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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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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1 99’ 혹은 ‘0.1 99.9’로 지칭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함정에 빠져 버린 세계라고 부르며,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채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를 음울한 어조로 묘사한 바 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의 이 책 역시 바우만과 동일한 세계를 다루고 있고, 둘 다 앞으로 다가오게 될, 혹은 다가올지도 모를 우울한 세상에 대해 카산드라의 예언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매우 다르다. 바우만의 책이 99퍼센트 혹은 99.9퍼센트들에게 그들이 겪게 될 삶의 파국에 대한 우울한 경고와 대안의 모색을 촉구하고 있다면, 프릴랜드의 책은 1퍼센트 혹은 0.1퍼센트들에게 그들의 자만이 초래할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는 서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저자는 여기서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자본가들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깔로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16)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말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시스템이 지금까지 잘 작동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작동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에서도 현재의 유력 이론이란 결국 잠정적인 지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듯, 자본주의자들은 과학자들의 겸손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저자의 의도는 그녀의 배경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약력은 그녀가 유력 경제지의 기고가이자 편집자로서 성장해왔음을 보여주는데, 당연히 유력 경제지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지는 뻔한 일이다. 더구나 이 두꺼운 책을 채우고 있는 방대한 사례들과 발언들의 출처를 보면 대부분 유력 인사들과의 개인적인 식사 자리나 만찬장에서의 대화, 유력 경제인들이 개최한 회의의 사회자로 참여한 경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결국 그들에게 비판적인 입장이었다면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경험들이 바로 이 책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책의 대부분은 플루토크라트라고 불리는 이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었는지, 누구는 기술 혁명의 물결을 잘 타고 올랐으며, 누구는 사회 변화의 순간에 어떻게 기회를 잡았는지, 그리고 누구는 과감한 판단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는지와 같은 사례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오히려 상위 1퍼센트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혹시 결론에 언급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저자 자신은 아니었을까? 뉴욕의 한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는, 문학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난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공 비결은 기업인들이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준다고 한다.”(403)

 

그렇다고 해서 99퍼센트에 속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이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미국식 경제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역시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세계적 금융 위기라는 풍랑에서 캐나다를 지켜줄 수 있었던 강력한 시장 규제 정책이라든지, 갑부들의 시대에서 우리 모두는 엘리트들이 시장에서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파이 전체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기존의 파이에서 그들의 몫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293)에서와 같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룰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면밀한 감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한다면 그 대답 또한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경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면밀한 감시를 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은 자들이 바로 정치가들일 텐데 저자가 언급한 연구결과처럼 정치가들은 상위 집단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피라미드를 세 단계로 나누었을 때, 상원의원들은 중간 단계 유권자들보다 맨 위 단계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50퍼센트나 더 많이 반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맨 아래 단계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바텔스는 민주당 의원들과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 유효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406~407)

 

저자는 베네치아의 부흥과 몰락의 사례, 그리고 19-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을 언급하며 플루토크라트들의 오만이 초래할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하지만, 금융위기에 대한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했던 그들이 이런 경고에 대해 반응할지 의문스럽다. 사람들은 모두 슈퍼스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승자 독식 시장에서 정상의 자리는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어 있.”(220)음을 강조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수록 오히려 그 소수에 들어가기 위해 더욱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우만의 지적처럼 파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보다 급진적인 변화, 즉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최고의 시스템이 아닐 수도 있음을, 더 나은 시스템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모색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갖춰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윤리 의식의 변화이다. 저자가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듯이, “99퍼센트가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 바라고 있을 것을 1퍼센트들이 바란다고 해서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424) 승자가 되기 위한 경쟁의 대열에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스스로 내려올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낙오자의 변명이 아닌 용기 있는 외침으로 박수쳐 줄 수 있을 때, 다른 시스템을 고민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김예슬 선언이나 안녕들 하십니까?’와 같은 목소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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