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제목은 명백하다. 이건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코넬 울리치의 삶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의 삶은 밤과 같이 어두웠고 그는 늘 죽음이 찾아온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그는 사는 동안 글 속으로 피신을 했지만 그 글들은 주인의 정신이라 그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언제나 코넬 울리치의 작품을 읽으면 멋지면서도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고 그의 기구한 삶을 엿보는 심정이 되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작가가 나중에라도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좀 더 오래 기억해 주길 원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여, 여기 당신이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잘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본의 옆 나라 대한민국에서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습니다. 당신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당신의 두려움에 같이 떨며 당신을 그리워하는 독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알고 당신 작품을 읽고 좋아하는지 알았나요? 그곳에서도 보이나요? 그러니 이제 편안하게 낮으로 나오셔서 아름다운 산책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이 있던 곳에 즐거움이 채워졌기를 바랍니다. 당신 계신 곳에서 당신의 평안함을 기원합니다. 살아서는 밤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곳에서는 아니기를...

첫 작품 <담배>를 보고 난 깜짝 놀랐다. 코넬 울리치의 밤과 새벽을 묘사한 시간적 서스펜스는 이미 <새벽의 데드라인>에서 잘 알았기 때문인데 거기에 이렇게 절묘한 위트까지 포함시켰을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새벽의 데드라인>에서와 같은 시간적 짜임새에서 오는 서스펜스를 구사하고 있는데 배경이 밤인 것에 비해, 그리고 추적에서 오는 두려움에 비해 전혀 어둡지 않다는 것이 한층 더 매력적이었다.

이 단편집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형사가 나오는 작품과 나오지 않는 작품으로. 형사가 등장하는 작품은 1편에서 <동시상영>, <용기의 대가>, <엔디코트의 딸>, <윌리엄 브라운 형사>과 2편에서 <색다른 사건 (재즈 살인사건)>, <유리 눈알을 추적하다>, <죽음을 부르는 무대>, <하나를 위한 세 건>, <죽음의 장미>으로 모두 아홉편이다. 이렇게 많은 형사물을 썼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것 역시 코넬 울리치의 색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이 중에서 특히 <용기의 대가>는 1930년대를 살아가는 경찰관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엔디코트의 딸>은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내 딸이 그 사건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경찰의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윌리엄 브라운 형사>는 경찰이 어떻게 부패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와 대비되는 친구를 통해 보여주는 울리치의 솜씨에 경찰 느와르라고 이름 붙이는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색다른 사건>은 정말 색다르고 독특한 작품이었다. 살인의 트릭이 아니라 살인 유발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죽음을 부르는 무대>는 소재가 007시리즈의 <골드 핑커>로 부활했다니 얼마나 그의 트릭이 매혹적인지를 알 수 있다.

비형사물은 이 외의 작품들인데 이 중 마지막 작품은 코넬 울리치가 자기 인생에 바치는 장송작같이 느껴졌다. 프랜시스 네빈스도 말했지만 어쩌면 하나의 단편에 이리 그의 삶을 잘 녹여놨는지 참으로 서글픈 <뉴욕 블루스>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주옥같은 작품들이라 한 작품씩을 모두 말하기보다 코넬 울리치라는 이름만으로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단편집이다. 어디서 이런 단편집을 또 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엮은 프랜시스 네빈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 또한 좋다. 작품 하나가 끝날 때마다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뒤에 언급하는데 그것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마지막에 코넬 울리치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서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없는 표지에서 마지막 책을 덮을 때까지 모든 면이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참으로 잘 만들어지고 잘 번역된 보기 드문 단편집이었다.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역자의 말대로 작가의 블랙 시리즈가 시리즈로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ecca 2005-12-14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무덤이라도 근처에 있으면 꽃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물만두 2005-12-14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글쓰기 어려운 작품이죠. 감히 제가 어떻게 말하겠어요. 저도 꽃이라도 바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_ _)

sayonara 2005-12-14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계의 스콧 핏츠제럴드'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표현은 오히려 코넬 울리치를 얕보는 표현이죠. 스콧 핏츠제럴드와 동급이니까... -,.-

물만두 2005-12-14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래 그런 건 그러려니 해야죠. 추리 및 장르 소설을 아직도 하위로 본다니까요 ㅠ.ㅠ;;;

하이드 2005-12-15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뒤에 짤막하게 붙어있는거 프랜시스 내빈스의 덧붙임인가요?

물만두 2005-12-15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내빈스가 덧붙인거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그렇게 자세하게 알기는 역자나 한국편집자에게 쉽지 않은 일 아닐까 싶은데요. 데카님께 여쭤봐야 겠네요.

decca 2005-12-1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빈스의 후기가 맞습니다.

물만두 2005-12-1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네빈스의 후기 맞답니다^^

하이드 2005-12-16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궁금했는데,

물만두 2005-12-1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나그네 2005-12-31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나서는 역시 울리치야했답니다.
단편하나하나가 재미있고 가슴을울리더군요
특히 마지막에 뉴욕블루스는 작가의마지막인사같아 뭉클했습니다.
자니 카슨의부분에서는 작가와저의 연결점을 찾은거같았구요
그가 생애마지막인 60년대에 자니 카슨쇼를보았듯이 저는 80년대에 그의쇼를보았습니다.
그러던 자니도 올해 고인이되었구요
세월의무상함이 느껴집니다.
내년에는 울리치의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만두 2005-12-31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저도 찡했답니다. 저도 소원입니다. 여기저기 찔러는 보는데 참... 그나저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머털 2006-01-05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윌리암 아이리시, 코넬 울리치, 죠지 하플리... 싸구려 잡지에 연재되었던 그의 소설은 읽고 나면 묘한 울림을 준다. 눈물, 초조, 한숨 등이 뒤섞인 쌉스름한 그 무엇이 담겨있는 것 같은 기묘한 맛의 향연......

물만두 2006-01-0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