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사랑의 이유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박찬영 옮김 / CIR(씨아이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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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서 가족, 동반자, 반려동물, 친구들, 그 밖에도 다양한 것들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랑의 대상과 함께 있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나쁜 일은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왜 이런 마음을 갖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또 누군가를 더 잘 사랑하는 법,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은 무엇일까. 해리 프랭크퍼트는 '사랑' 개념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하려 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고 난 뒤에야 우리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프랭크퍼트의 답변은 '사랑의 정의는 불가능하다'다. 사랑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개념을 통해서 사랑을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은 개념을 통해 정의되지 않고, 세계의 사태를 직접 지시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그 사태란, 어떤 개별적인 대상에 우리가 마음과 신경을 쓰는 상태다.


이 설명을 통해 그는 사랑에 관해 중요한 점 두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는 사랑하는 마음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대상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걸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랭크퍼트가 보기에 이런 인지적 활동은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에 마음과 신경을 쓰는 순간 그 대상의 가치가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둘째, 사랑은 도덕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요소다. 흔히 도덕적 판단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고 공평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의미에서 사랑에 반대된다. 이는 사랑을 편파적 태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랭크퍼트가 보기에 이런 접근은 잘못된 태도다. 인간의 일상적 경험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사랑이 대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판단을 아예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가? 그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이 질문에 대해서 철학적 답변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의지나 인지적 활동은 무엇과 사랑에 빠질지 결정하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내가 캘리포니아에 사는 제인을 사랑하려고 의도할 수는 있지만, 제인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면 그 의도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즉, 사랑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과 환경과 여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대상과 반드시 사랑에 빠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랭크퍼트는 이것을 사랑의 우연적 필연성이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대상을 어떻게 대하는가? 프랭크퍼트는 이 질문을 사랑하는 대상이 갖는 가치의 종류에 관한 질문, 즉 철학에서 전통적인 구별법인 수단으로서의 가치와 목적으로서의 가치에 관한 질문으로 바꾼다. 사랑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만약 사랑을 통해서 더 좋은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사랑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것은 다른 목적의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서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목적이 정해지면, 이 목적을 기준으로 행동의 전반적인 성향과 개별적 행동이 조직된다. 프랭크퍼트는 이런 방식으로 사랑이 우리를 불확실성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랑은 다 좋은 사랑인가? 이것이 프랭크퍼트의 마지막 질문이다. 대체로 사랑은 다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것, 즉 자기애 또는 이기심은 대체로 비난의 대상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때로는 자기파괴적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행위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칭찬받고 싶고 보상받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이기적인 사람인지, 이타적인 사람인지, 그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인지. 후회와 반성이란 바로 이런 종류의 무지의 징표다. 욕심과 자기기만과 무지, 이런 것들이 자기애의 이미지다.


그러나 프랭크퍼트는 이런 이기심은 진정한 자기애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자기애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버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약 자기애가 나쁜 것이었다면, 성경에서 “자기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대신 남을 사랑하라”라고 이야기했을 거라고 썰렁한 농담을 던진다. 진정한 자기애란, 앞에서 이야기한 수단과 목적에 관한 구별을 다시 끌어들이면, 나 스스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구나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다. 사랑은 내 욕구나 이익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대상이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이것이 사랑하는 대상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말의 의미다.


프랭크퍼트는 진정한 자기애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비유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알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또 아이들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에 관심을 두기를 바라고, 그런 가치있는 것에 속하는 대상들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진정한 자기애도 마찬가지다. 내가 실제로 어떤 대상에 관심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 그저 예전부터 하던 행동만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는 것, 이전보다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애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프랭크퍼트가 내놓는 사랑의 조건은 다음의 네 가지다. 첫째, 사랑하는 대상이 잘되는 것을 목적으로 둘 것. 둘째, 다른 대상에게 쏟는 관심과는 다른 종류의 관심을 가질 것. 셋째, 사랑하는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대상이 잘되는 것을 곧 내가 잘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 넷째, 사랑과 무관한 다른 동기나 의지를 제한하고 사랑과 관련된 의지에 따라서만 행동할 것.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스스로를 이런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그 목적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달성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며, 모든 행동은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항상 분명하게 설명한다. 즉, 진정한 자기애는, 내면의 갈등을 겪지 않는, 말 그대로의 통일된 인격체를 만들어준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내면이 단단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사랑의 이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해서 인격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끝나는 철학적 분석이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기대감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아주 밀도있는 논의가 포함된 윤리학 책이다. 사랑이라는 범위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의 행동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와 원칙들을 논리적으로 검토한 결과를 담고 있다는 의미다.

의식의 완전한 동질화는 의식적인 경험의 중단과 전적으로 동등하다. 달리 말하면, 지루할 때 우리는 잠드는 경향을 갖는다. - P88

자기-사랑의 가치와 중요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최소의 올바름조차 보증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은 그 성실성 때문에 부러워할만하지만, 전혀 훌륭하지는 않을 수 있다. 사랑의 기능은 사람들을 좋게 만드는 일은 아니다. 사랑의 기능은 바로 사람들의 인생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그러한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좋게 만드는 일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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