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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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지극히 간단한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 사회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은 절대로 공평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공평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곳이 가장 잘 실현될 곳이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를 30년 동안 폭행해온 남자가 있다. 그 폭행 도중 아내가 맞아서 죽었다. 그 남자에게 해당되는 죄는 무엇일까. 폭행치사죄이다. 이 경우 형량은 많아야 7년 정도다. 그럼 반대로 30년을 폭행당하고 참고 산 아내가 있다. 참다 참다 못 참게 되어 어느 날 또 자신을 폭행하고 난 뒤 잠이 든 남편을 목 졸라 죽였다. 이때 해당되는 죄는 무엇일까. 살인죄다. 그것도 고의적인. 그래서 형량은 적게는 12년, 최대는 사형까지도 받는다. 이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죄라는 것은 누가 판단하고 벌이라는 건 누가 주는 것일까. 그들이 행하는 것은 공정한가. 그것으로 피해자의 정신적 보상까지 벌로, 돈으로 할 수 있는 걸까. 그건 옳은 것일까. 이 작품은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죄를 지은 자의 뉘우침이라는 것은 또 누가 판단하고 믿을만 한 것인지 말이다.

‘죄는 지은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고 했던가. 그런데 언제? 후세에? 그렇다면 현세에 법이 있을 필요는 무엇일까. 이런 작품을 접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사담이 많아진다. 작가처럼 간결하게 작품을 써내려가면서 한번 잡으면 끝을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겠지 싶다.

한 남자가 사형을 앞두고 있다. 사형을 앞 둔 다른 작품들이 다 그렇듯이 상황은 사형이 목전이기 때문에 긴박함은 필수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다른 점은 우선 그 사형수가 기억상실증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남자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을 해낸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그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음을. 이것을 단서로 해서 익명의 누군가 사형폐지론자라는 사람이 현상금을 내고 그의 무죄를 입증할 단서를 찾을 사람들을 고용한다. 거기에 응한 남자는 교도관을 그만두고 빵집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난고 쇼지라는 사람이고 그가 파트너로 선택한 사람은 이제 막 보호감호로 출소한 미카미 준이치다. 준이치는 식당에서 시비를 거는 남자를 방어하다가 남자가 죽는 바람에 살인을 하게 된 청년이다. 그로 인해 집안은 피해자 집에 피해 보상금을 해주느라 망하다시피 했다. 그는 이번 일로 조금이나마 그 빚을 갚아보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뜻하는 13계단이란 일본법에 따른 13번을 통과해야만 사형이 집행되는 것을 뜻한다. 불길한 서양의 숫자로 일컬어지는 13... 이것은 어쩌면 인간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정의라는 감옥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말하는 죄란 무엇일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사는 법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그것은 정의란 살다보면 퇴색되고 빛바래지는 신기루라는 뜻은 아닐까. 만약 예수님처럼 누군가 인간보다 높은 존재, 신이 나타나서 ‘죄 있는 자 돌로 쳐라.’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과연 그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까 싶지마는 나도 자잘한 돌멩이는 수도 없이 던지고 사는 인간임을 생각해볼 때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듯이 나도 외치고 싶다. ‘정의는 죽었다.’ 그럼 희망은???

그래서 이렇게 사형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오는 작품을 접하게 되면 사형 지지와 반대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만나게 되고 그런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이제는 싫증이 난다. 사형당해 마땅할 것으로 보이는 극악한 범죄자를 보면 사형을 지지하게 되지만 만에 하나 그들 중 천명의 한명, 혹은 만 명의 한명이라도 무죄인 사람이 죄를 뒤집어 쓴 거라면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고 세금 내어 그들을 벌하는 자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우리는 한 사람을 살인한, 우리는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끔찍한 일 아닌가.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나마 생각해본다는 것을 좋은 일인데 결론 안 나고 어차피 결론이 나더라도 그것이 진짜 올바른 일인지를 알 수 없기에 자꾸만 왔다 갔다 하는 나는 이런 글밖에 쓸 수 없는지 모르겠다.

작품은 아주 재미있었다. 약간의 단점이라면 과도한 반전이랄까... 그래도 한마디로 쿨한 작품으로 다른 사형 문제를 다룬 작품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 된다. 특히 미야베 미유키가 라이벌 의식을 갖는 작가라니 더욱 눈길이 간다. 글 솜씨는 쿨하지만 내용은 묵직한, 그래서 신인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저울추가 기울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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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뉴스 볼때마다 가슴아픕니다.

돌바람 2006-01-0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 만두님 최고! 고백 하나, RG에서 내가 추천했쪄요^^*
저는 읽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 못 읽었는데요, 혹시 텐도 아라타 <가족사냥> 보셨어요? 안 보셨음, 보내드릴게요.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랑 같이^^

물만두 2006-01-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그렇죠 ㅠ.ㅠ
돌바람님 감사^^ 그리고 두 작품 모두 가지고 있답니다~^^

돌바람 2006-01-0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 그럼 요건~~ <암스테르담>은요? 좀전에 페이퍼 봤었는데...

물만두 2006-01-0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그것도 있다구요~^^
늘해랑님 감사합니다^^

돌바람 2006-01-0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만두성님, 도저히 선물할 게 없네용. 이그, 빈틈을 좀 만드시지...
좋은 날 되셔요^^*

물만두 2006-01-0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 선물은 무슨~ 암튼 고마워^^ 추천은 했는가~^^

돌바람 2006-01-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당근. 그러믄요. 이 리뷰를 이주의 리뷰로 추천함다. 왜 그런 기능은 없는거야요. 마구 선물하고 싶게 만드는구만...^^

물만두 2006-01-0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ㅎㅎㅎ

sayonara 2006-06-0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도한 반전... 거북한 반전은 아니기를...
월드컵보다 재밌다는 마태모씨의 말에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책... ㅋㅋㅋ

물만두 2006-06-0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거북하다기보다는 제눈에 좀 빤한 반전입니다만 그거 말고 내적인게 괜찮은 작품입니다^^

rlacjfgns 2010-06-1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12년 선고받았다는 살인범도 결국 흉악한겁니다. 연쇄살인마나 흉악범들도 평소에는 굉장히 불쌍하게 살았고,참다참다 못해서 살인한거래요.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진짜 살인하고 교도소에서 살고있는 재소자들을 보면 좀 달라지실겁니다. 감정에 휘둘려서 살인범을 동정하는건 굉장히 위험한거지요.

chobi 2020-02-0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lacjfgns / 파악 좀 제대로 하고 사세요. 자신을 30년간 죽일듯이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을 참지못하고 저지른 일에 흉악하다고요? 흉악의 뜻도 몰라요? 그 부인이 흉악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30년간을 맞고 살았겠어요? 님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경찰이나 법관을 하면 절대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