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따뷔랭 - 작은책
장자끄 상뻬 지음,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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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그림 한 편을 본다. 햇살 가득히 오후의 풍경을 담은듯한 따뜻한 시선이 가득한 풍경책. 그의 그림을 볼때면 늘 편안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그 편안함에 덧붙여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현대인의 모습들을 짤막한 그림책 하나로 담아내는 그의 능력에 늘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감추고 사는 비밀들. 따뷔랭씨처럼 차라리 몸고생 하면 했지, 자존심 때문에 늘 감추고 사는 비밀들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따뜻한 삽화와 적은 분량의 글, 그래서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속에 삶의 단편을 잘 잘아내는 힘. 그래서 더욱 어려운 그 일을 그는 여러 작품들에서 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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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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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미노타우로스라는 머리는 황소에, 몸은 사람인 괴물이 있었는데 말이지, 글세 이놈이 놈이 먹으라는 여물은 안먹고 사람을 먹어대는데...나는 이 책에서 이윤기씨를 만났다. 술한잔 거하게 취해서 말이다. 옆에 나를 딱 앉혀놓고는 신화이야기를 꺼낸다. 이아손의 신발이야기, 미오타우로스의 미궁이야기. 그것도 막힘없이 줄줄말이다. 듣고 보니 재미있다. 나는 맞장구도 치며 계속 해달라고 졸라댄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라는 인터뷰책에서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윤기씨는 자기를 신화 연구가라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신화에는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행동들의 원형이 담겨 있기에 (다른 남자의 여자를 사랑한다던지, 돈에 눈이 멀어 부모를 살해한다던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던지..) 그는 신화를 알아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의 풍부한 상상력의 근본이 그 신화에 담겨 있기에 말이다. 이윤기씨의 얼굴에는 소박함, 고집스러움, 착한성품이 엿보인다. 평생 한가지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는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그런 모습말이다. 그는 거의 평생을 신화연구에 받쳤고, 그렇게 차곡 차곡 쌓여진 내공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자 결심(아마도 결심이 필요하다. 예전 그리스 신화를 읽었던 것이 언제나 팍팍한 느낌이었음을 알고있기에)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진다'에서 소개된 글을 읽고서 였다. 대중적인 그리스신화 책을 만들기 위해, 여백부터(실제로 보면 권수를 1권으로 하기 위해 여백을 최대한 줄인 노력을 알 수 있다.) 가격까지, 풍부한 삽화(한쪽에 최소한 1개의 삽화, 많으면 2~3개의 삽화까지 담겨있다.), 그리고 이윤기씨만이 할 수 있는 걸쭉한 입담(누가 이 책을 보고 팍팍하다 하겠는가)까지 담겨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도 그리스 신화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제우스는 헤라와 결혼해서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식의 이야기 전개에 책을 읽다 졸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그때는 그리스 신화를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니까 한 번 읽기는 읽어야 하는데 재미는 없고, 꼭 교과서 읽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통 읽고나도 남는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대중적인 입문서이다. 이윤기씨는 이 책에서 그리스신화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식이 아닌 상상력,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성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했다. 한 사람을 소개할 때 '198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이런 식이 아니라, '그는 노란색을 좋아합니다.'라고 이야기를 꺼내는식 말이다. 그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가고, 상상력이 발동하고 깊게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말이다. 책 머리에 그는 이아손의 신발이야기부터 꺼낸다. 왠 뜬금없는 신발이야기일까. 궁금한 사람은 아마도 책을 보면 알게된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알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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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心의 선물
노영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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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할때는 늘 아이디어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평범한 선물에 대해서는 늘 하느니 못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화이트데이에 제과점에서 산 포장되어있는 캔디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늘 아기자기하면서도 깜찍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늘 고민하곤 했다.
평소에도 늘 섬세하고 아기같이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노영심씨의 선물이라는 책을 펼치며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기대했다. 무언가 영심씨에겐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는 그런 기대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런 아이디어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선물할 때 받는 사람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얼마나 중요한지이다. 이 책에 나온 선물은 늘 평범하다. 티셔츠, 칫솔, 온도계..이런 것들이지만 받는 사람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늘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윤상씨에게는 티셔츠와 스웨터를, 이제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오빠에게는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라며 비누와 칫솔을, 와인을 좋아하는 문세씨의 부인에게는 와인 온도계, 이런식으로 하나 하나. 평범하고 자그마한 일상의 선물들이 받는 이에게는 세상 하나뿐이고 가장 감동받는 선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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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정의 맛있는 책
최화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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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좋아한다. 남자가 요리를 좋아한다면 조금은 웃겠지만, 요리책을 볼때면 늘 가슴이 설레인다. 책을 딱 펼쳤다. 돈가스 사진이 보인다. 잘라난 단면으로 살짝 보이는 부드러운 살코기와 적당히 노릇하게 구워낸 튀김, 가늘게 정성껏 썰어놓은 양배추와 돈가스 위에 윤이 나게 뿌려져있는 소스. 매스드포테이토와 옥수수로 멋까지 내고. 그 옆에 놓여있는 대나무 젓가락. 아 보고만 있어도 침이 꼴각 넘어가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보기만 해도 맛있게 요리를 해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그들의 얼굴만 생각해도 행복해지지 않는가.

생기발랄함. 늘 먹는 것을 좋아해서 요리하고 친구들과 만들어먹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최화정씨가 요리책을 냈다. 그녀의 색깔이 물씩 묻어나오는 요리책!
나에게는 요리책이 한권 더 있다. '이현우의 싱글을 위한 이지쿠킹'. 늘 그가 들려주는 어눌하지만 담백한 말투. 약간의 수줍음 가득하게, '자, 여러분. 카레만드는 법을 가르쳐드릴께요. 먼저 고기와 감자, 양파, 당근을 준비하세요. 네모낳게 적당한 크기로 깍뚝 썰고...'
이 책에 비교해본다면 최화정씨는 이렇게, '아아~ 종종 비오는 날이면 따끈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 만화책을 보면서 부침개가 먹고 싶어지지 않나요? 김치전, 부추전, 해물전, 그렇죠? 여러분..' 한단계 높은 옥타브와 늘 새벽이슬을 먹는듯한 생기발랄함이 이 책에 가득히 묻어있다. 그냥 훑어보아도 이현우 책에 비해서 글이 많다. 자질구레한 곳까지 신경써주는 섭세함. 여자와 남자의 차이인가?

요리는 행복이다. 재료를 준비하고 정성들여 만드는 요리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그 행복은 음식을 나누는 사람에게도 전염된다. 행복은 조그마한 곳에 있다. 비오는날 따끈한 부침개를 부쳐 친구와 함께 먹으며 수다를 떤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sweet thing. <최화정의 맛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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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떠나는 사람에게선 바람냄새가 난다
정유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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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따악 펼치고 몇장 넘기면 뽀얀 안개 가득한 오솔길 사진이 나온다. 오솔길 주위로 푸르른 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그런 모습. 이른 아침의 상쾌한 숲내음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은 풍경, 그리고 오솔길. 그 사진위에 적인 한마디. 여행 ..존재의 협소한 시각을 확장시키는 코드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당장이라도 팍팍한 일상을 훌훌 던져버리고, 그 사진 속의 오솔길을 걷고 싶은 충동, 혼자이어도 좋고 길동무라도 있으면 더욱 좋을 그런 길. 그 길의 끝에는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나에게 어서 떠나라며 충돌질하는 그 한 장의 사진. 그 사진 속에서는 바람냄새가 났다.

정유희씨가 쓴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유희씨는 월간 paper,뻬빠라고 불리는 잡지에서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풍부한 비유와 상상력의 글들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여인네다.)나는 이 책을 골라집었다. 맛있다 못해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그 풍부하고도 생생한 표현력은 한 번 맛본 사람이라면 다시 찾을만큼 매력적이다.

누가 국자로 가을을 떠서 강화도에 뿌렸나? (강화도와 석모도편) 영혼은 그에게 주고 나머지는 여기다 풍장해다오 (거제도와 미륵도편) 녹차밭, 초록의 거대한 덩어리속에서 서로를 방치하기 (전남 보성편)

정유희씨의 글솜씨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더욱 재미있는 것이 한편 한편마다 늘 팀을 이루어 여행을 떠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색의 의미가 짙어지는 일반 여행기에 비해서 3~4명이 뭉쳐다니다 보면 일어나느 헤프닝이 담겨있어 더욱 재미있다. 지역을 다니다보면 듣게되는 걸쭉한 사투리와 입담들, 풍성한 인심과 마음씨 착한 사람들. 그래서 정유희의 여행기는 살아있고, 바람냄새, 살 냄새가 난다.

늘 늦잠을 자다가, 아주 가끔 우연히도 새벽 일찍 일어난 적이 있다. 가뿐한 마음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와 그 상쾌한 새벽공기속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노라면 꼭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창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그날따라 밥맛도 좋다. 다음날은 늦잠을 잘지 모르지만, 그 순간 만큼은 신선함으로 온 몸이 가득할테니.

여행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일상의 신선한 자극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들은 늘 일상속에서 새로운곳에 대한 훌쩍 떠나버림을 늘 동경하며 살아가는게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말한다. 훨훨 털어버리고 얼른 떠나버리라고, 우리네 산하 그 변두리에 가면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과 입이 딱 벌어질만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하다고. 그렇게 우리에게 충동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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