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은 누가 보면 좋겠다고 말을 하게 된다. <인생을 훔친 여자>를 읽고는 여고생들 졸업하기 전에 화장하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이 책을 읽게 하자고도 썼고, 어떤 책은 심지어 대통령이 봤으면 좋겠다고 썼다.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 종교인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쓴 책도 있다. 이 책은 지금 이 땅을 떠나려는 사람들, 이 땅보다 떠나 살게 되는 땅이 낙원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올인 하는 부모들, 그리고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이 봤으면 좋겠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수지 박, 나이는 스물아홉, 직업은 통역사, 결혼 안한 어떤 유부남의 정부로 살아가는 여자가 있다. 그녀가 가는 곳에서는 비가 내린다. 날씨가 흐리다. 그 마음이 그런 것처럼. 단 한 번도 어디에 소속되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가정에서 조차 소속되지 못한 듯 외로움을 달고 산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 지도 모르는 여자, 남자가 섹스하고 나서 마치 유령과 섹스 한 기분이라는 말을 듣는 여자...

통역사는 그림자여야  한다고, 그래서 자기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부모님께 버림받은 여자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유부남과의 동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으니까. 그리고 부모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살해당한 뒤에야 그를 떠나 또 다른 남자의 정부가 된다. 그 여자는 자신이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에게도 과거를 지우는 지우개정도의 역할만 배정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이 누구로 남을 것인가를...

한 가정에서 따뜻하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다른 곳에서도 사랑 받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것은 어쩌면 한 국가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은 다른 나라에도 소속될 수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집에서 한국에 대한, 한국적인 것을 말한다 해도 그들이 접하는 것이 미국적인 것이고 원하는 것이 미국적인 것이라면 그 사이의 간격은 좁혀질 수 없고 그들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의 숙명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결말, 아니 주인공이 자신의 삶의 한 발을 내딛으며 내린 결정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그건 반어적으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부모의 정신과 자신의 나머지 삶에도 드리워질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다. 그래서 잘못 쓰면 스포일러가 된다. 스포일러를 피하는 방법은 나머지를 쓰는 일인데 그게 잘 안 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이 작품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 모든 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문화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서 그러려니 하는 당연한 것들, 분석이 필요 없고, 배움이 필요 없고, 학문적 자료가 필요 없는 것이 전통이고 문화다. 그건 배운다고 얻어지는 것도 좋아하겠다고 마음먹는 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잘 나타내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과거속의 인물로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진짜로 등장하는 데미안의 모습이다. 평생 동아시아를 연구하고 일본인 아내와 살면서 자기 나라 문화를 경멸했지만 결국 그는 금발 머리 여자와 결혼하고(결혼을 했는지는 주인공의 추상이다.) 아이를 낳는다.

그래서 바나나란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부러워하는 당당한 1.5세대는 자국의 문화를 감추지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사람들이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말... 그건 다문화국가인 미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차별의 의미이기도 하다. 앵글로 색슨계의 미국인을 아무도 영국계 미국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폴란드계 미국인, 유태인, 흑인, 히스패니아계라는 말로 나눈다. 그들의 책을 보면 이렇게 등장하는 차별은 늘 존재한다.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서 단 한 가지만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자녀에게 이런 혼란을 주어도 좋을 만큼 떠나려는 그곳이 매력적인지... 어쩌면 그들은 통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탐정 같은 통역사... 그림자 같은 통역사, 유령 같은 통역사... 깊고 깊은 외로움에 당신 자녀를 울게 만들려고 떠나려거든 떠나시길. 이 땅도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니까.

책 표지에 옛날 교복을 입은 소녀가 있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1년동안 입었던 교복이다. 이런 교복은 69년생이후의 세대에게는 결코 입어볼 수 없는 교복이다. 그럼에도 어울리지 않게 교복을 내세웠다. 이것은 어쩌면 변하는 외면과 달리 변하지 않는 내면을 나타내고자함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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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지잉 하고 와닿는 리뷰네요 ^^

물만두 2005-11-1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 말이 너무 많아도 쓰지 못하는 제 자신의 글솜씨가 원망스럽답니다 ㅠ.ㅠ

야클 2005-11-1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게 추리소설???

물만두 2005-11-1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입니다~

물만두 2005-11-1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추리님 사실 제글은 막가파식이랍니다 ㅠ.ㅠ;;;

아영엄마 2005-11-1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알라딘 분류에는 문학책이라고 나오는데요? ^^(그래도 뭐 죽는 사람도 나오고 하니...^^;;)

물만두 2005-11-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저는 누가 뭐래도 제 식으로 분류한다는 걸 잊으셨남요^^ 이거 진짜 추리 소설 맞아요~ 마지막까지 끝내준다구요^^

jedai2000 2005-11-1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아닌줄 알았는데..구입해야겠네요. 역시 물만두님의 호객력은 대단하십니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책을 사게 만드시네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물만두 2005-11-1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읽어보세요^^

panda78 2005-11-1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이라니까요. ^^ 재밌죠오~

물만두 2005-11-1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 이제 온거야~ 추리소설이라니까 안믿잖아 ㅠ.ㅠ 자기가 리뷰 좀 써라~

panda78 2005-11-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제 왔어요. 헥헥..
근데, 살인사건도 나오는데.. ^^ 훌륭한 추리소설인데 말이죠, 그죠? ㅎㅎ
리뷰라...... 쿨럭. ;;

물만두 2005-11-1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말야~ 추리소설인데 왜 안 믿냐고 ㅠ.ㅠ;;; 암튼 뽐뿌도 힘들어~ㅋㅋㅋ

검둥개 2005-11-2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겠습니다. ^^ (사실은 벌써 책두 샀으니 ㅎㅎ)

물만두 2005-11-2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거기서는 원서 사서 보심 되겠네요^^

검둥개 2005-11-28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시간이 걸립니다. 읽기까지요. ㅎㅎ ^^

물만두 2005-11-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잖아여^^