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중 교수의 신간 제목은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이다.

초반 조금 읽었던 대목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김상중 자신은 악을 동경해왔다고. "악은 어딘가 매력적이고 음영이 풍부하여 일상의 지루함을 떨쳐버릴 힘을 가진듯 느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속의 악역을 해보고 싶었다고.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 - 아마 그건 악이 보여주는 광포한 힘 같은 것이리라 - 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악의 캐릭터에 투영한 것이었으리라.

누구나 악역에 매력을 느껴봤을 것이고 밍숭맹숭한 착한 주인공보다 오히려 악의 몰락이 안타까웠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규칙 같은 것은 발톱의 때만으로도 여기지 않고 계율과 도덕 따위는 개에게나 던져주는" 세상 악인의 행태에 사이다 한잔 들이키는 시원함을 가져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전은 현실에서 맞는다.

현실에서 실체로 맞닥뜨리는 악은 ... 치떨리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악이 지닌 힘은 세다.

악의가 내뿜는 독에 손상당하는 것들은 어쩌면 회복해서 원래로 돌이킬 수 없게 될 확률이 높다. 영원히. 언젠가 악이 몰락할지라도.

 

김상중 교수에게 힌트를 제공한 건 테리 이글턴의 [악 :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이다. 

악은 불가해하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성격결정론이나 환경결정론으로 이해되는 건 진정한 악이라 할 수 없다.

악은 개인의 자유의지이기도 하거니와 조직안에서 배태되는 악도 있다.

문학과 예술에서 악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악에 대해 이해해보려 애쓰는 게 바보스러운 짓일지 몰라도 헛된 시도라해도 한번은 훑어보고 싶다.

 

악의 꽃이 만발하도록 놔둬야 하는가.

악에 손상되지 않고 악의 시대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아마도 앞으로 리스트는 쌓일 것 같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테리 이글턴의 [악 :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김상중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모리모토 안리 [반지성주의]

우치다 타츠루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나카지마 요시미치 [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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