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자리(Libra) / 9.23 - 10.23


  천칭자리(Libra)는 황도 12궁 중 전갈자리와 처녀자리 사이에 위치한 별자리로 황도 12궁 중에서 7번째 별자리로서 9월 23일경부터 10월 23일경까지의 기간을 관장하는 것으로 여긴다.  



 천칭자리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때 인류와 신은 지상에서 같이 살면서 평화롭고 행복한 날을 보냈다. 그러나 인류는 갈수록 똑똑해지고 서로 싸우는 걸 배우게 되고 거짓말과 좋지 않은 악습 등을 만들었다. 이에 많은 신들은 참을 수 없게 되어 인간세상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천상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러나 많은 신들 중에 정의로운 여신 아스트라이아 여신이 있었는데 사람의 본성에 대해 절대 실망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인류와 함께 살았다. 인류는 더욱 악해져서 전쟁을 하여 상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결국 인정 많던 정의로운 여신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천상으로 올라가 버렸다. 하늘로 올라간 그녀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인류가 전과 다름없이 착한 본성으로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바다의 신이 인간에게 연민을 갖고 있는 아스트라이아 여신을 비웃었다. 화가 난 여신은 바다의 신이 자기를 모욕했다고 여기고 제우스에게 이를 벌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정의의 여신은 자신의 딸이고, 바다의 신은 자신의 동생이니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가 곤란 했다.
결국 두 사람에게 시합을 시켜 지는 쪽이 사과하기로 했다. 시합장소는 하늘의 광장.
바다의 신이 벽을 향해 한번 흔드니, 그 틈새로 매우 맛좋은 샘물이 흘러 나오고, 뒤이어 정의의 여신이 한 그루 올리브 나무로 변하니 누구든 이 나무를 보면 사랑과 평화를 느끼게 되었다. 시합이 끝난 후 바다의 신은 감복해서 자신이 졌음을 인정했다.

제우스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의 선,악을 가리는 정의의 저울을 하늘로 올려 지금의 천칭자리(Libra)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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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자리(Virgo) / 8.23 - 9.22



  쳐녀자리는 사자자리와 천칭자리 사이에 위치한 황토 12궁 가운데 하나로 황도 12궁의 6번째이며 8월 23일경부터 9월 22일경까지의 기간을 관장한다.
처녀자리(Virgo)의 전설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에 얽힌 신화이다.
 



 처녀자리

지하세계의 지배자인 하데스가 땅 위의 옥수수 밭을 거닐고 있었다. 하데스는 마침 그곳에 나와 있던 어여쁜 페르세포네를 발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서 페르세포네를 자신의 마차로 납치했다.
땅의 갈라진 틈을 통해 자신의 지하세계로 내려간 하데스는 거기서 울며 사정하는 페르세포네를 강제로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부족할 것 없이 그녀를 만족시켜 주었지만 그녀는 지상의 언덕과 계곡, 드넓은 평원을 생각 할 때마다 깊은 슬픔에 빠지곤 하였다. 그녀가 지하세계로 납치된 후 딸을 잃은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슬픔으로 인해 큰 비탄 속에 빠져 버렸다.
토지의 여신이 슬퍼하자 땅은 메말라 갔고, 들에서는 곡식이 이삭을 피지 못했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는 땅이 황폐해가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하세계의 왕인 자신의 형 하데스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기에 이들을 화해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만들었다.

결국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일년의 반 동안만 지하세계에서 머무르고 나머지 반 동안은 지상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페르세포네는 매년 봄이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지하세계로부터 동쪽하늘로 올라오게 되었다. 이것이 처녀자리가 있게 된 이유이다.

그 후로 겨울에는 추위가 닥쳐오고 풀이 돋아나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은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지하세계에 있는 딸을 그리워하여 슬픔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 봄이 와서 땅 속으로부터 페르세포네 즉, 하늘의 처녀자리가 나타나게 되면 데메테르의 슬픔이 가시게 되어 땅은 다시 활기를 띠고 무성한 나뭇잎과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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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자리(Leo) / 7.23 - 8.22



  사자자리는 게자리와 처녀자리 사이에 있는 황도 12궁 별자리 중의 하나로 황도 12궁의 4번째 별자리로서 7월 23일경부터 8월 22일경 사이를 관장한다. 사자자리(Leo)에 대한 그리스신화로는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업인 12과오 중 첫번째 임무인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사자자리

아주 먼 옛날 하늘이 혼란 속에 빠져 별들이 그들의 자리를 떠나고 혜성이 하늘을 날아 다니던 적이 있었다. 이 때 달에서 불타는 유성 하나가 황금사자의 모습으로 그리스의 네메아 골짜기에 떨어졌다.
유성이 변하여 된 이 사자는 지구의 사자보다 몸집이 훨씬 컸고 성질 또한 포악해서 네메아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사자는 날로 포악해졌지만 네메아 사람들의 힘으로는 이 사자를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이 나라를 다스리는 에우리테우스 왕은 헤라클레스에게 사자를 처치할 것을 명령했다. 네메아 골짜기에 나타난 헤라클레스는 활과 창, 방망이 등을 들고 사자와 싸웠지만 사자를 무찌를 수 없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무기를 버리고 사자와 뒤엉켜 생사를 가르는 대혈투를 벌이게 되었고, 신의 아들답게 사자를 궁지로 몰아넣어갔다. 황금 사자는 끝내는 헤라클레스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목이 졸려 죽고 말았다.
죽은 사자를 어깨에 메고서 네메아로 돌아오니 네메아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의 용맹함에 모두 감탄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영웅이라 불렀습니다만 에우리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가져온 사자를 보고는 겁을 먹어 빨리 가지고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헤라클레스가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는 다름을 깨닫고는 그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져서 그로 하여금 성밖에서 살도록 하였다.

헤라클레스 죽은 황금사자의 가죽을 벗겨 옷 대신 입으니 이 사자가죽은 이후로 그의 용맹함의 상징이 되었고 또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패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이를 하늘에서 본 제우스는 자식의 용맹함과 헤라클레스의 승리를 알리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죽은 사자를 하늘로 올려보내 사자자리(Leo)를 만들어 자식의 공을 치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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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전쟁은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과 신들이 얽혀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에서 헥토르가 죽고 아가멤논, 펜테실레이아, 글라우코스, 파리스 등 트로이군은 주요 장수들을 모두 잃은 다음에도 트로이는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트로이는 새로운 동맹자를 얻어 저항을 계속하였다.

트로이에는 팔라디온이라 불리는 아테나의 유명한 조상(彫像)이 있었는데 그것이 트로이성 중에 있는 한 트로이는 함락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을 알고 그리스 측의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변장하고 성안으로 들어가 팔라디온을 탈취해왔으나 트로이는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그리스군은 무력으로 트로이를 정복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오디세우스의 충고에 의하여 한가지 계략을 쓰기로 했다. 그들은 성을 포기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꾸미고 함선의 일부를 퇴각하여 인접한 섬 뒤에 숨겼두었다. 다음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테나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선전하였으나 사실 그 속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들어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리스군 진영을 살펴보던 트로이측은 놀라움에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게 된니다.
그리스군은 모두 철수한 뒤였고, 거대한 목마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군이 물러난 것에는 크게 기뻐하던 트로이 주민들도, 목마에 대해서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
트로이군이 잡아온 그리스쪽의 첩자는 팔라디온을 훔쳐간 그리스군에 노한 아테나의 분노를 풀기위해 목마를 바친 것이라고 말했다.

목마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진 트로이 주민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받아들였다.
성문을 허물고 목마를 성안의 아테나 신전으로 모신 트로이군은 10년 만에 맞는 평화를 만끽하며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이 되자 목마의 문이 슬그머니 열리고 그리스군이 소리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섬뒤에 숨어 있던 동료 그리스군 함대에 신호를 보냈다. 목마에 숨어 있는 용사들이 성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리스의 대군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소리 없이 진행된 이 행동은 곧 트로이의 몰락을 가져왔다. 성안의 집집마다 불이 타고 사람들은 죽어 나갔다. 오랜 세월동안 그리스군에 맞서 싸우던 트로이군은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 이렇게 트로이군은 반격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하루밤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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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식으로는 "율리시즈" (Ulysses)로 불리며, '호머의 오딧세이' 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사에서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으나 전쟁의 숨겨진 영웅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이오니아 해의 작은 섬 이타카의 왕으로 페넬로페라는 아내를 두고 있었다.
트로이전쟁이 시작되자 오디세우스는 예전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인 헬레네에게 구혼했었는데, 오디세우스이외에도 헬레네에게는 구혼자가 많았다. 헬레네의 아버지는 많은 구혼자중 한 사람을 택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오스에게 충고를 했다. 헬레네가 누구를 택하든지 간에 다른 구혼자들은 그 선택된 사람을 어떠한 재난으로부터도 보호하겠다는 것을 맹세케 하라고 제안했다. 결국, 헬레네는 메넬라오스를 선택했고 다른 사람들은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때 구혼자중 한명이었던 오디세우스도 아프로디테여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헬레네를 유괴했을 때 메넬라오스를 도와 트로이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 그는 아내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두고 원정에 참가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친척하며 피해보려고도 했지만,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의 지혜와 영리함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결국 원정에 참가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언변이 능하고,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의 계략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은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안에 그리스 군을 숨기고, 트로이 측으로 보내 그들을 멋지게 속아 넘긴 것이었다.
목마로 인해 트로이를 완전히 정복한 후 오디세우는 조국 이타카로 귀환을 시작한다.

:: 오디세우스의 모험
여신 아테나의 특별한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의 귀환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트로이를 출발한 일행은 키콘 족의 나라에서 일행을 잃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기도 하면서 로토파고스라는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을 조사하러 간 세 사람은 그곳 사람들이 대접한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은 고향 생각을 잊게 해주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세 사람을 강제로 끌고 나와야 했다.

그다음에 일행이 도착한 곳은 키클롭스들의 나라였다. 키클롭스족은 큰 몸집을 가진 거인으로서 키클롭스(Cyclops) 라는 말은 '둥근 눈'이라는 의미인데, 이 거인들은 이마의 중앙에 눈을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키클롭스들은 동굴속에서 살았고 섬의 야생식물과 양의 젖을 마시며 사는 양치기들이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식량을 구하러 섬에 정박했고 동굴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동굴의 주인 폴리페모스가 돌아왔다. 오디세우스는 자신들이 최근 트로이를 정복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대원정으로부터 귀국하는 도중이라고 설명했고 후대해주기를 간청했다. 폴리페모스는 아무 말 없이 오디세우스의 부하 두 사람을 붙잡아 동굴의 벽을 향하여 내리친 뒤에 맛있게 배불리 먹은 뒤 잠이 들었다. 폴리페모스가 동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도망갈 수 없었다.
다음날도 거인은 오디세우스의 부하 두 명을 잡아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 먹어치웠다.
그런 다음 양떼를 몰고 나갔는데 바위입구를 다시 막아놓았다. 오디세우스는 괴물을 없애고 도망칠 방도를 강구했다. 저녁이 되어 거인이 돌아오자 전날과 마찬가지로 양젖을 짜고 부하 두 사람을 붙잡아 그것으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오디세우스는 거인에게 술을 대접하자 거인은 기뻐하며 술을 받아마셨다. 거인은 기분이 좋아져 오디세우스를 제일 나중에 잡아 먹겠다고 약속했다.

거인이 이름을 묻자 그는 "내 이름은 우티스(그리스어로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요" 라고 대답했다. 거인이 잠들자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은 벌겋게 달군 막대기로 거인의 눈을 겨누어 눈구멍에 깊이 박고 빙빙 돌렸다. 거인은 비명을 지르며 동굴주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키클로프스들을 불렀다. 그들이 모여들어 무슨 고통 때문에 이와 같이 떠들며 잠도 못자게 하느냐고 하자 그는 대답했다.

" 오, 친구들이여, 나는 죽네. 우티스가 나를 괴롭힌다." 그러자 그들은 대답했다.
" 아무도 그대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우스의 짓이므로 그대는 참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그를 남겨두고 물러갔다. 다음날, 눈이 먼 키클롭스가 양떼를 목장으로 내보내기 위해 바위를 열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다시 한번 지혜를 발휘하였다. 그는 부하들을 폴리페모스가 기르는 양의 엉덩이 부분에 묶어 놓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고 양떼를 몰고 해안으로 와서 급히 양을 배에다 싣고 해안에서 떠나버렸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그 마녀의 마법에 대항했으며, 그녀를 위협하여 그녀가 돼지로 만들어버린 그의 부하들을 사람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그와 그의 선원들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이에 있는 해협에서 배가 난파되는 것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해협의 한쪽에서는 폭풍을 일으키는 '세이렌' 들이 그들을 유혹했고, 또 한쪽에서는 동굴 속에 사는 6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스퀼라'가 공격했던 것이다. 그는 로토파기(Lotophagi), 곧 "연 실을 먹는 사람"을 방문하기도 했고, 지하세계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 오디세우스의 귀환



그러한 모험들을 한 후에 그는 혼자 살아남아 변장을 하고 이타카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가 본 것은 그의 아내인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50명의 구혼자들이 궁전을 점거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는 아내를 몰래 만나 궁중에 보관되어 있는 강궁(强弓)을 구부릴 수 있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게 했다.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그 활을 구부려서 시위 줄을 맬 수 있었다. 그는 그 활로 구혼자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쏘아 죽였다. 그 싸움에서 그의 편이 되어준 사람은 2명의 충직한 하인과 그의 젊은 아들 텔레마코스뿐이었다.
그후 그는 페넬로페와 정착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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