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미치게 하는 시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의 책을 2/3쯤 읽어가고 있다. 900페이지가 넘는 미친 존재감 때문에 정말 미칠 것 같은 분량이다. 하루에 300페이지 이상을 넘겨도 3일을 꼬박 걸리는 시간이다. 보통 책 같으면 이런 책은 하루 정도면 충분하다. 속독으로 읽어 버리거나 부분 부분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된다. 독서를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을 한장 한장 집어들고 읽어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날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던진 한마디 한마디는 신적계시와 흡사하다. 사람을 홀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텍스트를 통해 읽는 나에게도 그랬다면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책속의 사람들은 어떠 했을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록 부럽고 설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티브 잡스의 어록?만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양념이 빠진 김치가 맛은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잡스의 말들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설레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래의 네권의 책은 스티브잡스의 어록을 모은 책들이다. 특히 마지막의 그의 연설문은 가히 히틀러를 능가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 펩시에 있던 스컬리를 영입하면서 도전했덜 말이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거의 아무런 혁신도 시도하지 않으면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졌습니다. 데스크톱 시장은 암흑기에 접어든 겁니다."
 - 1995년 와이어드에서 
 

 "애플 컴퓨터를 구입하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고해야 생각합니다. 우리 컴퓨터를 사는 사람들은 실제로 다른 것을 생각한다. 이분들은 이 세상의 청조적인 영혼들이고, 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도구를 만들어 드립니다." 
- 1997년 8월 맥월도 행사에서
 
스티브 잡스는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라고 충고한다.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죽은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뭔가를 계속하여 추구하라는 것이다. 결코 적당히 살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건하나 잘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나오는 이윤을 빨어먹는 거머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스티브 잡스는 선동가이며, 혁명가이다. 그는 무례했고, 무모했고, 어리석었다. 이분법적 구분법으로 사람들을 구분하여 천재 아니면 머저리들로 확연하게 잘라 버렸다. 그의 무례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에게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오히려 강해지고 창조적이 되었다. 그의 진정 혁명가였다.  

잡스는 내내 이윤을 보지 않았다. 전혀는 아니지만 '거의'는 확실하다. 돈보다는 혁신을 추구했으며, 진정한 창조적 능력을 구사했다. 그가 다시 애플로 돌아왔을 때도 픽사가 손해보고 돈이 되지 않지 않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그는 '돈이 아니고 혁신'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진정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보다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꿈'을 심어 주었다. 그의 리서십은 연연하지 않는 그의 놀라운 혁명적 사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를 보냈지만 결코 그의 교훈과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야 말로 진정 그를 배워야 할 시간이고, 그를 잡아 두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왜?  

그가 나를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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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9-2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Clive Staples Lewis , 그는 결코 작지 않다. 완고한 불신자에서 극적인 회심을 겪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가 기독교 지성인들에게 뿌린 영향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예기치 못한 기쁨은 그의 회심 스토리를 기록해 놓은 곳이다.

지성인 답게 그는 자신의 회심을 사소한 일상에서 갑자기 찾오신 하나님을 영접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이성을 넘어 찾아온 하나님 앞에 무릎꿇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완고한 무신론자를 뛰어넘는 회심의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지성인도 회심이 가능할까? 많은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다. 

  

 

 

 

 

 

  

 

 

루이스는 신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신학자를 능가하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의 세 책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순전한  기독교는 이미 20세기 최고의 책으로 인정받은 바 있는 책이다. 기독교의 교리들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고 서술하고 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인간안애 내재된 악을 우화처럼 그려낸다. 마지막 고통의 문제는 젊은 루이스의 비판력과 통찰력이 스며있는 철학적인 책이다. 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가장 루이스 답고 명쾌한 저서는 [영광의 무게]이다. 여러 곳에서 강의한 것을 모아놓은 것임에도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사변이 깊이 배인 책이다. 시편 사색은 루이스의 신학자를 능가하는 성경지식과 문학적 성향을 통해 풀어낸 역작이다. 결코 길지 않는 두깨이지만 시편을 관통하는 그의 영적인 면를 보여준다.  네가지 사랑... 영광의 무게 다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루이스의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저서이다. 인간적인 사랑과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치밀한 논리와 명쾌한 서술로 풀어 낸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역시 문학가 다운 루이스의 멋이 드러나는 멋진 책이다.

 

 

 

 

 

 

 

 

 

 

 

 

 

 

 

 

 

 [헤아려본 슬픔]은 고통의 문제 뒤에 찾아온 매우 인간적이고 사색적이며 개인적인 고백이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 것 같았던 루이스는 말년에 암에 걸린 조이와 결혼식을 거행한다. 잠시 치유 된듯 햇으나 결국 저 천국으로 떠나 보내야 했다. 어렵게 말하면 신정론이다. 그러나 실존적 인간의 고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피고석의 하나님]은 국내에 새로이 번역된 책으로 루이스의 철학적 변증과 무신론의 어리석음을 폭로한다. [페렐란드라]는 우주론? 루이스를 통해 듣는 하나님의 창조와 자연과학 이야기이다. [인간폐지]는 세번째 링크에 올려 놓은 탁월한 명저이다. 인간의 실존을 다루면서 신이 없는 인간의 참상을 다룬다. 

 

 

 

 

 

 

 

 

 

 

 

 루이스는 작가이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가 증명한다. 나니아 연대기가 신화적 배경을 깔았다면,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순수한 문학 작품으로서의 구도자의 삶을 보여준다. 루이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소설이라고 부른 책이다. [개인기도]는 기독교에 입교하려는 친구를 위해 기도에 대해 조언해준 것들을 책으로 모았다. [기적]은 놀라운 책이다. 지성인들은 기적을 믿을까? 루이스는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기적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기쁨의 하루]는 루이스의 글들을 묵상집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Clive Staples Lewis,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을 불과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미친 영향을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이다.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그의 글들은 나로 하여금 기독교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었다. 문학과 신앙을 함께 아울렀다는 점에서도 그는 충분히 인정 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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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전 [안씨가훈] 읽기 


안씨가훈(顔氏家訓)은 안씨의 가훈이란 뜻이다. 중국의 남북조시대 안지추가 지은 책이다. 안지추는 남조 양나라에서 신기시랑을 지내다가 양나라가가 서위에게 멸망한 후 북제로 도망쳐 거기에서 호아문시랑과 평원태수를 지냈다. 또 북주가 북제를 치고 뒤이어 수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서 북주와 수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의 지식인이 자손에게 글로써 인생과 생활의 지침으로 남긴 책이 바로[안씨가훈(顔氏家訓)]이다. 
 

 

 

 

 

 

 

 

 

저자인 안지추는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가면서 다른 나라를 접하며 살아남았다. 때로는 강인하게 때로는 연약하게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어리석게 보이며 시대를 뛰어넘은 것이다. 자신의 문화가 최고가 아님을 인식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과 배신, 그리고 일의 성취하는 방법등을 몸으로 체득하였다. 그래서인지 안씨가훈은 사소하고 별볼일 없어보이는 것들까지 전해주고 있다. 통찰력있는 지혜라기 보다는 저작거리에서 사람들과의 화담을 통해 한가지의 주제를 잡고 다시 깊이 파고들어 갔다. 어지러운 난국을 넘어야하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총주제는 서문에서 유언까지 모두 20편이다. 난세에서 살아남는 법, 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는 하지만 안씨가훈은 인생의 전반적인 부분까지 고루 다루고 있어서 수백년 전에 들려주는 이야기치고는 현대의 사정과 너무 닮아있다.

   
   열여덟, 아홉 살이 되어서야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습관은 자연과 같아서 갑자기 씻어버리기는 어려웠다. 스무 살 이후에는 크게 잘못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늘 생각과 행동, 이성과 감정은 서로 적이 되어 다투었으며, 밤중에는 아침의 잘못을 깨닫고 오늘은 어제의 잘못을 뉘우쳤는데, 공부하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신을 가엾게 여겼다. 그리하여 지난날 형님들의 가르침을 돌이켜 생각하여 마음에 깊이 새겨 잊지 않았는데, 단지 고서의 교훈이 주는 인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20편의 글을 남겨 너희들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서문 중에서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재혼과 가정은 어떻게 꾸릴 것인지, 예와 벗은 어떻게 대하고 가꾸어야 하는지, 개인 수양에 관련된 전심과 분수등의 이야기도 하고 있다. 저자 불교인이라 불교 신앙론까지 적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유언을 담고 있다. 때로는 권위있게 하지만 다정다감하게 조용히 자녀들에게 귓속말로 들려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안씨가훈을 더욱 가치있게 여기는 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사람과의 관계를 본질을 꿰뚫어보는 몇 구절이다. 

欲不可縱(욕불가종) 욕망을 함부로 풀어 놓아서는 안 되며.
志不可滿(지부가만) 뜻을 가득 채워서는 안 된다.
以勢交者(이세교자) 세력으로 사귄 사람은
勢傾則絶(세경즉절) 세력이 기울면 끊어지고.
以利交者(이리교자) 이익으로 사귄 사람은
利窮則散(이궁즉산) 이익이 다하면 흩어진다.

수많은 전쟁과 권력투쟁의 현장을 보아온 저자로서는 인간을 결코 선하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지추는 인간은 악하며 권력과 물질에 쉽게 유혹당하는 존재로 설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이나 득이 아닌 순수한 결합은 결코 나쁘지 않으며 진정한 관계를 물질을 넘어 도리로서 대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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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2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1-11-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글을 남길 곳이 없네요.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제가 물만두님을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좋은 책으로 나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책 제목, 무엇인가 시리즈는 무엇인가? 

 

책 제목은 책의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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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박정희, 그는 썩은 한국을 개혁하고 싶었다. 그는 분명 한국을 지금까지의 역사를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원했다. 불가피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박정희 전대통령은 군사력을 동원해 대통령이 되었고, 자신만의 권력집단을 만들어 냈다. 

 

 

 

 

 

 

 

 

 

 박정희를 이어받은 사람은 또 다른 군사 쿠데타를 동원해 정권을 쟁취한 전두환이었다. 그의 첫번재 적은 광주였다. 광주사태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사건보고서가 아직만 진작 중요한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고있다. 이 어찌 된 일인가? 전두환 대통령은 전의 박정희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는 프로파간다를 너무나 절적하게 이용할 줄 아는 영약한 존재였다.

 

 

 

 

 

 

 

 6공화국의 출범은 새로운 정치개혁이나 모습이 아니었다. 전두환이 물려준.. 정말 물려준 나라였다. 노태우 대통령을 사람들은 '물태우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왜일까? 물처럼 확고함이나 강직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는 군인이었고, 사람들을 적절하 다룰줄 아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영상과 김대중은 시대를 전혀 다르게 이끌어 간다. 김영삼은 노태우와 분명 다르지만 정치노선에 있어서는 그대로 물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초기 진보를 외친 그였지만 대통령을 되어보고자하는 그의 욕심은 결국 보수진영과의 위험한 결탁을 시도한 것이다. 초심일관은 분명 힘든 것이다. 경제나 정치에서도 여전히 다르지 않다. 군사정권을 끊고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지만 과거의 전재를 그대로 답습한 점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김대중 대통령의 시작이다. 지금까지의 진정한

 

 

 

 

 

 

 

 

노무현,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성공이다. 진보의 역설은 이곳에 존재한다. 존보는 힘을 버리고 응집력을 버리고 개체로의 환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는 항상 실패한다. 그래서 성공한다. 대통령의 권위를 버리고 오로지 한 인간이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스스로 과거의 짐을 버리고 싶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었지만, 그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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