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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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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접해본 역사책의 서술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알려진 사건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다. 독자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바로 뛰어들어 흥미롭게 당시의 사건들을 목격한다. 행위자나 등장인물의 판단에 공감하거나 반성하면서 어떤 교훈을 얻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책들이 바로 이런 방식을 띠고 있다.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다. 해당 시기와 관련된 온갖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독자 스스로 당시를 총체적으로 구성해보길 요구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생활양식이나 법체계 등에 간혹 흥미를 느낄 수는 있지만 역사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독자는 대체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두 가지 방식이 하나의 역사책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이야기 중심의 서술이라 할지라도 문화적 배경들이 덧붙여질 때만 사실감과 흥미가 더해질 것이고, 역사적 사실의 나열에도 중요 인물과 관련된 사건이 빠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두 방식이 상호 조합됨으로써만 특정 시기에 대한 총체적 시대상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 역사책마다 무게 중심을 어느 쪽에 두는가는 구분될 수 있는 것 같다.

 

테오도르 몸젠의 <몸젠의 로마사 1>은 후자 쪽에 보다 무게 중심이 놓인 책이다. 어쩌면 이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1권은 이탈리아 반도 지역에 거주하던 최초의 종족으로부터 로마 초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당연히 충분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최초로 이탈리아로 이주한 인류에 관해 우리는 어떤 정보도, 심지어 전설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9) 이런 상황에서 간헐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로 당시의 시대를 복원해 내기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당대의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역사는 고고학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꼼꼼하게 기록한 후 정보들을 교차 대조하여 빈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다.

 

몸젠이 보여주는 고고학의 주된 자료는 언어다. 비록 단편적이긴 하지만 신뢰할 만한 유일한 전승의 원천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에서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민족의 언어들이다. 민족의 성장과 함께 만들어진 언어에 각인된 민족 성장의 흔적은 후대 문화에 의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11) 그는 고대의 비문들에 남겨져 있는 언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서로 간의 영향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초기 종족의 기원과 구성을 재구성해 낸다.

 

이러한 분석방식은 그 자체로는 매우 흥미롭다. 주변국과의 언어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동 경로나 영향력을 추적하거나 특정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고 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당시의 사상이나 생활양식을 복원해 내는 방법은 마치 추리소설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라틴어를 교양으로 배우는 교육 체계를 가지고 있거나 유럽의 나라들처럼 라틴어에서 기원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면 더욱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끝없이 이어지는 낯선 어휘들의 나열은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이런 부분이 많았던 책의 전반부에서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로마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보다 재밌다. 몸젠이 전하는 초기 로마는 자유분방함보다는 완고하고 경직된 체제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시민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되었다.로마 공동체는 이렇게 통치되었다. 로마 시민은 자유를 누리는 한편 법에 복종할 줄 알았으며, 일체의 미신을 단호히 거부했다. 법 앞에서, 그리고 그들 상호 간에 무조건적 평등이 보장되었으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외국에 대해서도 관대하고 개방적이었다.”(116) 그러나 궁극적 법률 토대는 언제나 국가다. 자유는 다만 가장 넓은 의미에서 시민권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모든 사유재산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공동체가 각 개인에게 양도한 것이다. 계약은 오로지 공동체가 그 대리자를 통해 계약에 증인으로 참석할 때만 유효하다. 유언은 오로지 공동체가 이를 승일할 때만 유효하다. 공법의 영역과 사법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뉘어 있었다. 국가에 대한 범죄는 직접 국가의 법정으로 끌려와 언제나 사형으로 처리되었다.”(226)

 

이러한 경직된 체제는 종교와 예술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희랍에서 종교가 예술적, 사변적 이념을 촉진하고 우주론과 인간관의 확장을 가져온 데 반해, 라티움에서 신의 개념은 매우 구체적이었으며, 굳이 예술과 시인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분명했다. 라티움 종교는 상상 예술과 거리가 멀었으며,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로마 종교는 두 개의 머리를 한 야누스 인의 경우를 제외하면 신의 특정 모습을 그리지 않았는데, 바로(Varro)도 대중이 인형과 조각 따위를 원한다며 조롱했다. 이렇게 로마 종교에 창조적 사유가 결여되었던 것은 다시 로마의 문학과 사색이 완성을 보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249)

 

추측컨대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완고하고 경직된 체제, 혹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유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후의 과정들을 더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인상으로 로마는 국가 혹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회 체제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태도가 아직 발전되지 않은 공동체들 사이에선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출간될 이후의 책들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전반부를 다소 지루하게 읽어나가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역사서라는 홍보 문구에 대해 다소 의아했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앞부분을 뒤적이자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보석 같은 문구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전이라 불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역사가 무한한 다양성을 가지는 민중의 삶을 모두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그저 전체의 발전을 기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개인의 창조와 행위, 사유와 문학은, 물론 이런 것들도 역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역사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음미해보려는 시도는, 특히 역사적으로는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시대를 다루는 경우에는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와 다른 고대 문명인들의 생각과 감정, 마치 깊은 심연처럼 놓인 차이점을 우리가 이런 영역에서나마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민족 이름들과 흐릿한 전설은 한때는 푸르렀으나 이제는 우리가 간신히 손에 넣은 마른 잎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20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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