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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는 정치다(장 미셸 지앙, 목수정 역, 동녘) 

"문화는 정치다". 온갖 질문들이 빗발치게 하는 제목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문화정치'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 책의 소개란에는 '문화'와 '정치'의 생소한 결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저술의도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문화'와 '정치'의 결합은 사실 하나도 안 생소하다. 아마 "정치는 문화다"라고 말해도 이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문화'와 '정치'의 상호보족관계에 대해서는 익숙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문화정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겠다. '문화정치'란 말은 이미 '1910년대의 무단통치에 이어, 3.1운동의 영향으로 수행된 1920년대 일제의 통치양식'을 일컫는 말로 학술적 시민권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TV와 영화, 음악과 공연과 같은 대중미디어를 다룬 비평들 또한 '문화정치'를 화두로 삼고 있다. 과연 '문화정치'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이 물음의 답을, 최근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운' 나라인 프랑스의 역사로부터 찾는다. 물론 역자는 아주 적실하게도 최근 가장 '선동적인' 여성 칼럼니스트 목수정이다. 

 

2. 다미가요 제창(정영혜, 후지이 다케시 역, 삼인) 

   이 책 제1장에는 저자의 에누리 없이 완벽한 논리가,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번역되어 있다. "결국 피차별자가 그 차별을 고발하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차별을 방치하지 않기 위한, 스스로 내면화하지 않기 위한 의무 말이다. 결코 차별을 없앨 책임을 혼자 도맡아서가 아니다. 그런데 ‘다수자’들은 이러한 ‘소수자’의 고발을 <지원>한다는 형태로 반차별의 태도를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차별과 싸우는 주체가 되고 차별을 없애는 데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차별하는 사람들이지 피차별자가 아니다. 그런 것을 ‘다수자’가 ‘소수자’를 <지원>한다고 하는 순간, 그 책임은 교묘하게 ‘소수자’에게 전가되고 ‘해주기’, ‘받기’라는 상하관계가 생겨나 다시 ‘다수자’가 우위에 선다. 이러면 차별 구조를 똑같이 덧칠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재일조선인의 문제의식이 강상중, 서경식과 같은 남성의 것이었다면, 이 책에서 2.5세 여성 재일조선인인 저자는 인종주의와 국가주의의 공모에 '젠더 정치'마저 가세한 차별의 구조를 사정 없이 파헤친다. 그리하여 "다미가요 제창", 기미(君, 군주)를 다미(民, 민, 백성)로 바꿔 국가로 정해진 기미가요 대신 다미가요를 부름으로써, 강요된 국민국가의 국민 위치를 넘어서자는 결의가 담겨 있는 제목을 달았다 한다. 너무 익숙한 결론인가? 그 아쉬움이 바로 '다문화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유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유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3.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문학동네) 

  기어코 '추천'을 하고야 말게 만드는 게 신형철의 힘이라면 힘이다. 신형철이라는 눈에 띠게 똑똑한 사람이 이 미치게 찌질한 시대에마저 그렇게 열심히 읽고 쓰지 않았다면 문학 따윈 옛날에 버렸을 거다, 라고 말하게 만든다. 내가 신형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실망은, 그가 고백하는 문학에 대한 애증, 그것과 약간 닮았다. (물론 나는 그처럼 열렬하게 고백하지 않을 것이고, 최대한 계산하며, 끝내 숨길 것이지만)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그가 쓴 문장들의 울림을. 그때 '다시' '미문'이 가진 위안을 힘을 믿기 시작했다. ('미문'에 대해 주관적으로 재정의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그에게 조금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지혜와 성실에 대한 찬탄을 들을 때면 '나도 조금은 그렇게 느껴', 라고 동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온갖 시와 소설집 머리말과 뒷표지에 예의 그 '미문'으로 된 주례사 멘트를 쏟아낼 때는 숱하게 실망도 해봤다. 이제부턴 미워하겠다고 '거의' 다짐도 해봤다. 내가 보기에 그는 '문학'에 대해서는 '급진적'이고, '정치'에 대해서는 '온건한' 듯 했다. 그런 이분법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그런 걸 왜 싫어했는지 가끔은 나도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그런 걸 다 걷어치우고, 위악과 교만, 과장과 허영 없이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요즘 내게 필요하다. 그가 적은 서문의 말대로 "느낌의 공동체", 그 소박한  공동체에 가끔은 귀속되고 싶단 말이다. 

 

4. 포 피시(폴 그린버그, 박산호 역, 시공사) 

 '올해의 가장 멋진 책표지' 같은 걸로 뽑아줘야 할 것만 같은 책(당연히 한국어판 말고 원서의 것) <포 피시>의 네 주인공은 연어, 농어, 대구, 참치다. 헛, 다 맛있는 것들!!! 생선 그림을 보고 거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고 있을 뻔한 순간에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 정부에서 권장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생선을 먹어서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는 기준이 전 세계인에게 적용된다면 지금보다 바다가 서너 개는 더 있어야 한다" 아, 이 책은 강제 양식과 남획을 자행하는 인간의 탐욕에 의해 파괴되는 해양현실을 조명한 책인가보다. 그래서 이 책은 서두에서 '단 한 번이라도 물고기를 식품 아닌 생명으로 여긴 적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에 나온 또 하나의 좋은 책, <헝그리 플래닛>(윌북, 2008)도 이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라며 독자에게 '얼굴을 가진 동물들'을 보여줬었다. 또랑또랑한 눈을 가진 소와 돼지, 양들이 네모 반듯하게 잘라져 부위별로 포장되는 과정은, 적어도 그걸 보는 그 순간에는 '불편한 진실'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물고기'는 얼굴을 가졌나? 식물에게서 '얼굴'을 찾지 않듯, 물고기의 '통각(痛覺)'도 조금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 문제에 답하기 위해 '물고기의 생명'에 집중하기보다, '식량자원과 환경파괴'의 문제로 다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렵도록 검푸른 바다와 물고기의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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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2011-06-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문화는 정치다>를 갖고 있습니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재일조선인이 쓴 <다미가요 제창>이 참 끌리네요.

윈터 2011-06-08 20:48   좋아요 0 | URL
앗, 교고쿠도 님 반갑습니다.
<문화는 정치다>는 순전히 '문화정치'에 대한 오랜 관심과, '목수정'에 대한 최근의 관심,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일시적 관심에 의해 선택했습니다 ㅎㅎ 읽어보고 싶어요.
<다미가요 제창>은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 '재일조선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남성의 목소리들과 동질화되었던 '여성' 재일조선인 학자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많이 읽히고,여러 독자들에게 귀감이 된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자의 성실성과 영민함에도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요. ^^

교고쿠도 2011-06-08 21:17   좋아요 0 | URL
사실 일본의 천황제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저로써는(저는 재일조선인들과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는듯 합니다), 저 책 반드시 읽어봐야겠어요. 서경식, 강상중, 이양지, 현월, 유미리, 양석일, 원수일, 이회성 등의 재일조선인이 쓴 책들을 서재에 한가득 꽂아두고 있습니다. ^^
(오죽했으면 도일해서 재일조선인 문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윈터 2011-06-08 22:06   좋아요 0 | URL
네. 이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교고쿠도 님과 앞으로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