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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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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은 사실 일본어투와 일본식 한자를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해버리는 무신경함을 뺀다면 오역시비는 가장 적을 것이다. 문제는 일본어투와 일본식 한자를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도 얼추 이해가 간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도 몇군데 그런 부분을 지나치다가 '방수'(193쪽)란 단어에 부딪혀서는 문맥상 '아, 이런 뜻이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찜찜해서 국어사전을 이래저래 찾다가 '방수'의 13번째 표제어로 나온 뜻임을 알고는 약간 짜증이 나서 리뷰를 적게 됐다. '감청'이라고 해도 되는 걸 굳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귀에도 낯선 일본식 한자 '방수'를 그대로 남겨둔 건 방심한 탓인지, 의도적인 건지 모르지만 두 경우 모두 요네하라의 명랑한 독설을 읽다가 약간 멈찟하게 만드는 감점 요인이 된다.

한국어에도 있는 '견본'이란 단어도 일본어에서는 용법이 좀 다른 듯 하다. 그런데 이 단어가 들어간 표현을 그대로 번역해 놓아서 어색했다.

예)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견본 같은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산더미처럼 제공한 끝에 잇따라 저세상으로 가버린 뒤..."(199쪽)

"그건 그렇고 지도자 사망에 관한 공식 발표는 그야말로 어설픈 농담의 견본 같은 문장이었다"(201쪽)

일본어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어에서 '견본'은 상품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저 문맥에서는 '표본'이 맞는다. 

일본식 한자를 한국식 한자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어서 본문에서 요네하라가 그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았더라면 난감했을 단어도 있다.

예) 

"언어학이나 커뮤니케이션 등에서는 불필요한 표현을 전문적인 말로 용어성이라고 한다..."(232쪽)

"5분도 되지 않아서 부스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 결과 연사는 알레그로에서 아다지오, 아니 아다지시모로 템포를 늦춰줬을 뿐 아니라,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방식을 그만두고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즉 용어가 많은 방법으로 바꾸어주셨다. 물론 용어를 얻게 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다시 살아났다."

여기서 '용어성'은 한국어로는 '잉여성'이라고 한다. 위의 '방수'는 국어사전에서 좀 고심해서 찾아보면 찾을 수 있었지만 이 '용어성'이란 말은 한국어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다.

사족이지만, 256쪽에서 요네하라가 러시아 통역 연구의 대가로 호명한 '미얄 베롤체프'(러시아 통번역이론 학계에서 저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학자라면 '민야르-벨로루체프(Р. К. Миньяр-Белоручев)'가 틀림없는데 어쩌다가 '미얄 베롤체프'가 됐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이 분의 대표적인 통역학 이론서('번역의 이론과 방법')가 한국어로 몇해 전에 번역됐다. 이 책은 우선 그 저자가 번역보다는 주로 통역에 대한 이론연구자임을 고려할 때 '번역의 이론과 방법'이 아니라 '통역의 이론과 방법' 혹은 적어도 '통번역의 이론과 방법'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 책 사실 꽤 흥미로운 책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연구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신경심리학자인 루리야(А. Р. Лурия)의 뇌신경심리 연구자료 및 정보이론의 개념을 동원해 상당히 의외의 통역이론 분석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이 이렇게 번역되어 나와서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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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2-25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어 전공이시군요.^^ 저자가 러시아통이어서 저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러시아어 전공자가 한번쯤 교열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대단한 책>에서도 몇몇 잘못된 표기들이 나와서요...

Sati 2008-02-29 23:24   좋아요 0 | URL
아쉬움이란 말이 딱 맞는 것 같지요? 번역자 자신도 좀(그리고 당연히!) 신경써주었어야 할 부분이고 그랬다면 완벽하게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을텐데요. '앙', '아아' 이런 감탄사도, 만화책마냥 그대로 음역해버리니 일한번역은 참 누워서 떡먹기일 거 같다는 배아픈 심정도 있구요. 물론 "쉬운 번역은 없다"(박상익)가 맞겠지만요.

제가 붙임성이 없어서 로쟈님께서 들러주신 건 며칠전에 알았는데 이제야 댓글을 씁니다. 로쟈님의 글 감사히 읽고 있어요.
 
번역의 이론과 방법 고려대학교출판부 번역학총서 12
P. K. 미니야르 벨로루셰프 지음, 김진원.최준기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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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짧게,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지 간에 그 이상의 오역을 읽게 될 것이다!"

알라디너 로쟈님의 이 말로 리뷰를 대신합니다. 책의 앞 겉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싹 뒤져봐도 저자의 이름이 한국어로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러시아어로만 적혀있습니다)도 참 희안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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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 - 할인행사
에릭 다넬.톰 맥그래스 감독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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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CGV에서 한국어 더빙판으로 보았는데, 더빙이 예술이더군요. 슈렉2는 영어판으로 보다가 한국어 더빙판을 보고 좀 실망했는데, 마다가스카는 아이있는 집이라면 더빙판으로 구입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더빙판은 DVD로 출시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쨌건 조카에게 사주고 싶은 물건으로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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