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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장편소설 | 권영주 옮김
전쟁을 생각하면 항상 폭탄과 총알을 피해 진격하는 군인이 먼저 떠오르는데, 취사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음을, 그들의 무기 역시 총만큼 막강하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전쟁터의 요리사들』. 취사병으로서 전쟁터에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전쟁 중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내용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천사를 보니 더욱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나 은어, 경험해보지 못한 생활방식 등 여성작가로 군대 이야기 그것도 전쟁터가 배경이 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마치 군대에서 바로 튀어나온 군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잘 묘사했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치밀하게 조사하고 검증을 받았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말한 것처럼 "일본의 젊은 여성이 유럽의 전쟁에 대해 이리도 잘 묘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노르망디 지도와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먼저 나온다.
책은 크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5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주인공이 군대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가 프롤로그에, 군대에서 겪는 이야기들이 5장에 걸쳐 각각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진행이 되고 마지막 참전용사들이 나이가 들어 만나는 내용이 에필로그에 담겨 있다.
프롤로그
제1장 노르망디 공수작전
제2장 군대는 위장으로 행진한다
제3장 굴뚝새와 솔개
제4장 유령들
제5장 싸움의 끝
에필로그
평화로운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소도시 출신인 티모시는 징집되어 군대에 가는 것보다 지원해서 가는 것이 여러모로 더 좋다는 이야기에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이렇게 결정한 것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책은 1942년 그와 같은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애국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수많은 미국 장병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협조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입대를 결심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독재자의 야망을 깨부수어 세계를 구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거나 정의감이며 명예욕에 사로잡힌 녀석도 있었다. 보다 막된 타입은 그저 날뛰고 싶어서 병역에 지원했다. "크라우트 새끼, 잽 새끼!"라며 적국을 비난하는 소란스러운 인간과 맞닥뜨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의 경우 마음이 동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회복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지만 경기가 완전히 되살아나려면 아직 멀었거니와,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은 여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군에 입대하면 안정된 급여를 받을 수 있고, 혹시 자신이 전사하더라도 가족에게 어느 정도의 위로금이 지급될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입대해야 한다면 징병되는 것보다는 자진해서 손을 든 지원병 쪽이 보너스가 50달러 더 많으니 이득이다."
티모시가 군 입대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프롤로그를 보고 있으면, 어린 10대 소년들이 얼마나 철부지인지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을 교육해 전쟁터로 밀어 넣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게 만든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 된 이 소설은 연합군이 독일을 저지하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펴는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독일이 항복하는 것까지의 내용을 5장의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전쟁의 흐름과 함께 각 장에서는 해결해나가야 할 사건들이 하나씩 발생한다. 왜 낙하산을 모으는지, 분말 달걀 600상자는 누가 어떻게 가져간 것인지, 얀센씨가 남긴 유서와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는지, 디에고가 들은 유령의 소리는 무엇이고 의문의 사고는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믿었던 동료의 신분 사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추리력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겪는 공포와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특히나 맨 마지막 5장의 에피소드는 이전에 앞 장에서 여러 차례 힌트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구성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장에서 발생하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라면, 사이사이 그려지는 전쟁이라는 배경의 참담함은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첫 비행에서 낙하하길 두려워했던 동료 매컬리는 두려움에 떨다가 죽고 만다. 낙하하는 순간 아니 적지로 날아가기 위해 비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삶과 죽음을 오가길 수십수백수천 번. 그런 찰나의 시간들을 지나며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았음을 다행이라 여기고 망자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렇게 동료들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행위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며 전쟁에 미쳐가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그때 나는 입사로 소총을 쏘다가 서 있던 곳이 불안정해서 다치기 직전에 약간 움직였다. 총알은 내 눈앞의 돌을 맞히고 튀어나와 파편이 광대뼈 위의 살을 도려냈다. 움직인 덕에 살 수 있었다. 움직인 탓에 죽었다. 전쟁터에서 선택지는 너무 많은데 실수의 대가는 너무 크다."
전선에서는 서로 총구를 겨누며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후방에서는 느긋하게 쉬면서 교대를 기다리는 것도, 전선의 병사들은 식어버린 음식을 먹고 얼어붙은 몸을 녹이느라 힘겨워하는데 사단 본부엔 칠면조가 올라와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기는 것도,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동료는 독일인이기에 스파이로 의심받으며 포로수용소로 끌려가지만 중대장의 집무실엔 그와 같은 독일인 청년이 작업을 돕고 있는 것도 모두 모순처럼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적이라 불리는 순간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것, 연합군의 부모가 마음 졸이며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듯 적군의 부모 역시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기다릴 것이라 생각하니 전쟁을 왜 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수많은 무구한 사람들의 목숨이 바쳐져야 하는 것인지, 특정 계급 특정 집단의 누군가를 위한 잘못된 선택으로 피를 불러온 것은 아닌지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적은 누구인가. 결국 적은 네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은 내가 아닐까.
"(상략) 녀석들은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어느 날 갑자기 빼앗고 노예로 부리면서 그들이 재배한 식량을 독차지한다. 침략이란 곧 스스로를 배불리기 위해 피지배자에게 굶주림을 떠넘기는 행위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고 작가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곱씹어 본 문장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자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고 징집하고 살육한 일본이 독일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오히려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해 사죄했지만, 일본은 지금까지도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는데. 독일을 통해 일본의 침략 행위가 타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표명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제삼자의 입장에서 독일군의 침략 행위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의아했다. 왜 동아시아가 아닌 유럽을 배경으로 삼았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