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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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이것을 줄인 말이 's.nob.'이다), 즉 작위가 없다고 적어놓은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을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이 문제에 대한 선구적인 작업인 <속물에 관한 책Book of Snobs>(1848)에서 윌리엄 새커리는 25년간 속물이 "영국에 철도처럼 퍼져나갔으며, 이제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어디를 가나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새로웠던 것은 속물근성이 아니라, 속물들의 그런 전통적인 차별행위를 이제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 평등 정신이었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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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완성이란 고통을 피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의 역할을 "선한 무엇인가를 이루는 과정에 겪는 자연스럽고 또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인정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다.-333쪽

우리는 첫번째 책을 쓰느라 10여 년을 비참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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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2009년 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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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이고, 진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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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2008.겨울
한국번역비평학회 엮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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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어로 쓰는 순간 이미 조선사회나 환경에서 촉발된 동기와 감정은 일본적 감정과 감각의 화를 입게 된다" (김사량)

조선인의 감각이나 감정은 그 표현과 '불가리적不可離的'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예켠대 슬픔이나 욕과 같은 감정 혹은 직관의 표현은 매우 에둘러서밖에 번역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김사량에 따르면, 언어 선택이 결코 중립적인 것일 수 없으며, 언어에 의해 동기와 감정 자체가 굴절되게 된다는 것이다. -237쪽

"외국문학 수입에는 국어의 발달이 동반할뿐더러 모어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번역문학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그 결과로서 번역은 여러 가지 부수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번역시기라는 것이 있는 것이요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발달된 때에 비로소 그 문학 범위가 넓어질뿐더러 세계적 비평안으로서 문학을 논하게 된다. 따라서 국어가 발달되고 창작 범위도 훨씬 넓어질 것이다. '가갸날'과 번역 - 이러한 문제도 상당히 중요성을 가졌다." 정인섭, <'가갸날'과 외국문학 연구>, <<동아일보>>(1927.3.19).-238쪽

주지하다시피, 번역은 의미와 말의 등가성이라는 전제, 상호 형상화의 도식을 통해 하나의 언어와 다른 언어가 완전한 형태로 이미 존재하는 듯 가정하며, 그렇게 어떤 지역과 정체성을 자연화한다. 번역 과정 자체가 서로가 서로를 본질적인 경제, 실체로서 확정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전라도 하급 계급의 사투리를 내지어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 자체로 언어 이면의 이질적 주체들을 상기시킨다.-239쪽

특정한 정치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번역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자신을 타자들과 연관시킴으로써 발신자의 언어와 수신자의 언어 모두에 공동체적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가 바로 번역이기 때문이다. 등가와 대응이라는 번역 기준이 작동되는 순간 해석은 곧바로 행위화한다. 파롤과 파롤의 등가 교환은 즉시 두 개의 언어 체계라는 잠재성을 구성케 한다. 따라서, 번역이 비록 제국 내부에서의 '통합'을 그 목적으로 내세운다 할지라도, 번역은 언제나 이질언어적 분할 자첼르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239쪽

그것이 지역방언이든 사회방언이든 방언이란 그것이 한 사회 전체의 관계성 속에 존재하는 한에서, 거의 번역불가능한 언어이다.-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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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학 비판 - 응용 이론에서 순수 이론까지
Chang Nam Feng 지음, 김진아.도희진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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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번역되어 나온 구소련 통역학자의 이론서의 번역수준이 형편없어서, 슬퍼했던 적이 있다. 본문 속의 오역은 차치하고 우선 책을 겉장부터 맨뒷 장까지 뒤져봐도 저자의 이름을 한국어로 찾을 수가 없었던 점이 참 특이한 점이었다(겉표지에 러시아어로만 써 있다). 이 <번역학 비판>의 경우, 중국인인 저자의 이름을 영어로, 그리고 괄호 안에 한자로 써 놓았다. 해당 언어 전공자들만 보라는 책이 아닌 이상(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자의 이름은 번역 1순위 아닌지.  

그리고 일한 번역서의 경우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번역서에 남아 있어서, 이해가 안가거나, 이해는 가도 일본투라는 느낌이 오거나 할 때 그것은 전적으로 번역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보니 중한 번역서의 경우도 그런 실수를 피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자 서문(1쪽)에 원본을 완역하지 않고 일부만을 발췌번역해서 책을 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비록 역자는 한국의 독자에게 생소한 부분을 제외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2부와 3부만으로도 나름대로 정합성을 가진다고 판단한 결과 이렇게 취사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원저의 문제 의식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원저자와 독자의 너그러운 해량을 구한다" 

고 했다.  

'정합성'과 '해량'이란 단어는 물론 한국어에서도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앞 단어는 사용되는 문맥이 특정하고, 뒷 단어는 어지간히 멋부린 글에서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을 단어다. 이 경우 중국어 번역투(중국어에서는 상용되는 단어들이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렇지않은 한자어)가 아닐지 의심이 간다. 저 두 단어 때문에 문장 전체가 고답스럽고 무거워진다.      

(작성중)

(지금 역사 서문만 읽었다. 별 네 개는 저자이름때문에 우선 깠다. 이 책을 읽고 인용을 해야하는 경우에 글이라면야 Chang Nam Feng이라고 하고 넘어간다지만, 구두발표시에는 저 영어표기에서 저자이름을 각자 알아서 유추하란 말인지. 사실, 이 문제는 이 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타 인문학 번역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특이한 현상(학자 이름 한국어로 표기하지 않기)은 언어학계에서 자주 관찰되는데, 귀찮다는 건지, 자신이 없다는 건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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