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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떠나는 사람에게선 바람냄새가 난다
정유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따악 펼치고 몇장 넘기면 뽀얀 안개 가득한 오솔길 사진이 나온다. 오솔길 주위로 푸르른 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그런 모습. 이른 아침의 상쾌한 숲내음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은 풍경, 그리고 오솔길. 그 사진위에 적인 한마디. 여행 ..존재의 협소한 시각을 확장시키는 코드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당장이라도 팍팍한 일상을 훌훌 던져버리고, 그 사진 속의 오솔길을 걷고 싶은 충동, 혼자이어도 좋고 길동무라도 있으면 더욱 좋을 그런 길. 그 길의 끝에는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나에게 어서 떠나라며 충돌질하는 그 한 장의 사진. 그 사진 속에서는 바람냄새가 났다.
정유희씨가 쓴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유희씨는 월간 paper,뻬빠라고 불리는 잡지에서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풍부한 비유와 상상력의 글들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여인네다.)나는 이 책을 골라집었다. 맛있다 못해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그 풍부하고도 생생한 표현력은 한 번 맛본 사람이라면 다시 찾을만큼 매력적이다.
누가 국자로 가을을 떠서 강화도에 뿌렸나? (강화도와 석모도편) 영혼은 그에게 주고 나머지는 여기다 풍장해다오 (거제도와 미륵도편) 녹차밭, 초록의 거대한 덩어리속에서 서로를 방치하기 (전남 보성편)
정유희씨의 글솜씨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더욱 재미있는 것이 한편 한편마다 늘 팀을 이루어 여행을 떠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색의 의미가 짙어지는 일반 여행기에 비해서 3~4명이 뭉쳐다니다 보면 일어나느 헤프닝이 담겨있어 더욱 재미있다. 지역을 다니다보면 듣게되는 걸쭉한 사투리와 입담들, 풍성한 인심과 마음씨 착한 사람들. 그래서 정유희의 여행기는 살아있고, 바람냄새, 살 냄새가 난다.
늘 늦잠을 자다가, 아주 가끔 우연히도 새벽 일찍 일어난 적이 있다. 가뿐한 마음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와 그 상쾌한 새벽공기속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노라면 꼭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창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그날따라 밥맛도 좋다. 다음날은 늦잠을 잘지 모르지만, 그 순간 만큼은 신선함으로 온 몸이 가득할테니.
여행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일상의 신선한 자극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들은 늘 일상속에서 새로운곳에 대한 훌쩍 떠나버림을 늘 동경하며 살아가는게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말한다. 훨훨 털어버리고 얼른 떠나버리라고, 우리네 산하 그 변두리에 가면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과 입이 딱 벌어질만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하다고. 그렇게 우리에게 충동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