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대교북스캔 클래식 2
진 웹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월
절판


이렇게 짜증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세요? 살아가면서 정말로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것은 크나큰 고난을 겪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재난이 닥치고 가슴이 무너질 듯한 비극을 겪을 때는 누구나 용기를 갖고 이겨 내려고 애쓰죠. 하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짜증을 웃음으로 견뎌 내기란 정말이지...... 강한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 같아요.
제가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정신력입니다. 저는 인생이란 요령 있게, 그리고 공정하게 임해야 하는 하나의 게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그래서 만약 지면 그저 어깨나 한번 으쓱하고는 웃을 거예요. 물론 이겼을 때도 그렇게 할 거구요.
어쨌든, 전 유쾌한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71쪽

하지만 딱 한가지 로우드 고아원과 똑같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 생활이 끔찍할 정도로 단조롭다는 점이에요. 그것에서는 특별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어요. 일요일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만 빼고는. 그나마 아이스크림도 정해진 때에 먹기 때문에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었죠. 제가 그곳에 사는 18년 동안 기억에 날 만한 사건이라고는 딱 한 번, 땔감을 보관하는 창고에 불이 났을 때예요. 그날 밤 우리는 고아원 건물에 불이 옮겨 붙을 경우를 대비해 모두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야 했어요. 하지만 불은 옮겨 붙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방에 돌아가 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일로 깜짝 놀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아주 자연스러운 본성이에요. -130쪽

아저씨 생각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자질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있어야 타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친절할 수도 있고, 남을 이해할 수도 있고, 또 동정할 수도 있어요. 상상력은 어린 시절부터 개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는 상상력의 싹이 조금만 보여도 무참히 짓밟아 버려요. 그곳에서 가르치는 덕목은 단 하나, 의무감뿐이에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는 의무감이라는 말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거든요.
-131쪽

정말로 소중한 것은 커다란 기쁨이 아니에요. 사소한 것에서 얻는 기쁨이 더 소중하답니다. 아저씨, 전 행복의 참된 비법을 찾아냈어요. 그 비법이란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한없이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만 꿈꾸는 것도 아니에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에요. 그것은 농사와도 같아요. 농사법에는 조방 농업과 집약 농업이 있는데, 저는 앞으로 집약 농업 같은 삶을 살기로 했어요. 그래서 매순간을 즐길 거예요. 그리고 매순간을 즐기는 동안 제가 그렇게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거예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단지 경주를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저 멀리 지평선 끝에 목표를 정해 놓고는 헐떡대며 달려가고 있어요. 그래서 목표까지 가는 길가에 펼쳐진 아름답고 고요한 경치를 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가죠. 그러다 늙고 지치면 그때서야 목표에 도달하든 하지 않든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래서 저는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들을 가꾸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여류 철학자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는지요?
-181쪽

동지에게.
와우! 저는 페이비언주의자(1884년 시드니 웹, G.B 쇼 등이 창립한 영국의 점진적 사회주의 사상 단체 : 옮긴이)가 되기로 했습니다.
페이비언주의자는 기다릴 줄 아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 당장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혼란이 너무 심할 테니까요. 우리는 서서히 이뤄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준비가 되고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그날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산업과 교육, 그리고 고아원을 개혁하면서 준비를 할 것입니다. -182쪽

아저씨는 자유의지라는 걸 믿으세요? 당당히 밝히거니와 저는 자유의지를 믿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원인들에 의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부도덕적인 학설은 생전 처음 들어봤어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돼요. 만약 그 철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숙명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 때까지 "주님의 뜻이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제 자신의 자유의지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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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6-07-0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한 줄도 뺄 곳이 없다.

치니 2006-07-04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웅, 나도 퍼갈래

로드무비 2006-07-0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의 첫 댓글에 공감.^^

mooni 2006-07-0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알라딘 들어왔다가, 치니님 서재타고 왔는데요,
(음, 왜 지금까지는 레이니님서재 브리핑이 저한테 안보였는지 모르겠어요. 들어올때마다 엇갈린건지...;; 전에 한동안 잠수하실 때 몇번 다녀가고는, 완전히 서재는 접으셨나보다 했지 뭐여요.-_-)

레이니님한테는 뜬금없겠지만, 저는 반갑네요. ^^

키다리 아저씨, 정말 향수의 소설인데. 이렇게 다시 보니 잊혀지지도 않고, 그냥 묻혀져 있다가 꺼내진 것처럼, 생생하군요. ㅋ

rainy 2006-07-0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
나 잘 했어? ^^

로드무비 님..
감사해요 ^^
밑줄긋기가 아니라 받아쓰기 같아요 ㅎㅎ

마하연 님..
워낙 잊을만하믄 한번씩 올려서 그런가봐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보니까 다 예전에 아주 어릴 적 주워들은 걸로
여태껏 우려먹고 살아왔드라구요 ^^
빨간머리 앤, 제인 에어, 작은아씨들의 아씨들, 심지어 캔디까지..
그런 당돌하고 자아 빵빵한 소녀들이 내 마음속에서 한꺼번에 뭉뚱그려져
누가 누군지 좀 헷갈리기도 하고 ㅋㅋ
이번 참에 납량특집으로 주욱 한번 훑어보면 참 좋지 않을까 라는
야심찬 기획을 수립중입니다 ^^

프레이야 2006-10-17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키다리아저씨를 무작정 동경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본 책에서는 참 다른 의미로 와닿더군요. 위의 구절들, 물론 참 새겨볼만하구요. 특히 131쪽을 기억해두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엮으시기 바래요. 먼저 들려주신 님, 감사드리구요, 반갑습니다.~~

rainy 2006-10-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굉장히 간단명료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다시 읽으면서.
군말없이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재미도 있으면서요^^
반갑습니다. 종종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