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번역학 비판 - 응용 이론에서 순수 이론까지
Chang Nam Feng 지음, 김진아.도희진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6년 12월
평점 :
몇년 전에 번역되어 나온 구소련 통역학자의 이론서의 번역수준이 형편없어서, 슬퍼했던 적이 있다. 본문 속의 오역은 차치하고 우선 책을 겉장부터 맨뒷 장까지 뒤져봐도 저자의 이름을 한국어로 찾을 수가 없었던 점이 참 특이한 점이었다(겉표지에 러시아어로만 써 있다). 이 <번역학 비판>의 경우, 중국인인 저자의 이름을 영어로, 그리고 괄호 안에 한자로 써 놓았다. 해당 언어 전공자들만 보라는 책이 아닌 이상(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자의 이름은 번역 1순위 아닌지.
그리고 일한 번역서의 경우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번역서에 남아 있어서, 이해가 안가거나, 이해는 가도 일본투라는 느낌이 오거나 할 때 그것은 전적으로 번역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보니 중한 번역서의 경우도 그런 실수를 피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자 서문(1쪽)에 원본을 완역하지 않고 일부만을 발췌번역해서 책을 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비록 역자는 한국의 독자에게 생소한 부분을 제외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2부와 3부만으로도 나름대로 정합성을 가진다고 판단한 결과 이렇게 취사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원저의 문제 의식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원저자와 독자의 너그러운 해량을 구한다"
고 했다.
'정합성'과 '해량'이란 단어는 물론 한국어에서도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앞 단어는 사용되는 문맥이 특정하고, 뒷 단어는 어지간히 멋부린 글에서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을 단어다. 이 경우 중국어 번역투(중국어에서는 상용되는 단어들이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렇지않은 한자어)가 아닐지 의심이 간다. 저 두 단어 때문에 문장 전체가 고답스럽고 무거워진다.
(작성중)
(지금 역사 서문만 읽었다. 별 네 개는 저자이름때문에 우선 깠다. 이 책을 읽고 인용을 해야하는 경우에 글이라면야 Chang Nam Feng이라고 하고 넘어간다지만, 구두발표시에는 저 영어표기에서 저자이름을 각자 알아서 유추하란 말인지. 사실, 이 문제는 이 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타 인문학 번역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특이한 현상(학자 이름 한국어로 표기하지 않기)은 언어학계에서 자주 관찰되는데, 귀찮다는 건지, 자신이 없다는 건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