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언니의 폐경> 김훈


형부가 제철회사 중역으로 재직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장지에서 돌아오던 차 속에서 언니가 생리혈을 쏟는다. 폐경이 임박하면 조그만 충격에도 생리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재벌회사 전무인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꺼낸 뒤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때때로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을 옷에 묻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에게 패악을 떨지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에게 이혼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한 점만 조금 불편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입사 동기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그는 승진이 느렸고, 남편이 전무로 승진하자 제일 먼저 퇴출 당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앙고라털 옷을 입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언니와의 경주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는 선선히 좋다고 대답했다. '내' 옆에서 언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금가마니> 구효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키에르 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을 발견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어머니가 이런 책을 읽게 된 데에는 마을 유일의 기독인이자 일본유학파이며 풍문의 아버지인 박성현이 관여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런 풍문은 아버지를 부추겨 어머니를 폭행하게 만들었고, 돈만 생기면 들병이에게 가져다 주고 오입을 일삼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학대를 당하면서도 두부를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 대추나무에서 떨어진 딸을 살리기 위해 폭우를 뚫고 나무를 베어 내며 강을 건넜고, 전쟁 중 부역 혐의로 갖은 고초를 받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97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화자는 어머니의 생이 얼마나 위대했었는지 생각한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붙이는 '나'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자 구성된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참가하는 '그'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엄혹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그'는 소설을 읽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살한다. '그'가 쓴 소설을 '내'가 읽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가 혼자서 정상을 공략하기 위해 떠난 뒤,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고 학생인 '나'는 시간당 3천원을 주는 '푸시맨'이 되기로 한다. 그곳에서 어떤 상사에 다니는 아버지도 열심히 전철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동안 편의점 사장은 고작 천원을 주면서 여자 알바생의 허벅지를 만졌고, 전철 안에서는 변태가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 겨울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졌다. 봄이 되고, 전철역에서 '나'는 기린을 만난다. 기린은 아버지가 틀림없어 보였지만, 정작 기린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안 일을 들려주었다. 이윽고 기린이 자신의 앞발을 '내' 손 위에 포개더니, 천천히, 이렇게 얘기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인타라망> 박성원


어느 날,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나'는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나'의 대소변도 받아 주었는데, '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69일간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했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온다. 69일 전 '나'는 아내의 진통 소식을 듣고 달려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나'는 모르는 사내에게 구조되어 어떤 집으로 가게 되지만, 그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다. '나'는 '긴급피난'이라는 명목으로 그 집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주머니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다. 병원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그 집이었고, 남자는 자신이 살해한 아주머니의 가족이었다.


<잃어버린 인간> 성석제


재종형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재당숙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고향을 찾아간 '나'는 재당숙인 이한봉에 대해 듣게 된다. 이한봉은 일제시대 때 유학을 갔다가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귀국 후 경찰이 감시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해방 후 까막골로 돌아온다.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배에 총상을 당하지만 겨우 살아난 뒤 53세로 세상을 뜬다. 나중에야 독립 유공자로 인정 받는데, 실제로 그가 어떤 종류의 독립 운동을 했는지는 모호했다. 그리고 그 이한봉의 불쌍한 쌍둥이 아들을 '내'가 행패를 부려 집에서 쫓아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상갓집에서 듣기로, 쌍둥이 형제는 굶어죽었다고 했다.


<탱자> 윤대녕


제주도에 사는 '나'에게 고모가 30년만에 연락을 해 온다. 잠잘 곳을 예약해 달라 했으나 고모를 모르는 장삿집에 재우기도 뭐해 집으로 모신다. 하지만 고모는 한사코 다른 곳을 구해달라 했다. 겨우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고모에게 제주도 구경을 시켜드리다 보니 고모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모는 16세에 절름발이 담임과 야반도주를 했다가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온갖 구박을 다 받다가 28세가 되던 해에 겨우 시집을 간다. 그러나 고모부는 나병에 걸려 자살하고, 그때부터 고모는 생계를 잇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겨우 자식을 공부시켜 취직까지 시켜 놓으니, 그 자식이 이민을 가버린다. 폐암 진단까지 받고 홀로 된 고모는 뒤늦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주유하며 생을 마감한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출판산 경영에 온 힘을 쏟아 제법 그럴듯한 회사로 키워 놓은 '나'는 최근 들어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오랫동한 함께 해 온 J 국장이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 날, '은숙'이라는 여자의 메일을 받는다. 그리고 책상에서 원고를 발견해 읽기 시작한다. 유리 가가린의 이야기를 쓴 '1991년의 코스모나츠'라는 제목의 원고였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져 버린 뒤 돌아오게될 코스모나츠의 두려움과 쓸쓸함에 대해 상상한다.


<나비길> 임철우


산간마을 중학교에 기병대 선생이 새로 부임한다. 그는 깨끗한 옷차림의 점잖은 선생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나비가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뒤 나비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병대 선생을 황천이발소 주인 양씨가 사랑하게 된다. 양씨는 자기도 모르게 동성의 기병대에게 끌리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추문이 되어 더러운 소문으로 떠돌게 되고, 방범대장 나씨가 선생을 흠씬 두들겨 패기에 이른다. 기병대 선생이 사라진다. 늪지를 뒤졌지만 끝내 그는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방녹색부전나비 한 마리가 팔랑 날아가는 것을 양씨가 쫓아간다.


<웨하스로 만든 집> 하성란


이층 양옥들이 헐린다. 한때는 뉴스에 깨끗한 집들로 소개되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 해 재개발되느라 포크레인의 삽날을 받아 무너지고 있다.

외국으로 시집 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온 여자는 어머니가 무너진 집들에서 가져온 온갖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자는 어렸을 때 알고 지냈던 s, 지금은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s와 관계를 갖는다.

여자가 어릴 적에 자매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과자로 만든 집이야. 마루는 음, 웨하스로 만들었어. 이건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야."... 그러니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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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을 읽으면서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눈이 내릴때까지>를 떠올렸다. 관조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념을 버려야 한다. 폐경은 그런 의미에서 정념이 지워지는 기점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내면 심리가 어떠한지 남자인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김훈이 그리는 중년 여성의 내면 세계는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 발간된 그 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2005년은 내가 우체국에 들어간 해다.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손을 크게 다쳤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했고, 사람들과 다퉜다. 그런 2005년도를 떠올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걸 보니, 그런 나쁜 일들도 모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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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0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구했는데 ㅡ읽으셨군요! 부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