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2.0 - 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조지프 히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이마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주요 의제는, 책에서 인용하듯 "제정신(sanity)을 차리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정신이란 합리적 사고 능력이다. 특히 이 제정신이 가장 요구되는 영역은 정치와 사회, 즉 집단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다.


단, 18세기 계몽주의자(주로 프랑스 계몽주의)나 19세기 혁명가들이 꿈꿨던 것처럼 명민한 개인(들)의 계획에 따라 바닥에서부터 모든 걸 다시 "이성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200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현대 심리학의 여러 실험을 통해서, 인간은 그 정도로 "이성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고전적 계몽주의의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점진적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느린 정치(slow politics)"를 제안한다. 상품 구매를 유혹하는 광고마냥 모든 것을 즉각 판단하게 만드는 의사결정 패턴을 정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고 하는 "빠른(fast)" 문화에 대한 반대인 것이다.


다만 이 "제정신" 개념을 이성과 연결짓는 탓에, 이 책이 비판하고자 하는 이른바 "비-이성적"이라고 불리는 정치운동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점은 지적할만하다. 물론 저자는 (미국 기준) 현재 공화당의 정치행태 비판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긴 하다.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전략을 세워서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너선 하이트나 조지 레이코프같은 학자들, 정체성의 정치와 탈근대적 정치 주체를 옹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 운동 또한 이 책에서는 "비-이성적" 정치운동으로 분류된다. 음... 글쎄, 그렇게 싸잡아서 매도할 일인가? 이건 잘 모르겠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교수가 글을 이렇게 쉽고 깔끔하게 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주 탁월하다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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