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출판사 : 새물결플러스  

새물결 플러스 출판사에 결코 익숙한 출판사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파격적인 서적을 펴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특히 최고의 지성을 갖춘 분들의 저서들이 많다는 점과 탐욕에 물든 교회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근래에 출간된 지성의 회심, 하나님은 월요일에 무슨 일을 하실까?와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는 책이 무척 눈에 들어 온다. 대장간출판사와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대장간이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는 반면 새물결플러스는 교회의 부패한 모습과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즉 대장간은 세속적인 내용을 구분하지 않지만 새물결플러스는 교회내부만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에 대한 루머..에서는  기존의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하나님에대한 잘못된 믿음 10가지를 지적한다. 우리를 해롭게하는 걱정거리를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 책이 파격적인 이유는 지금까지는 세상의 고통을 신앙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점을 말하지만, 이 책은 잘못된 신앙으로 인해 걱정이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이다. 전적으로 소용하기는 힘들지만 나름 생각해볼만한 점은 분명 많다.

앞으로 새물결플러스가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다만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개혁을 위한 비판이 아닌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잃으면 절대 안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경철의 자기혁명, 그곳에 자기혁명은 없었다.  

 

너무 가혹한 주장일까? 너무 유명하고 깊이있는 인문학의 수준을 쉽사리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쓰는 책들은 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그에대한 평판은 매우 높다고 해야할 것이다. 나에게도 박경철씨의 책이 세권이나 있다. 한 사람의 저자의 책을 세권이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결코 범상치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후는 자기혁명)은 아무래도 실망감을 감출수 없다. 2주 전에도 책을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짧게 쓴 적이 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혁명이 무엇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혁명에 관한 주제를 알기 위해 다른 서평자들의 서평도 읽어보고 미디어 소개란에도 들어가 읽어 보았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혁명이 분명히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판단이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혁명이란 고작 자신을 좀더 나은 사람으로 계발하고 성공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저자가 혁명적이라고 말했던 부분을 살펴 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든 틀에 스스로 가둔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두 스스로 만든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그 틀을 유지하느라 애를쓴다. ... 그 경계는 그의 사유와 행동을 제약하게 한다. 이때 중요한것이 혁명성이다. 혁명성은 안주하려는 인간의 속성과 달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서슴없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것을 타파하는 행동이 바로 혁명성이며, 그것을 행한 결과가 바로 혁명이다."(159쪽) 

저자는 혁명성은 안주하려는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혁명성으로 주장한다. 두번째는 '심리적 감옥'이라고 말한다.(159쪽) 다른 곳에서는 혁명성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달리 부르고 있다. 분명 혁명과 진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라는 개념은 혁명성과 일치시킴으로 혁명=진보의 공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것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변화를 이끌 용기가 없다'고 말한다. 다시 저자는 '보편성과 초월성'을 대립시키며 이중적 속성을 인간이 부여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데, 보편은 초월적인 의미이며 서로 보완적 단어이다.(164쪽) 보편은 플라톤의 초월적인 세상인 이에아를 말하며, 현실은 '개체'이다. 대립구도는 보편과 개체이며, 종교적으로는 초월성은 내재성과 대립된다. 그는 심지어 철학이나 종교, 명상에 심취하는 것과 자연주의자가 되는 것을 현실을 등지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는 패배주의에 물든 무력한 초월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나아가 저자는 점점 애매한 말로 논리를 전재한다. "사회(타인)에 대한 나의 의존을 극복하고 홀로 서려는 자아는 초월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것은 독선이다. .. 사회에 참여하는 나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166쪽) 

저자는 분명 초월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를 버리는 극단적 초월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과 떠난 초월은 진정한 초월이 아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일원론적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즉 보편=초월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개체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부분에서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지만, 이것이 자기혁명과는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가를 분명치가 않다.  

말콤글래드 웰의 [아웃라이어]를  비판하면서 '일만시간의 법칙'의 모순을 지적한다. 

 

 저자는 일만 시간을 다 채운다고 해도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시간을 채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명은 '달인'이지만 다른 사람은 비달인'이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그들을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었을까? 저자는 그 답을 '재능'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주요 논점은 노력보다는 오히려 재능이다."(193쪽)  

말도많고 탈도 많은 재능이 이곳에 등장한다. 저자의 주장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 자기혁명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주제를 끌고 나오고 말았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중세적으로 표현하면 '신의 은총'을 입은 자들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능의 탈렌트는 헬라어 성경인 달란트에서 가져온 몰로 신에게서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자기혁명은 물건너 간 것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재능을 곧바로 '잠재력'이라는 확장된 주제로 이어간다.(194쪽)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은 경험-체험이다.(198쪽)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체험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있다고 주장한다.(198쪽)  

 

그럼 자기 자신을 어떻게 계발할까? 버트란트 러셀은 인간을 원죄형, 자아도취형, 과대망상형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번째 인간인 원죄형 인간은 기존의 사회가 가진 전통적인 가치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다. 원죄형 인간은 기존의 가치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분노를 내면서도 주저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을 말한다. 자아도취형의 인간은 비겁하고 권력에 쉽게 타협하는 출제지향의 인간들이다. 세번째 과대망상형은 스스로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완고하고 유연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절벽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마차같은 대책없는 인간이다. 저자는 이곳에 한 가지의 사람을 더 추구한다. 그 사람은 자기만의 색깔로 도전하는 인간이다. 박경철씨는 이 사람을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한다.(231쪽) 주인의식이란 무엇인가? 태풍에 흔들리고 휘더라도 바닥에 뿌리 내린 '갈대'같은 인생이다. 즉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확신과 주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 애매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바람은 기존의 부패한 세상의 유혹이고 낙엽은 그런 가치에 떨어지고 수긍하는 수동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거부하는 것이 혁명이란 말인가? 독서는 결국 지금까지의 전통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진정한 혁명은 기존의 것을 거부함으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이것또한 분명한 오류다.  

필자의 짧은 소견인지는 몰라도 2독을 통해 감?잡은 박경철씨의 자기혁명이란 자신 안에 내재된 잠재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을 독서이고, 이것을 훈련하는 것은 소극적인 면에서 기존의 가치를 버리는 것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현실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학과 습이 병행되어야 진짜 공부다' 부분에서 명확해 진다.(272쪽) 저자는 이곳에서 거짓된 학습을 주도하는 '스펙문화'를 비판하며 자신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부는 배움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익히고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학습을 경험론적으로 풀어가고 있음을 본다.  앞서서 형이상학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 진정한 학습이란 머리가 아닌 삶 즉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저자는 실천적 삶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에 이르는 것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좋은 책이며, 좋은 내용이다.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제목에 '자기혁명'과 내용의 자기혁명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자기계발'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많은 것을 본 받고 배울만한 분임에는 틀림없다. 아쉬움은 제목과 거리가 먼 저기계발의 문제 였다는 점과  청년의 시기를 형이상학적으로 도전의 시기라고만 정의하고 실천적면에서는 스스로 공부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rase 2012-01-1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추상적이면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법한 좋은 내용들의 열거를 보면서 자기혁명의 이름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정미소 2012-01-1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은 누구나 변화하고 싶지만 또한 변화한다는 것은 나의 고정된 습성과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깨치는 것으로 불편하고 성가셔서 쉽게 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작심삼일'이 되지요. 저는 자기혁명이라는 것이 원대하고 획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배우고 느낀것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도 자기혁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서와 사유에서 온 저자의 철학을 보는 것 같아 책을 보는 내내 줄을 긋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제 속에 꿈틀대는 변화의 기대를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 작은 실천들을 행하고자 목표를 정했으며 당장 오늘부터 하고 있습니다. 제속에 자기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안 2012-01-26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랑 같은 의견이시네요^^
영수국중심으로 열심히만 하면된다는 것의 학문적 "키치"의 새로운 박경철씨 버전이라고 봅니다
인기에 편중한 이들의 이목을 끌어
책만 몇권 더 판 샘이된거죠

남의 얘기만 잔뜩 끌어다 모은 씁쓸한 논문집
정작 자기가 정의해 놓은 말은 있는데 조심스러워 대강 마무리지은 자기혁명적 저서였어요
 

존 요더의 혁명적 정치절학 

  John Howard Yoder  

 

 

메노나이트 정치철학자이다. 혁명적 정치철학과 기독교 공동체 운동을 주도했다.  

존 요더는 바르트의 영향과 프랑스의 혁명적 정치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칼빈주의적인 정치와 종교의 동일시를 부정하고  극단적 분리를 주장했다. 교회 공동체는 세속적 정치제계과 다르기 때문에 판단기준과 보는 관점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속적 정치가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하고 억눌려 강제적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기독교 정치는 자신을 내어주고 섬김을 통해 이루어내는 사랑의 공동체임을 강조했다. 존 요더의 기독교 정치학의 핵심은 '자유'이며, 자유란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양심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대장간에서 이번에 새로운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난 달 11월에 출간한 [근원적 혁명]을 시작으로, [교회, 그 몸의 정치], [당신이라면]  앞으로 대장간은 존요더를 시리즈 별로 계속하여 출간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국 교회 안에서는 낯설은 신학자였던 존 요더가 서서히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진정한 교회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존 요더의 정치철학은 피해할 수 없을 것이다.   

존 요더는 비폭력정항을 정치철학의 근저로 삼고 있다. 물리적인 폭력 자체를 거부하고 세속적인 정치와의 일체의 결탁을 거부하기 때문에 군입대를 거부하며, 이것 또한 비폭력으로 저항한다. 입대는 결국 사람을 죽여야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입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신앙의 자유를 강조한 신앙은 부모의 언약에 근거한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자신이 성장하여 스스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은 부모의 강압적이거나 이해불가능한 때에 무의식적으로 선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철학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메노나이트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영적이나 상징적인 해석이 아닌 실제적인 해석을 가했다.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을 돌려대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나 성도의 공동체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자기들만의 공동체가 만들어 져야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선호했고, 국가의 권력체제를 거부하고 오로지 세상에서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으로 보이는 존 요더의 정치성향은 세속 나라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병역 거부를 주장했고, 타인이 타인에게 물리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자유를 강조했다. 많은 강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색적인 혁명적 강조로 인해 세속적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하고 사회의 안정을 파괴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을 여지가 농후하다. 

어쨋든 존 요더의 정치신학은 세속에 물들어 잠든 기존의 교인들을 깨우는 각성제이자 충격요법이 될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참고 : 메노나이트  

메노나이트 Mennonites는 16세기 종교개혁시기에 일어난 개신교의 일파이다. 메노파라고도 말하며, 메노 시몬스의 신학을 따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메노나이트는 재세례파 운동과 연관있다. 메노시몬스는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로만 카톨릭 사제였다. 그러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동참하다 다시 재세례파로 옮겨간다. 그는 유아세례 거부, 개인의 종교의 자유 주장, 신앙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비폭력주의 주장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신학사상은 재세례파와 흡사하기 때문에 재세레파의 분파로 이해되었고, 함께 핍박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 유물론과 관념론의 경계들 

 

 고대 철학은 자연철학과 인간철학으로 구분한다. 어설픈 추론이지만 대충 그렇다.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에서 만물의 기원과 본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부터 인간이란 누군인가 질문하기 시작한다. 철학의 두 뿌리는 바로 이러한 두 평행선상에서 이어진다. 

칸트 ,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 

순수 칸트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미 놓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칸트는 로크와 루소 등의 경험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진 형이상학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했다. 물론 경험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 선험적 문제, 즉 형이상학은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저자가 경계이란 주제를 끌고 나온 것은 경험과 형이상학의 경계를 두고 한 말이다.  

고대 헬라철학은 경험이 아니라 형이상학 영역에 속한다. 경험이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 즉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는 경험으로 전부로 여기려는 기계론적 사상가들에게 던지는 반성적 요구이다.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즉 과학적인 것으로만 분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르다. 그는 정치가였지만 전쟁의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었다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나 드디어 찰학자가 되었다. 그는 폭력과 자만으로 무력행사하는 폭정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지혜자. 즉 철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것은 이데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플라톤은 중세 초기의 기독교 철학과 정신을 담고 있으면서 경험론을 굴복시킨 형이상학의 철학자 칸트의 기원이다.

 

 

 

 

 

 

 

 

 

자연 대 인간. 고대로부터 면면이 이어져오는 철학의 두 기둥이지만 그들은 동지이면서 동시에 적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플라톤은 형이상학만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만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전혀 아니다. 플라톤은 보편과 개체의 분리 내지는 개체는 보편을 닮았고 보편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과 개체는 하나였다. 보편이 없다고 말한 홉스나 경험론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점에서 중세철학의 문을 연 어거스틴과 경험론과 형이상학은 하나로 묶고 싶었던 칸트와 헤겔의 시조였다. 

 

 

 

 

 

 

 

 

그런 점에서 칸트와 헤겔은 보수적이며 중세적이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후예들이다. 자연철학자들의 후예는 경험론자, 기계론자, 과학자들이다. 플라톤은 관념을 추구하는 중세기독교 철학이며, 헤겔과 헤겔의 우파계열들이다.  헤겔 좌파는 유물론자들이며, 경험론에 가까우며, 후에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는 바로 포이에르바하이다. 그는 종교 즉 형이상학을 절대 부정했으며, 사람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신은 없으며, 신을 믿는 것의 어리석음을 폭로했다. 신은 형이상학이다. 그는 형이상학을 부정했다.

 

 

 

 

 

 

 

포이에르바하는 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과 같은 사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포이에르바하로부터 이어지는 유물론자들은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장자계열에 속한다. 물론 완전한 장자는 아니다. 다만 중요한 정신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유물론은 무엇일까? 인간을 정의함에 있어서 형이상항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되어있다는 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이다. 플라톤과 같은 이데아론자들은 정신을 해방하기 위해 육체를 제거해야 했다. 이러한 육의 해방은 플라톤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며, 이 후로 계속된다. 헤겔에게서 특히 강하게 드러난다. 정신이 모든 것이다라는 명제는 플라톤 주의자들에게 담겨 있는 것들이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극동방송과 함께하는 특별기회 도서 목록 

 

극동방송에서 인물과 교회사라는 주제로 2011년 11월 책을 추천했습니다. 모두 열권입니다.   

1.  만화 한눈에 읽는 교회사(상) / 크레마인드 글 그림

2. 한국 장로교회사 / 양낙흥 

부제 이렇게 달려 있습니다. [형성과 분열 과정과 화해와 일치의 모색] 744쪽이라는 결코 얇지 않는 책이지만 한국 장로교회사를 관통하는 분열과 화해라는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3. 부흥의 현장을 가다. / 박용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인도 등 1년간 전세계에 흩어진 부흥의 현장 30여 곳을 직접 찾아가 온몸으로 기록한 기록이다. 총신 신대원에서 교회사를 맞고 있는 저자는 부흥사로서 훌륭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4.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사람들 / 김성춘 기획, 김현정 글, 이승애 그림  

서로 일치하면 할수록 만족감과 성취도가 커진다는 RIASEC 이론에 근거한 각 유형을 분류하여 각 유형을 대표할 만한 다섯사람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성격 유형이 팀과 삶에 미치는 모습을 재미난 그림과 함께 풀어내 준다.

 

 

 

 

 

 

 

 

5. 하나님이 선택한 비범한 여성들 / 존 맥아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 열두명이 등장한다. 고귀한 신분에서 미천한 신분 모두가 들어가 있다.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평범한 삶이 비범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6. 예수님이 선택한 평범한 사람들 / 존 맥아더 

예수님의 제자들은 랍비나 학자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참 대책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선택했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7.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  / 이상규 

선교 120년 주년을 지나며 지난 한국교회의 과거 역사대한 성숙한 해석을 제시한다.  역사신학자로서 탁월한 안목을 가진 이상규 교수는 진정 주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가를 역사를 통해 들여다 본다.

 8. 터닝 포인트 / 마크 A 놀 

사회적 관점에서 탁월한 역사가인 마크 놀의 책이다. 기독교에 일어났던 12가지 전환점을 찾아 가 본다. 예루살렘 멸망, 교회의 대분열, 종개혁 등의 중요한 교회사를 변화 시켰던 시간을 생각해 본다. 

 

 

 

 

 

 

 

 

9. 우리 사이를 거닐던 사랑 / 폴 밀러  

예수님을 닮고 싶다면 이 책을 사라. 사복음서에 소개된 예수님의 삶과 사랑의 방식을 통찰력있게 묘사한다.  버려진 인생, 쓸모없는 인생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거하며 그들을 사랑하셨던 사랑이신 예수님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과연 사랑이었고 진정한 진리였다.

 10. 데이비드 리빙스턴 / 자넷 & 제프 벤지 

불타는 열정으로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살았던 리빙스턴의 삶을 조명해 본다. 백인의 무덤으로 불렸던 아프리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켰던 그의 삶을 통해 다시한 번 도전을 받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