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인디고 : 제1회 호스트 선수권대회
가토 미아키 지음, 김소영 옮김 / 갤리온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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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클럽 인디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제목처럼 살고 있다고 자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트라는 직업이 사실 그리 떳떳하지 않을 건 없지만 어디에 내세울만한 직업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라 그에 맞게 살아간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고 또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도태되거나 유야처럼 명목상의 사장 또는 매니저같은 일로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열심히 산다는 점이다.  

오늘도 클럽 인디고의 사장인 아키라와 시오야는 바쁘다. 그들의 클럽 인디고는 분명 놀고 즐기기 위해 만든 호스트바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일전에 신세 진 왕도계 호스트 클럽 엘도라도의 구야가 자신의 가게 호스트 조사를 의뢰하는가 하면 시오야와 함께 일하던 후배 편집사 실종 사건도 조사해야 하고, 괜히 나기사 마담 가게에 침입한 도망가는 강도를 잡겠다고 나기사 마담 백을 던겼다가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나기사 마담의 애완견만 잃어버려 나기사 마담의 애완견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심장병에 걸린 신참 호스트 기 살려준다고 호스트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엉뚱한 일을 겪기도 한다. 이들이 호스튼지 탐정단인지 점점 정체가 모호해지고 있다. 

사건들은 모두 어떤 사회에서나 일어나고 문제시될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이 생명인 호스트에게 얼굴에 화상이 입을 정도의 독한 액체를 뿌리고 도망가는 사람의 이야기속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뉴스에 나왔던 염산 테러 사건이 생각났다. 여기에 실종 사건은 지금도 애타게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강도 사건은 늘상 일어나는 사건이라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울하고 심장병에 걸린 사람의 생명줄인 심장병약을 도둑질하는 사건은 살인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이런 사건들을 단순하고 가볍게 전개하고 있어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뿐 따지고 보면 모두 심각한 범죄,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생각해봤다. 여자들이 왜 호스트 클럽을 찾을까? 그건 외로워서다. 그곳에 가면 호스트들은 그들에게 친절하다.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말 상대도 해주고 웃게 해주고 작은 하소연에 걱정도 해준다. 이건 남편이나 친구, 자식들도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런 여성들이 끊임없이 그곳을 다니는 걸까? 알면서도 안해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고 남편은 아내보기를 돌같이 하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머리 커졌다고 대들기나 하고 친구들은 만나면 자랑만 해서 열통 터지고 형제들은 제각기 살기 바쁘다. 이것이 현실이다. 누가 있어 위로를 해주겠는가. 이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호스테스 클럽을 찾는 이유도 이와 같은 면도 있을 것이다. 풍요속 빈곤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다시 한번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미스터리적 요소는 전작보다 덜하지만 따뜻함은 그보다 더 담겨 있다. 호스트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는 유야 한명뿐이라 더욱 눈에 뜨이는데 그의 경력은 언제쯤 알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 외 클럽 인디고 호스트들은 호스트같지 않음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의 독특함이지만 이런 이들이 있는 곳이기에 나도 한번 가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거기다 호스트들끼리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 앙숙같아 보이지만 아키라와 시오야의 끈끈함, 시오야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 마지막에 자포자기한 요시다 요시오를 위하는 모두의 마음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함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들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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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패러독스 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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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을 미리 밝히고 그 범인이 범인이 아니라면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읽은 나는 저자가 저지른 명백한 오류인 독자에게 범인을 알려주는 행위를 간과할 수 없기에 밝히지 않기로 한다. 또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비롯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추리소설 독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니 양해를 구한다. 비록 책 소개에서 모든 것이 나오고 목차 속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내 글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때로는 밝혀진 진실이 불편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십여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는 '와, 이런 작품도 있구나.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다.'라고 감탄했다. 십여년전에 다시 읽었을때는 '페어플레이 논쟁을 왜 벌였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관점을 달리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나라면 범인을 이 사람으로 할텐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작가에게 이미 나온 작품의 수정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것은 작가의 고유 권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처음 보고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는 대단해.'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도 그렇게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더니 사후에까지 이런 현미경같은 작가에게 해부되는 일을 겪다니 책이 대단하지 않다면 어디 가능하기나 할 법한 일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몇 해전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사람이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 대한 과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하고 <오이디푸스왕>과 비교하는 모습속에서 추리소설이 장르소설이라는 하위 문학으로 더 이상 치부될 수 없음에 가슴 벅찼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계의 대모이자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의 바이블이다. 그의 책을 읽지 않고 추리소설을 읽었다 할 수 없고 그의 책을 모두 읽는다면 대부분의 트릭은 배우게 된다. 본격추리소설의 트릭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속에서 태동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한 결과라 할 수 있고 그 자신도 어쩌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자서전과 작품 속에서 남긴 것들로 볼 때 커다란 추리소설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의 책 한권 한권이 어쩌면 독자에게는 그의 작품 세계 전체에 대한 단서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에게 그런 관점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작가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이 다른 사람이라는 전제하게 작품을 파헤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본격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들, 쉽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 찾기를 할때 반드시 보물이 숨겨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작가가 독자에게 작품안에 단서를 보물처럼 숨겨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간과하고 읽는 것은 독자의 책임이지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범인은 확실한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살인의 동기, 살인할 수 있는 행동력같은 것 말이다. 이런 세세한 점들이 모여져 지목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이 작품에서 푸와로가 지목하는 범인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푸와로의 망상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들이대고 여기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푸와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숨겨진 보물이 없는 보물 찾기란 말이 안되듯이 텍스트 자체가 오류로 뒤범벅이 되서 추리소설, 아니 문학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데 어떻게 작가와 푸와로가 주장하는 범인이 범인이라 믿을 수 있겠느냐며 타당한 다른 범인을 저자 본인이 수사를 통해 지목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범인이 나도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범을 놓치고 피해자를 한 명 더 만든 셈이 된다. 이것은 독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쓴 것, 탐정이 지목한 대상을 여과없이,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서, 추리소설 읽기에서 수반되는 위험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또 다른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집중이 안됐는데 뒤로 갈수록 저자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정곡을 찌르는 여러 책에 대한 비교 분석과 설명,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전반에 걸친 간단한 검토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복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언젠가 반드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꼼꼼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누가 알겠는가? 또 다른 해석 망상에 의한 피해자를 구제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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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5-07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이라기보단 일종의 논문이나 보고서처럼 들리는군요. 애거서 크리스티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만두님 리뷰를 읽고나니 심히 끌립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천재'라는 말은 크리스티에게 딱맞는 말이라고 봅니다. 그 모든 트릭이며 구성이며...

물만두 2009-05-07 14:5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에세이 또는 소설이라고 해서 봤는데 완전 논문이었어요. 그래도 꼭 보면 좋은 책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말이 필요없는 작가죠.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지고요. 그래서 저는 늘 애거서 크리스티 80권만 읽으면 모든 트릭에 통달하게 된다고 주장한답니다. 읽어보세요~
 
붉은 벽돌 무당집 1 - 공포의 방문객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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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내 눈에 띈 건 제목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이 무당이 살던 집이라 사람이 얼마 못 살고 무서워하며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집에서 잘 살았다. 가끔 우스개소리로 그런 얘기를 했을 뿐 잊고 있었는데 이사하던 날 안 방 살림을 다 내놓고 보니 무당이 살던 집이라는 실감이 났다. 책장으로 쓰던 벽장이 무당이 만든 작은 벽장이었고 그 방안의 모양새가 점집의 분위기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 아, 정말 무당이 살았었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이 귀신보다 기가 더 세셨던 모양이다. 귀신이 있다면 말이다. 

그래도 난 귀신을 무서워한다.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은 후로 공포소설은 오랜 세월 못 읽었고 만화 <백귀야행>도 밤에는 안 본다. 전설의 고향은 아버지 등 뒤에서 숨어 봤고 우리나라 최고의 공포 영화 <목없는 미녀>를 봤다가 사흘을 잠을 자다 가위에 눌려 깨서 못 잤다. 그런 내가 미스터리만 보면 사족을 못쓰게 된 지라 공포소설도 미스터리로 읽으면 무섭지 않게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 화장실 갈때 꼭 동생이랑 같이 다니던 내가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한 공포,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오싹함과 정체 모를 섬뜩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우리가 내면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는 공포에 대한 원초적인 반응을 글로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안 봤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또 못 봤으니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존재가 귀신이다. 이 책은 그런 귀신에 대한 공포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왕따로인한 괴로움에 자살을 하려다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깨어난 정아라는 여학생은 아무리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해도 남동생 진규의 눈에는 좀 이상해 보인다. 누나에게 무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진규는 친구 한조와 함께 누나의 정체를 파헤치기로 한다. 한편에서는 공포 카페 회원이 자신의 친구들이 겪은 귀신을 본 이야기를 듣게 되어 그 귀신이 출몰했다는 도서관에 같은 학교 친구인 은정과 우민은 귀신 체험을 하러 갔다가 진짜 귀신을 보고 만다. 그리고 은정이 사라진다.  

도서관이나 학교에는 교복을 입은 귀신이 산다. 엘리베이터에는 아줌마 귀신이 산다. 병원에는 수 많은 귀신이 산다. 서양에는 지하철에 귀신이 산다. 이것은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시 괴담으로 하나의 사회 현상을 형상화한 이야기들이다.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 학교 폭력이나 왕따, 입시 스트레스, 이웃과 소통하지 않는 단절된 고독,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불안한 정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신뢰보다는 불신이라는 더 큰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문제를 공포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르다. 이 작품은 그런 현대 사회의 문제를 잘 드러내 요소요소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귀신이 산다. 세상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많다.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 남은 한과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것을 샤머니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산 사람들이 좀 더 편하기 위해서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나쁜 건 귀신이 아니라 역시 산 사람이다.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으면 귀신이 되어 산 자들 사이를 맴돌까 생각하면 귀신이 불쌍하다. 이것이 서양의 엑소시스트같은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고 일본의 악귀들과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 귀신들은 한만 풀어주면 자신이 갈 곳으로 돌아간다. 착한 귀신들이다. 이런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 귀신의 모습을 현대에 맞게 잘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은 정아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중학생 진규의 모험과 귀신을 보고 귀신이 쓴 책이라는 것을 갖게 된 우민이 좋아하는 귀신이 들린 은정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독자들이 더욱 호기심을 느끼게 만들어 순식간에 몰입하게 하고 있다. 예전에 <퇴마록>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퇴마록만큼 재미있다. 아니 오히려 퇴마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도 탄탄하다. 처음엔 조금 뻔하게 시작하는 것 같았는데 뒤로 갈수록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에 만족하게 되고 반전에 놀라게 된다. 호러만 있었다면 좀 무서워서 기피했을텐데 미스터리가 있어서 더 좋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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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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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쓴 시대 미스터리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는 제목 그대로 괴이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괴담이라고 이름붙여도 될 법한 미스터리하지만 추리소설적이지 않은 환상소설들이다.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는 재미있다. 마치 우리네 <전설의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릴적 할머니께서 잠자리에서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같이 느껴져서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 있다. 

모두 9편의 작품이 등장한다. 이들 작품은 배경이 에도시대일뿐 아니라 그 시대 하층민인 고용살이 일꾼들이 겪는 괴이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대부분 주인공이 고용살이 일꾼들이고 이들 고용살이 일꾼들을 가게에 소개하는 중개업소의 소개꾼, 그들이 모여 사는 공동 주택의 관리인, 가게 주인도 등장하여 고용살이 일꾼의 고된 노동과 열살 남짓한 나이부터 남의 집살이를 해야 하면서도 신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분수를 일깨우고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부지런함과 정직한 노동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읽을수록 현대의 노동자와 다르지않음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런 처지가 괴이한 것들을 좀 더 많이 접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꿈 속의 자살>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입을 줄이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고용살이 일꾼으로 들어가 그 집 도련님과 또 다른 고용살이 하녀 사이에 일어난 일을 그 시대 유행한 수건으로 서로의 손목을 묶고 동반 자살한 사건과 연결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림자 감옥>은 한 늙은 대행수가 자신이 겪은 가게에서 일어난 참극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형식의 작품으로 추리 형식의 미스터리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이불방>은 고용살이 하녀로 일을 하다 비명횡사한 언니 대신 그 집에 다시 고용살이 하녀로 들어가게 된 어린  소녀가 겪게 되는 일을 <전설의 고향>의 느낌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매화 비가 내리다>는 고용살이 일꾼이 되지 못한 누나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이제는 결혼을 한 남동생의 서글픈 추억담이다.  

<아다치 가의 도깨비>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으로 도깨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여자의 머리>는 한 소년이 엄마를 여의고 공동주택 관리인의 소개로 한 가게에 고용살이 일꾼으로 들어가서 겪게 되는, 그러면서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까지 알게 되는 역시 추리 형식의 미스터리 작품이다. 여기에 호러적 분위기가 좀 더 있고 재치도 있는 작품이다. <가을비 도깨비>는 중개업소를 찾아가서 이상한 이야기만 듣고 온 하녀의 이야기가, <재티>는 갑자기 난폭해진 하녀와 낡은 화로에 관련된 이야기로 마치 만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바지락 무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중개업소를 이어 받아 일을 하던 한 남자가 아버지 친구에게 듣게 되는 오싹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세상에는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고용살이 일꾼들은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의 자식들이다. 아니면 혼자 남겨진 쓸쓸한 이들이다. 그 모습이 마치 내 할아버지, 아버지 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만 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나이가 들어버린 사람들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를 연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도시 괴담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에도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과거 사회의 모습을 알려주는 그 시대 괴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괴이한 것은 도깨비나 마물, 원혼을 품은 유령 따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어린 나이에 고용살이를 해야 하는 두려움, 나아지지 않는 미래에 대한 비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시기, 질투, 의리 등 그들이 겪어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괴이한 이야기로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를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보이지 않는 도깨비같은 <아다치가의 도깨비>처럼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그런 점을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리라. 그런 이유로 괴담이지만 무섭거나 오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 무서운 존재인 인간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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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2009-05-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결성은 아니지만 유사한 컨셉을 지닌 시리즈가 있던 모양인데요.

물만두 2009-05-05 10:24   좋아요 0 | URL
시대 미스터리라고 해서 여러권 나왔습니다.
 
THR3E 쓰리 Medusa Collection 9
테드 데커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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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본다. 누군가 내게 전화를 걸어 3분동안 네가 지은 죄를 고백하라고 말을 한다면 나는 과연 내가 지은 그 많은 죄 중에 어떤 죄를 가장 먼저 떠올릴까? 40년 넘게 살면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 자체가 죄다. 어떻게 사람이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겠는가. 하지만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대다수 사람들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자잘한 거짓말, 험담, 비방, 저주, 약간의 싸움, 환경 파괴 등 여러 가지를 저지르지만 법에 저촉되는 죄가 아니라면 용인되고 묵인되는 죄, 즉 죄 아닌 죄라고 생각한다. 죄라면 죄지만 또 아니라면 아닌 애매모호한 죄들, 그런 죄들 가운데 어떤 죄를 고백할 것인지 그것은 참 난감한 문제다. 케빈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의 본성, 선과 악, 인간이 가진 악을 어디까지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갖고 논문을 준비중인 신학대생인 스물 여덟살의 케빈 파슨이라는 남자가 있다. 너무도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그의 지도 교수는 생각한다. 그러는 어느 날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3분 안에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차량을 폭파하겠다는 전화다. 거기에 모른 남자가 낸 수수께끼도 함께 풀어야 한다. 3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그가 타고 있던 차가 폭발한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고 케빈은 어떤 죄를 지은 것일지 궁금해지는 가운데 모든 수사관들이 그를 협박하는 일명 수수께끼 살인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케빈의 친구이자 CBI 수사관이 된 사만사도 그를 위해 달려와준다. 

3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며 3의 배수로 시간을 주며 수수께끼를 내고 강도를 더해 케빈을 괴롭히며 게임을 살벌하게 몰아가는 슬레이터와 마침내 자신이 저지른 어린 시절의 끔찍한 죄를 방송으로 고백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 절망하는 케빈, 모든 관계자들 내부에 범인과 공모한 자가 있다고 생각하며 혼자 수사를 하는 사만사, 케빈의 어린 시절을 알게 되면서 더욱 수사관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되어 고민하는 제니퍼의 모습은 케빈의 신학교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의 내면 속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의 심리 변화와 묘사를 작가는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희생자 케빈의 관점에서 보여지다가 케빈을 보호하려는 어린 시절 친구 사만사의 관점으로 옮겨가고, 다시 범인인 슬레이터란 자의 어두운 모습을 슬쩍슬쩍 보여주는 가운데 수수께끼 살인자에게 오빠를 잃은 FBI 수사관 제니퍼의 활동까지 넘나들며 다양한 각도에서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사건을 빠른 전개와 긴장감있게 유지하는 구성,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케빈의 어린 시절의 회상과 케빈이 자란 환경에 대한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과연 선과 악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작품은 기독교 스릴러라는 장르라고 말을 하지만 서양 작품치고 바탕에 기독교적인 것이 깔리지 않은 작품이 없으니 새삼스럽게 이리 장르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선과 악이라는 주제는 인간의 보편적 주제이니 종교를 떠나 인간이 죽을 때까지 끌어 안고 가야 할 짐이다. 인간은 그 어느 하나만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있고 그 선과 악 또한 그 자체로 모호하다. 어떤 선이 진정한 선이고 어떤 악이 진정한 악인지 인간은 모른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악의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인간이 인위적인 악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신이 존재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에게 악에 대항할 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하고도 말하고 있다. 신과 선과 악, 또는 선과 악, 그 사이에 인간이 있어서 THREE 즉 셋이라는 것일까. THREE라는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 읽은 뒤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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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4-2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분 안에 내가 지은 죄를 말하라면..너무 많아 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될지도. 저도 보관함에만 담아놓고 있는 책인데 재미있어 보이네요.^^

물만두 2009-04-28 14:27   좋아요 0 | URL
기대하지 않고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약간 뻔한 면도 없지 않아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스포될까 말씀 못드리고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 영화보다는 책이 더 낫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