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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총이 빠르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2 ㅣ 밀리언셀러 클럽 31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80년대를 풍미한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총찬... 우스운 이름 하나 달고 정의를 위해 맨손으로 싸우는 <인간 시장>의 주인공... 삼류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지만 그 시대 이 책 안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중학교 연합고사를 끝내고 수업 시간이라고 뜨개질이나 독서를 하던 시간에 이 책을 보던 아이들이 많았고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보면서도 이런 인물이 어디 있어 하며 유치하게 생각했지만 재미있고 통쾌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우리에게 80년대는 암울했지만 장총찬이라는 정의의 기사가 그래도 있었다는 건 지금은 추억이고 기쁨이다.
아마 마이크 해머 시리즈도 그 시대 그런 작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인식은 싸구려 삼류 소설이라는 것에 박혀 있지만 그래도 그 통쾌한 무언가가 있어 자꾸만 보게 되는 책... 사춘기 남자 아이들이 야한 잡지를 때가 되면 슬금슬금 찾아보듯이 우리 안에는 이런 작품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살인도 정당하다고 외치며 총질을 해대는 머리에는 근육이 가득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안 돌아가는 머리를 주먹으로, 인간적인 연민으로 커버하는 남자, 그가 바로 마이크 해머다. 작품을 읽다보면 탐정이 아니라 덩치 큰 바보가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탐정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작가들이 잘 포장한 허구인지도 모른다. 진짜 탐정이라면 흥신소에 있을 법한 그런 남자들이 아닐까. 더러는 마이크 해머같이 머리는 잘 안 돌아가도 주먹과 악과 깡이 있어 그거 하나 밑천으로 살아가는 탐정이 더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이크 해머가 마지막까지 분통터지게 만들어도 그런대로 봐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신사적이고 머리 잘 돌아가는 멋있는 탐정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더러는 이런 탐정도 섞여 있어야 어우러지는 맛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무식도 정도여야지 처음부터 빤히 보이는데 혼자 헛다리짚고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 고생시키면 안 되지... 그건 멋이 아니라 무식이라고.
가볍게 킬링 타임용으로 바보 탐정의 바보짓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보시길... 사실 여자분 들은 속이 좀 터질 지도 모르므로 남자의 바보짓에 못 참고, 무식한 주인공은 사양하고 싶으신 분들은 보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