 관해 스스로에게 했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관해 하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성실함과 명예로움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말하고 스스로를 믿게 되는 이야기의 일관성의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이 아니라면, 적어도 선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그들의 삶에 관한 소설(a novel)을 구성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떤 사람도 의식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 속에 진짜로 담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기독교와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오직 그들이 심사숙고한 뒤에 빛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에 나빠진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이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을 불성실하고 자기기만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플라톤이 그랬던 것처럼, 일관성은 선함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일관성과 다른 어떤 대체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모든 성실한 정신에는 보이는, 조정하는 어떤 밝은 별.

 

    플라톤은 그르다.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을 할 때 또는 과학적 이론들 또는 종교적 신념들 사이에서 결정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일관된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역사의 심판이 언제나 우리 편이라는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찰지게하는 것이 우리를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지 또는 미래 세대의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맹세에 경의를 표하며, 히틀러를 죽이려던 슈타우펜베르크의 계획에 참여하길 거절한 관료들은 아주 나빠보인다. 맹세를 배반하고, 계획이 실패한 뒤 고문을 받다가 죽은 이들은 실제로 매우 좋아보인다. 그러나 각 그룹의 시야를 고정해준 어떤 별도, 그리고 각각 상대를 배반하게 한 별은 없었다.

 

    이런 별의 부재는 명예로운 사람들은 확실히 혐오스러운 것도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먼 후손들 또한 이런 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역사의 심판이란 완전히 그를 수도 있다는 것도 함축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하기를 멈춰야 한다거나, 또는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심지어 나치가 승리하고 모든 역사책을 그들이 쓸 수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슈타우펜베르크는 옳은 것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적인 비판적 지성은 곧 역사적 호기심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이 존 라스켈보다는 기포드 막심이나 낸시 크룸과 더 비슷하게 된다는 신호를 보여준다면, 아이들을 꾸짖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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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직한 실수
    from 효진이네 2013-01-10 13:16 
    <리처드 로티, <Honest Mistake> in Philosophy as Cultural Politics 요약. 원문은 http://blog.aladin.co.kr/russell85/6072772> 로티는 '냉전적 자유주의자'라는 개념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이들은 냉전을 지지한 자유주의자들인데, 언듯 보아서는 형용모순이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경멸하는 데 이러한 표현이 쓰였다. 이런 칭호를 얻을법한 사람들은 주로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