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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평점 :
『아서 페퍼』
패드라 패트릭 장편소설 | 이진 옮김
처음 "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라는 제목을 보고 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예전에 봤던 영화 "모멘토"도 생각이 나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생각났다. 소개된 짧은 내용을 살펴보니 69세 홀아비 아서 페퍼가 아내의 숨겨진 과거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 여정이 시작된 것인지 궁금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아티스트, 영화제 기획자,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고 단편소설로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전업 작가가 된 이후 발표한 첫 소설인 『아서 페퍼』가 24개국에서 출간되었고 영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지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 특별함과 섬세함이 있는 것일까. 예술에서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재다능한 그녀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2016년 다양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이 되고, 2017년에는 프랑스 밀레디 독자상을 거머쥐었다고 하니 이 책에 어떤 매력이 있어 사람들이 열광한 것인지 내용이 더욱 궁금해진다.
총 29개의 장으로 나누어진 내용은 목차를 살펴봐도 감이 잡히지 않지만, "출발" 전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 여행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런던"을 갔을 테고, "여행의 끝?"과 "미래"라고 되어있는 것을 봐서는 뭔가 여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 목차들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면 명확해진다.
"집에서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가 얼마나 그립던지. 계단을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심지어 문이 쾅 닫히는 소리마저도 너무나 듣고 싶었다. 층계참에 떨어져 뒹구는 빨래 한 무더기가 그리웠고 현관에서 진흙 묻은 장화에 걸려 넘어지고 싶었다. 아이들은 그 장화를 웰리밥이라 부르곤 했다. 혼자 사는 삶의 정적은 그가 불평했던 그 어떤 생활 소음보다도 그의 귀를 먹먹하게 했다."
아내가 죽고 1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키우던 양치식물에 프레더리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화를 할 정도로 그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찾아오는 이웃인 버나뎃은 고맙다기보다는 귀찮은 존재이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는 혼자 있고 싶었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거대한 외로움과 고통을 혼자 남겨진 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 가까스로 견뎌내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마음을 먹고, 1주기가 되는 날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참이 달린 팔찌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참은 총 여덟 개,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였다. 팔찌도 참도 아서가 미리엄에게 선물해준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이 팔찌의 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가족을 위해 애써왔고, 미리엄을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과거를 말하지 않았던 아내와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며 혼란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삶을 즐겼던 미리엄이 고리타분한 자신과 결혼해서 얼마나 후회하고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그녀가 나눈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떠올리며 질투심에 불타오르기도 했다. 과거를 알게 되어 또 다른 힘든 시간을 겪고 있던 그는 댄과 루시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 하나, 책에는 틀어진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서, 댄 그리고 루시의 틀어진 관계와 옆집 버나뎃과 네이단의 관계였다. 특히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결국엔 가족과 멀어지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 부분에서 마음이 아팠고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때로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루시는 아빠를 이해했고 다음 날 아침 아빠를 보면 반가워했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댄은 좀 어려웠다. 드물게 아서가 일찍 퇴근한 날이면 오히려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한번은 "엄마랑 있는 게 더 좋아요"라고 한 적도 있었다. 미리엄은 아서에게 아이 말을 담아두지 말라고 일렀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 중 한쪽과 더 가까울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아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너무 일만 했다는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서는 아들을 쳐다봤다. 발끈하는 아들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미리엄처럼 항상 곁에 있어주진 못했어도 아이들을 도와줄 순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입을 다물었고 숙제는 다른 가족들에게 맡겼다. 미리엄이야말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아서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나가서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었다."
아서가 루시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도, 루시가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도, 댄이 아서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것도, 버나뎃과 네이단이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것도 모두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면 모를 일들이다. 점점 더 오해는 쌓이게 되고 관계는 틀어져버려 언젠가는 되돌릴 수조차 없게 돼버리고 만다. 가끔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수용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곤 한다. 말이나 행동으로 깊은 상처를 주지만,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하면서 다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짧지만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줄 때가 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틈도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며 부모님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고, 가족의 소중함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항상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배려를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략) 댄이 마흔이고 루시가 서른여섯이라는 사살이 믿기지 않는다. 세월이 언제 그렇게 흘렀는지.
이제 아이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었다. 한때 미리엄은 아이들의 해고, 아서는 달이었지만, 이제 댄과 루시는 자신들만의 은하에서 반짝이는 머나먼 별들이 되었다."
아서가 지나간 여행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현한 심플하고 산뜻한 책표지가 눈에 띈다. 왠지 그의 현재와 미래를 표현한 것 같다. 어두운 은둔생활을 접고 아내의 시간을 따라 여행을 하면서 아서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아를 깨닫고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해진 틀에 맞춰 생활하던 그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의 남은 생은 좀 더 다채로운 색상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세상을 여행하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밝고 행복하게 남은 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아서 페퍼를 응원한다.
아서 페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꾸 아빠가 생각나고 가족이 생각났으며 마음이 따듯해질 때도 먹먹해질 때도 있었다. 가족이 떠난 빈자리에 홀로 남겨진 채 외로움과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던 한 남자가 아내의 과거를 여행하면서 틀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깨달았고 결국 멋진 나비가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미리엄이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이
날 기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구나. 미리엄은 더 이상 여기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아직 살아
있어.""
69세의 나이에
자신에 대해 몰랐던 것을 깨달은 아서처럼 우린 아직도 내 안에 숨어있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도 너무나 많다. 우리는 매일 인생을 여행하고 있는데 남겨진
여행 일지가 다양한 이야기들로 채워질 수 있도록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깨닫고, 잘못을 반성하며 발전하는 매일의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인생 여행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내가 떠난 자리에서도 나를 떠올리면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살아야겠다. 아내의 시간을 여행하는 남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