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은 제가 “뿌와쨔쨔” 님의 블로그 글 「미국 학교에서 논문 표절하면 어떻게 될까?」(http://puwazaza.com/314)에 댓글로 올렸던 글입니다(04월 21일 저녁때쯤). 제 블로그에도 옮겨와 기록해두기로 합니다. 원래의 댓글에 아주 약간의 첨삭만 가했습니다. 즉 “자기 표절”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우리나라 교수님들 정말 문제 많습니다. 문대성 씨가 표절 · 대필 논문으로 석 · 박사까지 하고 교수까지 된 것은 한국 교수님들의 부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증명해주는 사건 그 자체입니다. 일개 개인 문대성 씨 선에서 그치는 문제가 전혀 아니죠.

문대성 논문 표절 논란이 처음으로 불거진 때는 4 · 11 총선 훨씬 이전이었죠. 그때 이미 벌써, 논문을 한 편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즉 교수라는 직함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대성 씨의 논문은 100% 이상 표절 혹은 대필 논문으로 판정내릴 수 있는 수준임이 확실하게 드러났던 것입니다. 즉 학문적 양심과 엄격함이 (더도 덜도 말고 딱) 상식적 수준만큼이라도 작동하는 사회라면 즉각 표절/대필 판정나야 했고, 이어서 즉각 문대성 씨의 사퇴도 일사천리로 뒤따랐어야 했던 그런 적나라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절대로 그런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란 것입니다. 관련 있는 동아대학교나 국민대학교에서는 미적미적대면서 웬만하면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었죠. 공범자처럼 같이 썩어 있는 대학 사회, 교수 사회이니 당연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었죠. (비리와 부패로 만연한 한국의 대학 사회, 교수 사회는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형적으로 노출하는 행동 양태가 있습니다. 이번 문대성 표절 사태에도 이들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의 불의하고 의뭉스런 행동 양태는 그 무슨 전형적인 시나리오처럼 판에 박은 전개 양상을 보여주고 있죠. 즉 자신들의 카르텔에 균열을 가하는 치명적 비리의 증거가 은폐되거나 폭로되는 수위와 강도에 따라, 과연 동업자 처벌에 의연한 척 나서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태추이를 지켜봐가면서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건 은폐쪽으로 슬슬 묻어갈 것인가 궁리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들이 미적미적대다가 문대성 논문에 표절 판정을 뒤늦게 내린 것은 사그러들 줄 알았던 비판 여론이 사그러들지 않고 용케도 계속 일정 강도를 유지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만약 여론이 정반대로 유야무야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면 공식적인 문대성 논문 표절 판정은 없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의 불의한 행동 양태에 관해서 언젠가 신랄한 비판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한국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에서 표절 문제는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작심하고 한국 대학/교수 사회의 “표절밭”을 갈아나간다면 표절한 논문과 저서들이 고구마 줄기에 알고구마가 줄줄이 달려나오듯 수없이 밝혀져 나올 것입니다. 석 · 박사 학위 논문뿐만 아니라 각종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도 검토해보면 금방 표절 논문으로 판정나는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런데도 한국은 문제가 되는 때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표절에 관한 한 한국은 양심 마비의 중증 상태입니다. 이런 양심 마비 증세가 치유되리라는 희망은 현재 거의 없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더욱 더 곪아 터지고, 더욱 더 부패하고, 더욱 더 구조화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한국○○어문학회》의 공식 학술지에 발표 · 게재된 한 논문을 읽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최신 소설 장르에 관한 급관심이 일어서 검색을 통해 입수하게 된 관련 논문이 바로 《한국○○어문학회》의 학회지에 실린 논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너 페이지를 읽지 못해 전혀 학술지 논문답지 못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문제의 논문은 제 판단에 따르면 몇 편의 외국 논문을 베껴서 짜깁기한 표절 논문임이 분명했습니다. 외국 논문을 엉터리로 오역해서 갖다 붙이는 과정에서 표절의 꼬리를 감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표절 혐의를 제쳐놓고 보더라도 도저히 《한국○○어문학회》 공식 학술지에 실릴 수가 없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논문이었습니다.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이라면 일차적으로 동료 심사(peer reviews)를 거칠 것이고 편집진의 최종 심사도 거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정식 절차를 그 논문이 거쳤다면, 아예 초장부터 게재 논문 후보도 될 수 없었을 뿐더러 표절 혐의에 대한 정식 문제 제기에 이어 한국○○어문학회 측의 조사가 있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문제는 제기조차 되지 않았던 듯하고, 너무나도 우스꽝스럽게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 지원금까지 받아가면서 당당히 학회지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논문은 총체적 부실 · 부패의 집약체 그 자체였습니다. 그 논문의 필자는 당시 ○남권의 한 국립대 ○어○문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는데요. 그 논문 수준 자체만 가지고 판단하면, 도저히 대학 교수의 자질/자격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런 류의 표절과 표절 교수가 비일비재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거의 없습니다. 거의 구제불능입니다. 이처럼 문대성의 표절 사건은 한국 대학 사회, 교수 사회에 만연한 총체적 부패가 그 빙산의 일각을 일시적으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문대성 표절 사건도 점점 그 파장이 잦아들 것이고, 한국의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시 평화로운 모습으로 재빨리 표정을 바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카르텔은 다시 순조롭게 정상 가동하고, 화기애애한 동업자 의식도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표절이 뭐가 그리 문제가 됩니까. 석사 · 박사는 물론이고 교수도 돈 있으면 되는 겁니다. 돈 앞에 만인 평등, 얼마나 좋습니까.

2012/04/21 19:49 



 
 
꼬마요정 2012-04-23 13:45   댓글달기 | URL
그러면서 누가 표절이라고 제보했는지를 찾고 있더군요. 참... 씁쓸합니다.

qualia 2012-04-23 15:36   URL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제보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반면에 “밀고자”로 변절 잘하면 돈 · 출세 · 권력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마태우스 2012-04-23 23:46   댓글달기 | URL
퀄리아님 안녕하셨어요. 저 멋진 글을 댓글로 남기다니, 좀 아깝네요. 아무튼...논문이란 건,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안쓰던 사람이 막상 쓰려면 한줄도 쓰기 어렵습니다. 저도 군대 3년 동안 놀기만 하다가 논문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고, 발령받고 나서도 한동안 논문을 쓰지 못해서 많이 어려웠습니다. 하물며 태권도만 하던 사람이 어떻게 논문을 쓰겠습니까. 대필밖엔 길이 없겠죠. 대필을 부탁한 문대성도 물론 잘못했습니다만, 기껏 구한 대필자가 더 문제가 많네요. 어떻게 남의 논문을 베껴서 대필을 했을까요. 그러고도 대가를 받았겠지요...? 언론보도에 의하면 입도 싸서, 술자리에서 자기가 써줬다고 자랑했다던데, 아주 문제가 많죠? 결론: 문대성씨, 차라리 나한테 부탁하지 그랬어요.

마태우스 2012-04-23 23:47   URL
마지막 줄은 농담입니다. 진짜로 부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qualia 2012-04-24 10:42   URL
예, 마태우스 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남을 비판하는 글 따위는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었는데요.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뿌와쨔쨔” 님의 글 「미국 학교에서 논문 표절하면 어떻게 될까?」를 발견하게 됐답니다. 읽어보니 제 의견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논문이나 저서를 쓰면서 다른 저자들의 논문과 저작을 인용할 때, 반드시 그 서지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인용의 방법론”과 “인용의 윤리 혹은 정신”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던져주더군요. 그래서 간략하게 제 소감과 생각을 댓글로 써올리려고 했는데, 쓰다보니까 별 영양가가 없는 말을 중언부언 길게 늘어놨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읽기에는 다소 과격한 언사도 있구요.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겠습니다. 아무튼 마태우스 님께 감사합니다.
 

◈ 아랫글은 원래 2012년 04월 01일에 이덕하 선생의 《진화심리학》 카페(http://cafe.daum.net/Psychoanalyse)에 올렸던 글입니다. 즉 그곳 회원이신 “날아라삐약” 님께서 「EBS의 도킨스 관련 2011년 수능지문에 대해 번역검토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부탁글을 먼저 올리셨는데요. 제가 그 글을 보고 답글로 올렸던 것입니다. “날아라삐약” 님에 따르면, 교육방송(EBS) 측의 교재인 『EBS 수능특강 외국어영역 - 2012』에 나오는 영문의 제시(혹은 모범?) 번역문에 상당한 오역이 있는 듯하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래의 단 한 문단만 검토한 격인데요. 제 번역 교정/비판 경험에 비춰볼 때, 번역이 아래와 같은 수준이라면, EBS 외국어 교재의 전반적 번역 수준에 문제가 적지 않을 듯합니다. 이곳에 찾아오시는 누리꾼 분들께서 간략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BS 수능특강 외국어영역 - 2012』 (2012. 01. 20).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엮고 펴냄. [516쪽, 7,500원]

EBS 겨울방학특강 수능길잡이 영어독해 유형편 - 2012』 (2011.11. 04).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엮고 펴냄. [158쪽, 3,500원]

EBS 겨울방학특강 수능길잡이 영어독해 구문편 - 2012』 (2011. 11. 04).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엮고 펴냄. [158쪽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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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교육방송(EBS) 측의 번역문을 비판해보겠습니다. 먼저 “날아라삐약” 님께서 올려주신 해당 원문과 번역문을 인용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강조와 밑줄은 인용자]

 

- 2010년 11월이 시행된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영역 42번 문제입니다. -

 

EBS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립니다.
EBS에서 어느 정도로 엄밀하게 번역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심심풀이로 문제도 풀어보시고요^^ 

 

 

42. Richard Dawkins and John Krebs argued that although in some circumstances it might be appropriate to describe animal signals as transferring information, in many other, perhaps most, cases there would be such a conflict of interest between signaller and receiver that it is more accurate to describe the signaller as attempting to ‘manipulate’ the receiver rather than just inform it. For example, an angler fish that dangles a worm-like bit of skin in front of a small fish and catches it because the smaller fish snaps at the ‘worm’ can certainly be said to have carried out a successful manipulation of its prey. In this case, if information has been transferred, it is most definitely false.         * dangle: 매달다
 

① Are Smaller Fishes Smarter?
② Talking Animals: Fact or Myth?
③ Cooperation in the Animal World
④ Manipulation: Tricking the Signaller
⑤ Animal Messages: Not What They Seem


[EBS의 공식적인 해석]
어떤 상황에서는 동물이 보내는 신호들을 정보 전달로 설명하는 것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다른 많은 경우,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호를 보내는 동물과 신호를 받는 동물 사이의 이해가 너무도 상반 되어서, 단지 신호를 받는 동물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물이 신호를 받는 동물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Richard DawkinsJohn Krebs는 주장했다. 예를 들면, 벌레 같은 피부조각을 작은 물고기 앞에 달아두고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벌레(같은 피부조각)'를 덥썩 물기 때문에 그 것(더 작은 물고기)을 잡는 아귀는 확실히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것을 수행했다고 확실히 일컬어 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만약 정보가 전해졌더라도 그것은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교육방송(EBS) 측의 위 번역문은 모두 3 문장으로 돼 있는데요. 첫째 문장은 그럭저럭 괜찮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호를 보내는 동물이 신호를 받는 동물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으로〉 하는 부분은 〈the signaller as attempting to ‘manipulate’ the receiver〉 부분을 번역한 것인데요, 직역투라 자연스런 우리말답지 못합니다. “신호를 받는 동물을 조정하다”와 같은 표현은 우리말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붕어를 조정하다”, “쥐를 조정하다”, “반달곰을 조정하다”, “원주민을 조정하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활용해보면 얼마나 어색하고 그 뉘앙스가 크게 엇나가는지 알 수 있죠. 반면에 “계량기를 조정하다” “텔레비전 안테나를 조정하다” 같은 경우에는 말이 되죠. 이런 두 가지 상반되는 사례에 비춰볼 때 “조정하다”라는 번역어는 그 의미와 쓰임새가 살아 있는 생물체한테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물론 적절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따라서 여기에서는 ‘manipulate’를 신호를 받는 동물을 “속이다”라고 옮겨야  원문의 본래 의미와 문맥에 맞고, 또 우리말다운 표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문장과 셋째 문장에는 모두 결정적인 오역들이 있습니다. 또한 전혀 우리말답지 않은 뻑뻑한 번역투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둘째 문장은 비문에 가까운 아주 조악한 문장입니다. 먼저 둘째 문장을 봅시다. [강조와 밑줄은 인용자]

 

예를 들면, 벌레 같은 피부조각을 작은 물고기 앞에 달아두고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벌레(같은 피부조각)'를 덥썩 물기 때문에 그 것(더 작은 물고기)을 잡는 아귀는 확실히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것을 수행했다고 확실히 일컬어 질 수 있다.

 

위 번역문에서 밑줄 친 부분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는 엄밀히 따질 때 오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위 번역문만 봐서는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어떤 것보다 더 작은 것인지를 정확히 판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뒤의 논리적 연결이 도저히 순조롭게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뒤가 켕기는 느낌에 묶여 제자리를 맴맴돌게 됩니다. 조악한 번역서를 머리 싸매고 읽을 때 숱하게 겪게 되는 경험이죠. 즉, 문제의 부분은 번역문의 문장 구조상 “작은 물고기보다 더 작은 물고기”라는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이런 독해는 내용 전개상 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역이 아닌가 의심을 품으면서 맴맴돌게 된다는 것이죠. 역시나 원문을 찾아보면, 위 번역문과는 전혀 달리, 분명히 “아귀(angler fish)보다 작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위 번역문은 번역도 잘못하고 문장 구성도 완전히 잘못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뒤에 밑줄 친 부분 〈아귀는 확실히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것을 수행했다고 확실히 일컬어 질 수 있다〉도 어눌하고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의 전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 공부에 막 입문한 초심자들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오류 사례랄 수 있습니다. 원문의 의미에 맞게 자연스럽고 매끄럽고 간결하게 고치면 〈아귀는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였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즉, “~ can certainly be said to have carried out a successful manipulation of its prey”를 영어식 수동태/피동태에 꿰맞춰 부자연스런 수동문/피동문으로 번역할 필요가 없습니다. EBS 측의 번역문 형식은 우리말 문장 기본 형식에 존재하지 않는 형식입니다. 저런 억지 끼워맞춤식 번역투 문장은 우리말을 조악하게 만들고 해치는 독소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들이 글을 쓸 때 주의해야 될 사항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문장을 봅시다.

 

이러한 경우 만약 정보가 전해졌더라도 그것은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셋째 문장은 엄밀히 말해 오역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데, 뭐가 완전히 잘못된 것인지 이 번역문만 보아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딱 읽어서 즉시 파악할 수 있어야 잘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위 번역문을 따라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고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봅시다. 첫째, 정보가 잘못됐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분명 아귀한테 희생된 작은 물고기 측의 시각인 것이죠. 그러나 아귀 측 시각으로 볼 때 그 정보는 (속임수 정보지만) 아주 잘된/성공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이 한쪽에는 해롭고 다른 한쪽에는 이로운 정보인데, 그걸 종합해서 모두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죠. 따라서 첫째 가정은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둘째, ‘정보 전달’ 자체가 잘못됐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요. 이 경우에도 위와 똑같이 작은 물고기 측과 아귀 측 시각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작은 물고기 측에서 보면 정보 전달이 잘못된 것이지만, 아귀 측에서 보면 정보 전달이 잘된 것이거든요. 즉 아귀는 자신이 의도한 정보 전달이 잘됐기/성공했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정보 전달’ 자체도 쌍방의 시각 차이에 따라 잘됨↔잘못됨 즉 성공↔실패로 이중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둘째 가정도 폐기되죠. 따라서 이 경우에도 위 번역은 오역이라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그 오역의 까닭은 원문의 의미를 잘못 독해한 채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예시된 원문에서는 마지막 문장이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에 담긴 정보는 수신자 측에게 이로운 진짜 정보가 있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해로운 거짓 정보, 속임수 정보, 미끼처럼 유인하는 가짜 정보도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런 의미를 전하고 있는 마지막 원문을 〈이러한 경우 만약 정보가 전해졌더라도 그것은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번역하면,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띠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EBS 측 번역자가 위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부실하게 번역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In this case, if information has been transferred, it is most definitely false.”에서 “false”는 전달된 정보가 “거짓, 가짜, 허위, 속임수”였다는 것을 뜻하는 형용사이죠. 원번역자가 “잘못된”에도 그런 뜻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애매한 번역(즉 오역)은 독자가 원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혼란만 줍니다. 최선의 정확한 번역어가 따로 있는데 애매하고 불분명한 차선책을 택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죠.

 

이상 위와 같은 비판을 종합해서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번역문은 더 다듬을 여지가 있긴 하겠지만, 위 원문의 본래 의미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부 용어들은 다른 동의어/유사어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문체도 간결체로 바꿀 수도 있고요(짧게 끊어 번역하기). 문장 구성도 좀 더 단순하게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위 원문에서 “describe”는 어떤 특별한 학술적/전문적 의미로 쓴 것이 아닙니다. 원문의 문맥에서는 그냥 “~로 해석하다”, “~로 설명하다”, “~로 기술하다”, “~로 여기다” 따위로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전치사 “of”로 이루어진 명사구는 곧이곧대로 동일한 형식의 명사구로 옮기는 것보다 적절히 풀어서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런 우리말 번역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위 원문에서 “a successful manipulation of its prey” 같은 예입니다. 영어 전치사 “of”는 소유격, 동격, 목적격 등 여러 용법으로 쓰이는데요. 앞의 사례는 목적격으로 쓰인 예죠. 이런 경우는 적절하게 풀어서 번역하면 자연스런 우리말 문장을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안 ⑴

 

리차드 도킨스와 존 크렙스는 주장하기를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는 어떤 상황에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아마도 그 대부분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를 ‘속이기’ 위한 유인책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아귀는 벌레 모양의 피부 조각을 매달고 앞에 흔들어서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덤벼들 때 잽싸게 잡아먹는데, 이 경우 그 ‘벌레’는 아귀의 먹이들을 유인하는 속임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가 전달됐다고 본다면, 그 정보는 분명히 가짜 정보인 것이다.


번역안 ⑵

 

리차드 도킨스와 존 크렙스는 주장하기를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는 어떤 경우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아마도 그 대부분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전혀 상반되기 때문에 발신자가 수신자한테 단순히 어떤 정보를 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를 ‘속이려는’ 꾐수/계략/책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아귀는 벌레 모양의 피부 조각을 매달아 앞쪽에 흔들어서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덤벼들면 재빨리 잡아먹는데, 이 경우 그 ‘벌레’는 아귀의 먹잇감들을 속여넘기는 꾐수/미끼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가 전달됐다고 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거짓 정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번역안 ⑶

 

리차드 도킨스와 존 크렙스는 주장하기를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는 어떤 상황에서는 정보 전달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아마도 그 대부분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이해 관계가 전혀 상반되기 때문에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를 ‘속이기’ 위한 시도/계략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아귀는 벌레 모양의 피부 조각을 매달고 앞에 흔들어서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덤벼들 때 잽싸게 잡아먹는데, 이 경우 그 ‘벌레’는 아귀의 먹이들을 꾀어들이는 속임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가 전달됐다고 본다면, 그 정보는 분명히 가짜인 것이다.


 

2012. 04. 02. 월요일. 밤 8시 29분. 흐림. 비 온 뒤끝이다.
2012. 04. 03. 화요일. 밤 11시 12분. 아주 맑음. 위 원문 앞부분에 있는 “in some circumstances”를 처음에는 제 번역안 ⑴, ⑵, ⑶에 모두 “대부분의 경우”로 잘못 옮겨 놨었는데요. 뒤늦게 부주의한 제 잘못을 발견했습니다. 각각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어떤 상황에서는”으로 고쳐 넣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쿼크 2012-04-02 23:03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bs 해석은 집중하며 봐도 다시금 우리말을 머릿속에서 재번역해야 하지만 '퀄리아'님의 해석은 쉽게 눈에 들어오네요. 저는 '번역안(3)'이 마음에 드는군요. 다만 두 번째 줄 말미에 '전혀 상반되기 때문에'에서 '전혀'를 빼야 할듯싶네요.. 글 잘 봤습니다..~~

qualia 2012-04-03 00:49   URL
쿼크 님, 논평 고맙습니다. 네, 쿼크 님 말씀대로 “전혀”를 빼는 것이 좋을 듯도 합니다.

원문에서 “~ be such a conflict of interest between signaller and receiver that it is ~”는 정도+까닭을 나타내는 구문 〈~ such ~that〉 으로 이루어진 문장인데요. 이 〈~ such ~that〉 구문은 원래 강조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원문은 쌍방간의 정반대되는, 즉 상충하는, 이해 관계를 의미하고 있고요. 그래서 강조의 의미로 “전혀”라는 부사어를 넣어본 것인데요. 쿼크 님 말씀대로 빼버려도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 물론 위 세 가지 번역안 가운데 “전혀”라는 군더더기를 넣지 않은 예문도 이미 제시하긴 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께서도 좋은 의견을 주시면 좋겠죠. 여러 논평자 분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가장 정확하고 매끄러운 번역안이 나올 수 있겠네요. 고맙습니다.

(2012-04-03 00:36)
 

Mind and Brain
A Critical Appraisal of Cognitive Neuroscience
William R. Uttal

 

 

Publisher: MIT Press
Pub Date: October 2011
Cloth: xxviii + 497, 24 figures, 11 tables
ISBN-10: 0-262-01596-X
ISBN-13: 978-0-262-01596-7
Book Dimensions: 9 × 7 inches
List Price: $55.00 / £37.95 / Amazon Price: $44.07

 

Table of Contents and Sample Chapters
http://mitpress.mit.edu/catalog/item/default.asp?ttype=2&tid=12667&mode=toc

 

Cognitive neuroscience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minds and our brains, most recently by drawing on brain imaging techniques to align neural mechanisms with psychological processes. In Mind and Brain, William Uttal offers a critical review of cognitive neuroscience, examining both its history and modern developments in the field. He pays particular attention to the role of brain imaging ― especially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 in studying the mind-brain relationship. He argues that, despite the explosive growth of this new mode of research, there has been more hyperbole than critical analysis of what experimental outcomes really mean. With Mind and Brain, Uttal attempts a synoptic synthesis of this substantial body of scientific literature.

 

After an introductory discussion, he turns to his main theme: what neuroscience and psychology have contributed to each other. He considers specific empirical findings in such fields as sensation, perception, emotion and affect, learning and memory, and consciousness. For each field, he considers psychological and behavioral concerns that can help guide the neuroscienctific discussion; work done before the advent of imaging systems; and what brain imaging has brought to recent research. Cognitive neuroscience, Uttal argues, is truly both cognitive and neuroscientific. Both approaches are necessary and neither is sufficient to make sense of the greatest scientific issue of all: how the brain makes the mind.

 

About the Author

 

William R. Uttal is Professor Emeritus (Engineering) at Arizona State University and Professor Emeritus (Psychology) at the University of Michigan. He is the author of many books, including The New Phrenology: On the Localization of Cognitive Processes in the Brain (MIT Press, 2001) and Distributed Neural Systems: Beyond the New Phrenology.

 

Endorsements
Mind and Brain presents the reader with a remarkably complete and clear understanding of cognitive neuroscience as a field. With the inclusion of topic-specific philosophy, history, and research, the chapters serve a particularly effective foundation function for those planning neuroscience research or preparing grant projects and/or research reports. This book should be required reading for both research neuroscientists and instructors whose goal is to provide the clearest and most current understanding of the neuro-, cognitive, and behavioral sciences. It is exceptional.”
Steven Schandler, Professor of Psychology and Director, Addiction Research and Cognitive Psychophysiology Laboratories, Chapman University
 
 
SOURCE:
http://mitpress.mit.edu/catalog/item/default.asp?ttype=2&tid=12667

 

2012. 03. 13. 화요일. 낮 3시 30분. 맑음. 포근한 봄날씨다.

지금까지 인지과학, 뇌과학, 마음철학(심리철학), 형이상학, 교양과학, 인문학 관련 원서들을 다수 입수해 놓았다. 다만, 그 원서들에 해당하는 한국어 번역판은 10여권밖에 입수하지 못했다. 앞으로 여름까지 해당하는 수십 여권의 번역본들을 모두 입수한 다음, 원서와 번역서들을 비교해 번역 비판(비평)을 치밀하게 진행할 계획이다(서점에 가서 대충 살펴본 것만으로도 번역판들에 얼마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원서들을 마련하느라 매우 힘들었다. 번역판들 또한 늦어도 올 여름까지는 모두 입수해야 할 것이다. 잘 될지 모르겠다. 워낙에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가도 올랐고, 돈 나갈 데는 많고, 방세 걱정도 해야 된다. 아무튼 일 많이 나가서 열심히 일해 드리고 많이 많이 벌어와야겠다. 화이팅 !!! ^^

 

“화이팅(Hwighting, Fighting)”은 이제 거의 우리말로 굳어진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수열 선생님과 안정효 선생님의 관련 비판을 기본적으로는 인정하고 존중한다. “아자 아자”로 쓰자는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이제 “화이팅”은 영어도 아니고 콩글리쉬도 아니고, 어엿한 우리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화이팅”은 우리 한국인들이 만든 단어고, 한국적인 독특한 의미가 스며들어간 “화이팅” 넘치는 단어다. “화이팅”은 이미 한국을 넘어서서 유명한 세계적인 단어가 됐다. 웬만한 한류 팬들 혹은 케이팝(K-Pop) 팬들은 “화이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한국 · 한국 팀 · 한국 아이돌들을 응원하거나 지지할 때 모두 “화이팅”이라고 외친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의미를 부여한 그  “화이팅”을 세계인들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화이팅”을 내 국어사전에 어엿한 우리말의 하나로 올린다. 누가 뭐래도 “화이팅”은 우리말이다.

 



 
 
patrache 2012-03-14 23:54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지과학과 마음철학에 관심이 많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치랜드의 <물질과 의식>을 보았고(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요즘은 설의 <마인드>를 읽고 있습니다. 워낙 잡식성의 독서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체계적으로 읽지는 않습니다. 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분야의 책을 읽다 보니 데이비드 차머스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분이 비환원주의자라고 해서 관심이 생깁니다. 국내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도 이분의 책 번역서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퀄리아 님께서는 이분의 국내번역서를 알고 계시는지요? 영어실력이 그다지 우수하지 않아 원서 볼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존 설의 마인드를 읽다보니 한가지 의문이라면 의문이 생기는데 물리주의나 신경생물학적으로 의식을 설명하겠다면 차라리, 물리학이나 분자생물학, 신경생물학 같은 걸 연구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건 뭐 그냥 언뜻 떠오른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존 설의<마인드>는 퀄리아 님이 소개해 주신 책인데 그나마 쉽게 서술되어 있어 읽기 편하고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지향성 부분은 많이 어렵군요. 중국어 방이나 중국어 체육관 논쟁도 참 재미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에르빈 슈뢰딩거의 <물질과 정신>이라는 글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객관적 이성과 수학으로 무장한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슈뢰딩거가 신비주의에 매료된 사실, 그리과 그가 말하는 의식과 정신의 단일성은 정말 사람의 본성을 끌어당기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슈뢰딩거의 <물질과 정신>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서재에 좋은 정보를 올려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인지과학이나 심리철학에 관심있는 한 사람이 남긴 글입니다.

qualia 2012-03-15 19:04   URL
patrache 님,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데이비드 차머스(David John Chalmers)의 저서들은 아직까지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데이비드 차머스의 단독 저서는 3권의 편집서와 1권의 공저서를 빼면 지금까지 2권이 출간됐죠. 그 2권은 아래와 같습니다.

▷ Chalmers, David John (1996). The Conscious Mind: In Search of a Fundamental Theory, (Philosophy of Mind Seri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xviii + 414 pages, Paperback: $24.99, Kindle Edition: $11.99]

▷ Chalmers, David John (2010). The Character of Consciousness, (Philosophy of Mind Seri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xxviii + 596 pages, Hardcover: $99.00, Paperback: $25.25, Kindle Edition: $14.07]

위 저서 중 『의식적인 마음 ― 근본 이론을 찾아서 The Conscious Mind: In Search of a Fundamental Theory』는 인지과학/심리철학 분야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일 것입니다. 마음철학 분야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죠. 몇몇 장들은 아주 어렵습니다만, 또 몇몇 장들은 사전 지식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쓴 책이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차머스의 문체는 간단명료 · 명쾌하고, 문장 구성도 복잡하지 않고 평이한 편이더군요. 웬만한 영어 실력이면 모두들 흥미롭게 술술 읽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한국어판이 반드시 나와야 합니다. 마음철학(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심지어는 뇌과학 분야를 공부/연구할 때 반드시 읽고 참고해야 할 필독서이기 때문이죠. 엄밀한 학술서이면서 동시에 대중적 교양서의 측면도 지니고 있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2010년에 출간된『의식의 특성 The Character of Consciousness』은 전작의 세부 논제들을 더욱 더 심층적으로 파고든 기간 논문들을 한데 묶고, 몇몇 장에 별도의 후기(Afterword)를 덧붙여 펴낸 책입니다. 이 책은 그만큼 더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많은 부분은 큰 부담 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설(John R. Searle)은 아시다시피 철학자죠. 철학자가 물리주의적으로, 신경생물학적 개념으로 의식을 설명하는 것은, 생물학자나 뇌신경 과학자가 의식과 관련된 실제의 실험적/경험적 연구를 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죠. 각자가 서로 상이한 차원에서 현저히 다른 방식으로 의식을 설명하고 연구하는 것이죠. 즉 각 분야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차원과 방식을 달리하는 그 분야들끼리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 서구 학계의 추세입니다. 실제로 심리철학자와 신경생물학자가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두 분야 모두에서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경우가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철학은 경험과학의 불분명한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명료화하고 정의하면서, 경험과학 진영한테 일종의 거시적 연구 지침을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존 설의 중국어방 논증도 인공지능의 발전에 어떤 식으로든 큰 기여를 해왔고 앞으로도 기여할 것입니다.

에르빈 슈뢰딩거의 『물질과 정신』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영어판과 한국어판 모두 있습니다만, 한국어판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요즘 2~3년 동안 어떤 다른 일에 거의 모든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바람에 독서할 틈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저의 가장 큰 목표인 번역 출간 계획도 자꾸 뒤로 밀리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흥미진진한 댓글을 올려주셔서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자극이 됐습니다. 시간의 블랙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답글이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2012. 03. 15. 목요일. 18:53. 맑음]

patrache 2012-03-16 13:00   댓글달기 | URL
빠른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퀄리아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차머스는 다작을 하는 학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퀄리아 님이 여기에 번역하신 차머스의 <의식경험의 수수께끼>라는 글도 정말 좋았습니다. 차머스의 The Conscious Mind: In Search of a Fundamental Theory는 바로 주문할 생각입니다. 크게 어렵지 않은 부분도 있다니 원서읽기에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저도 물론 돈벌이를 해야하는 처지라 책에 마냥 깊이 빠져 있을수 없는 형편인데 이점이 어떤 때는 참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책값이라도 벌 수 있는 일을 한다는게 더 큰 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책을 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책 읽을 시간 없다고 불평하고 있으니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한 모양입니다. 책도 살 수 있는 여력이 조금 생겼고 또 일 마치고 틈틈이 책 볼 시간이라고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아무튼 마음의 철학 분야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퀄리아 님이 소개해주신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커즈와일이 존 설의 중국어 방 사고실험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논박한 부분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인식의 <사람과 컴퓨터>에서도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이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겠죠?

다시한번 친절한 답변 주신데 대해 감사드리며 퀄리아 님의 가장 큰 목표인 번역출간이 성사되면 제일 먼저 예약구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틈틈이 궁금한 부분은 질문도 더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일즈 2012-03-19 23:46   댓글달기 | URL
퀄리아님 새글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서양 학자들 기하학같은 논증을 좋아라 하고 읽고 감상하는 독자인데요, 마음의 철학 분야는 퀄리아님 글이 거의 유일한 안내자였기 때문입니다. 길버트 라일, 스티븐 핑커의 유명한 책들은 큰 지도 없이 읽기에는, 반짝반짝하는 저자의 영민함을 그 페이지에서 발견하는 것말고는 별로 건져지지 않았는데, 그때 마음의 철학을 소개하는 퀄리아님 글을 보고 입문할 수 있었습니다. 김재권, 존 셜, 처치랜드의 개괄서를 보니 마음에 관한 저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위안과 도움이 되었습니다. 많은 활동을 바라고 어떤 글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qualia 2012-03-20 23:40   URL
마일즈 님, 반갑습니다. 마음과 의식에 관심이 많으신 분을 또 한 분 알게 돼 기쁩니다. 앞으로 마음과 의식에 관한 좋은 의견 기대합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 철학과에 계시는 김재권 교수님은 마음철학(심리철학)계의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분이시죠. 심리철학의 핵심적 논제 · 열쇳말(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수반(supervenience) 개념을 정초짓고 발전시켜나가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이시죠. 그리고 수반 개념과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개념이 바로 창발(emergence) 개념인데요. 창발 개념 또한 김재권 교수님께서 1990년대쯤에 주도적으로 되살려 내셨고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적 정의를 새로이 제시하셨습니다.

즉 1800년대 말기에서 1900년대 초기에 서양 과학계와 철학계에서 생기론(vitalism)과 함께 창발 개념이 인간의 마음 · 의식 · 정신 · 영혼을 설명하고 해명해줄 유력한 후보로 등장했다가, 당시 자연과학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거의 폐기되다시피 했었는데요. 김재권 교수님께서는 1992년, 1999년, 2006년 등 일련의 논문에서 비환원적 물리주의(non-reductive materialism/physicalism)를 논박하실 때, 창발론(emergentism)과 비환원적 물리주의가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창발론에서 발생하는 난점(심성 인과, 하향 인과, 중층 결정과 관련된)이 비환원적 물리주의에도 똑같이 발생한다고 설득력 강한 논증을 제시하십니다. 즉 창발론 혹은 창발 개념에서 발생하는 난점을 비판적 · 부정적으로 거론하셨던 건데요. 김재권 교수님의 그런 일련의 비판은 세계 심리철학계에 창발 개념을 다시 부활시키는 기폭제가 됩니다. 때마침 과학계에서도 복잡성(complexity) 과학, 프랙탈(fractal) 이론, 혼돈(chaos) 이론, 시스템 과학(systems science) 등등에서 창발이 핵심적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었죠. 그 뒤로 21세기 초인 지금, 창발론과 창발 개념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창발을 주제로 한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저서와 편집서, 그리고 철학 학술지들의 창발 특집호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답니다. 저는 창발론과 그 개념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판단컨대, 창발 개념이 미래의 마음철학과 마음 과학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고 봅니다.

◎ 참고 논문

▷ Kim, Jaegwon (1992). ‘Downward Causation’ in Emergentism and Nonreductive Physicalism. In Ansgar Beckermann, Hans Flohr, & Jaegwon Kim (eds.) (1992). Emergence or Reduction?: Essays on the Prospects of Nonreductive Physicalism. Berlin: Walter de Gruyter. pp. 119-138.

▷ Kim, Jaegwon (1999). Making Sense of Emergence. Philosophical Studies, 95(1-2): 3-36.

▷ Kim, Jaegwon (2006). Being Realistic about Emergence. In Philip Clayton & Paul C. W. Davies (eds.) (2006). The Re-Emergence of Emergence: The Emergentist Hypothesis from Science to Relig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189-202.

▷ Kim, Jaegwon (2006). Emergence: Core Ideas and Issues. Synthese, 151(3): 347-354.

폴 처칠랜드(Paul M. Churchland) 교수님께서도 최근 연달아 새 저서를 내놓으시면서 심리철학계를 주도하고 계시죠. 200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Neurophilosophy at Work』, 그리고 2012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출판부에서 『Plato's Camera: How the Physical Brain Captures a Landscape of Abstract Universals』를 출간했습니다. 신경의미론(Neurosemantics)을 주도적으로 설파하시고 계시던데요. 원서를 입수해야겠습니다.

▷ Churchland, Paul M. (2007). Neurophilosophy at Work.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xii + 249 pages, List Price: $102.00, Amazon Price: $94.23, Kindle Edition: $15.80]

▷ Churchland, Paul M. (2012). Plato’s Camera: How the Physical Brain Captures a Landscape of Abstract Universals. Cambridge, MA: MIT Press. [xii + 302 pages, 12 color illus., 19 b&w illus., 15 line drawings, List Price: $35.00 / £24.95 / Amazon Price: $28.63 / Kindle Edition: $21.25]

마일즈 님, 댓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마음, 의식, 창발 등등에 관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 서너 해 전에 진중권 선생이 한 인터뷰 기사에서 마음과 의식에 관한 (심리철학적, 인지과학적, 뇌과학적 이론을 아우르는) 야심찬 저서를 써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의 하나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진중권 선생이 《씨네 21》에 기고한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와 관련된 흥미로운 글들을 읽고, 그분이 제시하는 마음철학/심리철학적 사유에 꽤 인상이 깊었었더랬죠. 그러면서 좀더 마음과 의식을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본격적인 저작을 은근히 기대해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진중권 선생이 직접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그런 저작을 써내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꿈의 하나라고 밝혀서 크게 놀랐던 것입니다. 진중권 선생의 마음철학 책이 언제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답글을 저녁 6~7시쯤부터 작성하다가 컴퓨터가 작동 중지되는 바람에 한 4시간 정도를 날려버렸습니다. 컴퓨터를 너무 혹사해서 그런지, 요즘 느닷없이 먹통이 되는 때가 너무 잦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아무튼 마일즈 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 03. 20. 화요일. 밤 11시 07분. 맑음.]

patrache 2012-03-21 19:13   댓글달기 | URL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에서 왜 그렇게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와 생기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는지를 퀄리아 님이 말씀하신 자연과학의 폭발적 발달과 철학계의 흐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 프랜시스 크릭의 <인간과 분자>에서도 생기론을 비판하면서 " 생기론은 사라지겠지만 그 유령은 여전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크릭의 자신만만함도 재밌지만, 남은 유령이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활동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소나기 2012-04-09 15:36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ㅋ 프랑스 포장마차 글에 대한 댓글로
전문적인 댓글을 달아주신 것 같아서
관심이 생겨서 놀러왔어요 ㅋㅋ

논문 많이 쓰시고 계신가보네요~!!

qualia 2012-04-09 16:28   URL
소나기 님, 반갑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파리아줌마(http://blog.daum.net/parismadame) 님 블로그는 제가 자주 방문해서 많은 댓글을 올리는 곳이에요. 오늘도 찾아가봤더니 파리아줌마 님의 「한국 포장마차 주제로 논문 쓰는 프랑스 여대생을 만나다」라는 흥미로운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래서 그 글을 읽고 제가 일상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도움말을 써서 올렸던 것이랍니다. 프랑스아줌마 님께서 그 프랑스 여대생에게 전해주실지 모르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찾아주셔서 거듭 감사합니다.

하늘은 맑음 2012-05-07 09:48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막 인지과학에 입문하고자하는 대학생입니다!
소비자행동론을 공부하면서 인지과학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읽어보고자 하는데요.
국내에서 발간된 책보다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데 전문영어도 많고 어려워 오히려 싫증을 낼까봐 걱정이 됩니다. 지금 소비자행동론은 원서로 읽고 있고, 충분히 이해가능한데
인지과학의 경우에는 어떨지..
국내책과 해외책 중 뭐가 더 나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둘 다 상관없이 혹시 인지과학 입문자에게 추천해주실만한 책이 있는지요^^?

qualia 2012-05-07 23:45   URL
“하늘은 맑음” 님, 반갑습니다. 제가 공사판 일을 뛰는 관계로 맑음 님의 댓글을 이제서야 봤네요(밤 10시 25분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또한 공부하는 처지라 다른 분들께 좋은 책을 선별해 추천할 만한 내공은 그닥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간략하게 답글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가 일전에 써올린 「마음 · 뇌 · 몸을 탐구하는 책들 ― 로우버지트(lowbudget) 님께」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국내서와 해외서 모두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 http://blog.aladin.co.kr/qualia/3195236

국내서는 우선 이정모 교수님의 인지과학 관련 저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정모 교수님은 우리나라 인지과학의 개척자이자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분의 블로그와 누리집(http://cogpsy.skku.ac.kr)에 찾아가 〈학술자료실〉 게시판에 들어가서 인지과학 관련 검색을 하면 원하시는 자료와 정보를 엄청나게 입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서는 폴 새가드(Paul Thagard) 교수님의 『Mind: Introduction to Cognitive Science』를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존이나 구글 북스에서 맛보기 내용을 미리 읽어보시고 판단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폴 새가드 교수님은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인지과학 Cognitive Science〉 항목의 책임 집필자이십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에 찾아가셔서 인지과학 항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A4 용지로 16쪽 정도의 인지과학 소갯글입니다. 인지과학에 관한 개념적 조감도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Thagard, Paul (2005). Mind: Introduction to Cognitive Science, 2nd Edition. Cambridge, MA: MIT Press.

⇒ http://plato.stanford.edu/entries/cognitive-science

그리고 호세 루이스 버뮤데스 교수님의 『Cognitive Science: An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the Mind』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맛보기만 대충 훑어보았는데요. 최상의 인지과학 입문서 가운데 하나라는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 Bermúdez, José Luis (2010). Cognitive Science: An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the Mind.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그리고 여유가 있으시다면 다음 책들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필진이 전세계 인지과학계의 최고 전문가/학자들이고요. 모두 최상급 입문서/개설서들입니다.

▷ Calvo, Paco and Toni Gomila (eds.) (2008). Handbook of Cognitive Science: An Embodied Approach. Amsterdam: Elsevier.

▷ Frankish, Keith & William Ramsey (eds.) (forthcoming in July 2012). The Cambridge Handbook of Cognitive Science.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 Margolis, Eric, Richard Samuels, & Stephen P. Stich (eds.) (2012). The Oxford Handbook of Philosophy of Cognitive Scienc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Thagard, Paul (ed.) (2007). Philosophy of Psychology and Cognitive Science. Amsterdam, The Netherlands: North-Holland.

▷ Wilson, Robert A. & Frank C. Keil (eds.) (1999). The MIT Encyclopedia of the Cognitive Sciences. Cambridge, MA: MIT Press.


이상 제 나름대로 간략히 말씀드렸는데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제 누리집에 찾아오시고 댓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 05. 07. 월. 23:45. 맑음)
 

지난 01월 01월 새벽밤에 엠비시(MBC) 가요 대제전에 출연해 노래하는 샤이니(SHINee) 봤는데, 정말 실력파더라.

 

루시퍼(Lucifer) 불렀는데, 정말 압권이더라.

엠비시(MBC)가 생방송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실수/오류/사고를 계속 저질러서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샤이니는 그런 엉망 가요 대제전 속에서도 정말 빛이 나더라. 루시퍼 다 부르고 신곡 맛보기 보여주려고 준비하는데, 엉터리 연출자 때문에 화면이 엉뚱한 데로 바뀌어 너무나 아쉬웠지만...

 

샤이니(SHINee) !!!

올해는 세계로 쭉쭉 나아가는 샤이니가 될 듯 !!!

샤이니 보면, 춤과 노래가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케이팝(K-Pop)의 매력과 힘을 샤이니가 세계에 각인시켜 줄 것이다.

올해 2012년 용의 해는 샤이니의 해가 될 것이다.

샤이니 아자아자 화이팅 !!!

SHINee Hwaiting !!!
SHINee, K-Pop, Fighting !!!




 
 
 

 

Consciousness and the Universe:

Quantum Physics, Evolution, Brain & Mind
Edited by Roger Penrose, Stuart R. Hameroff

Published by Cosmology Science Publishers, Cambridge, MA, 2011

(Front Cover Image from amazon.com)

 

 

 

 

 

 

 

 

 

 

 

2012. 04. 23. 월요일. 낮 4시 37분. 한낮까지 희부옇게 흐렸다가 맑아짐. 저 책 『의식과 우주 ― 양자 물리학, 진화, 뇌와 마음 Consciousness and the Universe: Quantum Physics, Evolution, Brain & Mind』를 입수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