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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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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아득히 멀어지고 아득히 가까워진다 <눈을 감으면 - 황경신> 

 

 

 

  

 

 

 

  미술관에 가본 적이 언제쯤일까요? 미술을 전공하는 언니가 있어서 예전에 같이 자주 돌아다녔을 때에도 미술관에 놀러갈 기회가 많았지만, 그림은 저에게 '잘 그렸다', '어떻게 저렇게 그릴까?' 정도의 감탄사만 내보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예술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허세는 있어가지고 전, 그림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자 미술 교양 수업을 들어서 한 학기에 한 번 미술관을 방문하여 레포트를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그나마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진전'을 고르곤 했었죠. 그러던 언젠가 그림이라는 게 새롭게 보였던 적은 역시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유명한 명화들 속에는 수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거였죠. 그림을 많이 접하진 않은 저지만 참 재밌었습니다. 명화 속에 미묘한 표정과 사소한 사물 하나하나가 불러들이는 느낌의 변화가요. 그리고 거기에 꼭꼭 묻혀져 있는 이야기들이. 

 

 

 

오딜롱 르동 <감은 눈>

 

 

  황경신 작가는 저도 모르게 이름을 자주 듣게 되어서 '유명한 작가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재밌는 소재를 가지고 책을 쓰는지는 몰랐습니다. 이 책 말고도 그림에 대한 책을 많이 썼더군요. 그런데 참, 이 책 새로웠습니다. 그림에 대해 재밌게 풀어주는 책들(예술 교양서 정도..)은 본 적이 있지만, 그림 에세이는 처음이었거든요. <눈을 감으면>은 작가가 알고 있는 많은 그림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마음가는대로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그림마다 각각 동화같은 이야기가 딸려오는데, 주목할 점은 그림이 각 장의 끝에 위치한다는 거에요.

 

  일단 작가는 은은하게 운을 띄웁니다. 그리곤 실타래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사근사근 풀어놉니다. 저는 읽습니다. 마치 그냥 아무것도 연상되는 것 없이 쓰여진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물론 중간중간 궁금하긴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욕심을 꾹 참고 끝까지 읽어봅니다. 의외로 짧은 이야기들이니까요. 이야기가 끝난 후 작가가 그 이야기를 풀어내게 된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딱 긴장감이 풀리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 이 그림 속에 이 이야기가 들어 있었구나.' 그림의 분위기와 소재가 그대로 들어간 이야기가 어쩜 그렇게 딱 맞춘듯 어울리는지. 그림을 보기전엔 개별적으로 다가왔던 이야기가 그림을 만나는 순간 그 이야기와 그림이 딱 결합되는 느낌이랄까요.

 

  '기억 속에서, 입체는 평면으로 저장된다. 하지만 기억이 원하는 것은 평면적 세계, 평면적 감정, 평면적 시간이 아니다. 기억은 평면을 들추고 뒤흔들어 그 안에서 새로운 입체를 만들어낸다.(228p)' 평면적으로만 존재하는 그림 속의 인물, 사물들, 그 그림 자체가 기억을 건너 생각이 합쳐져 입체적인 이야기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을 지켜보는 묘미가 있는 책입니다.

 

 

 

 

  -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란다." 커다란 바구니 가득 담긴 뜨개질감을 어루만지며,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멀리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말이란다. 그건 그냥 행복의 얼굴을 한 쓸쓸함 같은 거야. 잡지도 못할뿐더러, 설사 잡았다고 해도 스르르 빠져나가버리지. 우리의 손은 그런 걸 잡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도 못하고, 정교하지도 않거든. 그러니 얘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단순한 것들을 잡으렴. 기꺼이 네 발치에 무릎을 꿇는 것들, 네 소유가 되고 싶어하는 것들, 너의 사랑을 구하는 것들 말이다." (17p, 단추 中)

 

  - 어디든 편한 곳에 앉아요. 그래요, 그 정도 거리가 좋겠네요. 이제 당신과 나 사이에 적당한 간격이 생겼어요. 간격이란 건 꽤나 묘하죠. 사실 나는 간극이란 말을 더 선호하지만요. 간격이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다면 간극이라는 말에서는 일종의 의지가 느껴져요. 그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꼭 그러고 싶어서, 나는 여기에, 당신은 거기에 있다는 기분. 그리고 지금 당신과 나 사이의 간극은 이 정도. (49p, 무정한 여인 中)

 

  -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에 소녀는 깜짝 놀란다. 자신의 몸속 어딘가에 동굴 같은 것이 있고 동굴 안에 거대한 집승 같은 게 있어서 그 짐승이 부주의하게 몸을 뒤척이며 크르릉, 신음소리를 낸 게 아닌가 의심한다. 덜컹, 내려앉는 심장을 끌어안고 기둥 뒤에 몸을 숨긴다. 술래가 다가오는 기척을 재며 안간힘으로 숨을 참는다. 술래는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이리로 오고 있나, 아니면 운 좋게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른 곳을 헤메고 있나. 내다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누르며 소녀는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55p, 아니야, 뒤에 있잖아 中)

 

  - 나는 슬픔을 몰랐다. 내가 속해 있던 세계는 어둠밖에 없었으므로, 어둠 자체로 완벽했으므로, 슬픔이 스며들 여지가 없었다. 슬픔이란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슬픔이란 낯선 관념일 뿐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원할 수 없고, 모르는 것을 갈망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름다움이자 슬픔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에게 이끌려, 빛의 세계로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이 전부였다. 그 한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놓을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90p, 불멸을 위하여 中) 

 

 

 

황경신 작가 책 처음 읽었는데, 감수성이 후덜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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