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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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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 시장 사회에서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을까.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샌델은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 제시를 통해 문제제기와 토론을 이끌어 낸다. 더 많은 돈을 내고 새치기하는 것은 정당한가. 돈을 받고 생명보험을 재판매하거나 자신의 몸에 광고를 새기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할까. 또한 시장지상주의자들의 말처럼 인센티브가 효율을 증대시키는 적절한 요인이 될 수 있을까. 이처럼 시장의 규범이 일생생활의 전반에 침투할 때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까.

 

시장지상주의자들은 시장이란 경제주체들의 상호 합의를 통해 자유로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이를 통해서만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시장은 제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는 장치일 뿐 아니라 정보를 모으고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210) 그러므로 경제주체들 간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에 대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규제하거나 개입해선 안 된다. 물론 때로 어떤 거래 행위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보편적 도덕 감정을 거슬러 불편하고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나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용인되어야 한다.

 

2.

이러한 시장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샌델은 가능한 두 가지 반박을 소개한다. 하나는 그가 공정성에 관한 반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정성에 관한 반박에서는 사람들이 불평등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을 지적한다.”(157) 즉 시장지상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각 경제주체 간의 자발적 합의에 따른 자유로운 행위라고 하지만, 실제 극단적인 거래를 수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로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하게 된 것이고, 이는 결국 암묵적 강요나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샌델이 부패에 관한 반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부패에 관한 반박은 () 시장은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주장한다.”(157) 이는 특히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과 같은 도덕적·시민적 재화를 사고파는 경우에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처럼 우리가 공공선이라 부를 수 있는 시민적 미덕들에 시장 거래가 개입하면 그 미덕이 가진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재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악화시킬지 모른다.”(170)

 

3.

이 두 가지 반박 중 샌델은 후자를 지지한다. 오늘날 정치적 논쟁이 대부분 시장지상주의자와 공정성을 지적하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공정성에 관한 반박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논쟁은 시장이 야기하는 진정한 문제를 회피한다. 이들 둘 사이의 논쟁은 어느 쪽 입장에 서더라도 시장 중심 사고와 시장 중심 관계가 모든 인간 활동을 침해하는 세상이 대체 왜 문제인지 알 수 없다.”(255) 다시 말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조건만을 고려할 뿐 시장이라는 매커니즘 자체를 고려하지는 않기 때문에 핵심적 문제를 흐린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공정한 거래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장이 야기하는 진정으로 심각한 문제란 무엇인가. 왜 시장이라는 매커니즘 자체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가. 샌델이 보기에 시장은 가치중립적인 매커니즘이 아니다. 시장은 특정 가치를 구현한다.”(159) 그렇기 때문에 시장 매커니즘의 내적 과정보다는 시장 매커니즘의 외적 효과, 즉 시장의 가치편향성이 야기하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부패에 관한 반박은 바로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또한 변질된 가치에 대해 고민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좋은 삶(the good life)’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샌델은 도덕적·시민적 미덕를 한정된 재화, 교환가능한 재화로 여기는 시장주의자들을 반박하며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180)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덕이 더욱 강화되기 위해선 시장의 침식으로부터 보호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275~276)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핵심 주장과 다시 만나게 된다.

 

4.

이제 샌델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샌델이 시장을 문제 삼는 이유는 시장의 확대가 공동체의 미덕과 공공선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회제도를 지배하는 규범을 시장이 고쳐 쓰기를 원치 않는다면,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론에 부칠 필요가 없다”(<정의란 무엇인가>, 367)거나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274)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뭔가 이상하게 들린다. 시장의 확대가 공동체의 공공선을 훼손한다는 것은 공공선이란 것이 시장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그 공공선은 무엇인가. 샌델은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과 같은 추상적 가치들을 언급하긴 하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사람들 사이에 어떤 규범이 합당한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274)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요점은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274)이었다고 짐짓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문제가 됐던 것은 단순히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이 아니라 기존에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는 이미 어떤 기준, 아마 샌델 자신의 기준에 따라 이전의 소중한 것과 현재의 부정적인 것으로 가치가 구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솔직하게 자신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함께 토론하며 찾아보자는 식으로 얼버무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샌델은 어떤 재화나 행위에 공적으로 합의된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가 내재되어 있고, 이러한 규범이나 가치가 침해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한 시기에 합의되었던 가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많이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가치도 후대에 얼마든지 쓸모없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노예제 시대에 살고 있다면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이들을 심각한 공공선 파괴자로 여겼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노예옹호론자를 그렇게 여기듯이. 공공선이란 상대적이며 조건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즉 침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공공선 자체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다. 공공선이란 과연 무엇인가. 샌델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할 가치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공적인 토론과 합의를 거치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모든 이들의 동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다수결로도 충분한가. 혹은 공동선이란 그 자체가 절대적 가치이기에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토론하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공공선은 신과 같은 어떤 절대자가 부여한 것인가. 공공선은 어떻게 현실화되는가. 합의한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공공선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인가. 어쩌다 공공선을 위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과 형벌 같은 제도를 통해 강제해야 하는가.

 

5.

이처럼 샌델의 책은 쉽게 읽히면서도 또한 쉽게 답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들을 풀어놓는다. 어쩌면 이것이 샌델의 책이 가진 매력일 수도 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깔끔하게 정리된 각각의 입장을 비교하는 참고서가 될 수도 있으며, 여러 입장들을 비교하며 은근슬쩍 드러나는 샌델의 주장을 찾아보는 책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샌델의 한계와 반론을 고민하며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 읽건 샌델을 읽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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