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 불평등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어떤 CEO가 수십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았다거나 퇴임 공직자가 법무법인에서 단 몇 달 고문 역할을 한 대가로 수억을 받았다는 기사는 이제 너무 흔한 얘기가 되어 버렸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흔하디흔한 얘기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안드로메다 너머에는 이러저러한 종족이 살고 있단다 같은 수준의 이야기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느 책에선가 박정희는 수입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 고위 공직자의 집을 불시방문하기도 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세대가 지나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된 지금, 석 달간 고문 역할을 한 대가로 1억5천여만 원의 월급을 받은 일은 ‘관례’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넘어간다.
다시 한 번,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1 대 99’ 혹은 ‘0.1 대 99.9’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숫자들은 불평등의 간극을 보여주며, 한줌도 안 되는 소수의 인간들이 지구상의 부를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의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언급된다. 그러나 저 숫자들이 말해주는 또 하나의 진실은 ‘99’ 혹은 ‘99.9’에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고만고만하고 엇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다. ‘99’ 혹은 ‘99.9’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99’ 혹은 ‘99.9’에 속하는 사람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1’ 혹은 ‘0.1’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TV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는 불평등을 용인한다기보다는 불평등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라는 물음은 객관적 수치로 측정된 사회를 보면 얼핏 당연한 문제제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일상인들의 현실 속에서 실감하기 힘든 질문이기도 하다.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진다.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21~22) 이는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며,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뻔히 보이는 정당의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현실을 설명해 준다. 다시 강조하자면, 오늘날 불평등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생존경쟁의 몸부림과 일상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소비라는 유혹이다. 바우만은 이를 “함정에 빠져 버린 세계”라고 부른다. “함정에 빠진 사람들에게, 세계는 의심과 용의자들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비춰진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전부 혹은 거의 전부는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인 반면, 무죄 선고는 추후 통지가 있기 전까지는 언제든 상소나 즉각 파기의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는 임시변통일 뿐이며 요구 즉시 탈퇴 가능을 명시해놓은 조항을 동반한다. 헌신은 무모한 것이 된다. (…) 우리는 안전을 위해 인간의 선의와 친절보다는 입구에 있는 CCTV, 무장경호원에 의존한다.”(105)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세계, “친절한 협력, 상호 관계, 공유, 상호 신뢰, 인정, 존중 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생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갈망을 경쟁과 경합으로 대체한”(109) 세계, 즉 파국, 바로 이것이 우리가 처한 문제이다.
이제 궁금한 것은 이러한 파국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바우만은 이러한 세계에 대해 어떠한 대안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결론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대안 아닌 대안,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여러 세계 가운데 가장 맹목적인 것으로 규정할 세계에 살면서도 그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의 존재다.”(113)라는 말을 들으면,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보다는 어떤 무기력이 느껴지고, 그런 이들의 사례로 진실을 외쳤으나 외면당하고 말았던 여러 예언자들의 이름이 나열될 때는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일까, “위기가 도래했을 때, 경고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마시라.”(87)라는 바우만의 경고도, 그저 씁쓸한 자조적 독백으로 들린다. 짧지만 우울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