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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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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안녕 다정한 사람>

 

 

 

 

'참 대담한 기획이 아닌가'.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이병률의 여행에세이는 듣기도 많이 들었었고 읽고서는 여행 생각에 붕붕 뜨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이런 작가와 함께 내로라할 명사들이 함께 여행을 하고서 그 흔적을 남겼다하니 어찌하여 눈이 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유명인들이 자그마치 10명이다. 한 가지 장소에서도 느끼는 것은 수많은 것들로 나뉠텐데 이 책은 열 가지 장소에서만큼이나 그들의 느낌을 담았다. '여행하면 생각나는 곳', 어디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나.

 

 

첫번째로 만난 장소는 작가 은희경의 '호주'

'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오는 일에서 나는 탄성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날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함부로 혹은 지속적으로 잡아당겨지더라도 조금쯤은 다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 18p

 

 

 

낯선 것 안에서 익숙함을 맞닥뜨리는 것이 좋다는 은희경 작가. 그녀는 신비스럽고 그리운 매력의 와인을 찾아 호주로 떠났다. 호주의 와이너리에서, 그리고 햇빛이 넘치는 자연안에서 향기를 가득 품고 돌아왔다. 그녀에게 여행은 와인을 마셨을 때 그려지는 장면들일까? '호주'라는 땅에 대해 들어왔던 말들처럼 그녀의 글은 산들바람처럼 솔솔거린다.

 

 

두번째, 이명세 감독의 '태국'

'결정되기 전 이미지란 환영과 같다. 하여 내게 있어서 이미지란 부수기 위한 대상이다. 지우기 위한 대상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경을, 내 기억 속에 자리잡은 풍경을 부수고, 지워야만 지금 그대로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행은 떠남이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나에 의해서 규정된 것들을 몽땅 버리고 말 그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다.'- 60p 

 

 

 

이명세 감독에 대해서는 영화 매니아인 언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다. 영화가 그냥 '예술'이라는 말. 그래서 그런지 이명세 감독은 '카메라'라는 그만의 창으로 세상을 보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롱샷으로 보는 세상은 희극이고 클로즈업으로 보는 세상은 비극'이라는 그의 말. 영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처럼 장면을 보는 그의 눈도 남달라보였다.

 

 

세번째, 이병률 작가의 '탈린'과 '산타마을'

그들은 놓치지 않기 위해 그만큼의 안간힘으로 그들이 오래 지켜온 색깔에 매달려 있다. 그것을 놓치는 순간, 인생이 꺾이고 마는 사람들처럼. 그래 그런가. 사이가 드문드문한 가게들, 식당들도, 행간이 선명한 술집의 불빛들조차도 모두가 탈린이라는 인생의 골목길을 수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106

 

 

 

그에게 여행이란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란다. 능청스러운듯 아닌듯 한 말에 웃어야될지 말아야될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가장 추운 겨울, 그리고 가장 추울지도 모를 마을 안에서 더욱 화려하게 보이는 불빛들을 보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리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꿈을 품은 산타마을의 편지는 어떤 글이 담겨있었을까. 내가 여행의 베테랑(?)이라고 여기는 그의 글에 또한번 끌려들었다.

 

 

네번째, 백영옥 작가의 '홍콩'

홍콩은 한때 내게 어둠의 도시였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흔들리는 카메라처럼 불안하게 가라앉는 도시였고, 그런 정서는 내가 가진 균열들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언제나 나를 흔들었다. - 128p

여행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의 기억은 그것을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이고, 그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과의 기억이다. - 154p

 

 

 

영화 <중경삼림>의 장면들이 쓰윽 지나쳐가는 듯 써진 작가의 글의 첫머리.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영화였기 때문에 홍콩의 모습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었다. 왠지 시끌벅적해보이는 홍콩. 그곳엔 정말 온갖 종류의 먹거리들이 다 있다고. 어이쿠야 내가 갈 곳이네....^^;

 

 

다섯번째, 작가 김훈의 '미크로네시아'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 159p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미크로네시아. 인간의 무력함을 알게 될 열대밀림, 아침의 첫 빛을 관찰할 수 있는 열대의 바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은 공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색들은 생멸을 거듭하면서 공을 가득 채운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과 공은 서로 의지해있다. 색은 공의 내용이고, 공은 색의 자리이다. 색과 공이 서로 끌어안고 시간 속을 흘러가고 있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과 공은 동행한다.' (171p) 이 책속에서의 김훈 작가의 글은 심해처럼 영롱한 빛을 품고 있는 보석같다. 여행을 노동이라고 표현하는 작가에게, 노동이라는 표현은 평소에 내가 힘들때 말하곤 하는 '노동'의 의미보다 수없이 많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자연과 원주민들 옆에 서있는 작가의 눈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섯번째,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우린 '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상상하게 된다. 나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 역시 특히 여행을 하며 상상을 하고 자신의 세계를 더 나은 그림에 접목시킬 것이다. - 214p

 

 

 

언젠가 TV에서 뉴칼레도니아 광고가 나왔을 때부터 푸른 바다 빛깔에 홀려 '언젠가 꼭 가겠다'하고 소리치던 곳이면서도 '도마뱀이 우글거린다'는 소리에 겁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 곳.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게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뉴칼레도니아가 상상의 세계라고 말한다. 정말 마음이 두근두근한 곳이다. 언젠가 이 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일곱번째, 셰프 박찬일의 '일본 규슈'

지구의 역사는 제각기 먹느라고 살아가는 인간이 남겨둔 패총의 총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도, 우뚝 솟은 서울도 거대한 조개무지와 다를 바 없는, 먹고 뱉어낸 허기와 욕망의 바벨탑인 바에는. - 247p

 

 

 

그렇지, 역시 식도락 여행이다. 식도락 여행은 나도 무지 좋아한다. 여행에서 먹을 것이 빠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런데 박찬일 셰프의 식도락 여행은 '도시락'기행이다. 우리의 시선과는 달리 셰프의 손으로 만든 음식들이 도시락으로 나오게 되고, 식당에서 굳이 도시락을 시켜 그 자리에서 먹고. '에키벤은 이미 음식과 도시락을 넘어 '현상'이라고 불러도 될 의미심장한 일본 해석의 코드였다' (- 230p)

 

 

여덟번째, 가수 장기하의 '런던'

밤거리의 순진무구한 흥겨움과 낮 동안의 쓸쓸한 고요함을 함께 가진 사양산업의 도시. 리버풀은 내게 이번 여행의 세렌디피티였다. - 285p

 

 

 

그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과 가장 비슷한 것이 장기하의 여행이었다. 그의 런던 여행은 음악기행이다. 그리고 지극한 팬심 발동의 시간.

 

 

아홉번째, 신경숙 작가의 '맨해튼'

여행은 낯선 세계로의 진입만은 아니다. 그리운 것들과의 재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렇게 흘러가겠지,를 뒤집는 일은 인생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새로운 것이 발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예기치 않게 뉴욕을 그리워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 발생하기도 하는 것처럼. - 293p

 

 

맨해튼은 작가가 한동안 살았던 공간이었다고. 그래서 여행에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움과의 재회공간. 그리고 돌아와서도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남아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 나에게도 있을지 생각해본다.

 

 

마지막, 가수 이적의 캐나다 '퀘벡'

시민들은 강둑에 혹은 언덕에 늘어서 이 특별한 체험에 동참한다. 도시는 파괴 대신 리터치를 고안해냈고, 완전히 새로운 품격의 도시로 밤마다 다시 태어난다. 가상현실이 현실과 행복하게 끌어안는 장면을, 우리는 어쩌면 만들수도 있을 것 같다. - 355p

 

 

 

그가 말하는 여행,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곳. 하나의 독립공간 같은 캐나다 퀘벡에서 이적은 그 현실이 가상현실과 제대로 만나게 되는 행복감을 느낀 듯하다.

 

 

열 가지의 포인트를 하나씩이라도 담고 싶어 다소 리뷰가 길어지긴 했지만 그 길이만큼 만족이 있는 책이었다. 마침 방학이라 여행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채운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보시다시피 모두 전업 작가들이 쓴 책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그들의 직업처럼, 개성을 느끼며 변덕스럽게 미소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10개의 여행에 대한 의미가 모두 '행복'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을지도.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 여행은 '같이 여행을 떠난 사람과 서로 자꾸 지어지는 웃음을 보고 무언가 더 보려는 조급함에 빨라지는 발걸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 여행가고 싶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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