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런 책이 한두 권이겠어요. 하지만 책을 읽은 후 이 좋은 책을 독자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죠.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마구 추천을 한답니다. 추천을 받은 친구 중에 취향이 같으면 정말 좋다! 고 말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겐 이게 뭐? 하는 소리 듣기 쉽상이죠.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엔 아까운 책들이 있기 마련, 그아까운 책 세 권을 추천할까 합니다.

누가 말을 죽였을까』 이 연작 소설집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많은(!) 친구들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에 잘 모르는 출판사,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처음 추천을 한 친구가 정말 재미있다고 강력 추천을 했음에도 귓등으로 흘러 넘겼다. 근데 책을 읽어본 친구들마다 별 다섯 개 운운하며 재미있다고 추천을 했다. 안 읽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재미있다고 하는데 혼자 모른 척하고 있긴 싫었기 때문이다.(암튼 엉뚱한 자존심은 있어서 말이지;) 뭐 어쨌든 그리하여 마침내 읽게 되었다. 시쳇말로 완전(!) 재미있었다. 책을 두고 재미를 운운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렸으니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물론 내용상 짠 한 부분도 있고, 기가 막힌 이야기들도 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문체가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인지라 고향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투리를 읽는다는 것만으로 고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줄곧 고향에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의 대화를 생생하게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또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처하는 어르신(!)들의 행동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현실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가 농촌의 현실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고향에 내려가면 듣게 되는 아버지의 일상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고향이 농촌이든 도시든 간에 우리 아버지나 엄마 연세가 되는 분들의 생활상 그대로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정겹고,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하는 거다.  

빈틈없이 잘 짜인 이 연작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은데 그건 여느 작가들과 다르게 작가가 이야기로 글을 풀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 <전원일기>의 한 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여기에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책을 읽으면 바로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큰 출판사라면 마케팅 하나는 끝내주게 할 텐데, 그런 마케팅이 들어갔으면 필시 이 책도 떴을 텐데 싶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독자들이 유독, 한국작가에 한해서는 아직도(!)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 작가 이름 알리기조차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랬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내가 마케팅의 실무를 잘 모르니 하는 소리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아까운 책이었다는 것만은 말하고 싶다는!!

또 한 권의 ‘아깝다 이 책’은 죠 메노의『유령비행기』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성향을 보면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그런 까닭에 단편이 아무리 좋아도 후한 점수를 안 주게 마련이고 단편이라 하면 읽기를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편집이라는 단점에 듣도 보도 못한 미국작가라는 것과 소설인데 일러스트가 들어가 어딘지 모르게 가벼운 느낌마저 주었으니 진지한(!) 소설 독자들의 시선에 외면당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더 안타깝다. 사실 읽어보면 이 작품집은 굉장히 독특하다. 일상적인 이야기, 그 속에 존재하는 비극, 좌절, 상처들. 그렇다고 해서 독자를 꿀꿀하게 만들지는 않는 죠 메노만의 문체가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게 처리되어 읽는 재미와 함께 아련한 잔상을 남기게 하기 때문이다. 위트와 때로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이다.  

또한 짧은 단편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특유함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죠 메노가 보여주는 것은 좌절과 상실감. 그 상실감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이게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팝 아트 소설가 죠 메노 단편의 장점인 것 같다. 안 그래도 단편은 싫은데 스무 편이나 되는 단편이라니, 두 손 드는 독자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편의 묘미는 한꺼번에 다 읽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한 편씩이든 사이를 두고 천천히 읽든 단편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많은 생각거리, 그 재미에 빠져들면 단편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거다. 가끔 원서로는 호평을 받은 책들이 의외로 번역되어 나오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종종이라기보다는 일상다반사일 것이다.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분명 좋은 책임을 알지만 외면당하는 책을 보면 안타깝기 마련이다. 물론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 상황에선 당연한 소리지만 말이다. 『유령비행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는 그의 후속 작품을 기다리고 있지만 한번 외면당한 책에 또 투자하는 그런 출판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깝다. 이 책!! 

마지막 한 권의 책은 제목도 근사한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이다. 과연 제목처럼 이 책을 읽으면 내 인생이 구함을 당할까?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뭐 그런 생각을 한두 번은 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인생을 구하는 책이란 말인가? 그것도 ‘당신’의 인생을 구한다니! 평점을 보니 이게 뭐? 하는 독자들도 있고, 제목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다. 취향이니 각각이다. 이래서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잘 하니까. 근데 설마 이 책이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제목을 썼을까? 내가 봐서는 그렇지 않다. 인생에서 ‘구함을 당한’ 사람이 이 책에선 적어도 셋 이상은 나오므로. 근데 책을 읽었는데 내 인생은 왜? 라고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거야 독자들 사정이고.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는 주인공 리처드 노박에게서 일어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동안의 일들을 풀어놓은 책이다. 그 한 달 동안 노박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읽어보면 안다.(아, 이런 무성의한 글이라니;;) 대충 말하자면 이렇다. 어느 날 문득 노박에게 ‘그것’이 찾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으로 인해 노박은 이제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전혀 다른 삶이란, 그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과는 반대의 삶이란 뜻이다. ‘혼자만의 규칙’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아왔던 노박에게 그 규칙을 깨야만 하는 삶인 셈이다. 또한 ‘그것’이 찾아와 응급실로 실려 간 노박에게 전화 한 통 할 곳이 없다는 자괴감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인생 헛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기 마련. 그때 한낱 도넛가게 주인이었던 앤힐이 그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이 노박의 인생을 구한 것이다. 이 책에서 구함을 당은 사람은 노박 뿐이 아니다. 앤힐에게 구함을 당한 노박은 이후 놀라운 일들을 겪는다. 고속도로에서, 집 앞에서, 또 슈퍼에서 울고 있던 신시아는 노박이 내민 손을 잡고 자신의 인생을 살 작정을 한다. 그것은 요가 선생 시드니, 가정부인 세실리아에게도 그렇다. 앤힐에 의한 노박의 변화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란 의미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우연히 구해진 인생. 의도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이 변하는 것. 그런고로 어쩌면 이 이 책을 읽은 그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구했을 지도 모르겠다. 

첫 부분에선 조금 지루한 감을 느끼지만 이내 독특한 문체에 빠져들게 된다.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이 책은 도대체 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걸까?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고 나면 그제야 뭔가 뿌듯한, 알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내 인생이 구해졌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책을 읽은 친구와도 얘길 했지만 리처드 노박을 떠올리면 꼭 잭 니콜슨이 나왔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생각난다. 이유는 모르겠다. ‘혼자만의 규칙’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무튼 이 멋진 소설을 아직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세 권의 책을 아깝다 이 책으로 추천하고 보니 공통된 것이 보이네요. 바로 일상이라는 주제입니다. 이시백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그야말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농촌에서 분명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위트있게 풀어냈고, 죠 메노의 『유령비행기』 역시 포스트모던한 이야기들 속에서 있을 법한 일상을 그려냈다는 것과  A.M. 홈스의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역시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니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일상?!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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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0-2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책 제목이 정말 좋군요. 읽어보고 싶어지는데요.^^

readersu 2009-10-21 18:16   좋아요 0 | URL
설마 저 책을 읽고 구함을 당하고 싶어서???ㅎㅎ

머큐리 2009-10-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게 만드는 페이퍼에요...찜해 둡니다,,

readersu 2009-10-22 10:13   좋아요 0 | URL
와! 그렇다면 성공한 걸요.^^ 이 좋은 책들 많은 사람들이 많이많이 읽어주면 좋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